[지상강단]
이삭의 집 (3)
- 짐 베이커
"리브가가 그 아들 야곱에게 일러 가로되, 네 부친이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어 나로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염소의 좋은 새끼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부친을 위하여 그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네가 그것을 가져 네 부친께 드려서 그로 죽으시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야곱이 그 모친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 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늘 만지실진대 내가 어버지게께속이는 자로 뵈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어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 (창 27:6-13).
이 시간에는 야곱의 어머니를 살펴 보겠습니다. 리브가는 장자인 에서 대신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아이를 임신 했을 때, 쌍둥이가 뱃속에서 싸워 걱정이 되어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미 두 아들에 대해 말씀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창 25:23). 그러나 리브가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 지도록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남편 이삭이 죽을 때가 된 줄로 착각해 에서에게 축복하고자 하자, 리브가는 야곱을 이삭처럼 변장시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 이상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주일학교에서 이미 충분히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에서가 사냥해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 갔을 때, 아버지가 야곱의 속임수에 넘어가 야곱을 자신으로 알고 축복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로인해 그는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리브가는 야곱을 외삼촌 라반-최소한 500마일 이상을 가야 합니다- 에게로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비 라반에게 피하여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하라.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창 27:43-45). 그러나 리브가는 야곱을 이 후로 두 번 다시 보지 못합니다. 21년 후 야곱이 드디어 돌아왔을 때는, 어머니 리브가는 이미 죽은 후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받아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잘못된 것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하는 잘못된 것을 빼앗아 가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행한 모든 일들이 그 심판대 앞에서 조사 받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했다고 해서 무조건 인정되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만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지 않습니다. 구원 받은 성도 모두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야 합니다. 이를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롬 14:11-12).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고전 4:5).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우리가 섬길 때 그 마음의 동기까지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금, 은, 보석으로 지어야" 합니다. "나무, 풀, 짚"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불로 타버리기 때문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고전 3:12-13).
우리의 봉사는 어떤 재료로 되어있을까요? 이같은 문제를 갖고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으신 적이 있습니까? 저와 성도님들이 이같은 점검을 해보기를 원합니다.
저희들이 잘 아는 대로, "금과 은과 보석" 은 얻기 쉬운 재료가 아닙니다. 금을 얻으려면 땅을 파야 합니다. 제련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은도 마찬가지 입니다. 보석도 땅 속 깊은 곳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나무나 풀이나 지푸라기는 여기 저기 많이 있습니다. 얻기 쉬운 재료입니다.
혹시 모임에서 장로 일을 하시는 형제님들이 여기 계시면, 제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모임에서 어떤 일로 섬기고 계십니까?" 저도 가끔 제 자신의 섬김에 대해 살펴볼 때가 있습니다. "내가 내 생애 가운데 하나님께 드린 것 중 어떤 것이 가치 있는가?"
고린도전서 3장에 그같은 심판이 나옵니다. 배경은 지역모임입니다. 지역 모임에서 우리는 만찬을 뗍니다. 여기서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예배는 참석하시지만, 기도집회에도 참석하시나요? 또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마다 참여하십니까?" 이것이 금, 은, 보석과 나무, 풀, 짚을 말하고 있는 배경입니다. 혹시 이렇게 생각하시는 자매님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자매다. 기도집회에 참석해봤자 소리내어 기도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자매님들이 나이가 점점 많아지면, 아예 집회에 나오지 않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계속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저는 야곱의 생애 자체를 말씀드리려는 게 아니라 야곱의 생애를 통해서 우리가 받을 교훈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야곱의 생애를 통해서 우리의 삶과 마음을 살펴보려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이 하나님 앞에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에 여기서 말씀을 마쳐야겠습니다. 내일 계속해서 야곱의 생애에 나오는 하나님의 집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야곱의 생애가 지역모임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는 창세기 28장의 위대한 장에서 벧엘이 나옵니다. 이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이는 또한 디모데전서하고 연결됩니다. 내일 오시기 바랍니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난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딤전 3:15).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디모데가 있는 에베소로 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서신의 주제는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동하여야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바로 "지역모임" 입니다. 주님은 더 이상 이제 사람들 가운데 계시지 않습니다. 사람이 만든 성전 안에 계시지도 않습니다. 이제 성도 안에 계십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즉 지역 모임으로 모일 때 거기 계십니다. 그래서 모임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도님들이 이렇게 오신 것에 대해 감사하고 또 이렇게 좋은 환경 속에서 교제할 수 있는 데 대해 감사합니다. 그러나 작은 무리가 모인다할지라도 소중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내일 말씀드리겠습니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축복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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