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봅시다]
병상의 축복 (3)
- 레만 스트라우스
징계의 축복
하나님의 자녀들은 질병이 자신의 몸을 공격할 때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해 살펴봐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언제나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음의 구절들을 주의 깊게 읽어보십시오.
"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히 12:5-11).
이 구절들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을 다루시는 특별한 방법들 중의 하나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그것을 "주의 징계 하심" (5절)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벌과 하나님의 징계 사이의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지극히 중요합니다.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들의 죄 때문에 형벌을 받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이미 그 죄들을 벌하셨기 때문입니다. "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6).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벧전 2:24). 당신이 알고 있듯이 주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우리가 아직 범하지 않은 죄까지 다 포함됩니다. "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7). 갈보리에서 완성된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인해 하나님은 이제 더 이상 죄값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그 값을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한 형벌을 내릴 때 하나님은 재판관으로 행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경우는 이러합니다.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심판이) 없나니" (롬 8:1).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을 징계하실때 그분은 재판관으로 행하시지 않습니다. 그 때에 그분은 아버지로서 그 일을 행하십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는 불신자들의 경우와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대적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마땅히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영적인 유익을 위하여 필요할 때마다 아버지 하나님의 징계를 받습니다. 사실 징계는 자녀들에게 실시하는 훈련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예방약 혹은 치료약으로 사용하십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참된 자녀인가요? 그렇다면 그분께서 당신에게 징계를 내리실 것을 예상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징계하신다면 바로 그 사실이 당신이 그분의 자녀임을 입증해줍니다. "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히 12:7). 반대로, 징계를 받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이가 아닙니다. "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히 12:8). 어떤이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소개합니다. 하지만 그는 징계를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는 사생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에 닥쳐온 시련이 아버지의 징계임을 알게 될 때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그것이 우리를 해롭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풍성한 유익을 주기 위해서 주어졌다고 여겨야만 합니다.
이러한 징계를 받을 때 그것을 금욕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어떤 것으로 보지 마십시오. 이렇게 된다면 당신은 그것을 최대한 빨리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길 것이며 이런 태도를 가지면 징계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것에 분노심을 품습니다. 그보다는, 당신의 질병이 징계로 인식된다면 그것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자녀를 훈련하는 것으로 보십시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로 하여금 절대로 불필요한 고난을 당하게 하시지 않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무엇 때문에 주어지나요?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더 지혜로워지고 더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려는 목적 가운데서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받아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하시느니라" (히 12:10). 무한한 지혜와 탁월한 솜씨로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더 그분을 닮아가게 하려고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가장 위대한 성도들 중 일부는 가장 극심한 고난을 받았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고, 그로 인해 믿음이 커졌고, 더 높은 신앙의 경지에 올라섰습니다.
낙담의 상태에 빠져들지 마십시오.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강력한 사랑은 당신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정도까지 당신을 테스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신이 당하는 현재의 시련을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구상하신 영적인 훈련의 일부로 여기십시오. 지금 당신이 앓고 있는 그 질병이 찾아온 이유는 당신을 훈련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구도 금생에서는 그 학교를 절대로 졸업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늘 훈련 받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겪는 시련을 가볍게 여기지도 말고 그 시련 때문에 마음이 딱딱해지지도 마십시오. 징계는 결코 쉽게 견뎌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징계를 받고 나면 그것은 "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습니다" (히 12:11). 하나님은 징계를 받으면 당신이 더 훌륭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믿기 바랍니다.
만족의 축복
인생의 가장 보배로운 재산들 중 하나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 만족하는 성품 혹은 상태입니다. 이같은 사람은 근심과 불안에서 벗어나며 만족을 누리는 이로 말해집니다. 바울이 바로 그러한 이였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 4:11). 그가 여기서 말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 때문에 불행하거나 불만족스럽지 않다고 말합니다.
만약 만족을 누리지 못할만한 환경에 놓인 이가 있다면 그는 다름 아닌 사도 바울일 것입니다. 빌립보에서 그는 자신의 간증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감옥에 들어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실제적인 만족을 경험했습니다. "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가요? 바울이 누린 만족은 안락한 시설과 기분 좋은 환경의 결과물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이 사실은 어렵고 고통스런 상황에서는 만족을 누리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반박합니다. 우리는 만족을 누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나요?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되려면 감옥은 제일 마지막에 가야 할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여기에다가 병원을 추가하고자 합니다. 만족을 누리는 사람이 되려 한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누워 있는 그 병실에서도 당신은 만족의 축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만족의 교훈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 4:11). 이것은 우리 역시 배워야만 하는 교훈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점차로 또 다양한 환경에서 이 교훈을 배웁니다. 바울은 이것을 교실에서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많은 시련들과 환난들 속에서 이것을 배웠습니다. 다음과 같은 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 4:12).
만족을 배움에 있어서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모든 일에 대하여 언제나 감사하는 좋은 습관을 기르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감사의 영을 유지하는 그리스도인은 그가 성령님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증명합니다(엡 5:18,20).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은 경건한 사람들이며 그들은 경건과 만족을 함께 드러냅니다. 따라서 그들은 부요한 이들이고 귀중히 여김을 받아야 할 이들입니다. "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딤전 6:6). 여기서 우리가 내리는 결론은 무엇인가요? 만족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나는 이 소책자에서 내가 쓴 내용이 질병과 고난이라는 주제에 있어서 최종적인 결론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본서에 완전하고 최종적인 답변을 담으려는 의도를 전혀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인생에 있어서 특별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당신에게 본서가 유익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따라서 실제적이고 현실적으로 글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 만큼, 이제 나는 만족을 추구하는 당신에게 도움이 될만한 두 번째 제안을 내놓으려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 행실을 탐욕이 없게 하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 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흠정역, 히 13:5).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소유한 것들로 만족하도록 권면 받고 있음을 주목하십시오. "행실" 이라는 단어는 품행 혹은 생활방식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매일의 삶에서 우리가 내보이는 전반적인 태도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탐욕이 없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돈과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욕심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의 하늘 아버지를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은 물질을 향하지 말아야 하고 물질 때문에 만족을 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벗이여, 하나님은 절대로, 절대로 당신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돈이나 물질적인 소유물을 갈구하고 열망함으로 당신의 육체적인 상태를 악화시키지 마십시오. 주 예수님은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눅 12:15). 최상의 건강상태는 돈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탐심 때문에 당신의 몸의 치료 과정을 지체시키지 마십시오. 탐욕스런 사람은 치명적인 화살에 꿰뚫려서 끊임없는 걱정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와 같이 걱정이 많은 사람은 절대로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그리고 이 불행한 사람은 절대로 유쾌함을 누리지 못합니다. 따라서 병석에 누워 있는 동안 자신을 최상으로 보살피십시오, 모든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올리십시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아무 것도 탐하지 마십시오.
만족은 아름다운 이상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만족은 시인의 꿈에 불과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실제적인 것이며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건강상태가 더 악화되지 않고 있다면 이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당신의 생애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면서 그분의 주권적인 다루심에 만족하십시오. 불평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태도는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묵상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묵상한다면 고뇌와 탐욕에서 벗어날 것이며 이런 상태는 육체의 건강이 회복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주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기 바랍니다. 또 모든 지각을 뛰어넘는 주님의 평안을 즐기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면 당신의 건강이 호전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부디, 만족의 축복을 한껏 누리기를 바랍니다.
맡김의 축복
시편 기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시 37:5). 여기에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반드시 배워야 하는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길을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시 18:30). 하나님은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십니다. 또한 그분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무엇이 최상인지를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영원히 의탁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에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참으로 구원받은 모든 이들은 사도 바울과 더불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딤후 1:12). 당신은 그리스도를 신뢰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당신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에 당신은 자신의 영혼을 그분께 맡겨드렸는데 이것은 가장 안전하고 지극히 합당한 의탁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당신의 영혼은 보호가 보장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첫 번째 의탁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출발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겼듯이 이제 당신은 자신의 몸도 그분께 의탁해야 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 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여기서 바울은 우리의 몸을 드리는 것을 합당한 예배 행위로 말합니다. 하나님은 불가능하거나 합당하지 않은 일을 행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몸에 대해 이중적인 권한을 갖고 계십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은 당신을 창조하신 까닭에 당신의 몸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십니다.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 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7).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의 몸은 놀라운 걸작품입니다! 인체의 각 지체를 보십시오. 그것들은 저마다의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이 맡은 특별한 임무를 이행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각각의 지체들은 몸 전체가 기능하는데에 있어서 요긴합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자신의 몸을 지으신 하니님께 그것을 의탁해야만 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당신을 구속하신 까닭에 당신의 몸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몸을 창조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당신의 몸을 구속하셨습니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 1:19). 따라서 당신의 몸을 드리라는 하나님의 요구는 불합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몸을 위해 무한한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이러하기에 하나님은 그분이 지니신 뜻대로 당신의 몸에 행하실 권한을 갖고 계십니다. 그러나 당신은 안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 자신보다도 그분이 더 당신의 몸에 관심을 쏟고 계심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자신의 몸을 잘 돌보는 신자들에게 특별한 면류관을 주시는 분입니다. "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고전 9:24-27).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질문을 한 가지 던지고자 합니다. 과거의 어느 때에 당신은 자신의 몸을 주님께 내어드린 적이 있나요? 만약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오늘 자신의 몸을 주님께 의탁하기 바랍니다. (연재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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