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된가정]
시간 관리 (4)
여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 존 그랜트
그분과 동행함
"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막 6:31).
제자들은 오랜 전도여행을 다녀온 상황이었습니다. 그 여행은 분주했고, 성공적이었고, 큰 성과가 뒤따랐습니다. 그들은 복음의 능력이 놀랍게 역사하는 것을 이미 보았고, 이루어진 그 모든 일을 주님께 말씀드리기 위해서 방금 전에 돌아온 터였습니다. 자신들이 보낸 위대한 날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하면서 그들이 느꼈을 흥분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거듭 거듭,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자세히 아뢰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틀림없이 그들은 지치고, 기진맥진하고, 녹초가 된 상태였습니다.
그런 후에 주님은 그분과 함께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도록 제자들을 권하셨습니다. 주님은 기력을 회복할 시간이 그들에게 필요함을 아셨습니다. 잠시 멈추어서 지나간 날들을 뒤돌아보며 앞에 놓인 일들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함을 그분은 알고 계셨습니다.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쉼과 회상의 시간이 필요함을 주님은 아십니다. 바쁜 생활에서 벗어나 있는 시간이 꼭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여가 시간이 주님에게서 얼굴을 돌리는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제자들에게 그런 시간을 마련해주신 분은 다름 아닌 주님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시면서 기대하신 바는 그분과 함께 고요한 날을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결국은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지만, 제자들이 고대한 바 역시 주님과 함께 쉼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던져보아야 할 물음은 이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그 여가의 장소로 데려가고 계시는가? 그곳은 그분께서 임재하실 수 있는 장소인가?" 우리는 자신의 삶에 칸막이를 쳐서 어떤 여가 시간은 주님과의 지속적인 교제에서 벗어나는 시간으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고 하여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초청에 재빨리 반응을 보였으며,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갔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우는 교훈은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교훈입니다. 여가 시간을 포함하여 최고의 시간은, 주님과 함께 보내는 시간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는다면 그 시간은 상실된 것입니다.
다른 이들의 필요를 채워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막 6:37).
배가 해안에 닿을 때 제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 그들을 어느 정도 당황케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와서 잠깐 쉬라고 말씀하신 터였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자기들의 필요를 위해 진작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주님은 저들을 귀찮은 존재들로 보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목자 없는 양" 으로 보사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따라서 이제 제자들의 "쉼" 의 날은 불청객의 날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은 제자들이 원했던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없는 편이 더 나은 훼방꾼들에 불과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다르게 바라보셨습니다. 그분에게 있어 그들은 가엾은 영혼들이었고, 그분의 마음은 그들로 인해 움직이셨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원하지 않는 무리였던 자들이, 주님께는 섬김의 좋은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 시간과 섬김을 관련시키는 것은 상상조차 안 해본 일입니다. 어떤 종류의 섬김이든 섬김은 일이므로,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자유 시간의 일부를 거기에 내어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열두 제자가 무수히 많은 이들과 함께 보냈던 그 날은, 같은 생각을 지닌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들을 베풀어주는 날입니다.
첫째로, 우리는 타인들의 필요가 나 자신의 필요보다 상위에 놓여야 한다는 교훈을 배웁니다. 주 예수님은 그 날에 행하실 그 일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를 제자들에게 물어보시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청해왔고, 주님은 거기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 역시 반응을 보이기를 그분은 기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자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들에게 복음이 필요하며, 주님은 그들을 동정어린 눈길로 응시하시면서 우리에게도 이런 지시를 내리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그 부르심에 우리는 자신의 자유로운 시간을 드리는 것으로 응답하고 있나요? 복음소책자 배포는 어떤가요? 노방 전도는 어떤가요?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지원하고 돕는 일은 어떤가요? 복음에 은사를 가진 이들이 구원의 고귀한 소식을 선포하는 데에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것은 올바른 일일까요? 복음의 일군들은 다 어디로 갔나요? 우리는 혹시 전도에 있어서 앞서 일할 수 있는 은사를 가지지 못했다고 느끼나요?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 모두는 여전히 중요한 조력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이 여는 복음집회들에 언제든지 참석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가능하다면,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영혼들을 인도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하는 것 입니다.
둘째로, 섬김을 행하는 이들은 주님께서 자기에게 이미 주신 그것을 타인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함을 배웁니다.
순례의 길을 가는 오늘날의 많은 성도들에게 격려와 도움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그들은 걱정과 근심 가운데 침몰하고 있습니다. 외로움 탓에 몹시 고통스러워하기도 합니다. 사람들과의 대화에 목말라 하는 이들도 허다합니다. 그런 이들을 찾아가서 주님이 주신 말씀들을 나누어주는 것은 지극히 선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꼭 당신이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주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뜻을 전달할 따름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읽는다면, 타인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말씀을 그분께서 주실 것입니다.
셋째로, 이와 같이 섬기는 이들은 보다 더 부요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배웁니다. 그 날이 저물어갈 때 제자들은 음식 조각들이 담긴 바구니를 각각 하나씩 가질 수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음식을 먹고 만족함을 누린 후에도 열두 바구니가 남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될 줄을 제자들이 상상이나 해보았을까요? 따라서 오늘날은 섬김을 나타낼 때입니다. 주님을 섬기기 위해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은 무보수가 아닙니다. 현재에조차 우리는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으며, 자신의 영적 생활을 활력 넘치게 유지할 수 있는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우리의 시간을 사용하는 것은 헛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손길로 주어지는 더 풍부한 공급을 즐기도록, 우리는 그러한 길로 이끌려갈 것입니다.
기도
"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막 1:35).
주 예수님의 모본을 살펴보는 것은 언제나 커다란 가치를 지닙니다. 그분은 가버나움에서 어느 분주한 안식일을 보내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그분은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쫓아내시고,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하시고, 그런 다음 해질녁에 집 주위로 모여든 많은 이들의 건강을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날은 쉴 틈 없이 바쁜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이 다음 날은 편안히 휴식을 취하고 싶어하셔도 너그러이 이해해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하나님의 종께서는 휴식보다 더 중요한 일을 생각하셨습니다. 아주 이른 새벽, 제자들이 깨어나기 전에, 그분은 잠자리에서 일어나사 한적한 곳을 찾아가 그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구주께서는 기도에 시간을 드리는 것을 필수적이고 유익한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이와 같은 본보기를 따라가야 마땅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기도하며 묵상할 일정한 시간을 날마다 따로 떼어놓고자 애쓰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이렇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해야 할 다른 일들을 위해서는 시간을 별도로 마련하는 것이 가능함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와 묵상을 위해서는 시간을 낼 수 없나요?
오늘 또 하루를 열면서 우리는 자신이 처리해야 할 수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떠올립니다. 이 때, 우리의 대적은 우리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넣어줍니다. 그것은 소중한 시간을 다소간 기도에 빼앗기면 오늘 하루가 좀 더 힘들어질 터이니 거기에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사단이 주장하는 바는, 기도는 우리의 목표를 이루는 데에 있어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마가가 기록해놓은 그 아침으로 되돌아보겠습니다. 주 예수님은 심신을 몹시 지치게 하는 하루를 보내신 직후였습니다. 그리고 전날과 똑같이 많은 요구에 응해야 하는 벅차기 그지없으리라 예정된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하실 참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찾아다녔습니다.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었고, 충족시켜 주어야 할 많은 필요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주님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서 거기서도 전도하고, 가르치고, 고치려고 결심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기도하면서 고요히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는 언제 이러한 시간을 낼 수 있을까요? 여가 시간으로 보기는 어려운 "아침"에 시간을 내야 하나요? 그렇습니다. 기도 시간은 "아침에 하는 일" 이어야 합니다. 비록 부득이하여 시간을 조금밖에 못 낸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또한, 아침 기도 시간을 갖는 데서 그치지 말고, 이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구하십시오. 그것이 이런 시간을 지혜롭게 갖는 방편입니다. 하지만 기도 시간을 꼭 아침으로만 제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의 얼굴을 구하며 그분 앞에서 조용한 묵상을 즐기기 위해서 하루 중 다른 시간을 따로 떼어놓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바쁩니다. 고용주들은 우리의 시간을 더 많이 요구하며, 의무들과 책임들은 한꺼번에 몰려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날마다 고요한 기도로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축복을 즐길 수 있습니다. 주님을 추구하며 그분을 따라다녔던 제자들은 주님께 항의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하고 외쳤습니다. 군중이 주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 때는 맹렬히 활동해야 할 때였습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그 때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홀로 거하고 있을 그런 때가 아니었습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제자들도 하나님과 홀로 있을 때의 진가를 절감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따라가야 할 본을 남겨주셨습니다..
성경연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행 17:11).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 (사 28:10).
매일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던 시절이 많은 성도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유익한 일과를 행하는 성도들을 흔히 보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주님을 알아가면서 그분을 섬기고자 소망하는 이들에게, 성경 지식은 필수적입니다. 우리에게 성경이 주어진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위로해주며 격려해줍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가르쳐줍니다. 성경은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중에 빠지게 되는 위험과 함정에 대해 경고해줍니다. 또한 성경은 구세주의 영광을 우리에게 계시해 줍니다. 이 성경을 읽고 연구하면, 그 책의 뒤에 계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며, 이로써 우리는 주님을 섬길 수있는 준비를 보다 잘 갖추게 됩니다.
현대 사회는 모든 것이 "즉시즉시"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지식의 영역에서도 "온라인" 백과사전을 찾아볼 수 있고, 그렇게 하면 원하는 정보를 당장에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핵심내용" 교육에 익숙해져 왔습니다. 매스컴은 불과 몇 초의 논쟁을 보여주고서, 제일 똑똑한 의견, 가장 날카로운 농담, 최고로 재미있는 표현 등을 골라내라고 요구합니다. 이것은 어떤 주제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들이 줄어듦에 기인한 현상입니다.
성경 지식을 얻는 것은 그와 같지 않습니다. 성경이라는 어마어마한 보물 창고의 자물쇠를 열려면 빠르고 쉬운길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에 시간과 정력을 쏟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결단과 훈련이 요구되지만, 그 결과로 거두어들일 수확은 거기에 들어간 어떠한 희생보다 더 엄청난 가치를 지닙니다. 날마다 주야로 성경을 두고서 이같이 한다면 엄청난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놀라운 일과를 진지하게 고착화시키기를 원한다면, 단순한 성경 읽기를 넘어서 이제는 성경 연구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를 위해서와 마찬가지로, 이렇듯 성경을 더 많이 아는데에 자신을 내어드리기 위해서도 따로 시간을 정해두어야 합니다.
이사야는 자기 시대에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메시지를 전파한다고 하여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사야가 그렇게 한 것은, 그를 흠잡는 자들이 볼 때에는 그저 똑같은 이야기를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듣기에는 이사야가 언제나 똑같은 내용만 가르치는 듯 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그들이 보기에는 이사야가 여기서도 조금 추가하고 저기서도 조금 추가하여 그렇게 가르치는 듯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성경 연구가 정확히 이와 같다는 점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진리는 어느 날 갑자기 더 계시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주일 만에 혹은 한 달 만에 전부 계시되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전 생애 동안에도 완전히 계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함이 없어서 우리에게는 언제까지라도 배울 것이 남아 있습니다. 부지런히 성경을 상고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계속해서 진리에 진리를 더하여 계시하십니다.
좀처럼 성경을 펴지 않는 자들에게, 그 책은 무미건조하고 불가해한 책처럼 보입니다. 그 안에 담긴 많은 내용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고, 이해해 보고자 노력을 기울여도 별 성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침내는 이런 주장이 펼쳐집니다. "우리는 천국을 향해서 가는 그리스도인들이잖아. 그런 우리가 성경 연구에 관심을 두는 건 실제적으로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야." 이것은 참으로 희한한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을 꼭 잘 알아야 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성경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에 관해 더 많이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는 성경을 잘 읽어야 하는 필수적인 동기를 찾을 수 있습니다.
둘째로, 성경의 각 페이지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어떠한 삶과 섬김으로 이끄실 지를 알게 됩니다. 여기에 주인이 자기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는 종이 있습니다. 여기에 그 일이 이루어지기를 주인이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종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무지한 종은 별로 쓸모없는 자입니다. 그 종은 자기의 생각대로 또 주인의 소원에 대해서 전무하다시피한 지식을 가지고서, 그런 기초 위에서 이를 지속해나갑니다. 하지만 그에 뒤따르는 결과는 실수들과 허비된 수고뿐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뜻을 알고자 하지 않는 성도들은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방법으로 섬기게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리고 슬픈 이야기이지만, 자기와 달리, 배워온 성경 말씀들을 실행하고자 애쓰면서 섬기는 이들을 혐오감으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셋째로, 성경을 통하여 우리는 지상에서 벌어질 장래의 사건들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언젠가 우리가 즐기게 될 그 영광에 관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성경을 더 알고 싶은 욕구를 자극해주지 않나요?
그렇지만, 이제 남아 있는 문제는 이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정말로 성경을 즐거워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성경이 매력적임을 발견하는 그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성경 읽기와 성경 연구는 마지못해 해야 하는 지루한 일이 아님을 발견하는 그 지점까지 이를 수 있을까?"
예레미야서에는 성경말씀을 얼마나 달콤하게 먹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그림이 나옵니다.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렘 15:16). 여기서 우리는 예레미야가 주님께 이의를 제기하고 있던 중임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다루심에 있어서 "공평함" 이 결핍되었다고 생각한 바를 아뢰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말씀을 "얻어먹었을" 때 그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여기서의 "얻어먹음" 은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을 생생하게 묘사한 말입니다. 그것은 말씀을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을 연구하고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삼을 때, 이는 우리를 세워줍니다. 이것은 마치 음식이 신체를 강건케 함과 같습니다.
동일한 묘사를 에스겔서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먹었습니다(겔 3:1). 그 결과는 말씀이 "달기가 꿀 같더라" 였습니다. 에스겔은 실제적으로 말씀의 맛을 즐겼습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이 "얻어먹음" 은 우리가 성경말씀을 취하는 것에 대한 생생한 묘사입니다. 이렇게 한 후에는 말씀이 달아지며, 우리가 애초에 생각한 것처럼 따분하다거나 지루하지 않게 됩니다. 이러한 오묘함은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다른 신자들은 어떻게 해서 그토록 많은 시간과 관심을 성경에 쏟아 부을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입니다. 성경에다 정성을 쏟아보면 스스로 그 해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중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 길이와 넓이와 깊이와 높이가 어마어마하여, 우리가 황홀감에 빠져 정성을 다 바칠 만한 대상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서, 구세주에 대해서, 주님의 사역에 대해서,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은 소원을 일으켜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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