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소식]
구원
거듭남에 대한 고찰
- 허 윤욱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한국의 기독교 인구가 천만을 훨씬 넘는다는데 진실로 거듭난 그리스도인 만나기는 '가뭄에 콩 나기보다 더 힘들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적어도 필자가 경험하기로는 그렇다. 예수께서 생전에 '거듭나지 아니하면 천국을 볼 수 없다" (요 3:3,5)고 경고하셨거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자기는 거듭났으리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교회에 다니고 있으니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만약 혹자가 이 글을 읽는다면 자기가 진정 거듭났는지 점검하여 자기의 영혼을 지옥에서 건지기 바란다.
필자가 만나본 상당한 기독교인들은 거듭나기는 커녕 거듭남의 참 뜻조차 알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대답이 "예수 믿으니까 그냥 거듭난 것 아녜요?" 하고 반문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거듭나지도 못하고 거듭남도 알지 못하고 거듭남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아니하는 한국의 기독교는 심각한 난국에 빠져 있다. 필자는 묻고 싶다. 이 글을 읽는 그대는 정말 거듭났는가? 거듭났다면 그 증거를 말하라.
한국의 기독교는 회개하여야 한다. 기독교 계열의 방송들을 살펴보아도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외침을 듣기가 어렵다. 구원받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들어본 적이 얼마나 있는가? 지옥에 대한 경고를 누가 과감하게 외치고 있는가? 듣기가 쉽지 않다. 기복신앙의 변종설교들이 판치고 있다. 어찌할 셈인가? 정말 지옥은 있고 자신이 지옥자식인지 천국자식인지 점검해 보아야 하는데 누가 담대히 외치고 있는가? 길 잃은 불쌍한 양들이 천국과 지옥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어도 누가 분명하게 길을 가르쳐주고 있는가? 슬프고 슬프다. 고통스럽다.
이 글을 읽어도 자신을 진정 점검하는 마음으로 읽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오늘날 한국의 가독교가 세상으로부터 칭찬보다는 비난을 받은 경향이 더 있다면 이것은 거듭난 그리스도인 보기가 힘든 현실에서 바롯된 것임을 분명하게 외치는 바이다.
지난 호에서 우리는 거듭남에 대한 것과 거듭남의 오해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번호에는 거듭남의 본질에 대하여 더 자세히 알아보고, 또한 오해에 대하여도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예수를 믿어 거듭난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 변화되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으로 창조된다는 것이다. 서두의 말씀처럼 전혀 새사람으로 태어남을 이야기한다. 새로운 창조를 의미한다. 조금 변하는 것이 아니고 전혀 새로운 창조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서 2장 1절에서 "너희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고 증거하고 있다.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인생은 죽은 자로 태어남을 아는가? 육신은 건강하게 태어났을지라도 영은 죽어서 태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거듭났다는 것은 죽은 채로 태어난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로 한 번 더 태어나서 살아난 것을 의미한다. 진정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생일이 두 번이어야 하는 것이다. 믿음의 선진들의 책을 읽어보라. 저들이 생일이 두 번이라고 간증하고 있다. 저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날들을 간증하고 있다. 물론 생일을 잘 모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거듭난 날들을 말하고 있다.
필자는 어떤 기독교인에게 물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어째서 아버지입니까?" 그는 우물쭈물하면서 " 성경에 그랬으니까 그냥 우리가 부르는 호칭 아닙니까?" 하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성경은 분명히 사람이 태어날 때 마귀의 자식으로 태어난다고 말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가? 필자는 그 사람에게 말했다. "어느 날 친구의 권유나 가족의 권유로 교회에 나갔지요? 그리고 교회 출석부에 이름을 올리고 목사님이 이제 교인이니 날마다 식사 때나 잠잘 때에 기도해야 한다고 배웠지요? 그래서 그날부터 기도하려니까 낮에 들은 대로 '하나님 아버지' 하고 부르기 시작했지요?" 하니 그렇단다. 그런가? 그냥 부르면 아버지인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아버지인가?
죽은 자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 거듭남인데 그렇다면 성경에서 죽었다는 개념은 무엇인가? 이 문제를 살펴봄이 거듭남의 길이라고 여겨진다. 성경에서 죽었다는 개념은 '분리'라는 뜻이 있다. 꽃이 그 몸체에서 분리되는 순간 그 꽃은 죽은 것이다. 컴퓨터나 전자제품이 전원과 분리되는 순간 죽은 것이다. 죽음은 분리다. 창세기 2장 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고 하셨다. 흙과 생기가 연합하여 사람이 되었다. 그러므로 흙과 생기가 분리되면 죽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몸 안에 있는 영혼이 떠나가면 사람은 죽는다. 성경은 이것을 첫 번째 죽음이라고 말한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
그리고 사람은 그 후에 두 번째 죽는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계 21:8). 둘째 사망, 즉 두번째 사망이다.
이것은 무엇인가? 첫째 사망은 영혼과 육이 분리되는 것이며, 둘째 사망은 하나님과 인간이 영원히 분리되는 것이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죽어서 태어난다는 말은 하나님과 분리되어서 태어난다는 뜻이다. 이것은 아담과 관계가 있다.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죄가 들어왔다. 죄는 아담과 하나님의 관계를 분리시켜 놓았다. 이것이 죽음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은 그 때부터 사단의 종이 되어 피곤하고 지친 삶을 살다가 결국은 멸망의 지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생각하여보라. 하나님 아버지와 그를 닮은 인생들 곧 아들의 분리됨이 얼마나 슬픈 이야기인가! 어린 아이가 축제에 갔다가 부모를 잃고 못된 사람들에게 끌려가서 온갖 고생하는 것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주님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음으로 인간들의 죄 값을 다 치루시고 우리를 죄에서 건지셨다. 이것이 거듭남의 본질이다. 십자가의 속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이 허물어져 다시 하나님과 하나된 것이다. 이것이 거듭남이다. 인간은 이제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았고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식을 찾은 것이다.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변한적이 한 번도 없다. 다만 인간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났을 뿐이다. 이것을 성경은 정확하게 증거하고 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사 59:1-2).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창세 이래로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은 한 번도 변한적이 없다. 다만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났을 뿐이고 여기에 사단이 개입한 것뿐이다.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역사하사 자기의 독생자 외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다. 그리고 인간들의 죄 값을 치르러 죽으심으로 더러운 인간을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로 바꾸어 놓으신 것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의 인간을 사랑하는 확실한 증거라고 증언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두 번째로 거듭남의 본질은 무엇인가?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관계가 회복된 것이다. 성경은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떠난 후에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고 증거하고 있다. 여기에는 사단의 농간이 있다.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골 1:21-22).
하나님은 인간을 원수로 생각한 적이 없지마는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 죄악의 길로 감으로 원수가 된 것이다. 죄를 가장 싫어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의 본질을 아는 사단이 교묘하게 인간을 꾀어서 죄 가운데 빠지게 함으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한 것이다. 사랑이신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사단의 간교함에 치가 떨리는 장면이다. 인간은 사단의 꼬임으로 죄 가운데 빠져서 아무리 몸부림쳐도 죄 가운데서 헤어 나올 수 없는 비참한 처지에 놓였다.
흔히 인간이 죄에 빠짐을 수렁에 빠진 것으로 비유하는데 필자는 어렸을 때 수렁에 빠져본 적이 있다. 수렁의 특징은 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수렁으로 빠져들어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죽는 곳이다. 누군가가 꺼내주기 전에는 나올 수 없는 곳이다. 사람들의 죄도 이와 같아서 죄에서 헤어 나오는 것은 정말 어렵다. 어렵다기보다 본질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사람이 도움을 받아야 수렁에서 나올 수 있는 것처럼,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죄에서 나올 수 없다. 헤어 나올 수 없는 죄에서 건짐 받는 것을 성경은 구원이라고 말한다. 그 구원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인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사람을 죄에서 건지되 본질적으로 건지는 것이 거듭남이다.
하나님의 뜻도 아니고 인간의 뜻도 아닌 상태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있다. 이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가? 앞에 기록한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해결된다. 더러운 죄인의 몸으로 지은 우리의 죄를 거룩하신 주님의 몸으로 대신 죽음을 맛보사 다 떠맡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죽음으로 인하여 먼저는 우리의 육체로 지은 죄가 모두 다 사라졌다.
''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골 1:14).
그리스도인은 분명 모든 죄를 다 사함 받은 사람이다. 모든 죄라 함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의미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일이 없음을 히브리서 10장 18절에서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죄에서 온전히 해방 받은 기쁨이 그리스도인을 지배하는 것이다. 죄에서 자유를 얻은 것이며, 지옥에 가는 일은 결코 없는 온전한 속죄인 것이다. 이것을 어떤 이유로라도 부인하는 자는 이단이다. 이단의 핵심적인 뜻은 속죄의 그본 뜻을 부인하거나 훼손하는 자들이다. 이와 같이 죄를 해결 받은 사람은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으로 바뀐 것이다. 이것이 거듭남이다. 하나님이 거룩하니 아들도 거룩하다.
마지막으로, "그러면 거룩한 신분을 가진 거듭난 성도들이 이 땅에서 아직 죄를 지을 수 있지 아니한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그리스도께서 거룩하신 몸으로 우리가 더러운 몸으로 지은 죄를 해결해주셨다. 자녀이기 때문에 그 죄로 지옥에 가지는 않지만 우리는 아직도 더러운 몸으로 짓는 죄를 거부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한시적임을 알아야 한다. 때가 되면 이 문제도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이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빌 3:20-21).
우리의 낮은 몸 즉 천한 육신은 아직도 죄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나 주님이 오시면 우리도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주님과 같이 될 것을 믿고 있다. 우리가 천국의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천국에서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요일 3:2).
그리스도인의 이 소망은 실로 놀라운 것이다. 얼마나 엄청난 소망인가! 거듭남의 꽃은 이것이다. 우리가 지금은 죄용서 함을 받아 신분상 하나님의 자녀이며 우리의 몸도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어 거룩한 몸으로 살아가는 날이 곧 닥치는 것이다. 참으로 엄청난 일이 거듭남이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가 거듭남에 대하여 소홀히 함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근본적인 문제를 경홀히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수많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이 거듭나지 못한 채 종교생활만 하다가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 그 때에 기독교 지도자들을 향하여 이를 가며 지옥으로 향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여! 자신이 거듭났는지 분명히 확인하여 영광스러운 천국에 동참하여 영광을 누리게 되시기를 바란다.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 13: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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