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 매일의 양식 365 - 4월 28일


                                          욥기 14장 13-22절


                            나를 위하여 기한을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소발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욥은 인간의 운명에 대하여 물음들을 던졌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인식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가요? 이 단계에서 나온 욥의 이러한 질문들은 그의 불완전한 지식 때문에 생겨났다는 사실입니다. 왜나햐면 우리와 달리 그는 성경의 빛을 받아 이해력을 얻는 유익을 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10절에서 그는 "사람은 죽으면 소멸되나니 그 기운이 끊어진즉 그가 어디 있느뇨?" 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14절에서도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라고 묻습니다.

   욥은 이러한 불확실한 마음으로 미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의 잠시 존재함 및 자신의 확실한 죽음을 매우 엄숙하고 울적한  마음으로 깊이 생각했습니다. 또한 그런 중에 그는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아뢰기를, 자신의 커다란 근심들을 그분께 아뢰기를 중단했습니다. 그의 간청을 피상적으로 살펴보면 우리는 그것이 단지 깨우침을 달라는 요청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죽음 너머에 있는 미지의 미래에 대한 자연적인 호기심을 채우고자 하는 소원일 뿐이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욥의 이 간청에 담긴 그 이상의 의미를 확실하게 읽어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욥기 전체에서 내놓은 그의 다른 진술들과 같이 여기서도 그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소망을 두었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이러한 소망을 가졌다면그것은 오직 하나님이 지니신 전능하신 창조의 능력에 근거했습니다. 그러므로 욥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어 그분에게 기억될 그 때까지 자신을 음부(히브리어 스올, 여기서는 마지막 안식처의 의미로 사용됨)에 감추시기를 바라는 소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는 나를 음부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가 쉴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기한을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13절).

   욥의 마음을 어둡게 했던 불확실성이 우리의 마음에는 자리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 (롬 6:23) 임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 내신지라" (딤후 1:10). 주 예수님이 이와 같이 하신 이유는 그분을 신뢰함으로 우리가 확실하고 견고한 소망을 갖게 해주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죽음 너머에 있는 소망스런 생을 확실하게 바라본다는 것은 감동적이고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이들은 철저한 불신 속에서 이러한 생각을 전면적으로 거부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죽음은 소멸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이런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없이 죽는 이런 자들은 소망 없이 죽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구원 받지 못한 이들을 위해서 기도 합시다. 우리가 알고 있고 사랑하고 있지만 영원히 잃어버려질 위기에 처한 이들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합시다. *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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