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떡]

                                                                 도망친 노예

                                                                                                                                                                        - 임 용민


   오늘은 약 2천 년 전 주님의 사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가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에게 보낸 한 작은 서신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어찌 보면 매주마다 쓰는 저의 칼럼 역시 제가 여러분들에게 보내는 서신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저는 현재 전체 인구 약 2만여명 가량의 일리노이 최북단에 위치한 전형적인 백인 소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가 중서부의 심장 시카고 지역과 그리고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동부의 뉴욕, 뉴저지, 필라델피아 등지의 여러분들에게 칼럼이란 서신을 통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소식(Gospel이란 Good New 란 뜻임)을 전하게 됨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컬럼을 읽고 계시는 여러 독자 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목회 서신들 다음에 이어지는 빌레몬서는 디모데, 디도서와 함께 사도 바울의 개인 서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영적으로 너무나 풍부한 진리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는 귀중한 서신입니다. 그래서 어니스트 레난(Ernest Renana)은 "서신문학 중에서 진정한 작은 걸작" (masterpiece)이라고 말했고 마틴 루터는 "우리는 모두(주님의) 오네시모다" 라고 말했습니다. 빌레몬서를 "도망친 노예" (runaway slave) 이야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 중심인물이 오네시모(Onesimus)라는 한 노예 신분 인물의 드라마틱한 생애의 변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서신 수신인 빌레몬('인자한' 이란 의미)에 대한 소개입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처럼 아주 신실하고 인자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는 본래 당시 큰 재력가로 성공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사업차 에베소를 방문하던 중 사도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듣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골로새로 다시 돌아와 그의 부인 압비아와 함께 자신의 집을 열어 하나님의 교회가 모이는 장소로 삼고 복음을 전하며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처로 삼은 골로새 지역의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여러 노예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오네시모('유용한'이란 뜻)라는 노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노예는 주인의 재물을 훔쳐 멀리 로마로 도망쳐버렸습니다. 오네시모는 이처럼 빌레몬이란 한 부자의 노예였습니다.

   로마시대의 절반가량이 노예 신분이 있었다고 역사가들은 전합니다. 하층계급의 이들 노예들은 짐승들처럼 돈으로 팔려다니는 신분이었습니다. 빌레몬이란 주인에게 팔려간 오네시모는 후에 주인의 재물 일부를 훔쳐 멀리 도망을 치게 됩니다. 그런데 그의 주인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던 동일한 전도자 바울을 그도 만나게 됩니다. 연로한 바울은 로마 옥중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복음은 매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바울은 임시 석방 유예를 받고 셋집에 머물면서 2년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행 28:30). 그런데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의 주인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 동일한 전도자 바울을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가 만나서 동일한 복음을 듣고 구원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그를 옥중에서 낳은 영적인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쓸모없던 도둑 노예였던 오네시모는 자신의 이름대로 이제는 유용한 새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복음의 능력은 한 개인의 영혼을 죄로부터 구속할 뿐만 아니라 이제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입으로만 구원함을 얻었노라고 말하면서도 옛 죄악의 습성대로 여전히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께서는 열매로 그 나무의 진실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적으로 새 사람이 되면 그의 실생활도 새로운 삶으로 변화되어야 당연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영적으로 구원함을 받았다고 해서 그의 주인의 물건을 훔친 죄까지 탕감되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옛 주인에게 진 빚과 잘못에 대한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친서를 써서 오네시모를 그의 옛주인 빌레몬에게로 돌려보냅니다. 그리고 간곡한 말로 그의 노예 오네시모의 죄를 용서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로 받아줄 것을 간청합니다. 또한 바울은 친히 오네시모의 빚을 자신에게 돌리어 대신 갚겠노라고 말합니다. 이는 지금도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하시는 우리 주님의 중보자의 역할을 상기시켜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새로운 질서가 시작됩니다. 신분이 구분되지 않습니다(갈 3:28). 같은 보배로우신 피로 구속함 받은 한 형제 자매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서는 빈부의 차이, 신분의 차이가 없이 하나로 용해됩니다(참고: 약 2:1-13). 예전의 신분과 상관없이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용서와 화해가 있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안의 가정은 세상 사람들의 가정처럼 불화대신 사랑과 이해와 타협과 배려와 용서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다른 지체들과 화해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사람이 혹 당신에게 잘못한 빚도 자신에게로 돌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용서와 화해는 그리스도인 사이에만 있는 아름다운 덕입니다.

   끝으로 첨부하여, AD 110년경의 안디옥의 감독(Bishop) 익나우스(Ignatius)는  그가 로마로 체포되어 압송되어가는 중 서머나로부터 에베소의 새 감독 오네시모에게 서신을 보냈었는데 그 오네시모가 빌레몬서의 옛 노예였다가 바울의 제자가 된 동일 인물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는 무식한 어부들이나 옛 노예들을 변화시켜 그의 일꾼들로 삼으시는 신비한 인간 조련사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실로 하나님은 세상에서 미련한 자들과 약한 자들과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셔서 세상을 자랑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십니다(고전 1:26-28). 다만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십니다(고전 1:30-31). 모든 감사와 영광을 그분에게 돌릴 뿐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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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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