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 매일의 양식 365 - 5월 19일


                                    시편 42편 1-11절


                      목이 마른가요? 갈망이 있나요?



   분명 시편 기자는 절기에 예루살렘의 성소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저지되었습니다. 이에 그는 자신이 느끼는 슬픔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성소 안에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기를 간절히 원했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과 크게 다릅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모이려고 애쓰지 않는 이들과 대조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달리 시편 기자는 그렇게 할 수 있기를 갈망했습니다.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2절). 그는 그렇게 하기를 참으로 원했고 이러한 소원에 압도당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1절).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끊임없이 갈구했습니다. 그가 추구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들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추구한 것은 그러한 축복들의 수여자 자신이었습니다. "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2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는 하나님을 높이는 무리도 사랑합니다. 그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곳은 여호와의 집입니다. 그는 개인적인 경배로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는 성도들이 모이는 곳을 떠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편 기자는 그곳에 이를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이에 그는 낙심했습니다.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3절).

   목마른 사슴을 위한 시냇물이 존재 한다면 목마른 사람을 위한 시냇물도 존재해야만 합니다(사 55:1-2). 시편 기자는 돈이나 명성이나 쾌락이나 능력에 목말라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지녔던 것은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이런 목마름을 하나님이 축여줄 수 있으심을 최대한 확신했습니다. 전제 조건은 목마름이었고 만약 그런 상태에 있다면 만족을 누릴 것이 약속되었습니다(마 5:6). 하나님을 갈망하는 영혼은 주님 안에서 완전한 만족을 얻습니다.  하나님을 찾고자 부르짖는 자의 마음에 그분은 응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만약 주님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을 뵈올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이는 그분의 영적인 속성이 우리의 이해력을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위대하심과 능력은 우리를 압도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은혜로이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이는 우리의 눈으로 그분을 보고, 우리의 귀로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사랑과 긍휼에 전율을 느끼게 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또 우리로 하여금 그분과 더불어 친밀한 교제를 즐기는 것이 가능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시편 기자의 으뜸가는 필요는 하나님의 존재였습니다. 우리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구원을 필요로 합니다. 그분은 "생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2절). 그분은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 이십니다(8절). 그분은 "나의 극락의 하나님" 이십니다(43:4). 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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