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농촌현장> 장수(長壽), 순창에 길을 묻다
![]() |
소 여물 주는 102세 할머니 (전주=연합뉴스) 홍인철 기자 = 장수(長壽) 마을인 전북 순창군 동계면 한옥금(102세) 할머니가 소 여물을 주고 있다. <<지방 기사 참고>> 2010.2.14 ichong@yna.co.kr |
순창군, 초고령 장수인 전국 최다 '블루존'
102세 할머니 "맘 편하게 움직이고 잘 먹어라"
(순창=연합뉴스) 홍인철 기자 = 진시황이 그랬던 것처럼 누구나 불로장생, 무병장수를 꿈꾼다.
전북 순창군은 장수 노인 비율이 다른 곳보다 월등히 높은 '블루존'으로 통한다. 인구 3만명인 이 지역의 100세 이상 노인은 11명이나 되고 최고령자는 107세다.
서울대 노화 고령사회연구소의 2002년 조사에 따르면 순창군은 전국 234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인구 10만명당 `백세인'(100세 이상) 비율이 29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85세 이상 비율도 마찬가지다.
순창군은 옛 지명인 옥천(玉川)이 말해주듯 섬진강의 맑은 물이 '생명수' 역할을 하고 있는 등 장수를 위한 최적 조건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또 백세인 대부분은 논밭에서 평생 일을 하면서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데다 자기 땅에서 자라는 채소 위주로 담백하고 적게 먹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여기에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즐겁게 생활하는 공통점도 지녔다.
이곳에선 80대 며느리가 107세 할머니를 수발한다.
90대 할아버지는 너덧 마지기가 넘는 전답을 일구기도 한다.
웬만한 곳에선 노인 축에 드는 60∼70대는 그야말로 청년, '젊은이'에 불과하다.
세계적인 장수마을인 불가리아의 모길리차 마을 사람들이 어릴 적부터 우유와 요구르트를 꾸준히 먹듯 이곳 주민들은 고추장과 된장, 간장 등 발효 음식과 함께 하고 있다.
순창군 최형구 장수연구담당은 "순창은 발효 식품인 장류와 들깨 소비량이 많은 편"이라며 "천혜의 자연환경과 함께 매일 섭취하는 이런 음식도 장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군이 지난해 서울대 연구소에 의뢰해 1년간 3개 면(面)에 사는 50세 이상 421명을 조사한 결과, 건강장수의 비결로 육체적인 활동과 채식 위주의 식생활, 꾸준한 공부 등이 꼽혔다.
순창군이 최근 한글과 컴퓨터 교육을 중장년층으로 확대하고 금연과 절주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한편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장수 요인은 또 있다.
이 분야 연구에 정통한 미국 노인의학연구소장 레오나드 푼 박사는 지난해 순창지역 백세인들을 면담한 뒤 "노인들이 나들이를 즐기고 건강상태도 좋은 비결이 모시고 사는 아들, 며느리 등 가족과의 따뜻한 가족애라는 것을 알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서양이나 도시의 핵가족과 달리 자녀가 부모를 모시는 부모부양 시스템과 한국 특유의 효(孝) 문화가 장수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초고령자가 늘어가자 순창군은 이들의 외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곳곳에 마을회관을 마련했다.
회관은 노인들에게 바깥출입과 함께 가벼운 운동을 유도하는 것은 물론 가정의 냉.난방비를 절약해주는 역할도 한다.
이제 마을회관은 하루 평균 20∼30명이 모여 점심을 먹는 화합과 소통의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군은 장수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지난해 전남 구례.곡성.담양군 등 섬진강 상류에 있는 3개 지역과 '양로연의'(養老宴儀.조선시대 임금이 노인들을 모셔놓고 열었던 공경의 잔치)를 열었다.
건강한 장수에 앞장선다는 뜻에서 이들 지역과 '장수공동체 순창선언'을 하기도 했다.
군은 또 백세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장수 수당'을 신설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이와함께 건강.장수연구소를 만들어 노화·생명연구를 비롯해 식생활, 문화, 산업, 정책 등 노인과 관련한 종합적인 연구를 하기로 했다.
특히 건강한 노인과 그렇지 않은 노인 간의 차이를 비교해 건강.장수를 위한 식생활 모델도 마련해 전국에 보급할 계획이다.
군 강성일 기획감사실장은 "이 연구소는 노화나 노인병 등을 체계적으로 연구, 미래의 고령사회를 선도할 다양한 장수시책과 상품을 개발해 실버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102세 한옥금 할머니의 하루
회문산 끝 자락인 순창군 동계면에 사는 102세 한옥금 할머니는 무릎이 시어 지팡이에 의지하는 것을 빼면 웬만한 일은 손수 척척 해낸다.
돌봐주는 맏아들 내외가 집을 비우면 누렁소 여물을 주고 손빨래도 한다. 기운이 나면 며느리 빨래도 대신해준다. 전화도 받고 자신의 방과 거실을 쓸고 걸레질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봄, 가을에는 호미나 낫을 들고 농사일을 거들기까지 한다.
특히 속옷 빨래와 요강 비우는 일 만큼은 반백 년을 함께 한 며느리에게도 맡기는 법이 없을 정도로 정갈하다. 작년에는 한 달이나 서울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했다.
16살에 시집온 할머니는 5남매를 낳았고 40여년 전 남편과 사별했지만 세상을 긍정적으로 살면서 증손자까지 4대에 걸쳐 70여명의 자손을 뒀다.
대개는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들어 다음날 아침 7시에 일어난다. 낮잠 1시간을 합하면 하루 11시간을 잔다. 혼자 세수하고 아침식사는 8시께 한다.
하루 세 끼는 빠뜨리지 않고 꼬박꼬박 먹는다. 음식도 보신탕만 빼고 고루 잘 먹는다. 적은 양의 공깃밥에 국과 대여섯 가지의 반찬을 먹는다. 결코 과식하지 않고 채식을 위주로 한다.
대개 김치와 파래무침, 절인 깻잎, 상추 겉절이 등 평범한 채소류가 주로 밥상에 올라온다. 텃밭에서 햇빛과 바람, 이슬을 받고 자란 것들이다.
가끔은 돼지고기를 찾는다고 며느리 김정애(73)씨는 귀띔한다.
지금은 치아가 없어 씹는 맛을 느끼지 못하지만 잇몸으로 해결한다. 자식들이 틀니를 권했지만 관리가 귀찮고 힘들어서 사양했다.
2월의 차가운 날씨 탓에 마실갈 엄두는 내지 못한 채 거실에서 TV를 보는 할머니는 가끔 아들, 며느리와 얘기도 나눈다.
"요즘 TV엔 좋아하는 판소리나 농악 관련 프로그램이 없어 아쉽다"고 했다.
겨울이 아니면 마을회관에 가서 이웃집을 돌며 시간을 보낸다. 아직 고혈압과 당뇨 등 흔한 성인병도 앓지 않았고 신종플루나 독감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될 만큼 건강하다.
정오를 넘기자 며느리 김씨가 점심상을 차렸다. 아들 양창섭(77)씨는 건넌 방에서 오가피주를 내왔다.
"어머니, 한잔하실래요?"라며 공손한 자세로 잔에 술을 채웠다. 그러면 할머니는 "하믄 먹제(그럼 먹지)"라며 단번에 들이켰다. 그렇게 석 잔을 반주 삼아 마셨다. 안주는 김치와 나물이다.
평소 소주를 즐기는 할머니는 기자에게도 잔을 권했다. 몸집은 초등학생만하게 오므라들었지만 주름진 얼굴은 하회탈처럼 웃고 있었다. 술기운인지 낯익어서인지 갑자기 이야기보따리가 풀렸다.
"제일 이쁜 놈은 큰아들이지. 여태 살면서 맘을 상하게 하지 않으니께. 며느리도 이쁘지. 매일 수발하면서 한 번도 귀찮다고 불평한 적이 없어. 노망들지 않고 이렇게 살 다 가면 여한이 없을 텐데.."
사진첩을 꺼내 들곤 손자들 얼굴을 차례로 짚어가며 이름을 또박또박 일러준다. 총기가 충만했다.
아들 양씨는 "어머니가 작년부터 눈에 안개가 낀 것처럼 침침하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고 호소하신다"며 "그렇다고 보청기를 낄 정도는 아니다"고 자신한다.
그는 "좋은 공기와 먹거리 속에서 자식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적게 먹고 부지런히 몸을 놀리는 것이 탈 없이 오래 사는 비결인가 싶다"고 말했다.
도시에서 장수하는 노인들도 있지만 한 할머니의 이야기는 대부분 농촌이기 때문에 가능한 장면들이다.
한 할머니보다 5살이 더 많은 순창지역 최고령 박복동(구림면 방화리) 할머니도 이날 오후 마을회관에서 80, 90대의 '젊은이'들과 막걸리를 주고받으며 겨울 오후 한때를 보냈다.
ichong@yna.co.kr
'생활건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0 농촌현장> 고성 농업혁명 `생명환경농업` (0) | 2010.04.04 |
---|---|
소규모 유기농 실천으로 억대 부농 이뤄 (0) | 2010.04.04 |
<2010농촌현장> 종자 지켜라..세계는종자전쟁 (0) | 2010.04.04 |
<2010 농촌현장> 소농이 강하다 (0) | 2010.04.04 |
<2010 농촌현장> 농업 지도하다 농사꾼 변신 (0) | 2010.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