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간증]

                                            제 마음 을 열게요.

                                  들어와 주세요.

                                                                                                                                          - 윤주영(남인천교회)


   복음집회 둘째 날인 토요일(9월 24일) 저녁이었습니다. 자리에 앉는 순간 제 옆쪽으로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띄었습니다. 30여 년 전 어렸을 적 신림동 모임에 다녔을 때 부모님과 함께 모임 생활을 하시던 0 0 이모였습니다. 너무나 뜻밖의 만남에 가슴이 뛰었으나, 머리 수건을 쓰고 있지 않은 저의 모습을 보여드리기가 창피하여, 이내 고개를 돌렸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날 밤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이상하게도 이번 복음집회에는 올인하고 싶은 막연한 마음으로 일과 약속을 모두 뒤로 미루게 되었습니다. 이런 제 모습에 내 자신도 의아했습니다. 스트레스로 시달렸던 여름캠프와는 아주 달랐던 것입니다. 몇 년 동안  모임에 발걸음을 끊었었기에, 예전부터 알았던 많은 성도님들과의 만남과, 머리 수건을 쓰지 않은 저만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인해 캠프장을 뛰쳐나오고 싶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그늘 아래서, 모임으로부터, 또 성도님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그 속에서, 부모님께 누가되지 않고, 또 교회 친구들의 본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학교 친구들이 여기저기 놀러 다닐 때, 같이 놀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꿋꿋하게 그 무리에서 빠져나오곤 했습니다. 물론 그 소외감은 컸습니다. 교회에서 무릎 꿇고 앉아 있고, 집회가 끝나면 마지막까지 뒷정리를 하고, 장시간 찬송 반주를 하며, 묵묵히 설거지를 하는 등, 누가 강요하진 않았지만 저는 당연히 할 일이라고 생각하였고, 그런 제 자신을 스스로 다독이며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부모님을 따라 당연히 크리스천이 되어야하는 것으로 인식하였습니다. 또한 세상 친구들의 가정은 화목하지 못하다는 부모님 말씀에 우리 집에 대해 자부심도 가졌습니다.

   또한 주일학교 때부터 교회와 부모님의 울타리를 벗어나면 큰일이 나는 줄로 알고, 구원받아야 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심각한 고민 없이 죄, 지옥, 예수님, 십자가, 구원, 영생 등에 대해서 익히 들어온 저는 복음을 들어도 새롭지는 않았습니다.

   모임에는 제 또래 친구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우리는 무척 친한 친구들이면서도, 때로는 선의의 경쟁자이기도 하였습니다.

   중학생 무렵, 어른들로부터 "그 집 아무개는 구원 받았다더라. 저 집 아무개는 아직 못 받았다더라"는 등등의 말들이 들려왔습니다. 구원받았다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어떡하지...' 하며 마음 한쪽 구석이 항상 무거웠고, 밤마다 고민을 하고, 부모님이 휴거되었을까봐 항상 두려움을 갖고 지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겨울방학(1991년)에 모임에서 전도집회가 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처럼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둘째 날인가... . 강사 형제님은 부활에 대해서 전하셨습니다.

   "죄인이 죄를 지으면 반드시 감옥에서 복역을 하고 나와야 하듯, 예수님도 인간의 죄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 무덤에서 3일간 복역을 하시고 부활하신 것이다. 부활이 없었으면 우리의 죄 문제가 완벽히 해결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여태까지 제가 들어보지 못한 또 하나의 새로운 관점이었습니다. 저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들떴습니다. 그리고 우리 죄 때문에 죽으시고 의로움 때문에 사셨음(롬 4:25)을 새롭게 깨달았노라고 형제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2-3개월 후 또래 친구들과 함께 침례를 받았습니다. 한동안 성경도 열심히 보고, 아침저녁으로 기도도 하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2-3학년 때는 학교공부로 저녁집회에 나가지 못했고, 일요일도 오후집회는 잘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 우리 식구와 몇 가정이 금천모임을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 저는 갑자기 주어진 자유와 새로운 것들과 인간관계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과 달리, 착하고 건전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친구들이 세상에 많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의 친구들도 자주 만나며 더욱 잘 알게 되고 가까워졌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이 제가 알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름을 알아가며, 하나님의 존재와 부모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몸은 모임에 있어도 마음은 점점 멀어져갔습니다. 부모님께 반항도 많이 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 IMF가 끝나지 않은 1998년도에도 순조롭게 취직되어 저는 더할 나위 없이 평탄할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여자들이 별로 없는 직장에서 상사들에게 귀하게 대접받으며 즐겁게 생활하였습니다. 자신감에 차 더 이상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한편 부모님과 모임에서는 저의 결혼을 위해 기도하였고 다른 모임의 형제들과의 만남을 주선해주시기도 하셨지만 성과가 없었고, 저는 더더욱 모임 생활을 기피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때때로 받는 업무 스트레스와 사회생활에, 모임생활은 더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웠습니다. 어릴 때부터 지켜온 신앙은 이제 불편함과 속박, 피해 의식으로 다가왔습니다. 오히려 세상에 있는 시간이 더 편했습니다. 더 이상은 이중생활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모임에 나가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직장을 옮기고, 세상과 시간을 보내는 동안 마음이 차라리 편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생활하지는 못하였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있는 한 제 자신이 완벽히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독립할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습니다.

   동생이 먼저 결혼하여 나가고 우리 세 식구는 수도 없이 부딪치며 몇 년을 보냈습니다. 집에서도 외롭고 밖에서도 외로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겉으로는 부족함이 없었지만 내면에는 원망과 피해의식이 극도로 달했습니다.

   또 구원의 확신도 없었습니다. 급기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도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도 나는 하나님과, 교회와 상관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새로 옮겨온 직장은 강한 조직문화와, 약간 다른 분야의 일로 적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 탓, 부모님 탓으로 돌리며 무기력함과 낙담, 원망으로 매일매일을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이런 저의 내면의 모습을 절대로 드러내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2-3년을 괴롭게 보낼 즈음,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저와 같이 입사한 동기로서 힘든 회사생활에서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 사람과의 만남을 아시고 부모님은 낙담하셨으나, 제부는 그 사람을 몇번 만나기도 하면서 모임으로 인도하기 위해 여러모로 신경을 써주었습니다. 저는 그저 옆에서 방관만 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는 그 사람은 절대로 구원받을 사람이 아니라고 장담하였습니다. 또한 결혼을 안 하면 안 했지 모임 안에서 결혼할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 10월 경 제가 급성 임파선염으로 10일 정도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제가 퇴원할 즈음 교회에 나가보겠다고 말하더니, 얼마 안 있어 제부가 소개한 인천남부모임에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제부와 그 사람이 처음 만난 지 6개월여 만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교회에 가지 않으면서도 그 사람이 교회에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왠지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일요일 예배를 한 달 정도 참석하다가 그 모임의 형제님의 인도로 서인천모임의 전도집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전도집회에 다녀온 그는 "오늘 강사님 말씀은 좋더라"고 하길래 제가 "강사님이 누구신데?" 하고 물으니 "'ㅇ' 무슨 선생님이라던데..."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ㅇㅇㅇ 형제님?" 하니 "응, 맞아!" 하는 것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ㅇㅇㅇ 형제님은 제가 대학생 때부터 청년시절을 보내는 동안 줄곳 저의 상태를 아시고 여러 번 만나서 이런저런 교제를 해주시던 분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 분을 보게 됐다니, 그리고 말씀이 좋다고 말하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 뒤로 ㅇㅇㅇ 형제님과 개인적으로 몇 번 만나 교제를 하였으며, 동인천모임에서 하는 그 형제님의 성도집회까지 참석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구원에 대한, 성경 말씀에 대한 질문이 많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이 상황에서 저의 입장이 난감하였습니다. 그의 질문에 제가 가진 지식으로 성실하게 답을 하다보면, '이건 내가 바라던 상황이 아닌데... , 내가 과연  답할 자격이 있나...'라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어 '나도 잘 모른다. 나한테 질문하지 말고, 그 형제님이나 제부나, 인천남부모임 형제님께 물어보라'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인천남부모임에서도 올해 4월 21일부터 그 형제님을 직접 강사로 모시고 복음집회를 계획하셨습니다. 제부나 부모님이나 저 또한 이 기회가 그 사람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기회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때까지도 방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이번 복음집회는 같이 가야 한다는 권유로 할 수 없이 저도 함께 참석하였습니다. 3일째인 토요일 낮, 그 사람은 모임에서 개인교제를 하고 저는 집에서 뒹굴뒹굴 하고 있을 때 그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 속 음성은, 북받치는 감정을 간신히 차분히 가라앉힌 듯,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은혜에 한없이 죄송스럽고 감사하다. 일요일 날 예배드리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나 구원받았다" 라고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며 나도 모르게 축하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직 여기 있는데, 혼자만 멀리 가느냐"며 통곡하였습니다.그러자 그는 저에게 "그동안 나보다 자재를 많이 모았으니 주영씨는 한번 쌓기 시작하면 높게 쌓을 수 있을거야"라고 위로하였습니다. 그날 저녁 복음집회에 같이 참석하여 그 사람은 손을 번쩍 들어 구원받았음을 표현하였고, 그 다음날 일요일에는 예배시간 도중 " 다 이루었다" 는 말씀에서 감사함을 주체하지 못해 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뒤 며칠간 그 입에서 어울리지 않게 쏟아져 나오는 고백과 말씀 구절들을 들으며, 저는 마냥 신기하기만 하였습니다. 절대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한 그가 저렇게 변하다니...

   한편 인천남부모임은 규모가 커서 개인 교제를 나누기에는 서먹서먹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구원받은 그 다음 주부터 저희는 남인천모임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남인천모임은 제가 어릴 때 다녔던 모임과 같이 바닥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으며, 성도님들도 그리 많지 않았고 저희를 따뜻하게 맞아주셨습니다. 옛날 생각에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사람이 저에게 전도를 하며, 저를 위해 기도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는 "아니, 나만 해결되면 되는 줄 알았더니. 이게 뭐야. 난, 주영씨가 구원받은 사람인 줄 알았잖아~" 하며 놀리곤 하였습니다.

   저는 그의 변화되는 모습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의심이 가득 찬 마음으로 일요일마다 참석하였습니다. 그는 저에게 밤마다 같이 전화로 기도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리하여 6월 중순부터인가 밤마다 기도를 같이 하였습니다.

   그 후 여러 성도님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괴로움으로 보낸 8월 캠프가 끝난 며칠 후, 그 사람은 "캠프에서 아는 사람을 본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며칠간 기억을 더듬더니 "아! 생각났다! 대학교 때 학부 학과장님이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아버지를 통해 알아본 결과 그 교수님은 상도동 모임의 형제님임을 확인하였습니다. 우리 둘은 서로 깜짝 놀라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 금천모임에서 청년집회를 했을 때 그 교수님과 그 사람은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신이 났습니다. 이렇게 그에게 또 하나의 선물을 주시다니요.

   남인천모임 식구들은 저에게 지속적으로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다 기억나진 않지만 어느 주일 말씀시간에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 (시 32:9)는 말씀은 저의 마음을 찌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 성도님들의 관심과 사랑 안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제 마음은 조금씩 유하여져 갔습니다.

   기다리던 9월 복음집회가 시작되었고, 첫째 날 말씀을 듣고, 둘째 날 개인교제 역시 제 마음에 와 닿지 않아 또 낙담이 되어 풀이 죽었습니다.

   그날 저녁 집회 때 저를 알아본 ㅇㅇ 이모는, 머리 수건을 쓰지 않은 모습을 유심히 보셨는지 구원문제를 다시 생각하고 있다는 저의 말 한 마디에 당장 그 자리에 앉힌 후 말씀을 펴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이야기였습니다. 25절의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로 시작하셨습니다. 자매님은 "예수님이 더디 믿는 주영이에게 하시는 말씀이야."

   여기서 저는 "앗!" 하였습니다. 또 28절 이후로 죽 읽어주셨습니다. "저희의 가는 촌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저희가 강권하여 가로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 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저희와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실 때에야 비로소 그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보더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걸으셨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가까이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어. 그러나 예수님은 목적지가 다가왔을 때 당신의 가실 길을 더 가시려다가 제자들이 강권하여 초대하자 그 때서야 그 집에서 유하시며 식사를 하신 거야. 예수님은 온유하신, 즉 젠틀하신 분이기 때문에 들어오시라고 강권하여 초대하지 않으면 억지로 들어오시지 않는 분이지. 그리고 일단 들어오시라고 영접한 후에라야 비로소 주님임을 알아볼 수 있는 거야. 어때, 이번에도 예수님 그냥 지나가시게 할 거야?"

   자매님의 말씀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믿지 못하겠다고 주장하는 저에게 '더디 믿는 자!' 라며 호통을 치시는 듯했습니다. 또 예수님이 옆에 가까이 계셨는데도 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여러 번 지나쳐 가시게 놔둔 제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도 제 마음 문을 연 적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문 열고 들어오시라고 간절히 강권한 적도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제 상처와 원망과, 날 믿게 해보시라는 교만한 마음만 들이대며, 저의 노력을 알아달라고만 외쳤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하나님을 부정하고 예수님을 무시하는 순간에도 옆에서 바라보고 계셨을 예수님이 떠올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펑펑 울고야 말았습니다. 무엇보다 온유하신 예수님이 이렇게 못된 저를 오랜 시간 기다리셨다는 생각에 말로 다 못할 죄송스러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날 밤 저는 처음으로 예수님께 일대일로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 . 제 마음 문을 열게요. 들어와 주세요. 그동안 저의 문밖에 오래 서서 기다리시게 해서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

   그 다음날 일요일 예배시간에 저는 어제 ㅇㅇ이모가 잠깐 들려주신 찬송가가 생각나 찾았습니다. "주 예수 대문 밖에 기다려 섰으나 단단히 잠가두니 못 들어오시네. ...나 주를 믿노라고 그 이름 부르나 문밖에 세워 두니 참 나의 수치라. ...문 두드리는 손은 못 박힌 손이요 또 가시면류관은 그 이마 둘렀네. ...이처럼 기다리심 참 사랑이로다. 문 굳게 닫아 두니 한없는 내 죄라. ...주 예수 간곡하게 권하는 말씀이 네 죄로 죽은 나를 너 박대할소냐. ...나 죄를 회개하고 곧 문을 엽니다. 드셔서 좌정하사 떠나지 마소서." 딱 제 고백이었습니다.

   이어진 복음 말씀 시간에 보여주신 한 구절에서 눈이 커졌습니다. 마치 주님께서 제게 화답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나의 마음이니 나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히려 나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났으매 나를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하였으니 곧 십자가에 죽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너의 입으로 나를 주로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 2:5-11).

   온유하신 예수님이 제 마음에 들어 오시며 장엄하게 하시는 말씀이셨습니다. 결국 저를 무릎 꿇게 하시고 주로 시인하게 하시고 영광을 받으신다는 이 말씀은 1%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 깨달음을 주체할 수 없어 여러 성도님들께 말씀드렸고, 감사함과 감격스러움을 여기저기 알리게 되었습니다. 상상도 해보지 않은 제 모습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부모님과 얼싸 안으며 기쁨을 나눴습니다. 고생했다고 하셨지만 전 아무것도 한 게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얘기를 나누다가 "그럼 이제는 생명책에 네 이름이 있다는 확신이 있니?" 라는 엄마의 질문에 저는 다시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아직 거기까지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저는 다시 말씀을 폈습니다. 하하... . 그러나 그 문제에 답을 찾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식상하다고 생각했었던 요한복음을 펴자 1장 1절부터 주욱 모든 해답을 저에게 새롭게 말씀해주고 계셨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 ."

   예전에 이 구절을 대했던 시각과 완전히 다른 시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혈통도 아니고 육정도 아닌 하나님이 직접 일대일로 낳으셨고 자녀 삼으셨다는 말씀에 감동이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이제는 부모님이 믿고 있는 하나님, 성도들이 믿는 예수님이 아닌 저의 하나님, 저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또한 이 말씀도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하심이니라" (딤전 1:13-16).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할 때 저절로 엎드러집니다. 과거의 상처들도 더 이상 제 삶의 약점과 어두움이 되지 않습니다. 기쁨과 감사함의 시간들로 채워집니다. 다른 성도님들도 이런 경험을 다 하셨구나! 나는 이제야 하다니... .

   저는 옛날에 받았다고 생각한 구원이 구원이 아님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한없는 죄인임을, 보잘 것 없는 존재임을 깨달은 경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은 이제 주님이 제 바로 옆에서, 마치 그 현장에 제가 있는 듯 가까이에서 생생하게 하시는 말씀으로 모두 들립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4:26).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 저희가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눅 24:51-53).

   예수님이 이천년 전에 하셨던 말씀들이 이제야 깨달아집니다. 그리고 큰 기쁨과 든든함으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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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저는 2011년 10월 침례를 다시 받았으며, 주님이 주인 되신 저는 부모님과 더할 나위 없는 애틋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주님께서 그 사람과의 결혼을 허락하셨고 이쁜 딸도 주셔서 현재 주님 안에서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드립니다. 주님께서 저를 일절 오래 참으시고 변화시키셨듯이, 오랜 시간 구원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들 모두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든 결국 역사하시리라 믿습니다.) *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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