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바울의 사도로서 천거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여 함이라" (갈 2:9).
사도 바울의 사역에서 문제는 항상 거짓교사의 공격이었습니다. 바울이 어느 지역에 가서 진리를 전하면, 거짓교사가 뒤따라와 잘못된 가르침을 뿌렸습니다. 이들은 주로 할례와 율법을 주장하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바울이 은혜의 복음을 심으면, 그들은 율법으로 이를 뽑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같은 거짓이 카다란 효과를 발휘해, 초기 교회는 상당히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 이유의 대부분은 율법이 사람의 타락한 본성에 맞는다는 점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율법을 지켜 구원받는다는 자신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사도 바울의 사도권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아마도 이같이 공격했을 것입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가 아닌 안디옥 출신이다. 소수 안디옥 성도들이 그를 사도로 인정하고, 이를 근거로 그는 돌아다닌다. 그는 교회를 핍박하던 자다. 그는 사도라 주장하지만, 주님이 직접 택한 제자가 아니며, 주와 함께 생활한 적도 없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해야 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전한 복음의 진리됨을 위해 변호해야 했습니다. 그는 서신의 맨 앞에서 자신의 사도직을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갈 1:1). 그는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주님에 의해 직접 구원받았고(행9장), 안디옥에서 성령께서 세우셨습니다(행13장). 이는 그를 창세 전에 택정하시고 은혜로 부르신 하나님(갈 1:15)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를 말한 후 바울은 자신이 어떻게 예루살렘에 갔으며, 사도들을 만났는지를 말합니다. 즉 자신의 사도됨을 자신의 삶의 증거에서만 찾지 않고, 이를 보고 동의한 다른 사도의 천거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구원받은 지 17년 후 예루살렘에 갔습니다. (3년 후에 간 적이 있고[갈 1:18] 14년 후에 다시 갔다. 이는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되어있다.) 거기서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사도로 부르신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고, 사도로서 그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습니다(갈 2:1-9). 즉 그의 복음은 사람에게서 나온 게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사도와 내용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의 복음은 독립적이나, 내용이 독립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적용해야 합니다. 어느 성도의 존엄성이 다른 성도의 평안을 깨면서 자기 길을 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지역모임의 독립성이 다른 모임을 상관하지 않고 나름 독자적인 길을 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그러나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 것은 거짓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핍박을 간증하는 중 "거짓 형제 중의 위험" (고후 11:26)을 말합니다. 그들은 교회의 지체라 주장합니다. 무리 가운데 섞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자유를 봅니다. 자유의 약점을 살핍니다. 그리고 자유를 남용하도록 가르칩니다. 그러나 진정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은 진리입니다. 주 안에서 우리는 영광스러운 자유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자유가 아닙니다. 이는 방종입니다. 참된 자유는 옳은 것을 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주의 영이 있는 곳에 자유가 있습니다(고후 3:17). 즉 성령의 통제 안에서 원하는 대로 할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악을 가리는데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육신의 기회로 삼아서도 안 됩니다. 율법을 전하는 거짓교사는 그들도 메지 못한 멍에를 우리에게 메어 다시 종으로 삼고자 합니다. 이에 우리는 일시도 복종해서는 안 됩니다.
율법을 전하는 유대인 거짓교사들은 아마 주장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유명한 인도자들은 우리 편이다. 바울은 고집쟁이다. 너무 강하다. 구부릴 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바울은 "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되었고"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했습니다" (고전 9:22-23). 그러나 한 가지, 진리에 어긋나는 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자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연약한 그리스도인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러나 거짓 형제에게 다가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진리 가운데 있으면, 피차 참된 독립과 상호 교제가 있을 것입니다. 이 자유를 뺏기지 않는 모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횃불'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훈의 샘] 구관조 (0) | 2019.11.17 |
---|---|
[예배와 기념] 야곱의 사다리와 맹세 (0) | 2019.11.17 |
[생각해 봅시다] 기도하는 형제들은! (0) | 2019.11.15 |
[독자의 글] 도시락을 든 아이를 향한 독백 (0) | 2019.11.14 |
[교훈의 샘] 가장 위대한 발견 (0) | 2019.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