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박지성

생활건강 2010. 3. 23. 11:05

맨체스터에서 7박 8일, 박지성 최전방 관찰기 [조인스]

글로벌 브랜드가 된 박지성. 슈퍼스타라는 타이틀 뒤 인간 박지성은 여전히 순수하고 수줍음 많고 소탈하기 그지없다. 멋도 없고 기교는 더욱더 없는 박지성과 함께한 맨체스터에서의 7박 8일. 그는 작정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기획_박진영 기자 취재_최원창(JES 기자) 사진_이주연(프리랜서)

prologue… 11년, 박지성과의 인연을 말하다

장미꽃처럼 스스로 강렬하기보다는 다른 이들이 빛나게끔 배려하는 너른 품을 지녔다. 좀처럼 쉽게 자신을 꺼내 보이지 않지만 누구에게도 배타적이지 않다. 한 송이보다는 여러 송이가 모였을 때 비로소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안개꽃처럼 인간 박지성에게는 달콤하면서도 은은한 향기가 풍긴다.

지난 1월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발간할 박지성의 자전적 에세이(중앙북스) 작업 때문에 맨체스터를 찾았다. 일주일간 9시간의 인터뷰. 지난 11년간 그를 인터뷰한 모든 시간과 맞먹을 만큼 긴 시간을 그와 함께했다. 그곳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초특급 스타가 아닌 맨체스터 윔슬로의 평범한 청년을 만났다. 돈, 일상, 결혼, 월드컵 그리고 박지성의 또 다른 꿈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는 무척이나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천만 달러의 사나이…
한 해 수입만 120억원, 검소함이 몸에 밴 알뜰 살림꾼


박지성에게 지갑 안을 보여 달라고 했더니 6∼7년은 족히 썼을 법한 낡은 지갑을 꺼내 들었다. 지갑 안에는 60파운드(약 12만원)가 들어 있었다. 신용카드 2개와 도핑테스트센터 출입증이 고작이었다. 흥미로운 걸 기대했던 기자의 표정을 알아차린 듯 그는 “별것이 없어 솔직히 실망했죠?”라면서 웃었다.

박지성은 ‘천만 달러 사나이’로 불린다. 70억원의 연봉에다 각종 수당과 보너스, 스폰서 후원액과 TV 광고료까지 합치면 한 해 수입이 12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한국의 스포츠 스타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수입을 올리는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이다. 경기도 용인시에는 250억원을 호가하는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의 박지성 빌딩이 서 있고, 부모님을 위해 선물한 36억원에 달하는 저택도 있다. 재테크와 세무 관리 등을 전담해 주는 TFT(태스크포스팀)가 있을 만큼 박지성은 금융권에서 VIP보다 상위급인 VVIP 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돈에 무감하다.

“영국에서는 돈 쓸 일이 거의 없어요. 점심 식사도 가끔 구단에서 먹고 오는 경우를 빼면 거의 집에서 해결하는 편이거든요. 한국에 가서 친구, 동료들과 만나면 대부분 제가 돈을 내는 편이지만 큰돈을 쓸 일은 없어요.”

그의 절친으로 알려진 정경호 선수(강원)는 “오랜만에 만나 식당을 찾았는데 지성이가 비싼 곳에는 가지 말자고 하더라. 경제도 어려운데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다면서 조심스러워했다”고 귀띔했다.

아닌 게 아니라 박지성은 검소함이 몸에 뱄다. 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이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전지훈련 할 때였다. 살인적인 물가로 유명한 영국에 처음 온 후배들이 숙소에서 몇 분 통화하지 않았는데도 엄청나게 청구된 국제 전화비에 놀라자 박지성은 중국 상점에서 저렴하게 파는 국제 전화 카드 사용법을 알려줬다. 10파운드(2만원)에 국제 전화 200분을 걸 수 있는 카드를 받아든 후배들은 박지성의 알뜰함에 혀를 내둘렀을 정도.

박지성은 부유하게 자라지 못했다. 부모님은 정육점과 반찬 가게를 하며 외동아들을 뒷바라지했다. 어머니 장명자씨는 어린 시절 청바지 한 벌 제대로 사주지 못해 운동복만 입고 외출하던 아들의 뒷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지금도 눈시울을 붉히곤 한다. 그는 “어린 시절 우리 집 앞에 서 있는 고급 자가용을 보고 돈 많이 벌면 어머니께 멋진 자가용을 사드리고 싶었다. 돈 욕심을 느낀 건 그때가 유일했다”고 회고한다. 그가 돈을 받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교토에 입단할 때였다. 자신이 받은 계약금으로 IMF 때 쌓인 빚을 갚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풍족하게 살지는 못했어도 돈을 좇지는 않았어요.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면 돈은 크게 문제되지 않더라고요.”

최대 고민은 결혼…
사랑 한 번 못하고 보낸 20대, 노총각의 절실한 자기 홍보


박지성에게 최근 가장 큰 고민이 뭐냐고 물었다.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4연패라거나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입이라는 부담감, 보다 많은 골을 넣으라는 주변의 기대감 같은 답변을 예상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그는 “결혼이다. 주변에서 결혼을 재촉하는 잔소리 때문에 히스테리가 생길 것 같다”라면서 연신 뒷머리를 긁어댄다. 한국 나이로 서른 살. 아닌 게 아니라 운동선수치고 많이 늦은 결혼에 주변의 성화가 대단한 모양이었다.

“맨유에 막 입단할 때 빡빡한 일정을 받아들고 아버지께 ‘결혼은 다했네요’라고 농담했거든요. 진짜 눈 깜빡하는 사이에 6년이 흘러 버렸어요. 1년에 9개월 이상을 영국에 머물다 보니 좀처럼 사람을 만날 시간이 없네요.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려 아이들도 낳고 휴일에는 가족과 함께 소풍도 가는 평범한 일상을 갖고 싶어요.”

대답을 하는 그의 표정은 간절해 보였다. 주위에서는 맞선을 보라고 성화지만 내키지 않는다. 한번은 아버지가 의사와 맞선을 보라고 하자 “아침에 수술하고 온 사람과 어떻게 사느냐”고 슬며시 농을 치며 비켜갔다. “의사라는 직업이 싫은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지 않은 만남이 불편하다. 맞선 자리는 어색하고 쑥스러워서 당최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그는 맞선을 보면 결혼해야 하는 줄 안다.

맞선을 보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혹시나 상대방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난처해질 수도 있어서다. 한때 인터넷에 ‘박지성과 결혼할 여자의 25가지 조건’이 유행한 적이 있다. ‘살림에 소홀하면 태클 예상’ ‘결혼과 동시에 모든 여자의 공공의 적’ 같은 재미난 얘기도 있지만 박지성 때문에 겪어야 할 불편한 유명세에 관련한 내용이 대다수였다.

“나와 결혼하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유명세에 관련된 내용을 읽을 때면 마음이 무거워져요. 그래서인지 사람을 쉽게 만날 수가 없어요.”

사실 그가 바라는 여성상이 특별하지는 않다. 자신의 특수한 직업을 이해해 주고 어른들을 공경할 줄 아는 현명한 여성을 바란다. 물론 얼굴도 몸매도 예쁜 여자였으면 더할 나위 없다. 그의 아버지는 ‘순대국집 딸’처럼 생활력 강하고 활발한 여성을 며느리로 얻기를 원하지만. 만나는 여성이 없어 속상한 그를 더 슬프게 만드는 건 뜬금없는 스캔들의 주인공이 돼야 할 때다. 종종 연예인들과 열애설이 터져 나오곤 했고, 때로는 대기업 간부 딸, 영국 유학생 등 대상도 다양했다. 최근에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일본 배구 선수 기무라 사오리와도 열애설이 났다. 그 기사를 읽은 후에 그는 에이전트에게 “기무라가 누구야?”라고 물었단다.

“그분은 나보다 키도 큰 것 같던데, 난 나보다 큰 여자와 사귈 생각은 없어요(웃음). 이제는 제발 열애설 말고 진짜 열애를 해야 할 텐데 걱정이에요. “이제껏 살면서 아직 뜨거운 사랑을 해보지 못했다. 애틋한 사랑을 해보지 못하고 20대를 보냈다는 게 가끔은 슬플 때가 있다”는 그의 말을 들을 때는 괜스레 측은해졌다. “내 스스로 평가해도 난 그다지 까다로운 성격은 아니에요.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내가 알아서 다 잘하거든요. 나도 자상하고 속 깊고 누구보다 가정적인 남편이 될 자신이 있어요.” 결혼이 간절한 노총각 박지성의 자기 홍보는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더 자세한 인터뷰 내용은 여성중앙 4월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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