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 - 1월 3일


                                     요한복음 1장 14절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모세는 만약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다면 그것을 보고 싶은 놀라운 소원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진실로 엄청난 요청이었습니다.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출 33:18). 결국 그는 하나님의 탁월하심을 보도록 허락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소원은 주 예수님께서 오신 후에야 참으로 성취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이 하나님의 영광이시기 때문입니다. "영광의 주" (약 2:1; 고전 2:8).

   전날에 이사야는 성육신하시기 전의 그 아들의 영광을 살짝 보았습니다.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사 6:1-4).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요 12:41). 또한 주 예수님은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요 17:24). 그러나 주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나타내신 환한 영광을 보는 특권은 소수의 제자들만이 누렸습니다!

   오늘의 구절은 성육신의 위대한 교리를 강조해줍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주님은 그분이 본질적으로 지니신 신성에다가 죄없고 흠 없는 인성을 더하셨습니다. 이것은 일시적인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또 이것은 천사가 그렇게 하듯이 단지 인간의 형상으로 꾸미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그분의 신성에 인성이 영원히 합해졌습니다. 베들레헴의 이 기적은 얼마나 기이하고 놀라운지!

   요한은 또한 이 아들께서 자원하여 낮아지셨음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은혜로이 우리 가운데에 거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그분의 인성은 영원했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겸손히 사람들과 함께 거하심은 일시적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히 5:7). 옛적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이동식 성막과 같이 주 예수님은 겉보기에는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으셨습니다(사 53:2). 하지만 그분만이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곳이 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또한 그분은 이스라엘의 영적인 광야에서 왔다 갔다 하셨습니다. " 이러하므로 요한의 침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어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행 1:21). 낮은 위치에 있는 것이 높은 위치에 있는 것보다 더 영광스러운데 이 "슬픔의 사람" 보다 더 낮은 데에 처한 이는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게 하려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그리스도의 도덕적인 영광에 대해 묵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주님으로 가득히 채웁시다. 그러면 주님의 재림 때까지는 여전히 광야로 남을 이 세상에서 걸어가고, 예배하고, 증거하는 데에 있어 커다란 격려를 얻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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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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