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 - 1월 5일
누가복음 1장 31-33,35절, 2장 21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침례 요한과 주 예수님 모두 태어나기 전에 "큰 자"가 된다고 말해졌습니다(1:15,32). 그러나 요한은 메시야의 선구자로서 그의 사역이 큰 반면에(1:17) 주 예수님은 그분의 본질적인 위격에 있어서 크셨습니다.
주 예수님은 가장 먼저 구세주로서의 그분의 임무에 있어서 크셨습니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1:31). 성경의 이름들은 그 사람의 특징을 보여주는데, "예수"는 히브리어 '여호수아'를 헬라어로 옮긴 말로서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구약성경에서 구원은 많고 다양한 형태로 등장합니다. 즉 육체적인 죽음에서 건짐(욘 2:9). 종살이에서 해방됨(출 14:30), 죄의 결과로부터 벗어남(시 51:14) 등으로 나타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주가 되는 분이십니다. 다시 말해, 그분의 구원은 놀랄 만큼 포괄적입니다. 속죄의 희생제사를 통해서, 그분은 사람들을 죄의 형벌과 지배로부터 또 궁극적으로는 죄의 존재로부터 구해내십니다. 따라서 신약성경의 기자들이 인간의 언어를 총동원하여 그것을 완전히 표현하는 것은 거대한 작업이었습니다. 그들은 의롭다 하심, 용서, 구속, 화목, 거룩, 영화 등의 용어들을 사용하여 구주의 죽으심이 가져온 복된 결과들을 말해주었습니다.
주님은 또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로서 크셨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1:32). 그분을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게 하려고 천사는 경외심을 가지고 그분의 아들됨을 말했습니다. 이 아들됨은 당시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위를 가졌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요 5:18; 19:7). 이 구주는 여호와이십니다! 따라서 신약성경의 서신서들을 기록한 이들은 자주 이 지상적인 이름인 "예수"에 다가 "주"와 같은 높은 칭호를 붙여 그분을 존귀케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따라야 할 모본이 됩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고전 11:23).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행 2:36).
마지막으로, 주님은 주권자로서 크셨습니다. "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1:32). 옛적에 하나님은 다윗의 집과 보좌와 나라 이 모든 것이 주님으로 인해 견고케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삼하 7:12-13,16). 이러한 명확한 말씀을 현시대에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계획을 세우시고 약속하신 이 나라는 아직 자물쇠가 잠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사시는 동안 주 예수님은 그분이 다윗의 보좌에 앉기에 합당한 분임을 입증하셨습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때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그 보좌를 주실 것입니다(시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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