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 - 2월 1일
요한복음 3장 1-9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2장 끝부분에서 이스라엘의 많은 권력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반대가 드러났습니다. 그에 뒤이어 오늘의 구절들에서는 그 민족의 지위 높은 이들 중 한 사람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1절). 밤에 주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는 자신이 다음과 같이 말해진 분에게 오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 1:5). 이 사람이 지닌 민족적이고 종교적인 자격 증명서는 완벽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조차 이제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는 분의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의가 바르고 타인을 존중할 줄 아는 이였습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그는 자신의 종교적인 성취나 공회에서의 신분을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2절). 이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3절) 통찰력 있는 이 한 마디는 이스라엘에서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이었던 니고데모의 모든 곳을 노출시켰습니다. 주 예수님이 단순하게 말씀하신 이 근본적인 진리는 분명 랍비들 사이에서 한 번도 토론의 주제였던 적이 없었습니다. 니고데모가 크게 당혹스러워한 모습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 예수님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 에 불과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그것을 무한히 더 넘어서는 분이셨습니다. 따라서 그분은 가련한 니고데모의 어둡고 지극히 종교적인 마음에 진리의 빛을 비추셨습니다. 그분은 그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묻게 만드셨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4절).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9절).
모든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태어납니다. 또한 우리는 한 사람에게 참된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참되며 이는 고등교육을 받고 종교성이 강한 자들도 동일함을 압니다. 인간은 타락하고 죄악된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연적인 상태에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알 수 없고, 교제를 나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6절). "거듭나야 하겠다" (7절).
자연적인 영역에서도 신비로운 현상들이 존재합니다. 예컨대, 바람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그것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과연 어느 누가 그것을 알 수 있을까요? 성령님이 행하시는 주권적인 활동도 그와 같습니다. 성령으로 난 모든 사람들은 신적인 활동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그 활동은 우리의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초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이와 같은 사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름을 참되게 믿는 자는 성령으로 난 것이며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고 그리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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