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편지]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다
-창조자 하나님
- 차 광선
선생님,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어느 덧 한겨울입니다.
생계를 위해 추위 속에서 고단한 노동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 한 겨울 넘기가 더욱 혹독할 것입니다. 하루 일거리를 찾아 새벽길을 걸어온 일일 노동자들이 자기의 이름이 불리길 기다리는 인력 사무실 밖, 몸의 냉기를 지우려 뽑아든 자판기 커피의 온기는 이내 식어가겠지만, 가슴에 묻어 둔 희망은, 꿈꾸는 행복은 그렇게 식어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시집을 비롯하여 많은 책들이 꽂혀 있는 선생님의 서가는 선생님의 독서와 책 사랑의 정도를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지난 서신에서 '귀천'으로 써야 할 것을 '소풍'으로 오기한 사실이 뒤늦게 생각났습니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고 끝맺는 시를, 나름 잘 알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저의 가벼움이 그만 멀리도 못가서 드러나고 말았네요.) 그 중에'무진기행'이 유난히 눈에 띄었지요. 청년 때 그것을 만난 후, 저자의 활동이 궁금했는데, 오랜 침묵 끝에 '내가 만난 하나님'이란 책으로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오셨더군요. 청년기에 그의 필력을 잠시나마 부러워한 적이 있었지만 문학의 세계에서 신앙의 세계로 전격 이전한 것이 뜻밖이기도 했고 반갑기도 했습니다. '내가 만난 하나님.' 그는 더 이상 당시 문학도들이 동경했던 감수성 깊은 작가가 아니라, 구도의 길을 가려는 자들에게 하나의 인생 좌표를 보여주고 있는 신앙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신앙은 매우 개별적이고 단독적인 경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절대자의 존재와 실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계기는 일종의 신비에 속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세계로 들어가는 축복을 함께 나누고자하는 거룩한 열망을 가집니다.
제게도 '내가 만난 하나님'에 대한 스토리가 있어, 그것을 나누고 싶은 소망이 있던 중에, 기독교 복음전도에 37년의 지령을 가진 '횃불'지를 통해 선생님께 서신을 올리는 지혜를 구하게 된 것이었지요.
절대자 하나님의 존재와 그에 대한 신앙의 문제는, 취미생활을 위하여 어떤 것을 선택해도 좋고 말아도 별일 없는 것 같은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영원한 삶이 걸린 문제이기에 매우 신중해야 할 일입니다. 탁월한 저술가 윌리암 맥도날드란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삶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오래 살아보지 않아도 우리는 인생이 매우 짧다는 사실을 실감합니다....현재란 영원을 위한 무대 연습입니다. 모든 사람은 조만 간에 닥쳐올 '영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잠깐 지나면 우리의 생애는 끝이 나고, '영원'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단 한 번뿐인 인생/전도출판사).
그는 사람들이 '영원'에 대하여 놀라우리만치 무관심한 것에 대해 지적합니다.
선생님,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언제부터 존재하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것들 중에 '영원히 존재해 오는 것'은 없습니다. 모두 다 그 시작점과 출발점이 있었습니다. 지구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중에 지구가 존재하기 전부터 있었던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에너지, 질량, 운동의 세 요소가 상관되어 있는 이 물질의 세계가 저절로 생겼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그 모든 관계가 치밀한 질서와 법칙이라는 '힘'과 '시스템'이 작동하는 가운데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존재에 관하여 모든 이론을 구분한다면, 마침내 두 가지로 압축이 되는데, 그 중 하나는 '우연에 의한 존재'이고 다른 하나는 '창조에 의한 존재' 입니다. 하나의 사실에 대하여 서로 다르게 설명하고 있는 두 이론이 있다면 하나는 반드시 다른 하나를 배척하기 마련입니다. 둘 다 옳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낮이라면 밤일 수 없고, 살아있다면 죽은 것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온 우주와 태양계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우연히 존재하게 되었다면, 창조되어 존재한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창조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다면 '우연'히 존재하게 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캠브릿지 대학 신학생이었던 다아윈의 '종의 기원'은 소명도 없이 신학생이 된 후 해군을 따라 갈라파고스 섬까지 갔다가 얻어온 상상의 이론이었지요. 일종의 강압된 신앙의 반발에 따른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임종시에 친구에게 고백한 진실은 우리를 슬프게 만들기도 하고, 다행스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레이디 호프'라는 다아원의 친구가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는 책을 읽고 있었답니다. 무슨 책이냐고 물으니 신약성경 중 한 책인 '히브리서'라고 했습니다. 자신도 전에는 구약성경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에 관한 내용을 어느 정도 인정했었다면서, 마지막 소원이 있는데 그것은 삼십 여명 모일 수 있는 별장에 하인, 소작인, 이웃 사람들을 모으고 친구가 이야기를 좀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답니다. 그래서 친구가 말하기를 무엇을 말해주기를 바라는가 하고 물으니, "자네는 성경을 가르치는 친구가 아닌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에 대해 말해주게나. 그보다 더 중요한 주제가 어디 있겠나?"라고 반문했답니다. 그는 자신의 상상에서 비롯된 하나의 가설이 그렇게 들불처럼 번져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후회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들불'의 희생자 중 하나인 진화론자 아더 케이스(Arthur Keith)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화론은 증명되는 것도 아니고 또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진화론이 아니면 특별한 창조를 택하는 길 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진화론을 믿는다. 특별한 창조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 창조냐 진화냐/W. 크리스웰/생명의 말씀사).
진화론 편에 서려는 그의 의도가 정직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하여 '사실'을 비켜가는 모습에는 슬픔과 안타까움이 배여 있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것들 속에는 그것을 존재하게 한 분의 지적설계와 지혜가 있습니다. 지금은 소소한 상식이라 할 '광합성 작용'을 겸손한 눈으로 살펴보면 우리는 그것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태양빛이 날아와 지구의 식물의 잎들에 부딪칠 때 그들은 공중의 이산화탄소를 가져다가 뿌리를 통해 얻은 무기물을 엽록체에서 광합성 작용을 하여 에너지를 생산하고 그 때 생성된 산소를 방출합니다. 그 식물은 그렇게 만들어진 포도당으로 녹말과 과당과 섬유소, 단백질 등으로 조성하여 자신의 키를 키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 사람과 동물들은 그 방출된 '산소'를 들여 마시고 그들이 필요한 이산화탄소를 그들에게 공급해주고 있지요. 태양 에너지와 식물 엽록소와의 만남. 그리고 그 결과물이라 할 식물과 열매를 사람들도 새들도 동물들 곤충들도 먹고 있습니다. 그 치밀하고 정교한 생존의 메카니즘이라니! 이것은 결코 '우연'일 수 없고, 지성적 설계와 지혜가 깃들어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얀센이 현미경을 만들기 전까지 그리고 네델란드 사람 레벤후크가 현미경으로 미생물을 최초로 관찰하기 전까지는 세균의 세계가 우주처럼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만들어내기까지 그리고 허블 망원경 같은 첨단 장비가 생기기 전까지 빛의 속도로 몇 백만 광년을 달려가도 끝에 닿을 수 없는 우주가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습니다.
어느 과학자가 어떤 물리학 법칙을 찾아 증명해 내어도 그것은 그 과학자가 창안한 것이 아니라, 이미 물질세계에 질량과 에너지와 운동의 상관관계로 존재하고 있었던 무수한 법칙 중 하나를 겨우 찾아 낸 것에 불과하지요. 명사십리 백사장에서 모래 한 알 집어든 것 같이, 그러니 보이지 않는다 해서 없다고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분, 그분은 바로 창조자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을 통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인간의 선한 양심을 통해, 그리고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을 위해 주신 성경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시고 그 분의 뜻을 나타내 주시고 있습니다.
그분은 말과 문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창조하신 인간에게 그분의 뜻을 알게 하시려고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 첫 책 창세기 1장 1절에는 이렇게 기록 되어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지구상의 것이나 광대한 우주 안에 있는 것이나, 그 모두가 '우연히 존재하게 된 것들'이라고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을 때, 성경은 잠잠히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창조자 하나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한 인생에게 영원한 전환점을 가져오게 합니다. 그 개별적이고 단독적인 경험은 새 생명이 어머니의 몸 속에 십 개월간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세상에 출생하는 것처럼 기적적이고 신비한 경험입니다.
"집마다 지은이가 있으니 천지를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히브리서 3장 4절).
페루의 고대 잉카문명의 소산물인 마추픽추도, 이집트의 피라밋도, 파리의 에펠탑도, 경주의 첨성대도 우연히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라 사람의 기술과 설계로 지어졌다면, 그 규모에 있어서나, 그 복잡성에 있어 비할 수 없는 모든 생명체들이, 그리고 인력과 운동 관계로, 작동되고 있는 태양계가 우연히 존재할 수가 있겠는지요. 그것이 우연히 존재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보다 고철 더미에 쇠 덩어리 한 조각 던졌더니 스마트 폰 하나가 우연히 튀어 나왔다고 하는 편이 다 나을 것입니다.
신약성경 중 로마서 1장 20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않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로마서 1장 20절).
예를 들면, 자기 본연의 피부색을 주변 환경에 적응시켜 보호색을 내어 자신을 능숙하게 위장시키는 카멜레온, 나일론보다 몇 배나 더 강한 인장력을 지니는 천연 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거미, 지상에서 백미터가 넘는 나무꼭대기까지 총량이 수 톤 에 달하는 물을 도관을 통하여 옮길 수 있는 메타세콰이어 나무, 해마다 한 번씩 캄차카 반도에서 울릉도 독도를 지나고 남해를 거쳐 백령도와 중국 황해 연안까지 GPS 없이도 정확하게 반복 이동할 수 있는 바다사자... .
일례였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자연 만물(모든 피조물)들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손길인, 지적설계와 지혜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알 수 없노라고 회피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은하계 중에 태양계, 태양계 중에 지구와 달, 그리고 그렇게 허공에 상호 인력관계로 떠 있으면서 자전과 공전을 이루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살피고도 불신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네가 하늘의 궤도를 아느냐?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구약 성경 욥기 38장 4절, 33절, 36절).
우리는 미생물의 세계로부터 빛의 속도로 수백만 광년을 가도 그 경계와 끝을 알지 못하는 우주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작고 사소한 생각으로부터 물질세계를 초월하는 영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그 가운데 실존하는 우리 인간은 영원하신 창조자 앞에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분은 창조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영원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시공을 초월하시는 영이신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에 능한(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만이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이시며,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전도자가 말하기를 "만일 인간의 짧은 상식과 지식으로 다 알 수 있고 다 이해될 수 있는 그런 수준의 하나님이라면 나는 그런 하나님은 믿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 전도자는 역설적으로 사람의 지식과 지혜로 다 측량할 수 없는 지극히 크신 하나님이심을 웅변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무수한 전쟁의 역사인 인류 역사의 한 참혹한 현장에서 '신이 있다면 왜 침묵하고 있는가?' 반문하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은 문둥병으로 무너져 내리는 육체를 부지하고 간신히 생존하며 죽을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 가운데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의 고독한 임종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구 수련의 우주 비행사 가가린이 어두운 우주를 바라보며 '신은 없다'고 할 때에, 미국의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은 어둠 속에 홀로 빛나는 푸른 지구를 바라보며 '생명의 신비와 그것을 지으신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세상에는 인간의 욕망과 죄성으로 인해 여전히 부조리와 폭력과 가난과 질병과 자연재해와 전쟁과 다양한 갈등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지만, 하나님은 공의를 세우시며, 모든 사람들 그리고 궁핍한 자들과 소외당한 자들과 고아들과 과부들과 병든 자들을 기억하시며 그들을 위해 구원의 손길을 펼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와 사랑과 생명과 구원의 하나님입니다.
비 개인 후 햇빛 찬란하게 비칠 때, 부드러운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야생화초와 미물들, 언덕 위에 펼쳐진 무지개, 젖은 깃털 푸르르 털며 숲속을 나는 새들, 그 숲에 울리는 청아한 소리들, 아름다운 빛과 소리와 하모니...거기 모든 아름다움과 생명과 지혜의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고달픈 하루 일을 끝내고 지친 몸으로 돌아온 가정, 아이들과 함께 둘러앉은 식탁, 감사의 기도를 드린 후 함께 하는 가난한 식탁 위에 평안이 은하수처럼 펼쳐집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이야기 소리, 거기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눈에 보일듯 말 듯 한 미미한 들꽃 한 송이를 통해서도, 그 꽃에 몸을 숨긴 미세한 벌레 하나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선생님, 겨울의 한 복판을 지나고 있습니다. 겨울 바다를 지키는 등대섬엔 여전히 바람이 거세고, 거친 파도가 끊임없이 몰려오겠지요, 그 등대의 빛으로 겨울 밤 바다를 지나는 어떤 배들은 비로소 항로를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인생이라는 중량'을 싣고서 이 세상 바다 위를 표류하고 있는 작은 배들입니다. 진리의 빛이 홀연히 비쳐 올 때, 우리 선생님께서도 산 소망과 환희의 새로운 항해를 시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날이 춥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평안하세요.*
2015. 2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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