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자유인과 거짓 자유인 (행8:9~24)
조준안 여주교회
사도행전 핵심 구절은 1:8절이다. 1~7장까지가 예루살렘에 복음이 확산되고 8~12장은 유대와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되고 13~마지막장까지 땅끝을 향하여 복음이 나아간다. 그리고 사도행전 28장으로 끝나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 복음이 진행되고 있다. 성령이 그리스도인 안에 임하게 되면 인간의 상식과 전통과 제도를 초월한다. 성령을 받고 놀라는 자는 먼저 자신이다. 베드로가 오순절 날 성령을 받고 그의 지식과 경험을 뛰어넘는 일을 한다. 성령은 국경과 나라, 지역과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다. 주님의 제자들은 예루살렘과 유대 안에 생각이 갇혀있었다. 그러나 성령은 그 모든 사람을 초월한다. 복음은 유대인과 예루살렘에 제한할 수 없다. 성령이 임하면 교단, 교파를 초월한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적대시하는 사마리아를 통과한다. 사마리아의 복음이 전해지는 것으로 인해서 사도들은 충격을 받고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가게 된다. 성령은 사람의 상식과 고정관념, 헌법을 뛰어넘는다. 그들은 감정, 전통, 인습에 얽매어 있었다. 성령이 임한 증거는 생명의 역사요, 활동이다. 성령이 임하자 그들은 하나님 말씀에 즉각 순종한다. 때로 자기의 직업, 장사나 사업을 접기도 하고 훌륭한 직업을 그만두고 선교나 사역에 뛰어드는 경우가 있다. 사도들은 사마리아에 도착하자 성령을 받기위해서 기도한다. 성령을 받는 것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받는 것은 분리할 수 없고 동시에 일어난다.
1. 거짓자유인 시몬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1) 시몬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다. 자신을 속이고 착각한 자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였는가? 주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님께 잘못된 동기로 나오는 방식을 보여준다. 예수님이 사회를 구원해주는 정치적인 메시아로 생각하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있고,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따르는 자도 있었다. 때로 사업이나 장사를 위해서 교회에 나오는 사람도 있다. 또한 육신의 건강,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교회를 나오는 경우도 있다. 마7장에 두 종류의 길과 두 종류의 나무, 두 종류의 기초가 나온다. 이것은 참과 거짓을 보여준다. 또한 마13장에 씨 뿌리는 비유에도 참과 거짓을 보여준다. 마25 열처녀와 달란트, 염소와 양의 비유도 참과 거짓을 보여준다. 대게 이런 착각은 언제 일어나는가? 기독교 배경에서 자란 경우다. 가정적으로 부모님이 믿거나 종교적인 학교나 기독교국가에서 자란 경우일 수 있다. 인간은 거짓되다. 마음이 거짓되어 스스로 속을 수 있다. 또한 영혼의 원수 마귀가 거짓의 아비로 버티고 있다. 광명의 천사로 양심을 잠재울 수 있다. 시몬도 8:13절에 믿고 세례를 받고 주님의 제자들을 따라다니게 된다. 그러나 그는 결국 거짓 그리스도임이 드러나게 된다. 거짓믿음은 예기치 않을 때 갑자기 드러난다. 마12:36~37절에 무익한 말이란 무심코 튀어나는 말을 의미한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온다. (마12:34) 사람이 다급해서 튀어나오는 말, 그 때 자신의 실체와 본색이 드러난다. 그 사람이 완전무결하게 그리스도인처럼 보였지만 그가 뱉은 말에 의해서 그의 정체가 드러나게 된다. 이 사람의 본질은 세속적이고 세상적인 사람이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죄의 노예요, 돈의 노예가 된 사람이다. 그는 사도들의 능력이나 은사를 돈을 주고 사려고 하였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특별한 체험이나 은사를 동경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영적인 소원이 아니라 탐내는 것을 말한다. 진리를 아는 지식이 아니고 체험은 문제다. 주님과의 관계보다 경험이 앞서면 안된다. 사람은 시몬처럼 남의 능력이나 재능을 탐낼 수 있다. 인간은 간사해서 남의 체험과 능력을 탐낸다. 주님은 내 삶의 어떤 역할을 하는가? 주님께서 내 삶을 통제하시는가? 내 삶의 가장 큰 자가 주님이신가? 주님께서 중심을 차지하고 나를 다스리는가? 그분이 모든 것의 우선인가? 그리스도인인지 시험하는 검증방법은 핍박을 어떻게 반응하는가 보면 된다. 마음에 품은 것이 무엇인가? 의에 주리고 목말라 있는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갈망하는가? 마음에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우리의 실체다. 소망의 이유를 말해 줄 수 있는가? (벧전3:15)
(2) 시몬은 악독이 가득한 자로 자기 주인이다. 행8:20절에 그는 하나님의 선물과 은사를 돈을 주고 살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돈이 모든 것의 중심인 사람이다. 베드로는 네 은과 함께 망하라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바르지 않았다. 그래서 너는 성령과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다고 말한다. 그것을 베드로는 악한 것이라고 말했고 그가 평소에 품고 있는 마음이라고 말하였다. 성경은 죄가 포악한 것으로 악독이 가득했다고 말한다. 쓸개즙이 쓴 것처럼 죄도 쓰다. 죄는 역겹고 포악스럽고 혐오스러운 것으로 신구약에서 가르친다. 성경은 죄는 하나님과 원수 된다고 말한다. (롬8:7) 죄는 적의, 냉소, 조롱, 공격적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하나님을 미워하고 악독과 증오를 가진다. 겉으로 우호적이고 부드럽고 선량하고 친절하지만 그 사람의 인격을 살짝 긁으면 어김없이 악독이 들어난다.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있다. 자기 하나님을 만들어 놓고 있다. 그것을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다. 그들은 사랑의 하나님만 강조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거절한다.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시고 맹렬하고 공격적이며 살육과 위협, 저주의 하나님을 그들은 믿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이 아니어도 사람은 선하고 훌륭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은 거짓되다. 인간이 죄인이라는 말은 마음에 하나님을 거절하고 자기가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거듭날 필요가 있고 그리스도 십자가의 보혈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의 보혈과 거듭날 필요성을 거절하는 것이 악독이다. 세상 사람이 그리스도인보다 훌륭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속이며 가장하는 것이고 살짝 긁으면 악독이 드러난다. 세상의 우정과 우애는 다 거짓이다. 죄의 더러움과 포악으로 덮고 가려져 있다. 인간은 죄의 지배를 받음으로 죄의 종이다. 인간은 자유인이 아니다.
(3) 시몬은 불의에 매인바 되었다. (행8:23) 죄의 종살이 속박의 상태다. 죄를 범하는 자는 죄의 종이다. (요8:34) 세상은 이것을 모름으로 초자연적 구주의 필요성을 거부한다. 세상은 철학과 교육, 윤리와 행동을 가르친다. 그러나 왜 세상이 정치교육음악과 예술로 바꾸어지지 않는가? 사람들이 불의에 매인바 되었기 때문이다. 지식은 있지만 능력이 없다. 마치 술과 마약과 도박에 중독되면 의지로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셨는가? 인간이 그만큼 죄에 심각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신다. 내 속에 있는 죄, 다른 사람 속에 죄만 봐도 더럽고 비루하다. 그런데 하물며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볼 때 어떠하시겠는가? 주께서 눈이 정결하심으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신다. (합1:13) 하나님은 빛이시고 그에게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 (요1:5) 죄는 거룩한 본성과 상반된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반드시 벌하시고 범죄하는 영혼은 죽는다. 하나님의 진노가 죄인들에게 나타난다.
2. 참 자유인 빌립과 그리스도인들 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행하신 일들을 알고 있는 자들이다. 그리고 성령을 받은 자들이다. 이러한 자들은 자유인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진리를 알게 될 때 자유하게 된다. 그렇게 하기 전에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상태에 있었는가? 시몬처럼 악독한 자로 삶의 주인이 내가 되고 나와 돈이 세상이 우상이 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불의에 매인바 되어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자들이었다.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들이었다. 이런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죄들을 다 사해주신 것을 알게 되므로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은혜와 사랑을 베푸신 주님을 진실로 사랑하게 되므로 나 자신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되었다. 죄와 율법, 사단 등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롭게 되었다. 또한 성령이 내주하심으로 우리는 죄의 세력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물고기가 물을 떠난 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난 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다. 인간은 물을 떠나 물고기나 하나님 아버지 품을 떠난 자들이었다. 이제 우리가 다시 물로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새가 날개를 잃으면 자유할 수 없다.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잃으면 자유할 수 없다. 사람이 앉은뱅이가 되면 걸음에 자유할 수 없다. 인간은 거듭남으로 인해서 성령을 선물로 받게되고 우리는 날개를 회복하고 지느러미를 회복하고 발을 회복한 사람과 같다. 눈을 잃을 때 우리는 어둠이고 자유할 수 없다. 우리는 눈과 귀와 모든 기능을 영적으로 회복받은 자들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성령을 모신 자는 진정한 자유인이다. 이제 우리는 영적 자유인으로서 영적으로 비 자유인들을 향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초대 성도들은 핍박에 의해 흩어지면서 복음에 의한 자유를 선포하였다. 성령이 내주하여 충만하게 되면 하나님과 자신과 성도와 영혼들에 대하여 사랑할 힘을 얻게 된다. 말씀을 깨닫고 전할 수 있다. 전도에 열정이 생긴다. 죄와 싸우게 된다. 의를 갈망하고 선을 행하고자 한다. 찬양과 감사와 기쁨이 터져나온다. 비참하고 찌그러진 얼굴이 아닌 밝고 명량한 얼굴이 된다. 헌금을 억지나 인색함으로 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예배를 사모한다. 주일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 예배를 참석하지 못하면 마음이 무겁다. 주님을 억지로 따르지 않고 즐거움으로 따르게 된다. 이것이 성령 충만한 상태를 말한다. 이게 성령을 쫒아 행하는 자들에게 주신 자유함이다. (요8:32, 고후3:17, 갈5:16~22) 어떻게 성령 충만하는가? 말씀을 늘 가까이하고 들어야 한다. 성령의 뜻에 복종해야 한다. (갈5:16, 엡5:18) 또 기도할 때 성령충만하게 된다. (행4) 주님을 사모하고 사랑할 때 성령충만하게 된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때 사단의 역사도 동반한다. (행8: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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