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 - 3월 3일
마태복음 9장 16-17절; 마가복음 2장 21-22절; 누가복음 5장 36-39절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누가만이 주님이 가르치신 이 부분을 비유라고 말해줍니다.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눅 5:36). 이 부분은 낡은 것인 유대교 체제를 새 것 곧 주님께서 소개하신 생명력 넘치는 진리와 결합시키려는 시도가 헛됨을 예증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의 묘사를 읽습니다. 또 각각의 묘사가 동일한 진리를 말해주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낡은 것"은 유대교(옛 언약에 기초한)를 의미하며 "새것"은 새 언약의 축복들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유대교의 의식들에 더 많이 헌신하라고 격려하시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그분은 더 좋은 어떤 것을 가져오셨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계시를 우습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는 그것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새 언약의 약속들에서 소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직 거기서만 소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1)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합하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하는 것은 분명 시간낭비입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할 경우 "기운 새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유대교는 낡아버린 옷과 같아서 수선이 불가능했고 그것은 버려야만 했습니다.
(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이 말씀을 듣던 자들은 발효 작용이 왕성한 새 포도주를 낡은 포도주 부대에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는 그 부대가 갑자기 터지면 포도주가 쏟아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령님이 신자들에게 주시는 기쁨도 이와 같습니다. 즉 그것은 유대교의 체제가 담을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만일 그런 기쁨을 누리려면 덜 금욕적이고 더 유연성 있는 형태가 새로이 요구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신자의 믿음에서 훈련을 제외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기초가 인간의 의지력이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임을 알고 있습니다.
(3)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주님이 전해주신 생명력 넘치는 복음은 새로운 포도주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묵은 포도주 곧 유대교를 대신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에 대해 불만을 품고서 묵은 것 또는 익숙한 것이 젊고 새로운 것보다 더 좋고 더 성숙하다고 말합니다. 바로 이와 견해 차이가 초대교회 안에서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즉 "약한 자들"과 "강한 자들" 사이에 옛 언약과 새 언약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놓고 긴장이 유발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는 제단에서 희생제물을 바치면서 분향하는 그런 외적이고 의식적인 경배로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포도주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우리는 참된 내적 축복들을 누립니다. 새 언약을 통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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