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신성과 인성을 입으신 이유 (히 1~2)
조준안 여주교회
믿음은 기초가 중요하다. 하나님에 대하여 확실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에 대해 확실하지 않으면 모래 위에 지은 건축가 같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세상에 지식과 과학이 모든 것의 권위가 되고 있다. 성경을 한낮 이스라엘의 역사나 신화에 불과하다고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격하하며 도전한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신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가?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 소화할 수 없다. 최초로 우주에 도착한 소련사람은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공산주의는 유물론이어서 신적 존재를 부인한다. 그러나 미국의 우주사는 달에 도착하여 지구를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에 감격하고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님을 생각하며 그는 그 모든 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뵙게 되었다고 말한다. 누가 올바른 판결을 하고 있는가? 성경은 누구의 말인가? 성경은 사람의 말이 아니다. 세상에서 성경을 연구하는 박사들이 구약은 모세의 글이고, 신약은 바울의 글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간의 말로 격하시키는 발언이다. 교회를 다니고 열심히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을 한다. 성경을 개인적으로 하나님 말씀으로 확신하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게 된다. 성경을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와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딤후3:16~17, 벧후1:20~21) 성경을 통하여 우주탄생, 인간의 운명이 다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양심을 통하여 만물을 통하여 예수님을 통하여 증거하고 계신다. 사람은 어떤 곳도 창조할 수 없다. 하나님이 주신 머리와 재료와 손으로 인간은 그것을 만들 뿐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하나님 뿐이시다. 모든 것은 목적과 뜻과 역할이 있다. 이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알 수 있게 된다. 그것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는 개인의 결정한다. 그 중립은 있을 수 없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1.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히1)
구약에서는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메시아의 오심으로부터 말세는 아들되신 예수님을 통해서 말씀하셨다. 그 아들은 만유의 상속자요, 그는 만유의 창조자이시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본체의 형상이시다.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고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분이시다(1;1-3). 그는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신 분이다. 첫째로, 천사들보다 뛰어나신 분이다. 천사들도 피조물가운데 가장 뛰어나다. 능력, 사역, 거룩에 있어서 뛰어난 자들이다. 하나님 주위를 둘러싸고 가장 탁월하고 영광스러운 지혜가 그들에게 있지만 그들은 피조물에 불과하다. 둘째로, 천사들에게 아들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셨다. 그런데 히1:5~6절에서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날 내가 너를 낳았다.”고 말씀하신다. ‘낳았다’라는 뜻은 성육신을 가리킨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삼하7:11~17) 이것은 구약메시아의 예언중 하나이다. 셋째로,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그에게 경배하게 된다. (히1:6) 여기서 맏아들의 의미 (창49:3, 롬8:29, 눅2:7) 넷째로, 천사들은 하나님의 사역자들이다. 그러나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이라고 부르신다. 그리고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하다고 말씀하신다. (히1:7~9) 다섯째로, 그 아들은 만유의 창조자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의 연대는 다함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 (히1:10~14) 히1장은 예수그리스도의 신성, 곧 하나님 되심을 계시한다. 그리고나서 2:1절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 유념하므로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같이 큰 구원(예수 그리스도)을 등한시 여기면 그 보응을 피할 수 없다. 이 구원은 처음에 예수님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하나님께서도 표적과 기사들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사도들에게 성령을 나누어 주심으로 증언하셨다. (히2:1~4)
2. 예수님은 사람이셨다. (히2)
히2:5절에서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케 하심이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이 범죄하기 전에 귀한 존재들이었다. 왜 사람에게 질병, 죽음, 고통이 왔는가? 장차 올 세상은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우리들이 통치하게 될 것이다. 천사는 힘과 권능이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나다. 천사는 뛰어나지만 한 나라의 최고 사령관인 장군에 불과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왕의 아들들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천사가 힘이 있어도 왕의 아들을 함부로 할 수 없다. 우리 신분이 그러하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돌보시는가? 히2:6절에서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생각하시고,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이 주셨고,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셨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이런 모든 권세와 영광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잠시 천사보다 못하게 함을 입으시고 우리의 죄를 위한 죽음의 고난을 맛보시므로 (히2:9) 그의 사역을 통하여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구원의 창시자로 사용하셨다.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셨던 것이다. (히2:10) 그래서 거룩하게 하시는 이(예수님)와 거룩함을 입는 자들(구원받은 성도)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구원받은 우리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셨다. (히2:11~12) 예수님께서 혈육의 육신을 입으신 이유는 무엇인가?
(1)주님게서 육신을 입으신것은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다. (히2:14)
인간의 범죄의 원인은 최초의 사탄인 루시퍼가 하나님과 견주며 힘을 과시함으로 시작된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을 반대하고 대적할까? 하나님과 전쟁을 하게 된다. 이 때 많은 천사가 루시퍼에게 넘어간다. 그런데 전쟁에서 사탄이 패하게 되고 범죄한 천사들은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된다. 일부는 옥에 갇히고 이 세상에 남아 사람들을 미혹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정성을 쏟아 지은 사랑하는 사람인 대상을 유혹하고 시험하는 일을 한다. 그래서 최초의 아담이 사담의 시험에 넘어가 하나님을 버리고 사단의 편에 서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적한다. 이것이 불순종의 원죄다. 이제 도저히 하나님 편에서 어쩔 수가 없다. 하나님은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바로 벌하시지 않으시고 죄와 사탄의 종이 되어 끌려다니게 되는 것이다. (엡2:1~3) 그래서 사람은 사단이 기뻐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사단은 지혜와 힘이 쎄다. 종과 주인의 관계는 종이 아무리 힘이 좋아도 주인을 능가할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은 자기 결심, 의지로 사단의 집에서 벗어날 수 없다. 또한 인간은 자신의 힘만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없는 위치에 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만족시킬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사단은 광명의 천사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지옥으로 끌고 간다. 그래서 사단을 무력화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 가운데 오셔서 죄에 대한 정당한 값을 지불하시고 죽으심으로 한평생 매어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셨다. 이것은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주려 하심이다.
(2) 주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은 사람들을 죽음에서 놓아주기 위함이다. (히2:15~16)
(3) 주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형제들과 같이 되심은 사람들의 모든 죄를 속량하여 주시기 위함이다. (히2:17) 속량이란 구속이란 말로 값을 정당하게 내고 사는 것을 말한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사졌으므로 우리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다. (고전6:19~20)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잘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니다. 이상하게 한 사람도 그렇게 구원받은 사람은 없다. 주님의 십자가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된 것이다. 주님께서는 요15장에 친구를 위해 목숨을 주신 것처럼 자기 목숨을 우리를 위해서 내어주셨다. 가장 큰 사랑이다. 주님입장이라면 주님의 목숨보다 귀한 것을 없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자기 목숨을 내어주셨다. 그리고 우리를 의인으로 삼아주셨다.
(4) 주님이 육신을 입으신 이유는 거듭난 성도들을 모든 시험에서 돕기 위함이다. (히2:18) 주님께서 어떤 시험을 받고 왜 고난을 당하셨는가? 주님은 환경으로부터 오는 시험을 받으셨다. 빈곤, 피로, 목마름, 고난을 겪으셨다. 또한 사람들로 인해 시험을 받으셨다. 선한사람, 제자들, 가족들조차 시험받았다. 세속적이고 어리석은 종교지도자들에게 까닭없이 시험을 받으셨다. 마귀에게 집요한 시험을 받으셨다. 왜 주님께서는 시험중에 고난을 받으셨는가? 많은 사람은 시험을 받지만 고난당하지 않는다. 불경건한 자는 시험을 받을 때 타협한다. 자신의 욕망에 따라 시험을 자초한다. 그렇게하면 고난이 되지 않는다. 주님께서는 시험받는 자들을 어떻게 도우셨는가? 먼저 동정심으로 도우시고 불행한자, 마음상한자, 버림받은자, 애통하는자, 두려워하는자, 낙담하는 자 등 이 모든 것을 주님께서는 겪으셨고, 주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사람을 통하여, 환경을 통하여, 천사들을 통하여, 성령을 통하여 그들을 도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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