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 - 4월 23일


                             마태복음 11장 20-24절; 누가복음 10장 12-15절


                              심판 날에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심판은 하나님께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즉 하나님은 심판 행하기를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자신이 지으신 피조물들에게 심판을 내려야 한다는 사실은 은혜의 속성을 지니신 하나님께 낯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상황에서는 그분의 의로우심이 그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소돔의 두려운 역사에서 이 사실을 확인합니다. 소돔 사람들은 악했기에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내, 여호와는 소돔을 쌍둥이 성인 고모라와 함께 멸망시키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이 심판이 기록되어 있는 창세기 19장에서, 우리는 성경에서 처음으로 긍휼이 언급되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롯과 그의 가족에게만 주어진 차별적인 긍휼이었습니다.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긍휼을(흠정역) 더하심 이었더라" (창 19:16).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창 19:24,25).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들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치밀음을 보았더라" (창 19:28).

   소돔은 이렇게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소돔은 침례 요한이나 구주의 사역이 행해진 적이 없는 성이었습니다. 소돔 사람들은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에게 제공된 것과 같은 회개의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습니다. 또한 소돔 사람들은 이 성들이 목도한 것과 같은 능력 있는 역사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가버나움은 어떤 곳이었나요? 그 성은 나사렛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으신 후 구주께서 사실상 고향으로 삼으신 곳이 아니었나요?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마 4:18). 그곳은 "본 동네" (마 9:1)라고 일컬어지지 않았던가요? 가버나움 사람들은 문둥병자가 깨끗함을 입고, 열병이 떠나가고, 중풍병자가 온전해지고, 귀신들이 쫓겨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들은 구주께서 말씀을 전하시고 가르치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누린 특권들은 하늘에까지 높아졌습니다. 소돔과 비교할 때 그 성은 지극히 커다란 은혜를 입었습니다.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가버나움 네가." 심판에 등급이 있다면(우리 주님은 그러하다고 가르치시는 듯합니다) 심판 날에 시돈과 소돔이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보다 견디기 쉬울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 갈릴리의 이 성들이 보고 들은 기적들과 사역들을 그 이방인의 성들이 보고 들었다면 그곳 사람들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당시의 성들은 이와 같은 반응을 내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권능의 사역을 목도했음에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때에 책망하시되." 이들에게 임할 심판은 극히 엄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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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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