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 - 4월 24일


                         마태복음 11장 25-27절; 누가복음 10장 21-22절


                                       아버지여...감사하나이다.


   우리는 주님께서 사역 기간 동안에 기도하셨던 몇 장면을 볼 수 있도록 허락을 받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분의 아버지와 더불어 나누는 거룩한 대화를 항상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주님이 간구하신 내용을 들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릴 때 그것은 소중한 순간입니다. 오늘의 구절들 역시 그런 순간들 중 하나입니다.

   "그 때에." "동일한 시간에" (다비역). 이 어구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것은 베척당하시는 때였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슬픔의 때였습니다. 구주는 그 백성에게 은혜를 주셨건만 그에 대한 반응은 얻지 못하셨습니다. 이에 그분은 슬픔 가운데서 그들에게 화가 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불신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러면서 심판의 날을 경고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이제 그분은 아버지를 향하십니다.

   실망과 슬픔의 때에 주님이 이렇듯 기뻐하시고 감사하신 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모본이 됩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감사하나이다." 사람들이 자신과 자신의 사역을 거부할 때 주님은 아버지를 기쁨으로 인정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시기에 주님께서 어떤 형태의 말씀을 하셨는지를 우리는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그 말씀에서 우리는 아버지의 돌보심과 그분의 주권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아버지여" 라고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자식으로서의 신뢰와 의존을 함축하는 사랑스러운 표현입니다. 그분은 아들로서 아버지의 품속에 늘 계신 분이었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 아버지는 주권을 가지고서 모든 것을 통제하시고 섭리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그분의 자녀들에게 커다란 격려를 줍니다. 우리가 "아버지" 라고 부르는 그분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능력과 은혜의 무한한 자원을 소유하신 그분은 삶의 모든 환경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십니다. 이에 우리는 이 땅의 근심과 슬픔과 불안에서 눈을 돌려 하늘을 바라봅니다. 그런 다음 "아버지여" 라고 부릅니다. 언제나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이 충분히 예비되어 있음을 아는 가운데서 말입니다.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고전 1:21). 허울뿐인 세상의 지혜는 어리석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지혜로운 자들이 보기에는 어린아이에 불과한 자들이, 즉 세상적인 방법과 지식에서는 유아인 자들이 하나님의 진리에 있어서는 그분의 계시를 받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성과 신뢰를 가진 자들에게 하나님은 가장 심오한 진리를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이렇듯 제일 단순한 신자들에게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가 되어 기쁨 가운데 확실한 진리를 계시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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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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