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대 ‘장학금 할머니’ 25억대 상가 건물 기부 [중앙일보]
조명덕 여사 17년째 아름다운 나눔
6·25전쟁 때 평안남도의 진남포여고 2학년생이었던 조 여사는 혈혈단신으로 월남했다. 노점상부터 시작해 여관·한식당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부산으로 피란갔을 때부터 장사 수완을 발휘했던 조 여사는 서울 무교동에 3층짜리 대규모 식당을 운영하면서 돈을 벌었다. 조금씩 땅을 사둔 것이 시간이 흘러 큰돈이 됐다.
조 여사가 한국외대와 인연을 맺은 것은 91년이다. 당시 그는 식당건물에 살던 세입자에게 사기를 당하는 일을 겪었다. 이때 법학박사인 외대 이강혁 전 총장이 도와줬다. 친구의 소개로 알고 있었던 이 전 총장은 선뜻 조 여사에게 법적 조언을 해주고 아는 변호사를 소개해줬다.
“큰 도움을 받고 나서 총장님께 식사를 대접했어요. 그러면서 모아 놓은 재산을 쓸 곳이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이 전 총장은 조 여사에게 “법대에 돈이 없어 학업을 중단해야 하는 똑똑한 학생이 많으니 법대생을 도와주면 좋겠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중퇴해 학교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컸던 그였다. “가지고 있으면 뭐하나, 싸가지고 갈 것도 아닌데….”
조 여사는 93년부터 5년 동안 매년 3000만원씩을 외대 법대에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식당으로 불러 손수 저녁을 지어 먹였다. 쉬는 날이면 오페라 공연장을 함께 다니며 시험 준비에 따른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배려했다. 99년에는 장학금 발전기금으로 3억원을 기부해 ‘조명덕 장학금’을 만들었다. 이 장학금을 받아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의 길을 걷는 학생이 모두 13명이다. 평생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산 그였다. 명절만 되면 조용한 집은 인사를 하러 온 외대 졸업생들로 붐빈다. 조 여사는 2007년 4월에도 14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부했다. 이 중 7억원은 조명덕 장학금에 보태지고 나머지 7억원은 법학관 건립에 쓰였다. 외대는 감사의 표시로 신축건물에 조명덕 홀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의 기부는 당뇨로 입원한 3년 전부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조 여사는 “몸이 아프니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며 “좋은 일 하는데 쓰는 건데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했다. 조 여사는 지금 일산 단독주택에서 혼자 살고 있다. 노환으로 몸이 약해졌지만 외대 행사가 있을 때는 꼭 학교를 찾는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면 절로 기운이 나기 때문이다. “내 자식이나 다름없어요. 그저 아무 걱정 없이 공부에 전념해 돈에 치우치지 않고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법조인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김효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