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하는 삶
37. 질의응답 - 6
완전함에 대한 부담 pressing on to perfection
Q : 우리가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 12:18)." 는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이 가능한가요?
A :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도 다툼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싸움을 시작하거나 싸움이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이런 다툼이 일어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며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만 합니다. 상대방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나쁜 감정을 품고 있을 수 있으나 악한 심정으로 그에 대응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들과 화목해야 합니다.
Q : 이런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제게 너무 힘이 듭니다. 때로 그들로부터 그냥 멀리 떨어지고 싶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 우리는 거룩한 사랑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기억하고 그를 통해 모든 악한 감정들을 다스릴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에 사랑을 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까? 은혜를 바라는 기도를 진심으로 드리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사랑하기 싫은 사람들도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고 대화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원수들까지도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마 5:44).
Q : 그 사람들의 행동이나 태도를 볼 때 그들을 전혀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A : 다른 사람들의 행동, 말투, 태도가 그들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행동하는 방식 때문에 그들을 사랑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랑스럽지 않고 무가치한 우리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노력조차 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의도적인 행동임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단지 사람들을 향해 괜찮은 감정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전심으로 도와 달라고 한다면 우리의 소원을 높이시고 우리의 힘으로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Q :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나요? 또한 저에 대해서 소문을 내고 다니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A : 인간적으로 말해서 이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입니다. 원수를 사랑 하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불가능할지 모르나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가능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거룩한 본성으로 인해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고 잘못된 소문을 내고 다닌다는 사실은 그들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는 행동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의 나쁜 일에 가담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들의 행위대로 그들에게 요구하는 바가 있을 것이고, 그들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타당한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신 것을 기억하십시오).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들을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전심으로 이것을 위해 노력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대한 우리의 순종만을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든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에 뿌리내리고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뒤로 물러서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용납되지 않습니다.
Q : 그리스도의 성품이 우리 안에서 드러날 때에만 우리가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A :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성령님의 다스림 앞에 더더욱 드려야 합니다. 이에 따라 그리스도의 성품이 삶을 통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Q : 우리가 이세상에서 온전히 그리스도와 같아질 수 있나요?
A : 아닙니다. 요한일서 3장 2절에서 예수님께서 나타나시면 그때에 우리가 그분과 똑같아 질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더 그리스도를 닮아갈수록 그렇게 되기를 더욱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며 성장해야만 합니다. 이 과정은 이 땅에서의 마지막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완전히 예수님과 같다고 말할 수 있는 완전함에 이르지는 못할 것입니다.
Q : 우리는 '완전하라', '주님처럼 행동하라' 등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똑같아 질 수 없다면 이 구절들은 무슨 의미인가요?
A : 이 구절들은 우리가 책망할 것이 없는 삶을 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상황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옳고 그른 것을 바르게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행동하기를 연습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알아 차리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죄를 짓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며 순종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숨겨져 있는 연약한 부분과 실패를 드러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모든 잘못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우리가 그것들을 고백하고 살아갈 때 무의식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룩함에서 거룩함으로, 완전함에서 완전함으로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책망할 것이 없는 양심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이 될 수는 있습니다. 예를 들면, 1등을 하는 한 학생이 수확의 기초를 배웠다고 합시다. 이 학생은 1더하기 1이 2라는 것, 2더하기 2가 4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학생이 시험에서 100점을 받을 수 있을까요? 가능합니다. 하지만 100점을 받은 것이 그가 완벽한 수학자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알지 못하는 부분과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가 평생 수학 공부를 하더라도 수학이라는 분야는 너무 광범위해서 배워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반면, 수학 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그는 훌륭한 학생이고 2등이나 3등을 하는 학생들보다는 완벽한 학생입니다. 이것은 그가 선생님이 가르치신 것을 다 배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우리 삶에 비추는 빛으로 인해 양심의 찔림이나 책망받을 것이 없이 살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행 23:1)."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행 24:16)." 이 말씀들은 우리가 죄를 전혀 짓지 않는 완전한 사람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지금은 알지 못하는 죄를 지을 수 있는 부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에수 그리스도께서는 절대적으로 완전한 모델이십니다. 예수님은 의식, 잠재의식, 그리고 그리고 무의식적인 모든 부분에 있어서 죄가 없으십니다. 사도 요한은 '주님은 죄를 알지 못하신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완전함은 이 세상에서 그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Q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진리에 신실하게 반응하고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의 삶을 다 드리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까?
A :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안에서 드러난 작은 문제라도 신실하게 다루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헤를 통해 우리는 신실하게 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죄 없는 삶을 살 수 없거나 완전하지 못하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통해 기뻐하십시오. 죄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 어떤 판단 받을 만한 죄를 용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