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새로운 출생 (BORN TO WIN)

                                                                                   -윌리암 맥도날드

                                              제 6 과

                                       본문 : 누가복음 19장 1-10절


                                      나무위로 올라간 난쟁이

                                (The Little man Who Was Up a Tree)


   예수께서 여리고를 통과하신다는 소식이 온 성내에 퍼졌을 때, 수많은 군중들이 그를 보기 위해 길가에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그 군중들 가운데에는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는 세리장이며, 돈 많은 부자였으며, 나름대로 유대교 신자였습니다. 그 역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급히 길가로 달려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장소에 이르렀을 때, 이미 많은 군중들이 몰려들어 큰 혼잡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앞으로 나가 보려고 애를 썼지만, 도저히 그 틈을 뚫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키가 매우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아이가 길거리 구경을 나왔다가 수 많은 어른들에게 가로막혀 그 뒤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것처럼 키 작은 한 남자가 군중들 뒤에서 갈팡질팡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상상만해도 웃음이 절로 나게 만드는 장면입니다.

   이 삭개오는 자기 동족인 유대인들과 유대관계가 별로 좋지 못한 처지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면 손가락질을 하며 수근 거렸습니다.

"유대인이 어떻게 우리를 압제하는 로마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가?" 이처럼 이웃과 사회로부터 소외 당하는 그는 매우 고독하였습니다. 당시 많은 세리들은 정해진 세금보다 많이 거두어 그 일부 중 얼마를 착복하곤 했습니다. 삭개오도 이런 불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모아 부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이력을 가진 삭개오는 이제 예수님을 만나보기를 원하는 아주 강한 열망에 차 있었습니다. 근래에 어느 한 젊은 유대인 전도자가 나타나 각처에서 많은 기적들을 행하며, 당시 일반 종교 지도자들과는 다른 하나님의 진리를 전한다는 소식을 그도 들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그 사람을 몹시 시기하고 미워하며 적대하고 있다는 사실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수많은 일반 백성들이 그가 가는 곳마다 항상 그 주위로 모여들고 그를 따르며 환영한다는 사실도 들었을 것입니다.  삭개오는 단순한 호기심 이외에 내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심령의 갈급함에 목말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번 기회에 반드시 예수님을 만나야겠다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애에 있어서 절호의 기회가 왔음을 알았습니다. 이와 같은 것들이 예수님을 만날 기회를 놓칠 수 없는 삭개오의 분명한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키가 작은 것이 그에게 큰 난관이었습니다. 그는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려 나아가는 길에는 언제나 그 앞길을 막는 장애물이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그는 그냥 포기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침 그곳 길가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가 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 나무를 타고 올라가면?" 섬광등처럼 놀라운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잠시 주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적어도, 그는 세무장이라는 지방 유지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러한 자신의 체면을 생각할 만도 했습니다.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세무장이 나무위로 기어 올라가다니!"


   체면을 대던져 버려라 (Forgetting Your Image)


   그러나 일생에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기회가 아닌가? 그는 그의 생애에 가장 중요한 기회를 결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예수께서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계신다." 고 하는 군중들의 외침 소리가 들렸습니다. 지금은 그에게 있어서 결단의 순간이었습니다. 더 이상 체면을 따질 때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체면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지체할 수 없는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재빠르게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길가로 가장 가깝게 뻗어 있는 가지 위에 앉았습니다. 자신의 발밑으로 군중들의 머리가 들어왔습니다. 예수께서 군중들에게 휩싸이어 그 지점으로 점점 다가오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과의 거리가 아주 가까이 이르렀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내려다 보고 있을 때, 그 앞을 지나시던 예수님의 발걸음이 갑자기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무 위를 쳐다보셨습니다. 예수님과 삭개오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삭개오야" 예수께서 분명 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미 그의 이름을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찾는 자의 이름을 이미 아십니다.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군중들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그 밤을 유하실 집은 오직 한 곳, 삭개오의 집뿐이었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삭개오는 급히 뽕나무에서 재빠르게 내려와 자랑스럽게 주님을 안내하여 자신의 집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날은 그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영광스러운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웃 사람들, 특별히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처럼 의롭고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의 집을 지나쳐 세리와 같은 불의한 죄인의 집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을 향해 수군거리며 비웃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그의 집으로 돌아 온 삭개오는 이제까지 자신이 재산을 다 불법적으로 모으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이제까지 자신이 부당하게 취득한 것을 되돌려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주 예수님께 두 가지를 약속하였습니다. 첫째로 자신의 전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둘째로 자신이 누구에게든지 부당하게 취한 돈에 대해서 네 배를 되돌려 갚겠노라고 약속하였습니다. 실제로, 율법은 그와 같은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율법보다 더 높은 차원의 새로운 삶의 원리를 따르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삭개오가 변화되어 참으로 믿는자가 된 것을 아셨습니다. 그는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너도 너의 조상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나타내었도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죄인의 집으로 들어간 것을 비난하던 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주위의 장애물들 (Getting Around The Obstacles)


   이제 다음으로, 이 이야기 가운데서 우리는 그 이면에 숨겨진 몇 가지 귀중한 교훈들을 더 배우게 됩니다. 삭개오는 비록 세상 적으로는 부자였지만, 세상물질 보다 더 귀중한 것에 대한 궁핍과 갈급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부자는 세상에 더 많이 관심을 갖고, 가난한 자는 하나님께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물질이 부족할 때 오히려 영적으로 부유해 질 수 있습니다. 특히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상속자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가 될 자들입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기를 위해 그에게로 다가가려 할 때 거기에는 장애물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그를 막는 장애물은 군중들이었습니다. 때로는 교만이 그 장애물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에 대한 두려워하는 마음과 체면이 장애일 수도 있습니다(잠 29:25). 때로는 부(富)도 장애가 될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좋아하는 죄의 쾌락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일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떠한 장애물이 생길지라도, 참된 믿음은 예수께로 나아가는 사람을 방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열정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길이 있기 마련입니다. 의심에게는 장애물들만 보이지만, 믿음에게는 길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은 우리 구주에 의해 결코 외면당하는 법이 없습니다. 항상 어느 사람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와 구주로 영접하게 될 때 주께서 그를 아시며 그의 이름을 그의 생명책에 기록하실 것입니다. 그 사람은 반드시 큰 소리로 외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그의 손을 들거나, 집회 중에 앞으로 나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 마음속 중심으로 그 앞에 참되게 아뢴다면 주님은 그의 마음을 다 아시며, 그의 간구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죄를 진정으로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일입니다. 물론, 그렇게 한 후, 그는 주님 앞에 그가 원하는 다른 것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는 주님께 더 이상 아무것도 숨기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의지하려면

   반드시 그 앞에 고백해야만 하오.

   비록 자신이 티끌 같은 존재임을 알지라도

   만일 그를 사랑한다면,

   그렇게 말씀드리시오,

   바로 지금,


   그가 했던 가장 현명했던 일 (The Smartest Thing He Ever Did)


   나무 위에 오른 것은 삭개오에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믿음의 선택은 그가 결코 바랄 수 없었던 놀라운 축복을 그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삭개오는 그날, 그의 집에 하나님의 아들을 손님으로 맞이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가 성경의 일부로 기록되게 되었으며, 그로 말미암아 21세기 이후의 우리 후세들에게까지 그의 이름이 전해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마침내 삭개오는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되었으며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말할 수 없는 놀라운 영적 축복을 얻게 됩니다.

   또한 이 이야기를 통하여 또한 우리가 얻게 되는 중요한 교훈은 어느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잘못했던 일들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만일 그가 지난 날 연장기구들을 훔친 일이 있다면, 반드시 이를 그 주인에게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 만일에 돈을 훔친 일이 있다면 그는 이를 갚아야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에게 잘못을 저지른 일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로 가서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와 같은 일을 실행하는 것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할 수 있는 놀라운 기회를 제공해 주기도 합니다. 그는 이와 같이 말할 수도 있습니다. "약 7년 전, 내가 당신을 위해 일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당신의 도구들을 훔친 일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나는 지난달에 구원함을 받았고, 그 후로 주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이와 같은 것들을 되돌려 주어야 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당신의 물건들을 훔쳤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물론 실제적으로 우리가 과거 지난날을 바로 잡는 일은 항상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 사람의 옛 주소를 잊었을 수도 있고 혹은 이미 그가 이 세상을 떠난 후 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하간에 언제든지 가능한 일이라면 지난날의 그 잘못들을 바로 잡는 일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실행해야 할 일입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삭개오는 죄인이었으며 그는 이를 인정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죄인을 찾아 구원하려 하심입니다. 모든 인간은 실제로 본성적으로 죄인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사실을 받아드리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거절함(unwillingness)과 무관심이 구원의 문을 닫아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오직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인정하는 자들만이 구원함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여리고 방문은 삭개오에게 있어서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예수님께선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길이었고, 십자가를 향한 최후의 여행길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삭개오에게는 구주를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만일 삭개오가 그 기회를 잃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실제로, 우리 인간들은 자신의 마지막 기회를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초청을 받았을 때 그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기회를 미루고 지체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주님을 영접해야만 할 시간이며,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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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개 요

                                                               윌리암 맥도날드


                                     머리말


      이 책을 공부하시는 분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진지한 마음으로 성경을 공부하려고 하다가도 워낙 분량이 많고 개략적이나마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낙심하게 됩니다. 이 강좌는 바로 이렇듯 스스로 성경을 읽고 이해하려는 분들을 돕기 위해 마련된 강좌입니다.

   성경을 전연 모르는 분이나, 시간의 여유가 별로 없는 분, 또는 역사적 배경을 잘 모르는 분에게도 충실한 성경의 안내서가 되어 줄 것입니다.

   아울러 각 권의 개요를 공부하실 때마다 해당되는 성경을 직접 읽으셔서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제1과 역사의 기원


                                       창세기


   성경은 세계사가 아니며, 더군다나 어느 민족의 역사도 아닙니다. 성경은 다만 우리 인생들에 대한 당신의 뜻이 어떻게 펼쳐지게 되는가를 보여 주시기 위하여 필요한 사건들만을 하나님이 골라 뽑아 기록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중대 사건이 빠져있기도 하며, 역사적으로는 사소하지만 하나님의 경륜과 관계가 있는 사건은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맨처음에 있는 창세기에는 창조, 타락, 홍수, 바벨탑,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먼저 인간의 기원과 인간이 살고 있는 우주의 기원에 관한 사실이 창세기 1장과 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어서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로 말미암아 죄가 인간에게 들어 오게 된 경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실 것을 약속 하셨습니다(창 3:15). 구약 성경을 계속 상고 해 가노라면 이와같은 세상의 구주께서 오실 것에 관한 계시를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3장 15절의 말씀은 가장 중요한 사건의 실마리가 됩니다.

   이렇게 범죄한 이후에도 인간은 계속 타락해 가고 있었으며,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홍수를 보내어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제외한 모든 인간을 전멸시키셨습니다. 이 사건은 아담이 창조된지 최소한 1600년 이후에 일어났었을 것입니다.

   노아 홍수 사건 후에도 인간은 거듭 거듭  하나님께 반역하였으며,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께 도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언어를 혼잡케 하시고 인류를 땅 끝까지 흩으심으로 심판하셨습니다.

   창세기 12장에는 노아 홍수가 있은 지 400년 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 내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갈대아는 성경에서 후에 바벨론으로 불리우고 있는데, 오늘날의 이라크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 내셨다는것은, 지상 선민(選民)인 이스라엘 민족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서 극히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이며, 그의 후손을 통하여 구주를 보낼 것과 가나안 일경을  그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후 구약 성경의 대부분은 선민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루시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울러 13장을 기점으로 하여 주목할만한 두 차례의 방랑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건은 가나안 땅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출생과 모리아 산에서 죽음을 모면하게 되었던 사건, 그리고 리브가와의 결혼 등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이삭에게는 에서와 야곱이라는 쌍동이 아들 둘이 있었는데, 동생 야곱이 형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고 이삭에 이은 새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야곱의 생애에 대해서는 많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으며, 그 사실들 모두 귀중한 교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기할 만한 사건은 후에 그가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이 될 12아들을 낳았다는 점일 것입니다. 이들의 이름을 출생순으로 열거하면,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단, 납달리, 갓 아셀, 잇사갈, 스블론, 요셉,베냐민입니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요셉입니다. 그러나 요셉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인 것은 아닙니다. 메시야는 오히려 그의 형인 유다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생애와 활동은 구약 성경의 어느 누구보다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잘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이 요셉은 아버지에게서 특별한 사랑을 받음으로 인해, 그의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가던 대상(隊商)들에게 팔려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애굽의 바로 통치 하에서 갑자기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년 후 가나안에 흉년이 들게 되자 야곱의 아들들은 애굽에 식량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갔다가 마침내 전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창세기는 아브라함이 소명을 받은 때로부터 270년 정도 지나 요셉이 애굽에서 죽는 것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요셉이 죽은 후에 다른 바로가 집권을 하게 되었는데, 그는 히브리인에게 불친절했고, 이들을 노예로 부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모세는 바로에게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돌아 가는 것을 허락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에 바로가 거절하자 하나님께서는 아홉 가지 재앙을 차례로 내리셨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끝내 돌이키지 않았고, 이스라엘을 돌려 보내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양의 피로 살아남지 않는 한, 모든 애굽 가정의 장자가 죽게 되는 열 번째 재앙을 내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하지 아니한 애굽 사람들은 집집마다 죽음을 맞게 되었지만, 문에 피를 발랐던 이스라엘 가정은 생명을 보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기적적으로 홍해를 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널 수 있게 하시고, 추격하던 애굽 군대를 수장(水葬) 하셨습니다.

   이렇듯 아브라함의 후손은 이삭과 애굽과 이후 증손, 고손을 거치는 동안에 200만을 헤아리는 민족으로 성장하였으며, 약속의 땅을 향하여 여행하는 동안에 조직적으로 단결되었습니다. 가족과 가축들을 이끌고 광막한 사막을 행진하며, 도중 여러 지점에서 진을치고 유숙하는 수백만의 무리를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 무리를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셨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으로 만나를 비오듯 내려 보내사 그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셨습니다. 이 만나는 작고 둥글며 흰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아침 지면에서 이 만나를 구하여 만나로 빵이나 과자를 만드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리하여 애굽을 떠난 지 3개월만에 이스라엘은 시내 광야에 도착하여 잠시 동안 유진(留陣)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 산 근처에 진을 치고, 근 일 년 동안 머물러 있었습니다.  당시 시내 산은 호렙 산이라고도 불리웠으며, 지금의 사우디 아라비아에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19장에서 민수기 10장 11절까지의 기록은 모두가 이 시내 산에 있을 때에 일어 난 사건들입니다.

   한편 아브라함의 후손은 이제 한 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에 앞서 그들의 행동규범이 될 율법의 체계화가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보다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관해서나 그들의 죄악에 관해서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에 관해서, 이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고자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선적으로 이스라엘을 위하여 모세에게 십계명을 반포하셨습니다. 이 십계명은 지금까지 인간 정치 제도의 초석(礎石)이 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의 관계상 책임이나, 인간 관계상 상호 간의 책임에 관해서 많은 법률을 따로 제정해 주셨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성막의 건축에 관해 아주 상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막이란 천막과 비슷한 구조물로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만나시는 처소였으며,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종교 생활의 중심지였습니다. 더구나 성막을 만드는 데에 쓰인 모든 자재와 모든 기구는 장차 오실 주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잘 상징해 주고 있습니다.

    제사장 제도는 바로 이 성막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막의 교훈에 이어, 레위 지파를 택하시고 그 가운데서도 모세의 형인 아론의 가계(家系)를 택하여 제사장의 반차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의 직무를 말씀하시면서 이에 관련하여 제사장의 의복과 활동과 예식에 관해서도 간단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모세가 하나님께 율법을 받으면서 시내 산에 머물고 있는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경배함으로써 그 율법을 범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모세가 돌아와 이를 보고 노하여 율법을 기록했던 두 돌판을 깨뜨린 후, 이 백성들을 멸망시키지 말아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에서 은혜와 긍휼을 약속하는 율법을 다시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이제 자원하여 예물을 가져왔고, 성막 건축 공사를 착수했습니다. 그리고 성막이 완성되자, 제사장들이 따로 세워지고 그들에게 제복이 입혀짐으로써 모든 일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러자 밝게 빛나는 구름이 성막을 덮어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 출애굽기에는 우리의 실생활에 교훈이 되는 사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1.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는 구원을 상징해 줍니다.

   2. 홍해를 건넌 사실은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작별하고 실제로 거룩하게 살아갈 것을 교훈해 줍니다.

   3. 성막이나 성막에서의 봉사는 성도가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가를 교훈해 줍니다.

   4. 제사장 제도는 하나님 보좌 앞에서 우리를 대변해 주시는 대제사장이신 주 예수님의 사역을 상징해 줍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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