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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1.27 속아사는 인생들이여! - 겸손한자가 구원받는다
  2. 2015.01.16 로마서 - 8과 구원의 확신

     속아사는 인생들이여!


                     겸손한 자가 구원받는다


   "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열왕기하 5:11).


   나아만은 자신을 나와서 마중하지도 않고 종을 보내어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번 담그면 깨끗하게 되리라는 엘리사의 말을 듣고, 분하고 화가 난 모습으로 고향을 향하여 발길을 돌렸다.

   그가 어찌하여 이와 같이 교만하여졌는가? 그가 처음에는 겸손하지 아니하였던가? 처음 계집 아이의 말을 듣고 출발할 때는 참으로 겸손하여 순전하지 아니하였던가?

   생각해 보자. 어른이며 대인(大人)이라고 생각하는 그가 적국에서 잡혀온 작은 계집아이의 말을 믿고 경솔하게 이 먼 여행길을 준비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는 출발하였다. 믿음을 가지고... .

   더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둥병을 고쳤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문둥병은 천질(天疾)이요 불치의 병이다. 의학이 놀랍도록 발전한 현대에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그때였으랴?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여 고쳐보겠다고 나서는 이 사람은 참으로 놀라운 믿음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엘리사 앞에 나타난 이 사람이 왜 갑자기 이토록 교만하여졌는가? 그가 처음 나설 때보다 교만하여졌다면 중간에 마음이 변한 것임에 틀림없다.

   아마도 그가 이스라엘 왕을 만났을 때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이스라엘 왕은 나아만에게 패하였던 왕인데 그 당시는 아람이 이스라엘보다 대국으로 군림하던 시절이었다. 이스라엘 왕의 저자세를 보면서ㅡ그는 급속도로 교만하여진 것이 분명하다. 하여간 그는 큰 실수를 할뻔 하였다.

   여기서 나아만이 실수하여 잘못될 뻔 하였던 사실을 살펴보면서 오늘날 구원받아야 할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것인가를 도움받기 바란다.


   첫째 나아만은 자신이 문둥병자라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잊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엘리사가 한 말이 무엇이었는가? 요단강 물에 씻어서 문둥병을 고치라 하지 아니하였는가? 그런데 화를 내고 돌이킬 이유가 무엇인가? 그는 지금 자신이 왕의 총애를 받는 장관이요, 장군으로만 생각한 것이다.

   문둥병으로 죽어가는 순간에 장관은 무엇이며, 장군은 무엇인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 쓸모없는 감투때문에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있지 아니한가?

   필자가 만나보는 구도자들 중에 어떤이들은 교회에 대해서나 상담자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부담을 갖고 있거나 불쾌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가끔 본다. 그중에는 젊은 사람이 늙은 나에게 가르치려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필자는 그분들의 그 말씀과 심정을 이해는 하나 동조할 수는 없다.

   나아만 장군을 보라. 그렇게 큰 자가 어린 아이의 말에 관심두고 순종함으로 문둥병을 고쳤지 않는가! 죄값으로 지옥에 가는 마당에 자존심을 앞세우고 불쾌해 하면 자신만 멸망의 길로 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어떤이는 아내가 믿는 하나님이기에 남편의 자존심으로 따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신앙에는 선후가 없고 세상적인 질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먼저 깨달은 자가 가르쳐주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길은 파멸과 멸망의 길이요, 지옥으로 가는 끔찍한 길이기 때문이다.

   어떤이는 자기의 학식의 높음이나 자기의 부(富)를 내세워 자존심을 꺾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리석음 가운데 있는 경우도 보았다.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둘째로 나아만은 자신이 불쌍한 처지에 있음을 잊었다.

   만약 그에게 있는 문둥병이 더 번지고 심해지면 그는 모든 직책과 가정과 이웃으로부터 떠나서 토굴이나 문둥병자 격리소로 떠나야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비참한가. 그때나 지금이나 문둥병자는 정상인과 격리하는 것이 관습이요 순리였다.

   그가 자신의 처지를 알았다면 어떤 말에도 불쾌해 하지 않고 순종하였을 것이다. 죄인의 형편도 이와 같다. 이글을 읽는 당신이 만약 거듭나지 못한 죄인이라면 문둥병자와 같아서 영원한 세계에서 따로 격리 수용될 것이다. 그 수용소는 물론 지옥이다. 죄인은 지옥에 격리되어 그들의 믿는 가족이나 친구, 이웃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버림받게 될 것이다. 사실은 하나님이 당신을 버린 것이 아니고 당신이 스스로 버림받는 길을 택한 것이다.


   셋째로 나아만은 자신의 생각에만 몰두하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뻔 하였다.

   하나님은 이 불쌍한 인간 나아만을 위하여 계집 아이를 예비하시고 엘리사라고 하는 하나님의 종을 예비하셨건만 지금 이 불쌍한 소경 나아만은 하나님의 이같은 은혜와 자비를 모르고 자기 생각에만 사로잡혀 돌아가려고 했다.

   오늘날에도 나아만처럼 자기의 아내나 남편이나 자식이나 친구들을 통해서 들려주는 하나님의 사랑의 경고를 인간의 말로 생각하여 그들의 말을 무시하는 불쌍한 소경들이 수없이 많음을 볼 때 심히 가슴 아픈 일이다.

   12절에 보면 나아만은 자기 생각을 토하면서 " 분한 모양" 으로 떠나가고 있다. 독자여 만약 당신이 하나님에게나 전도자에게나 믿는 신자들에 대해서 "분한 모양" 을 하고 있다면 이글을 읽는 즉시 고치라. 이것은 당신이 비참하게 되는 길이기에 빨리 버리고 회개하여야 한다.

   물론 오늘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수많은 교회나 교직자나 기독교인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불멸의 진리이다. 어떤 이유로든지 성경을 통해서 구원의 진리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잘못될 수 있어도 성경은 잘못될 수 없으며 사람은 변해도 하나님의 진리는 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독자여, 당신의 태도를 바꾸라. 겸손하게 바꾸라.

   다행히 나아만은 주변 사람들의 간곡한 권면을 듣고 돌이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므로 병을 고쳤다. 그리고 그는 그후 하나님께 경배한 것을 보게 된다.

   "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 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열왕기하 5:14).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가 깨끗해졌으므로 이제는 따로 격리할 필요가 없어지지 아니하였는가?

   독자여, 주 예수님께서 나아만에 관해 언급한 말씀을 들어보라.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아람)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 (누가복음 4:27).

   많은 문둥병자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이방 사람이었던 나아만만 깨끗함을 입었는가? 그 이유는 단 한가지,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다. 나아만의 병을 고치신 하나님은 당신의 영혼을 구하신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것이다(누가복음 1:37). 누구든지 겸손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느 자는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 당신의 영혼이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서 깨끗함을 입기를 바란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은 당신의 죄값을 대신하여 흘려주신 사랑의 흔적이다.

   "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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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과 구원의 확신

                                               (8장 1절~39절)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는가?


   죄의 정욕을 억제하는 것이 우리 자신의 힘으로 될 수 없음을 우리는 이미 배웠습니다. 8장은 모든 신자 안에 내재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 전체를 그에게 의탁하고 그에 의해 주관을 받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되어 그의 형상으로 변화 받아서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 이제 성령님의 내재하심으로 받게 되는 축복된 결과들을 살펴 봅시다 ...


   1. 새로운 자유가 있습니다(1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율법을 준수하는 것은 속박을 의미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의 생활은 완전한 자유를 뜻합니다.

   (- 초기의 여러 성경 사본에는 4절 상 반절 말씀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이란 말씀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2. 새로운 생명의 법이 있습니다(2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을 대신하였습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즉 돌을 공중으로 던져 올리면, 그것은 곧 땅으로 떨어집니다. 이것은 인력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새 한 마리를 공중으로 띄우면, 그것은 하늘을 날아다닐 것입니다. 생명의 법이란 이런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자신을 항상 죄로 유인하고자 하는 인력의 법과 같은 법이 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임재하시고 계시는 성령님은 능히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실 수 있습니다.


   3. 새로운 힘이 있습니다(3,4절). 사람의 성품이 타락하였기 때문에, 율법으로는 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성품에 나타나는 육신의 죄를 이기시고, 그 죄의 세력을 끊어 놓았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능력으로 율법의 의를 능히 이룰 수 있습니다.


   4. 새로운 의욕이 있습니다(5절). 성령님은 성도의 마음을 돌이켜 육신을 즐겁게 하지 않고, 대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마음을 두게 됩니다.


   5. 새로운 열매가 있습니다(6절). 생명과 평안이 믿는자의 분깃이 됩니다. 이것은 참된 생명이고, 살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속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6.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있습니다(7절). 사랑 안에서 순복함이 적의와 반역을 대신합니다.


   7. 새로운 삶의 영역이 있습니다(8,9절). 육신의 생활에서 벗어나 성령님의 보호 안에서 생활합니다. 육신에 따라 사는 사람은 자신의 욕망과 안일을 도모함으로 마치 자신의 몸과 재산만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보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성령님이 아무런 장애 없이 자유로이 역사하실 수 있도록 그의 생활을 하나님께 의탁합니다.


   8. 새로운 보증이 있습니다(11절). 성령님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임재하고 있음은, 성도의 몸이 그리스도처럼 죽은 자들 가운데 부활하리라는 확증입니다.


   9. 새로운 충성이 있습니다(12절). 우리는 육신에 대해서 빚진 것이 없기 때문에 육신에 대해 충성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성령님께 충성할 따름입니다.


   10. 새로운 살길이 있습니다(13절). 죄의 본성에 따라 산다면  우리는 죽을 것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몸의 악한 일을 죽여야 합니다.  이 말은 주님께 욕이 되는 모든 생각이나 행위를 부정해야 함을 뜻합니다.


   11. 새로운 인도함이 있습니다(14절)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특권이 있습니다. 목표 없이 방황하지 않고 전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12. 하나님과 새로운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15절). 그것은 종으로서의 위치가 아니라, 자녀로서 누리는 자유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분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13. 새로운 관계가 있습니다(16,17절). 성령님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후사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임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적 가족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히 그리스도와 함께 아버지의 모든 풍요를 누리게 됩니다.


   14. 새로운 특권이 있습니다(17,18,20~23절). 그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처음에는 별로 특권처럼 보이지 않으나, 주 예수께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에 동참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오히려 이것이 축복임을 깨닫게 됩니다.


   15. 새로운 소망이 있습니다(23,24절). 그것은 몸의 구속을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일은 그가 우리의 몸을 죄의 권세와 존재로부터 해방시키실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16. 새로운 전망이 있습니다(17~19절).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생물계를 비롯한 모든 피조물들은 우리가 영광 중에 하나님의 자녀로 나타날 때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세상에서 고난과 탄식으로 보내지만, 희망의 그날은 올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7. 새로운 도움이 있습니다(26,27절).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우리가 간구할 때 도와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 뜻을 기도하도록 도와주십니다.


   18. 새로운 담대함이 있습니다(28~30절). 아무도 대적하여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승리하는 하나님 편에 속해 있기에 항상 넉넉히 이깁니다.


   8장 33~39절의 말씀은 동서고금을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즐겨 암송해 온 유명한 말씀입니다. 여러분들도 이 말씀을 묵상하신다면,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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