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     성


                                      제 5 과

                           주 예수님과 여성들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던 당시의 여성들은 희랍에서도, 로마에서도, 유대에서도 열등한 존재로 취급되었습니다.  즉, 희랍에서 여성은 노예와 동등한 지위에서 남편의 지배와 권위 아래 있었습니다. 로마에서 아내는 법적으로 남편의 소유였습니다. 로마의 여성들이 희랍의 여성들보다는 자유가 있었지만, 이것은 오히려 도덕적 방종과 이혼률의 증가를 초래했습니다. 물론 유대에서도 여성은 남편들보다 열등한 존재로 취급되었으나, 가정에서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여성들에게는 법적 권리가 거의 없었고, 종교 교육조차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일생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배경과는 달리 여성들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는 매우 특이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성에 대해 편견을 보이신 적이 없으셨고, 경멸의 어조로 말씀하신 적도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성 특유의 능력을 인정하셨으며,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성들의 소원에 대해서 동정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병을 앓던 베드로의 장모(마 8:14)와, 자기의 겉옷을 만졌던 혈루병 걸린 여자(마 9:20)와, 18년 동안이나 꼬부라져서 펴지 못한 가련한 여인(눅 13:11) 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나인성에서 예수님은 과부의 죽었던 아들을 살리셔서 과부에게 돌려 주셨습니다(눅 7:12~15). 심지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을 때에도, 주님은 그여인을 신중하면서도 은혜스럽게 대해 주셨습니다(요 8:3~11). 이렇듯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당하던 여인들, 그리고 주님의 사랑에 이끌려 주님께 나아온 여인들은 "내게 오라...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에서 틀림없이 큰 위안을 받았을 것입니다. 특별히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 까지도 모친에 대한 연민의 정을 보이셨습니다(요 19"25~27).

   한편 주님께서는 몇몇 여인들을 칭찬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귀신들린 자기 딸을 고쳐 달라고 간구하던 가나안 여인에게 주님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마 15:21~28)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어느날 성전의 연보궤 옆에 앉으셨던 때에, 부자가 푸짐하게 헌금하는 모습과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지켜 보시고서 주님은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눅 21:1~4)라고 이 과부의 희생적인 헌금을 칭찬하셨습니다. 즉, 주님은 헌금의 분량을 보신 것이 아니라, 헌금하는 자의 중심을 꿰뚫어 보셨던 것입니다. 부자는 별 손해가 없을 정도로 바쳤지만, 이 여인은 그의 소유를 모두 바침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렸던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여성들의 지성적이고도 영적인 능력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별도로 소녀들이나 부인들을 교육하신 적은 없으셨으나, 주님은 개인적으로 대중적으로 여성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주님 자신에 관해서나 성부에 관한 깊은 계시를 여인들에게 개인적으로 주시기도 했던 것입니다.

   실례로 요한 복음 4장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으로 더불어 우물가에서 대화하시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비록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했으며(요 4:9), 유대인 선생들은 자기의 부인과도 여럿 앞에서는 대화를 하지 않았으나, 주 예수님은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이 여인과 대화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에게 예배에 관해서, 하나님께서는 영이시기에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요 4:24). 이로써 주님은 자신이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기다리고 있는 바로 그 메시야임을 계시하셨는데, 이러한 계시는 이 여인 외에 아무에게도 계시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이 여인은 이것을 믿었으며, 자기가 살고 있던 동네에 가서 예수님을 증거함으로써 여러 이웃 사람들도 주님께로 나와 믿게 하였습니다.

   또한 베다니에 살던 마르다와 마리아의 가정에서 마리아는 "주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 을 들었습니다(눅 10:39).  주 예수님은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마리아에게 음식을 장만하라고 타이르시지 않고, 도리어 주님의 가르침을 사모하는 그녀의 열의와 태도를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마르다의 봉사를 무시하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봉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마르다에게 부드럽게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주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 을 배우는 시간을 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봉사' 보다 '우리 자신' 을 더 원하십니다. 결국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이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 보다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얼마 후에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인 나사로가 병들어 죽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25) 라고 하신 말씀은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위로와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주 예수님은 여자들의 봉사를 기뻐하셨습니다. 이미 살펴본 대로 주님은 베다니에 있던 가정에서 헌신적인 두 자매의 영접과 접대를 받으셨습니다. 그 밖에도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좇아 온 많은 여자" (마 27:55)나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눅 8:2,3) 섬겼던 사실도 볼 수 있습니다. 한 무리의 여자들이 주님을 좇아, 순회하면서 사역하는 데 따르는 갖가지 불편과 고난을 감수하면서, 주님과 제자들의 신변을 보살펴 드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해 라이리(C. C. Ryrie)는 "예수님을 측근에서 섬긴 자들에 관한 기록을 보게 되면 예외없이 여자가 아니면 천사였다. 주님을 섬기는 무리 중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일까!" 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여성들의 호의와 친절을 고맙게 여기셨습니다. 누가복음 7장 36~50절에서 이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바리새인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으셨을 때 일어났던 사건을 보게 됩니다. 식사 중 죄 많고 가련한 한 여인이 주님의 발치에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눈물이 주님의 발에 떨어졌을 때 이 여자는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었으며, 아주 값비싼 향유를 그의 발에 부었습니다. 그 바리새인은 이 여인을 부정한 것이나 되는 것처럼 쫓아 버리려 하였지만,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서 사랑의 선물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은 "이 여인의 많은 죄가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이처럼 나를 생각해 주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자가 보여준 호의에 데해서 칭찬하셨을 뿐 아니라, 바리새인의 냉담한 반응에 대해서는 묵살하고 계심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눅 7:44~46). 그렇다면 주님이 오늘날 우리들에게서는 무엇을 받고 계실까요?

   주님의 지상에서의 사역이 마지막에 이르렀을 무렵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마 26:6~13 ; 요12:1~8). 주님이 베다니에 있는 그의 사랑하는 친구의 집에 계셨을 때, 주의 발 아래 앉아 있던 마리아가 값진 향유를 가져다가 그의 발에 부었습니다. 그러자 제자 중 한 사람은 낭비라고 책망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에게 있어서는 주님께 드릴 수 없을 만큼 아까운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도 마리아에게 좋은 일을 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주님께 드리기에 너무 귀하고 값진 것이 있을까요? 더욱이 제자들이 주님의 죽으심이 가까왔음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그때에 마리아의 헌신이야말로 주님께 너무나 뜻깊은 일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바름으로써 주님의 죽으심을 예표했던 것입니다. 주님을 돌보던  다른 여인들은 너무나 늦게 향품을 갖고 왔기 때문에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다(눅 23:55 ; 24:3). 그러므로 구속을 받은 자들은 바로 오늘 '찬미의 제사'로, 그의 이름에 감사함으로, 사랑과 경배로 주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히 13:15).

   주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일 먼저 여자들에게 나타나심으로써 여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최초로 뵙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주님은 그 여인들에게 자신이 부활한 희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할 수 있는 특권도 주셨습니다(마 28:1~10 ; 막 16:1~10 ; 눅 24:1~10 ; 요 20:1~18). 우리가 아는 바로는, 요한을 제외한 어느 제자도 십자가 곁에 없었으나 여인들은 있었습니다(마 27:55). 그리고 부활하시던 "아침 일찍 아직 어두울 때" 에도 여인들은 무덤에 왔었습니다. 그들이 모두 낙심 가운데 있었음을 볼 때 그들의 믿음이 제자들의 믿음보다 더 위대했던 것 같지도 않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과는 다르셨던 주님, 그들의 생애를 변화시켜 주신 주님에 대한 사랑이 주님이 계셨던 곳으로 그들의 발걸음을 옮기게 했을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사랑은 보상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죽음에서 살아나신 승리의 주님을 뵈었을 때, 그들의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고, 애곡이 변하여 찬송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달음박질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으로 주님을 찾는 자는 그 보상으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위대한 자나 유능한 자나 똑똑한 자에게는 자신을 숨기시고, 비천하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사모하는 자에게는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에 대한 사랑이 크면 클수록  주님을 더욱 잘 뵐 수 있습니다. '주님이 어디에 계실까?' 하며 애타게 찾아 부르짖던 마리아에게 주님께서 친히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으며, 그 순간에 마리아는 애타게 찾고 있던 주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사모하여 찾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억하십시오. 주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 14:21)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과에서 인용된 대목을 더 자세히 연구해 보시고 각각의 사건에서 여성들에 대한 주 예수님의 태도를 묵상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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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경  개 요 


                        제9과 그리스도와 그의 몸된 교회


                                                       복음서


   복음서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를 통틀어 중심되는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의 심장부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역사 그 자체가 주님에 관한 기록(History is His Story)이기는 하나, 특별히 복음서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해 주신 주님의 사적을 볼 수 있습니다.

   구주의 지상 생활은 33년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는 그 33년 중 초반 곧, 주님이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동정녀에게 탄생하셨고, 양친은 애굽으로 피했다가 나사렛에 돌아왔던 사실을 복음서의 첫머리에서 읽게 됩니다. 또한 예수께서 열 두살 되던 해의 유월절에는 예루살렘에 올라 가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후 30세가 될 때까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기록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30세에 주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40일 동안 광야에서 사단의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이후에 주님께서는 비로소 대중적인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주님의 공생애 기간은 편의상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유대에서 약 1년간 지내셨고,

   2. 갈릴리에서 약 1년 9개월을 지내셨으며,

   3. 베레아에서 약 4,5개월간 머무셨습니다.

   또한 주님의 사역에는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이 있었습니다.

   1. 주님께서는 많은 기적을 행하심으로 당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2.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위대한 진리를 백성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이를테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가 갖추어야 할 바람직한 품행은 어떤 것인가 등에 관한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시기 위하여 비유나 실화를 사용하시기도 했고, 구약을 인용하시기도 하셨습니다.

   3.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하여 열 두 제자를 부르사 훈련시키셔서 보내셨습니다.

   그러다가 주님의 말씀이 점점 백성들의 반대에 부딪히고 배척을 받게 되자, 주님께서는 그 사역의 대상을 이방인에게로 확대하셔서, 당신 자신을 믿음으로 영접하는 모든 사람의 구주가 되실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여러번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미리 말씀하셨고, 주님을 배척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무서운 고난이 있으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한편 베레아에서의 사역이 끝날 즈음에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에 개선의 입성을 하셨으며, 백성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주님을 모함했고, 유다와 더불어 주님을 체포할 것을 흥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주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제자들과 더불어 유월절을 지키려는 것이었고, 나아가서는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주의 만찬을 분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난을 겪으셨으며 유대인들에게 체포되어 시련을 당하시고 빌라도와 헤롯 앞에서 로마인들에게 희롱과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무죄하심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거짓 증인들에게 에워싸여 송사를 당하셨고, 주님의 죄를 찾지 못한 빌라도마저 백성들의 요구에 못이겨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넘겨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주님께서는 두 강도 사이에 매달려 고통을 당하시고 피를 흘리신 후 죽으셨습니다. 이런 외형적인 사실만을 보면 주님께서는 악한 자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실은 주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담당하시려고 친히 십자가로 나아가셨던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뒤 주님의 몸은 아리마대 요셉의 새 무덤에 장사되었다가 삼 일 만에 죽음에서 살아나셨습니다. 그 후 승천하여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실 때까지 40일 동안이나 제자들과 여러 성도들에게 당신 자신의 모습을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이러한 생애동안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모두 복음서에 기록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만일 주님의 생애에 있었던 일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세상이라도 그 책을 두기에 부족할 것입니다(요 21:25).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1)

   네 권의 복음서가 각기 다른 면에서 흠도 없고 죄도 없는 완전한 한 인간을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문학에서도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일입니다. 주님의 생애가 이처럼 역사적으로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마치 우리 인생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고 느껴지지만, 주님의 생애는 우리와는 달리 완전하셔서 전혀 흠을 찾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죄많은 인생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감히 죄 없으신 분의 생애를 기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성령님께서는 네 권의 복음서를 우리에게 기록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필이면 복음서가 네 권이나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 권으로 충분하지 않았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네 사람의 저자가 저마다 다른 관점에서 다른 방법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마태는 주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으로서 유대인의 왕이라고 증거했습니다. 그리하여 마태복음에서는 메시야로서의 탄생, 메시야에 대한 세례요한의 증거, 시험을 받으시고 세상에 알려지셨다가 배척을 당한 메시야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한 마태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것은  그리스도를 유대인의 왕으로 증거하는 것이었으므로, 주님의 족보를 다윗과 아브라함에서부터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는 하나님의 아들을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고 세상에 오신 종으로 묘사했습니다. 주께서 종으로서 하나님을 섬기신 사실이, 주님의 신분을 알려주는 선조에 관한 사실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에, 족보 이야기는 전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누가는 주 예수님을 인자로 증거하고자 했습니다. 그러기에 누가가 밝힌 족보는 최초의 사람이었던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뭇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뭇사람을 섬기시며, 그들을 찾아 구원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요한복음은 위의 세 복음서와는 전혀 다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적인 족보를 기록하기 보다는, 주님을 태초에 계신 말씀으로 영존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홀로 요한만이 유대에서의 주님의 활동이나 베레아에서의 활동을 주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주님을 각기 다른 관점에서 기록한 네 권의 복음서가 있기에, 주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가까이에서 직접 모시던 제자들보다도 주님을 더욱 완전하고도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영원한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사도행전은 초기 기독교의 형성과 성장에 관해 간략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사도행전에는 전적으로 성령님께서 인도하신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으므로 어떤 이는 성령 행전이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도행전에는 베드로와 바울의 활동이 주로 기록되어 있어 두 사도의 행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활동은 1-12장에서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성령님께서 강림하심으로 교회가 탄생되었을 때부터 베드로는 활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으며, 만주의 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특별히 강조하여 전파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던 예루살렘 교회는 대부분 유대인 신자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후 핍박이 일어나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최초의 순교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신자들은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지게 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도 본의와는 무관하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되자, 이제 복음은 더 이상 유대인에게만 국한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에게 국한되기는 커녕, 유대인들이 계속해서 복음을 배척함으로써 오히려 이방인들이 교회의 지체로 더해지게 되었습니다.

   한편 사도행전 13장 4절에서부터 사도행전의 마지막까지에는 바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구원을 받게 된 바울은, 베드로가 주로 유대인의 사도로 봉사했던 것처럼, 이방인의 사도로서 봉사하는 총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활동은 세 차례에 걸친 전도 여행과 죄수로서의 로마 여행을 핵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 1차 전도 여행에서는 수리아의 안디옥에서 출발하여 구브로와 소아시아의 여러 도시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제 2차 전도 여행에서는 재차 소아시아를 방문하고 나서 마게도냐와 그리이스로 건너갔다가 에베소와 가이사랴를 경유하여 안디옥으로 올라 왔습니다. 이 시기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 . 후서를 썼습니다.

   제 3차 전도 여행에서는 소아시아와 마케도냐와 그리이스를 거쳐 소아시아의 서남 해안으로 돌아 예루살렘에 돌아왔습니다. 이 시기에 바울은 고린도 전 . 후서로마서갈라디아서를 썼습니다.

   제 3차 전도 여행에서 돌아오는 도중에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면 체포와 구금을 당하거나 심지어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니 돌아 가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는데, 그래도 그는 그 모든 만류를 뿌리치고 예루살렘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시아에 살던 유대인들이 바울이 성전을 모독하고 있다고 무고하게 고소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산헤드린 공회와 벨릭스와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에게 심문을 당하다가, 바울이 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노라고 상고하여 가이사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이송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을 실은 배가 항해 도중 멜리데에서 파선하게 되어 승무원과 승객들은 그곳에서 겨울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뒤 마침내 바울이 로마에 도착했을 때에는, 자기의 셋집에서 살 수 있는 자유가 허락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2년 동안 머물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옥중 서신으로 불리우고 있는 에베소서빌립보서, 골로새서빌레몬서를 썼습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은 여기에서 끝나고 있지만, 사도 바울이 1차 투옥에서 풀려나 다시 전도 여행을 했다는 믿을 만한 증거가 있습니다. 이 시기에 바울은 디모데 전서디도서를 썼을 것이며, 바울이 히브리서의 저자일진대 역시 이 시기에 히브리서를 썼을 것입니다.

   그뒤 바울은 재차 로마로 잡혀가서 투옥되었던 것으로 분별되며, 디모데 후서는 순교 직전에 씌어졌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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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경  개 요


                                          제7과 소선지서(1)


                                                호세아서


   이사야 선지자가 유다에서 예언할 무렵, 호세아는 이스라엘에서 예언자로 활약하였습니다. 호세아는 여로보암 2세 재위 기간에 활동하기 시작하여 앗수르인들에게 이스라엘 민족이 포로로 잡혀갈 때까지 계속 활동하였습니다. 호세아가 활동한 이 시기야말로 유다인의 전 역사상 최고의 암흑 시기였습니다.

   이 호세아에게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로 정절이 없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고멜이라는 창녀와 결혼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 고멜은 호세아를 떠나 제 버릇대로 죄악 중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살고 있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호세아더러 시장에 가서 그녀의 몸값을 치르고 달래어 데려 오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하신 것은 호세아와 고멜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보여 주시려는 의도에서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에 빠져 있었고, 도덕적으로도 극악해 있었으므로 마치 정절이 없는 여인과도 같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러 날 동안 왕도 없고, 군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리라고 호세아는 예언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이스라엘의 상태입니다. 또한 호세아는 장차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에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푸실 것이며, 그 때에 에브라임은 우상 숭배와 타락에서 완전히 돌이켜 하나님께 회심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에브라임은 이스라엘 중에 제일 큰 지파로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데도 으뜸이었습니다. 호세아는 온 이스라엘을 지칭해서 에브라임이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호세아서는 타락한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을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요엘서


   요엘은 요아스 왕 때부터 아하스 왕 때까지 유다를 향해 예언한 선지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로 보건대 요엘서는 연대적으로 최초의 예언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엘은 유다 전역을 삼켜 버렸던 메뚜기 재앙에 관해 기록했습니다. 이어 요엘 선지자는 메뚜기 재앙을 계기로 회개해야 한다고 백성들에게 외쳤습니다. 만약 회개치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적국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침략하도록 허락하시어 심판하실 것이라고 백성들에게 외쳤으나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물론 요엘의 예언은 장차 여호와의 날에 완전히 성취될 것이며, 그 때에도 메뚜기 재앙처럼 무시무시한 징조가 먼저 있은 후에 큰 심판이 있겠고, 그 후에야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요엘은 모든 육체에게 성령이 부어지리라고 예언했습니다. 이후 신약 시대 오순절 날에 있었던 성령 강림은 장차 모든 육체에게 부어질 성령의 보증이 되었으며, 최종적으로는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날에 문자 그대로 성취될 것입니다.


                                                  아모스서


   드고아의 목자였던 아모스는 여로보암 2세의 재위 기간에 이스라엘에 대해 예언한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이스라엘의 첫 임금이었던 여로보암 1세가 우상 숭배할 목적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워 놓았던 벧엘에 아모스를 보내셔서 말씀을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처음 아모스가 다메섹과 가사와 두로와 에돔과 암몬과 모압 등 이방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했을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좋아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유다와 이스라엘을 향해, 위에 열거한 이방인보다 더 큰 특권을 누리고 있는 까닭으로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도 더 엄중하리라고 경고하자, 그들은 아모스를 대적했습니다.

   아모스는 여러 계시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내리실 하나님의 심판은 확실할 뿐아니라 매우 임박했다고 경고하였습니다. 아울러 선지자 아모스는 주님께서 이 백성들 중에 잔존자들을 보존하심으로 마침내는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회개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오바댜서


   오바댜가 생존했던 시기는 분명치 않습니다. 그래서 호세아나 요엘, 아모스와 동시대의 선지자라고 분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포로 기간 중에 살았던 선지자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바댜서의 핵심을 이루는 낱말은 에돔인데, 이는 에돔이 유다인에 대하여 형제국으로서의 우의를 버리고 무정했음을 오바댜가 책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돔 사람은 에서의 후손으로서 이스라엘과 혈연 관계를 갖고있는 족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을 향해 여행하고 있을 때, 에돔은 자기 나라 영토로 통과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더욱이 여러 해가 지난 후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때에는 바벨론과 합세하여 학살과 약탈을 자행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오바댜는 에돔이 교만잔인함을 인하여 진멸될 것이며, 그 때 유다인들이 에돔을 진멸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일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또한 장차 이스라엘은 최후의 위기에서 구출될뿐아니라, 에돔 지역을 비롯해서 옛부터 이스라엘에게 약속되어왔던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요나서


   요나는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 2세의 재위 기간에 이스라엘에 대해 예언했던 선지자로 분별되지만, 정확한 활동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앗수르의 니느웨 성으로 보내셔서 그들의 죄악을 책망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니느웨는 이스라엘의 숙적(宿敵)이었던 앗수르의 수도였으므로,  요나는 니느웨 성이 회개하여 하나님의 보존하심을 입게 되는 것이 싫어서 하나님의 명령을 피하여 다시스로 도망치려 했습니다. 그러던 중 바다에서 큰 폭풍을 만나게 되자 요나는 함께 타고 있던 선원들에 의해 바다에 던져졌고, 큰 물고기에게 삼키웠다가 육지로 토해 내침을 받았습니다.

   그 후에야 요나는 다시 니느웨 성에 가서 그 백성들에게 40일 이내에 멸망을 당하리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니느웨 백성들은 회개했고, 하나님께서는 150년간이나 멸망을 보류하셨습니다. 이에 요나의 심정은 분노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친히 당신에게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자비를 베풀 권리가 있음을 보여 주셨고, 그 때 비로소 요나의 마음이 풀렸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사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을 상징하는 동시에, 이스라엘이 버림을 당하고 이방인 중에 묻혀 살다가 마침내 회복될 것을 상징해 줍니다.


                                                    미가서


   미가는 이사야와 같은 시대의 예언자로,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의 재위 기간에 예언했습니다.

   미가는 특별히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와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백성들지도자들에게 예언했습니다.. 그 예언은 이들이 자신들의 우상 숭배와 불의와 탐욕으로 인하여 멸망하게 된다는 것인데, 사마리아가 먼저 앗수르에, 그 후에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각각 멸망을 당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가는 계속해서 메시야는 사마리아나 예루살렘이 아닌 제 3의 도시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이며, 시온에서 그의 백성들 중 잔존자들을 통치하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또한 메시야는 앗수르를 짓밟으실 것이며, 이스라엘에게 평강을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날에 남은 백성들은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하고 주님을 찬양하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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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경  개 요


                     제4과 왕정의 몰락


                                                 열왕기 상 . 하


   열왕기서에는 453년 간에 걸친 이스라엘 왕국(王國)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왕기서는 다윗 왕이 죽고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사건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부귀(富貴)와 영화(榮華)를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또한 이 솔로몬이 이룩한 공적은 많으나, 그 중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한 것과 자신을 위해 궁궐을 건축한 사실은 매우 특기할 만 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수 많은 이방 여인들과 결혼함으로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었고 그뿐 아니라, 병마(兵馬)를 필요 이상으로 많이 확보하여 주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무력(武力)을 의지하는 우(愚)를 범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솔로몬이 죽은 후에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부왕 솔로몬이 당시 자신의 호화로운 생활을 위해 거두어 들였던 과중한 세금을 이제는 경감시켰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무겁게 부과하려고 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북쪽에 있던 열 지파는 르호보암에게 반기를 들고, 여로보암을 또다른 왕으로 추대하고 사마리아를 수도로 삼아 나라를 세워 국호(國號)를 이스라엘이라 일컬었습니다. 따라서 르호보암은 유다 지파와 레위, 시므온, 베냐민 지파들의 일부 사람들만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즉 이스라엘 중 열 지파는 에브라임이라 불리우기도 한 북왕국으로, 나머지 지파는 예루살렘을 수도로 한 남왕국으로 서로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남북 왕국에는 각기 여러 사람들이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되었는데, 이스라엘 왕들은 한결같이 악하기만 했습니다. 물론 유다 왕들 중에도 악한 왕들이 있기는 했으나 그래도 선하게 다스린 왕들이 간혹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왕국은 주전 721년에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하였고, 유다는 이보다 134년간 더 유지되다가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했습니다.

   분열된 남북 왕국의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몇 가지 사실을 간추려 보고자 합니다.

   1. 주목할 만한 왕들의 활동

    1)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으로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웠다.

    2) 아합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악명 높은 왕으로서 그의 아내는 이방신 바알을 섬기는 이세벨이었다.

    3) 유다의 훌륭한 왕으로는 아사, 여호사밧, 요하스, 아마샤, 아사랴, 요담, 히스기야, 요시야 등이 있다.

   2. 주목할 만한 선지자들의 활동

    1) 엘리야는 아합 왕 때에 갈멜 산에서 바알 선지자들을 크게 쳐 부수었다.

    2) 수 많은 기적을 행했던 엘리사는 요람 왕 때부터 여호아하스까지 이스라엘의 여러 왕들에게 예언하였다.

    3) 구약 성경의 후반에 있는 예언서를 기록한 선지자들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활동했다.


                                            역대상 . 하


   얼 핏 보기에 역대상 . 하는 구약의 전체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예를 들면 역대상은 사무엘상 . 하와 내용이 비슷한데, 솔로몬과 남북 분열 왕국의 열왕들에 관하여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역대상 . 하는 사무엘 상 . 하나 열왕기상 . 하와는 다른면이 있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역대상에는 아담으로부터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때까지의 족보를 장장 9장에 걸쳐 기록하고 있습니다.

   2. 역대상 . 하는 역사적이거나 정치적 입장에서 기록되기 보다는 종교적인 면, 특히 제사장 제도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언약궤라든가 위인이라든가, 제사장이라든가, 문지기라든가, 성전 등에 관한 기록이 돋보이고 있습니다.

   3. 남왕국 유다를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고, 북왕국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별로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메시야가 탄생될 혈통인 다윗과 그의 직계 후손들에게 관심을 두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4. 다윗의 범죄가 대부분 기록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순종으로 인하여 받은 축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역대하의 마지막 구절에서 우리는 역대상 . 하가 기록된 이유를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는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만에 고레스가 예루살렘의 귀환을 허가하는 칙령을 내린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로 보아 역대상 . 하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씌어진 것이며, 고토(故土)에 귀환하는 유다인들에게 필요한 자신들에 관한 지식을 전달하고자 씌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1. 자신들의 기업을 알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족보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2. 성전에서 섬길 제사장이나 레위인을 성별하기 위해서도 이들의 족보를 알아야만 했습니다.

   아울러 역대상 . 하는 귀환하는 유다인들에게 과거 조상들의 영적 상태를 보여 주고, 나아가 이들로 후에 다윗의 보좌에 앉아 통치하실 메시야를 고대하게 하는 데 기록 목적이 있었습니다.


                                              에스라서


   유다 포로들이 이제 고토로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해도 좋다는 고레스의 조서가 반포되었을 때, 스룹바벨은 귀환 희망자 50,000명을 이끌고 1차로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들은 돌아오자마자 일을 시작하여 성전 지대(地臺)를 놓았으나 얼마 못가서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자청해서 돕겠다고 했는데, 유다인들이 이를 거절했던 것입니다. 이에 사마리아인들의 방해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후 상당한 세월이 흐른 후에 선지자 스가라와 학개가 다시 성전을 재건하라고 백성들을 격려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다리오 왕 때에 성전이 재건되어 온 백성이 기쁨으로 봉헌하였습니다.

   이후 60년 쯤 지나서 에스라가 1700명 내외의 귀환자들을 인솔하여 2차로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에스라는 이전에 귀환하여 정착한 수 많은 유다인들이 심지어는 제사장이나 방백들까지도 이방 여인과 결혼한 사실을 보고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에스라가 개혁을 단행하자 백성들은 죄를 자백하고 이방 여인을 버리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느헤미야서


   이제 성전은 재건되었지만 성벽은 여전히 허물어진 상태라서 적의 침략을 당할 경우에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이에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 때에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귀환과 성벽 재건의 허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벽 재건은 곧 사마리아인들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느헤미야는 낙심하지 않고 계속 백성들을 훌륭하게 조직하고 무장시키고 훈련시켜 52일 만에 재건 공사를 끝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느헤미야는 백성들을 모아 율법을 낭독하였는데, 이에 백성들이 금식하고 죄를 자백하고 버리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이후 느헤미야는 12년 동안 예루살렘에 머물다가 페르시야에 돌아갔습니다. 그러자 느헤미야가 없는 동안 백성들은 죄악 생활에 깊이 빠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다시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에는 성전에 이방인들이 출입하고 있었으며, 백성들은 레위인들의 생계를 도와주지 않았고, 안식일도 지키지 않았으며, 이방 여인들과 결혼 생활을 하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에 느헤미야는 이러한 타락을 개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이로써 구약사는 사실상 끝나고 있습니다. 이상의 사건들은 주전 400년 경에 일어난 것으로, 그 후 400년에 관해서는 성경에 아무런 기록이 없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는 느헤미야와 동시대의 인물이며, 말라기서 역시 느헤미야서와 동시대의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에스더서


   아슬아슬한 이야기로 엮어지는 에스더서는 스룹바벨과 에스라의 영도로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던 시기에 페르시야 왕궁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다시 말해서 에스더서의 사건은 에스라서의 6장과 7장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에스더서에는 유다인들이 그의 대적인 하만의 간교한 음모를 어떻게 분쇄하고, 구출되었는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에스더는 유다 소녀로서, 아하수에로 왕이 그의 아내인 와스디를 폐위시켰을 때, 와스디를 대신하여 페르시야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에스더의 사촌 모르드개는 대궐의 문지기로서 경건한 유다인이었고, 왕의 암살 계획을 사전에 왕께 알려준 적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한편 하만은 모르드개가 자신에게 절하지 않은 사실에 분개한 나머지 왕의 재가를 받아 날을 정한 뒤 모든 유다인들을 전멸하려고 계획하였습니다. 당시 메대와 바사에 있어서 이렇듯 왕이 인정한 법령은 어떤 경우에도 수정하거나 가감할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모르드개가 일러준 대로 에스더는 왕의 부름을 받지 않은채 왕 앞에 나아가려는 모험을 결행했습니다. 다음날 에스더는 잔치를 배설하고 왕과 하만을 초대했습니다. 잔치가 벌어지기에 앞서, 에스더는 일찍이 암살 음모를 사전에 왕에게 고한 모르드개에 대해서 아무런 표창도 하지 않은 사실을 왕에게 알렸습니다. 이에 왕은 하만에게 '모르드개는 왕이 기뻐하시는 사람' 이라고 온 성중 거리에 나아가 반포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다음 연회석상에서 에스더는 비로소 왕에게 자신의 국적을 밝히고 유다인들을 전멸하려는 하만의 음모를 폭로했습니다. 이에 왕은 하만이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세워 놓았던 장대에 즉시 하만을 매달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에스더가 다시 왕 앞에 나아갔을 때, 유다인들을 전멸하도록 작정되었던 날에 유다인들이 정당방어를 할 수 있도록 왕의 허가가 내려졌습니다. 왕이 이렇게 조서를 내린 뒤, 정해진 날에 대적과 더불어 유다인들이 싸우자 오히려 유다인들의 대적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유대인들은 이 날을 부림절로 정하여 해마다 이 극적 구출을 기념해 오고 있습니다.

   한편 이 책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기적적으로 보호하신다는 사실은 너무나 뚜렷이 보여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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