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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16 그리스도인 제자(the Disciple)

   그리스도인 제자(the Disciple)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요8:31).

그리스도인들은 모두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참된 기독교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철저한 헌신을 요구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 라는 용어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269번이나 나옵니다. 하지만 이상스럽게도 바울 서신서에는 고전 15:5절에서 한번 외에는 전혀 이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제자란 말은 복음서에만 나오는 그리스도를 헌신적으로 따르는 사람들 스스로를 일컫는 특징있는 용어인 것입니다.

헬라어로 '제자' 마테테스(mathetes)는 '만다노', '배우다' 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그리고 라틴어로 '제자' 디시플루스(dicipulus)도 '생도', 배우는 사람'에서 나왔습니다. 모두 배우는 사람이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본래는 한 선생의 생도를 의미하였습니다.

유대적인 용례는 신약에서 바리새인들의 제자들에 대한 언급에서 나타납니다(막2:18).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모세의 궁극적인 제자들로 여겼습니다. 침례 요한의 추종자들은 침례 요한의 제자들로 알려져 있었습니다(막2:18; 요1:35). 침례 요한의 제자들은 요한의 가르침에 따라 기도하고 금식했습니다(막2:18; 눅11:1). 그리고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침례 요한이 감옥에 있을 때 돌봐주었고, 침례 요한의 장례를 치러주었습니다(마11:2-7; 막6:29)

예수님 또한 교사로서 선생 또는 랍비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막9:5; 11:21; 요3:2)> 그리고 예수님과 관련을 맺고 따랐던 사람들은 대부분 예수님의 제자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복음서에 의하면, 1.예수님에게 있어서 제자라는 용어는 예수님의 메세지에 응답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마5:1; 눅6:17; 19:37). 2.그리고 제자라고 하는 이 용어는 또한 협의의 의미로 예수님의 전도 여행시에 예수님과 함께 하며 예수님으로부터 배우는 자들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막6:45; 눅8:2b; 10:1). 3.그러나 보다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제자라고 할 때는 그들 중에서 특히 열 두 사도들을 가리켰습니다(막3:14). 이들 12 사도들의 제자직은 특히 예수님의 개인적인 부르심에 기초하였습니다(막1:16-20; 2:13b; 눅9:59-62).

예수님께서 제자를 개인적으로 부르실 때에는 저녁의 한가한 시간이나 주말이나 은퇴기를 바치는 신자들을 찾고 계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주님에게 최고의 우선권을 드리는 자들을 찾으셨습니다. 이와 같이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가 되고자 하는 자들에게 엄중한 요구를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삶을 볼 때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따르고, 개인적으로 충성을 하되, 예수님에게만 오직 충성을 바치는 모습 속에 이런 요구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막8:34-38; 눅14:26-33). 적어도 몇 가지 사례들에서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은, 자신의 가정이나(눅9:59-62), 자신의 사(생)업상의 관계나 그리고 자신의 소유를(막1:17-20), 문자 그대로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막10:21,28).

우리 주님의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의 희생과 사랑을 생각하면, 무조건적인 헌신만이 이 사랑에 대한 합당한 응답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인생 모두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행하신 그 놀라운 사랑과, 그 거룩한 사랑에 대하여, 우리의 전부를 요구하는 것은 최소한의 것이며 너무나 합당한 요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에 있어서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은, 모든 경우에 있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예수님의 요구를 기꺼이 자신의 삶의 최고의 우선순위로 행하겠다는 헌신된 마음가짐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반 홉킨스는 "주님이 전과 같이 오늘도 찾고 계시는 대상은 목표없이 표류하는 대중이 아니라, 주님께서는 자신이 앞서 밟고 간 자기 부정의 길을 좇아갈 각오가 된 자들을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은 데서 흘러나오는 불굴의 충성심을 지닌 개개 남녀들이다.(H. A. 에반 홉킨스)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되었던 사람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받고, 그의 메시지를 전파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고치는 예수님의 대리인으로까지 임명받았습니다(막3:14절이하). 이런 의무들이 원래 12사도에게 위임되어 있었지만, 예수님의 대리인으로서의 그 의무들은 그 열두 명에게만 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막5:19; 9:38-41; 눅10:1-16).

누가에 의하면 초대교회의 회원(member)성도들은 제자들로 알려져 있었습니다(행6:1이하 그리고 이후 자주 나옴). 이 사실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지상에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먼저 교회의 핵과 같은 존재로서 교회의 토대를 형성하였습니다. 이는 또한 예수님과 그의 지상에 있는 제자들 사이의 관계는 부활하신 주님과 그의 교회의 지체되는 회원 성도들과의 한 몸 연합체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신약의 제자들은 부활 이후의 제자들의 특성들을 그리스도와 한 몸 연합체인 신약의 교회를 구성하는 기본이 되는 지체로서 더 온전히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용어들 곧 믿는 자들, 성도들, 형제들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의 구주되시고 진리 되시는 그리스도로부터 배우는 사람인 그리스도의 제자 되기위해서는 제자로서 사실 몇 가지 꼭 필요한 덕목들이 있다고 보여 집니다. 여기에서는 바로 이 몇 가지 점에 대해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자신의 무지를 깨달을 수 있는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하여 성령이 우리 마음에 소원을 두게 하시는 도우심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그 무지를 자신의 지식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배우고자 하는 열심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높은 수준에 있는 학자는 예외 없이 거의 모두가 언제나 자기의 무지(無知)를 아주 잘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 학문의 세계에서는, 모르는 바를 열심히 찾고 찾아서 그 몰랐던 것을 일단 알고 나면, 그곳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상하게도 그와 같이 알게 된 것에 대하여 알면 알수록 더 많이 알아야 할 사실이 더 많이 남게 되는 일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학문의 세계입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오래된 찬송 가운데 찬송시 작가 휴윗(E. E. Hewitt)이 노래 부른 "예수 더 알기 원하네."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예수 더 알기 원하네 크고도 넓은 은혜와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내 평생의 소원, 내 평생의 소원,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하며 예수의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는 마음이 평생의 소원이라고 노래 불렀습니다. 우리가 일단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함을 보이고 확증해주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알고 나면, 우리는 예수님을 더 많이 알기 원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 일이 우리의 평생 소원이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일단 예수님을 더 알고 나면 이 찬송의 말씀 그대로 이것 곧 '예수 더 알기 원하는 것' 이 그리스도인들의 평생의 삶과 목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둘째. 배우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창조주이시며 만유의 주권자이시고 만유의 아버지이신 유일하신 하나님의 무한한 위대하심에 대한 외경 즉 경외하심이 필요합니다. 창세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우리를 택하사 구속계획을 세우시고, 그 아들의 십자가 구속사역을 통하여 이루신 구속원리에 따라 믿는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베푸신 하나님에 관하여는 어떤 사람이든지 그가 평생을 두고 배워도 하나님의 전부를 도저히 알 수 없는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을 배우는 모든 인생에게 영원히 적용되는 변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신학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마치 그 자신이 하나님께 대한 것을 전부 알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무한하신 하나님을 유한한 인간의 사고로 신학이라는 틀 안에서 제한하고자 하는 독선과 영적인 오만 만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런 사람들에 대해 사도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해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엡 4:20)고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어떤 규율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종교가 아니라 생명입니다. 이 말은 기독교는 생명과 관계있는 어떤 법이라는 말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는 어떤 신조나 교리가 아니라 생명의 근원되시는 그리스도 자체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의 생애가 다하는 날까지 하나님에 관한한, 그리고 무한하신 진리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에 관한 한, 배우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발견자가 되어야 하며 또 탐구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무한하신 섭리는 우리 유한한 인생이 그리 쉽게 체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아무리 알아도 알아야 할 것이 또 남아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지금은 교회의 머리되시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구속주로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에게 이르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는 이 사실은 배우는 사람의 올바른 태도를 우리가 소유하면, 우리는 그러한 토대위에서 자연 다음 사실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참다운 의미에서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배우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다른 사람의 옳음을 인정할 수 있고, 그리고 자기 자신의 잘못이 있으면 그것을 인정할 만큼의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겸손함은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배우는 사람에게 있어서 기본이 되느 덕목인 동시에 아무리 강조를 하여도 지나침이 없는 중요한 덕목인 것입니다.

셋째, 이제까지의 말을 종합해 볼 때 언제나 그리스도를 배우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겸손함과 경외심 그리고 열심을 소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나타난 하나님께 대하여 더 배울 것이 없을 만큼 너무 늙거나 지나치게 현명한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의 평생 동안 그리스도를 배우는 사람으로서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열심을 다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 곧 3위 가운데 하나님의 제 2의 위격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며,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렇다고 해서 우리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배우는 영적인 길이 무작정 어렵다거나, 혹은 그 길이 오직 높은 수준의 자격을 갖춘 지성인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열 두 사도들을 택하시면서 그리스도 자신에게서 배우는 영적인 길이 결코 어려운 것도, 지성인만을 위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에게 명백히 증명해 보여주셨습니다. 열 두 제자들은 무지한 자들이었고 사회적으로 낮은 계급의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점을 지적하시면서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이성적으로나 지적으로 고상하게 보이는 피상적인 기도에 의지해서는 내면의 깊은 것을 깨달을 수도 없고, 우리 안에 있는 영혼의 깊은 곳에도 도달할 수도 없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데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지혜와 계시의 정신없이 하나님을 알기는 어럽습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자들에게 제자로서 본이 되는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간절히 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엡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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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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