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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4.08 저 높은 곳을 향하여 - CHAPTER 10 가정 건설

                      

                                  하여

                                                                                     존 필립스

                                      CHAPTER 10

                          가정 건설

                              Building the Home


   옛날 동화는 대개 숱한 고난을 극복한 주인공(hero)이 마침내 이름다운 여주인공(heroine)과 결혼하여 " 그  후로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간단한 문구로 마칩니다. 그들은 그랬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매력적인 배우자와 결혼한다해서 행복한 결혼 생활이 보장될 수는 없기 때문에 이 문구는 수정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결혼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배우자에 대하여 더 이상의 재고가 필요하지 않지만, 그러나 더 나은 결혼생활을 위한 실제적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앞의 9장을 통하여 우리는 독신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교훈들을 공부하였습니다. 이제 본 10과에서는 기혼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교훈들을 살펴볼 예정입니다. 먼저 에베소서 5장 22절-6장 4절과 고린도전서 7장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결혼 배우자 (The Marriage Partner)


   값비싼 귀중품이나 사용법이 까다로운 물건을 구입하였을 경우, 그것을 사용하기 전에 우리는 그 제품의 사용 설명서를 읽게 됩니다. 그 물건을 제작한 회사는 자사 제품의 사용법을 잘 알기 때문에 설명서를 통하여 소비자들에게 그 사용법을 알려줍니다. 가령, 설명서에 "지레 B를 돌리기 전에 버튼A를 누르라"고 기록되어 있다면,그 지시를 따라야만 그 제품이 올바로 작동하게 됩니다. 그러나 만일 그 순서를 무시하고 그와 반대로  작동을 시도한다면, 그 제품은 작동이 안 되거나 고장 나게 됩니다. 결혼생활은 이런 기계보다 그 기능이 훨씬 복잡하고 미묘한 것입니다. 결혼은 성격, 배경, 감정,외양,교육수준, 사회적 경험, 종교적 경험, 문화적 배경등이 다른 두 사람이 서로 만나 일평생을 함께 살며 서로 융화되어 살아가야 하는 독특한 제도입니다.

   결혼은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최상의 설계이며, 또한 그분은 우리의 결혼생활이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정의 행복을 위한 지침서를 예비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지침(교훈)을 무시하고 외면한다면 이는 정말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과 지침들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김으로써 온전한 결혼생활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결혼생활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원리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 아내의 의무- 남편에 대한 사랑의 순종

   (The Wife's Role-Submissive Love for Her Husband)


   먼저 에베소서 5장의 아내들에게 주는 교훈을 보겠습니다. 아내들은 자원하는 심정으로 남편에게 복종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훈은 오늘날 여성해방을 부르짖는 여성들에 의해 많은 저항을 받고 있습니다.

   아내의 의무에 관한 중요한 교리를 살펴보면 갈라디아서 3장 28절은 하나님 앞에서 남자와 여자의 동등함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서 5장에서는 부부사이의 질서에 있어서 남편은 가정의 머리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되심과 같으니라" (고전 11:3-16 참고). 이는 가정 안에서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와 질서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교회)를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는 신부(bride)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독자이신 주님께서는 우리(그의 교회)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영광을 모두 버리시고 스스로 자신을 낮추시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지시고 대신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와 같은 주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전혀없는 비천하며 무가치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랑과 긍휼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써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그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주셨고, 의의 옷을 입혀주셨고, 천사보다 우리를 더 높여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그의 사랑하는 교회와 신부로 삼아 주시고 장차 그의 보좌와 영광과 능력을 주님과 함께 영원히 누릴 자들로 예정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Lord)가 되시며, 구속자(Savior)이시며, 신랑(Bridegroom)이십니다. 이제 교회인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은 오직 그분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가정의 질서에 관하여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아내의 머리는 남편이요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시니라." 근원이 다른 것 같지만 지극한 사랑과 충성스러운 복종은 실상 둘 다 같은 영역에 속한 것입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복종의 원리에 대하여 말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과 그리스도에 대한 교회의 "복종"의 유사성에 유의하기 바랍니다. 아내와 남편의 관계는 곧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와 같습니다. 아내와 남편의 관계가 그림자라면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실제입니다. 아내들은 가정에서 자신의 남편에게 복종함으로써 온 우주 안에  하나님의 질서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아내들이 범사에 남편에게 복종함으로써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온 우주에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내의 복종은 우주적인 질서에 동참하는 특권임을 깨닫는 것은 참 놀라운 복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 한 가지 예로서,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Lord)라고 불렀던 일을 말합니다(벧전 3:1-6). 사라는 그녀의 남편 아브라함이 여러 번 신실하지 못한 행동과 실수를 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남편을 '주'라고 부르며 복종하였습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의 잘못과 실수에 반하여 그 아내 사라의 남편에 대한 순종을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성경에는 남편을 거역하고 남편을 속였던 이삭의 아내 리브가에 대한 기록도 있습니다(창 27장). 이삭의 가정은 부부 사이에, 자녀와 부모 사이에, 그리고 자녀와 자녀들 사이에 투쟁하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리브가는 남편을 불순종하는 아내였고, 장자 에서(Esau)는 구원받지 못한 자식이었으며, 야곱은 야비한 형제였습니다. 그 가정의 불화와 투쟁의 원인은 남편을 불순종한 리브가에게 있었으며, 이것이 점차 전 가정의 비극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부부간의 질서는 가정의 복의 근원입니다.


   2. 남편의 의무 - 아내를 위한 희생적 사랑 (The Husband's Role-Sacrificial Love for the Wife)


   결혼의 우선적 지침 - 두 번째 교훈은 남편들을 향한 것입니다. 남편은 자신의 아내를 그리스도와 같이 헌신적이고 희생적으로 사랑하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장을 통하여 남편들이 어떻게 그의 아내를 사랑해야 하는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본이십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엡 5:25). 이 세상에 이보다 더 위대한 사랑은 없습니다. 이처럼 아내를 위해서 자신을 내어주는 남편을 어찌 그 아내가 전폭적으로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께서는 현재 지상에 있는 그의 교회들이 흠 많고, 불완전하고, 수많은 종파로 분열하는 연약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차 그의 앞에 완전하게 나타날 그 날들을 내다 보시며 불변의 사랑으로 우리를 대하고 계십니다. 그는 다만 완전한 교회가 지니고 있는 영원한 영광만을  내다보십니다. 교회를 향하신 그의 사랑의 넓이와 깊이를 우리는 다 측량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교회를 향하신 그리스도의 이와 같은 완전한 사랑처럼 남편들도 자기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 남편들의 아내 사랑은 주님의 사랑의 본을 따를 뿐 아니라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의 지체라." 이러한 바울의 충고는 매우 합리적입니다. 우리들은 자신의 몸이 아프거나 늙고 쇠약해질 지라도 여전히 자신의 몸을 사랑합니다. 자신을 보살피며 보양하기에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는 가능한한 가장 멋진 의복을 자신에게 입히기를 원합니다. 하루 세끼를 거르지 않고 먹이며, 몸을 튼튼히 단련시키며, 육체의 본성이 요구하는 대로 모두 충족시켜주려고 애씁니다.

만일 몸이 아프면 지체하지 않고 의사에게로 달려갑니다. 무덤으로 가는 그날까지 온 힘을 다하여 그 자신을 지켜 보호하려고 애를 씁니다. 이렇게 우리 자신을 돌보며 늘 관심을 갖는 것처럼, 남편은 자기 아내를 사랑하고 돌보아야 합니다. 아내를 돌보고 사랑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입니다. 바로 아내와 남편은 둘이 합하여 한 몸이 된 까닭입니다. 이는 교회와 그리스도의 하나됨과 같은 신비입니다.

   남편에게 순종한 사라를 아브라함이 얼마나, 또 어떻게 사랑했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에 밝히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라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통하여 사라를 향한 그의 사랑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창 23:2). 사라란 이름은 "왕후"(princess)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와 이야기 할 때 그녀를 나의 사라(왕후)라고 불렀습니다. 자신의 아내를 "왕후" 라고 부르는 남편을 나의 "주"(lord)라고 부르는 아내를 상상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결혼의 영원성 - 결혼은 태고적에 하나님에 의해 설계된 영구불변적인 제도입니다. 바울은 결혼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1-32). 이 말씀은 창세기 2:24 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마 19:5-6)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에 의하면, 이혼은 성적 부정의 경우에만 허용됩니다(마 5:31-32). 제자들은 이와 같은 결혼에 대한 표준에 대하여 놀랐습니다.(마 19:10). 그러나 예수께서 이혼을 허락하신 것은 결코 표준을 낮추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본래 이혼이 인간의 "완악한 마음"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하셨습니다(마 19:8). 즉 이혼이란 완악한 인간으로 인해 율법(law)에 따라 허용되었지만 신약 안의 사랑의 원칙에 의하면 결코 허용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짝 지워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고 하셨습니다.


   또 다른 이혼의 사유는 믿지 않는 배우자와의 사이에 특별한 문제가 제기될 경우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고린도전서 7장에 자세히 기록되고 있습니다. 주님 안에 있는 사람은 선한 믿음의 간증을 통하여 불신자인 그의 배우자를 주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의 자녀들에게도 거룩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런데 만일 그리스도인이 불신자인 배우자로 인하여 가정을 떠나기로 결심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그(혹은그녀)의 책임입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사람이 신앙이 문제가 되어 배우자와 갈라서게 되더라도 그는 배우자를 향하여 분노를 드러내거나 책망을 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 언제라도 가능한 한 화해의 문을 열어 놓아야 합니다. 이런 일들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 지켜야 할 거룩한 표준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결혼을 언급하기 앞서 성령 충만에 대하여 말한 중요한 이유는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만이 거룩한 결혼의 이상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적인 부모 (The Model Parent)


   자녀들은 가정의 가장 큰 축복임과 동시에 부모에게 주어진 엄숙한 책임입니다. 자녀들은 "주의  주신 기업"(시 127:3)이고 하나님께서는 많은 자녀를 둔 자를 복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시 127:5). 과연 자녀는 그 부모에게 큰 축복이지만, 반면 부모는 하나님 앞에서 자녀에 대하여 정말 커다란 책임이 있습니다. 이상적인 부모가 되는 길은 무엇보다 부모와 자녀 간에 온전한 균형을 이루는 일입니다. 바울은 부모와 자녀가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 자녀들은 순종의 원리를 배워야한다

   (Children Must Face the Principle of Obedience)


   사도 바울은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는 모든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가정에서 부모를 거스르며 성장한 아이들은 장성한 후에도 사회의 모든 권위에 대해서도 도전적인 자가 됩니다(딤후 3:2 전체 구절을 반드시 읽을 것). 이 사회가 불안정한 이유 중의 하나는 부모들이 가정에서 자녀들을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것이기도 합니다. 가정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학교에서는 교사에게, 직장에서는 고용주에게, 길거리에서는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관에게, 법정에서는 판사에게 또 그 밖의 마땅히 존경하고 복종해야 할 모든 권위들에게 대해 반항하고 불순종합니다. 순종은 부모에 대한 자녀들의 의무이며, 공경은 자녀로서 마땅한 도리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마음속으로부터 부모에게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자녀들이 이렇게 순종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이는 옳은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순종은 자녀로서 실행해야 하는 "합당한 일"(right thing)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이 "약속 있는 첫 계명" 이라고 말합니다. 주 예수님은 어린 시절,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부모와 함께 절기를 따라 예루살렘을 방문하시고, 다시 나사렛으로 내려 오신 후 부모 요셉과 마리아를 순종하여 받드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눅 2:51). 주님도 공생애 전의 어린 시절 부모의 권위 앞에 복종하셨던 것입니다 또 성경은 자녀들에게 순종에는 상급(reward)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 6:3) 자녀들이 자신의 부모에게 순종할 때 장수의 축복이 따른다는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이와 같은 순종의 원리를 배운 사람은 장차 세상 안에 섞일 때에도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인물이 될 것입니다. 사람의 인격은 대부분 가정생활을 통하여 형성됩니다. 이처럼 가정에서 좋은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사람은 원만한 인격을 소유하여 대체로 그 생애가 순탄하고(건강과 장수를 포함)또한 노년에도 존경과 덕망을 얻는 인물이 될 것입니다.


   2. 부모는 자녀를 올바르게 징계할 수 있어야 한다.

   (Parents Must Face the Possibility of Oppressing)


   부모는 자녀에게 경건한 삶의 본을 보임으로써 양육해야 합니다. 지나친 관용이나 지나친 엄격은 그 어느 편도 옳지 않습니다. 또한 부모는 자녀에 대한 바른 징계를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아버지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엡 6:4)고 했는데 이 말은 "아버지들아, 너희 자녀들을 지나치게 징계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부모들은 자칫 자녀들을 방임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억압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한편에 치우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들, 특별히 아버지들은 자녀들에게 지나친 억압이나 책망을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부모들은 상식에 맞지 않는 요구를 하거나 또는 잔인하게 자녀들을 다룹니다. 성경은 자녀들에게 신체적 징계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잠 13;24, 19:18, 22:15, 23:13, 29:15). 그러나 그 어디에도 그의 자녀들을 잔인하게 대하도록 허락한 말씀은 없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를 징계할 때 종종 감정에 치우쳐 부당한 분노를 나타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 부모는 확고하고도 공정하게 자녀를 대해야 합니다.

   부모들은 올바른 징계의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능력 이상의 성취를 기대하거나, 전혀 가능하지 않은 목표를 제시하거나, 불충분한 시간 내에 어떤 일의 완성을 재촉해서는 안 됩니다. 또 옳지 못한 동기로 자녀들을 훈련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공포감, 적대심, 불신감을 일으켜도 안 됩니다. 그런가 하면 부모가 자녀들에게 이미 경고한 일에 대하여 후속 조치 없이 그냥 지나칠 때 자녀들은 부모의 진실성을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부모들은 징계의 진정한 목적을 배워야 합니다. 바울은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고 권고합니다. 주의 교양을 통하여 무엇을 믿어야 하며 주의 훈계를 통하여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야 합니다. 행복은 바로 이와 같이 거룩한 진리에 대한 가르침이 있는 가정 안에 있는 것입니다.

   자녀 양육에 있어서 징계는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사람은 이미 영아 때부터 부모의 뜻을 거역하며 자신의 뜻을 주장한다고 합니다. 어린아이의 거역은 요람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입니다. 어린 아기가 천진하다고 그 잘못을 가볍게 여겨서는 결코 안 됩니다. 어렸을 때 자녀들의 거역을 바로잡지 못한 부모는 그 아이가 성장했을 때 반드시 그 댓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언젠가 어느 한 부인이 항상 반항적이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법에 저촉되는 행동을 일삼고,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는 17세 된 자기 아들에 관하여 한탄하는 글을 한 칼럼니스트에게 보내었습니다. 그 편지를 받은 칼럼니스트는 즉시 다음과 같은 답장을 그 부인에게 보냈습니다. "당신의 아들을 17개월짜리 아기로 다시 되돌리십시오. 그리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십시오. " 평소부터 성서적인 자녀 양육의 원칙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일을 되풀이를 할 필요가 없겠지요!

   부모들은 자녀 훈련을 위한 올바른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가족들 사이에 항상 솔직하고 진실한 대화의 문을 열어 놓아야 합니다. 부모들은 진심과 깊은 사랑으로 자녀들의 관심사와 당면한 문제들, 그들의 소망들, 그들이 어려워 하는 일들, 두려워하는 일들에 대해서 격의 없이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신앙에 대하여 불신의 태도를 보일지라도 당황하지 말아야 합니다. 때때로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간접신앙(second-hand faith)을 벗어나(특히 크리스천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들의 경우) 자신의 신앙으로 정착하기 위한 회의와 믿음의 재정비의 시기가 필요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과 함께 성경읽기와 기도의 시간을 꼭 함께 가져야 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성경을 읽다가 의문점이나 느낌을 솔직하게 나눌 수 있도록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부모들이 가정 예배의 기도나 교제 중에 가족들 앞에서 자기들의 실수나 잘못을 기도나 대화 중에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이런 일들은 부모 역시 완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자녀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부모들이 어린시절 자신들이 했던 말과 행동들을 돌이켜 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는 자녀들이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각종 비행과 거짓되고 옳지 못한 행동들을 자연스럽게 바로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부모들이 어린 자녀들에게 신앙심을 길러주기 위한 가장 좋은 시간은 바로 잠자리에 들기 전이라는 것도 잊지 말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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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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