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올바른 분별


                                   제 6 과

                         신자의 성품 및 신분과 상태


1. 신자의 두 성품


   성경은 거듭난 사람은 누구나 다 두 성품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곧 첫 출생으로 받은 완전히 절망적인 악한 옛 성품과, 중생으로 받은 새 성품입니다. 이 새 성품은 하나님의 성품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선합니다. 다음의 성경 말씀들은 옛 성품 곧 아담으로부터 받은 성품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고 계시는가를 확실하게 가르쳐 줍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 17:9)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

   하나님께서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교양 있고, 유능하고, 부드러운 성격을 가지고, 너그럽고, 자비롭고, 종교심을 가진 사람이 전혀 없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운자, 하나님을 찾는 자, 하나님을 깨닫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인간의 성품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받아들이고, 대체로 모든일을 양심적으로 수행하며, 인류의 재난이나 희망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며, 인권옹호에 절대적이며, 친절하고 덕망이 높은 친구들을 아십니까? 그런 그들이 아직도 하나님의 권리를 경멸하며,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에 대한 이야기에도 냉담하며, 그분의 신성을 말할 수 없이 무례한 말로 부정하고, 그의 말씀도 경멸하여 배척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야말로 우리 성도들이 겪는 시련들 가운데서 가장 슬픈 것입니다. 이는 결국, 친구에게 거짓말하는 것을 야비하게 여겨 두려운 마음으로 그것을 피하는 유덕(有德)한 사람이, 아직도 날마다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요일 1:10 ;5:10) 더 슬픈 것은 이런 조류가 인본주의를 추종하는 어떤 성직자들에 의해 강단에서 조장된다는 사실입니다.


   홍수 이전 시대에 이 세상의 겉모양과 진실의 격차는 얼마나 경악한 것이었습니까! 그 당시 이 세상에는 거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홍수로 그들이 전멸된 이후에 하나님의 아들들 (셋의 자손)이 사람의 딸들 ( 가인의 딸들)에게 자식을 갖게 하였는데, 그 자식들도 옛날과 똑같이 유명한 거인들이 되었습니다(창 6:4).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 세상은 점점 더 향상되는 것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계속되는 발전, 그리고 경건한 사람들과 세속적인 사람들 간의 계속적인 혼혈결혼은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교만하게 했습니다.


   바로 이 때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과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신 것입니다(창 6:5).


   *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아래와 같은 사실도 주목해 보십시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막 7:21~23)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느니라"(롬 8:7, 8)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 2:3)


   이상의 말씀을 통해서 볼 때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세 가지 측면에서 무능력한 것 같습니다. 물론 그는 재능이 있고, 교양이 있고, 사랑스럽고, 관대하고, 종교적일 수 있습니다. 또한 정직하게 빚을 잘 갚으며, 진실하고, 근면하며, 훌륭한 남편, 훌륭한 아버지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이 모두를 겸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는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깨달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신자는 그의 옛 성품 곧 변화되지도 않고, 변화될 수도 없는 옛 성품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되,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엡 4 : 24) 새 성품을 받았습니다.


   중생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하나의 창조입니다. 즉, 옛 것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 생성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연 출생을 통해서 인간의 성품을 받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성품은 중생을 통해서 받습니다.


   * 다음의 성경 말씀들은 이 새 성품의 기원과 성격을 보여 줍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 1:12, 13)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갈 3:26)


   갈라디아서 3:26의 성경 말씀은 오늘날 일반화되어 있는, 그럴듯하면서도 완전히 비성경적인 '하나님의 만민 천부설' 및 '인간의 만민 동포설' 과 어떠한 관계가 있을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후반부의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만 본다면 더욱 그렇게 보이겠지만, 이런 반(半)진리는 비진리보다 더 위험합니다. 출생한 자면 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거듭난 자들만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성경이 아담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한 것은 사실이지만, 성경은 또한 조심스럽게 셋을 가리켜 아담의 자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눅 3:38).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4)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 그리고 이 새 사람은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골 1:27)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 3;3,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맒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위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벧후 1:4)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롬 8:10)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일 5;11,12)


   그러나 그리스도 자신의 성품인 이 새로운 신의 성품은 성도 안에서 옛 성품과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 2:20)라고 말할 수 있었던 바울은 "내 속 곧 내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롬 7;18)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롬 7:21)라고 또한 말하고 있습니다. "순전하고 정직한 욥"은 '내가 스스로 한'(욥 42:6)한다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영광 중에 나타나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를 뵈었을 때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다(단 10:28)고 고백했습니다.


   이 두 성품은 서로 싸웁니다. 로마서 7:14-25에 나타나 있는 옛날의 사울과 새 사람이 된 바울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내란을 조심스럽게 상고해 보십시오. 이와 같은 투쟁이 일어날 때 어린 신자들은 낙심하며 고민합니다. 구원의 첫 기쁨이 사라지며, 열렬한 소망은 식어져서 그는 마침내 구원 얻기 전과 같이 자기 속에 옛날의 습성과 욕망이 그대로 작용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구원마저 의심하는 데 이릅니다. 이와 같은 위기에 처했을 때 사도바울은 자기의 옛 성품을 가리켜 사망의 몸이라 부르면서 자기를 건져 달라고 외쳤습니다. 율법은 초신자의 번민을 가중시킬 뿐입니다. 그가 육 곧 사망의 몸에서 건짐을 받은 것은 노력으로나 율법을 지킴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되는 것입니다(롬 7:24,25)


   그러나 우리 안에 육이 있다는 사실이 육적인 행동에 대한 변병은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음과, 또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죽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가 세상에 있는 동안 우리의 지체를 죽이므로 실로 우리가 죽었음을 경험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힘은 신자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부터 옵니다(고전 6:19 ; 롬 8:13).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은 육을 죽이는 것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6, 17)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3)


   그러므로 옛 성품의 유혹을 의지력이나 결심으로 대항하려 하지말고, 대신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성령님께 의탁하십시오. 로마서 7장은 옛 성품을 가진 중생한 사람이 겪는 투쟁에 관한 경험담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히 개인적입니다. "원하는 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롬 7;15) 이것은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가슴을 치며 하는 패배의 슬픈 고백입니다. 로마서 8장에서도 싸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되게도 거기에는 개인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번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바울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이제 육과 성령님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평안하고 의기양양해 있습니다.


   이상에서 말한 것은 육에 대한 승리, 곧 정욕, 교만, 분노 등의 악을 향한 내적 충동에 대한 승리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밖으로부터 오는 유혹들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 의지함으로써 극복됩니다.


- 다음의 구절들을 조심스레 상고해 보십시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빌 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골 3;3)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롬 6:11)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4)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롬 8;12)


   2. 신자의 신분과 상태


   성경, 그 중에서도 특별히 서신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신자의 신분(위치)과 상태(생활)에 대해 다룬다는 점입니다. 신자의 신분은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일의 결과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그 순간부터 완전합니다. 신자의 여생 가운데 있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께로부터 은총을 받거나 구원을 얻는 데에는 아무 영향도 줄 수 없습니다. 단지 믿음만으로, 하나님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이 신분을 수여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믿는 신자라면 그가 아무리 연약하고 볼품없는 신자일지라도 가장 빛나는 어떤 성도와 똑같은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_ 그 자격 곧 그 신분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다음의 성경 구절들에서 대략 엿볼 수 있습니다.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 ."(요일 5:1)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 ."(롬 8:17)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벧전 1:4,5)


   "우리가. . .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엡 1:11)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 3:2)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 ."(벧전 2:9) ". . .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 . '(계 1:5,6)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골 2;10)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롬 5;1, 2)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하려 함이라"(요일 5:13)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 10;19)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엡 1:3)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6)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4-6)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 2:13)

   "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 1:13) " 우리가 . .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고전 12:13)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엡 5:3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깨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9)


   이상에 말한 놀라운 사실들 하나하나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에게 적용됩니다.  이상에 열거된 영화스러운 항목들 중 어느 하나도 기도나, 봉사나, 예배당 출석이나, 구제나, 절제나, 거룩한 생활이나, 그 밖의 어떠한 선한 일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신자라면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해당됩니다. 빌립보 간수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그는 그 즉시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 즉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고,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시들지 않는 기업을 얻기에 합당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믿고 입술로 고백하는 순간에 그는 의롭다 함을 얻고, 하나님과 화목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신분을 얻었으며, 영광을 바라는 확실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영생을 선물로 받았고, 그리스도 자신께서 받으신 것과 같은 완전한 영접을 받았으며, 성령님께서 내주하시고 인치신 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하나님의 교회에 연합되었습니다 즉시 그는 하나님의 의로 옷입힘을 받았고(롬 3:22).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고, 그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아 그 안에서 하늘이 앉힌 바가 되었습니다.


   그의 실제 상태가 어떠했었든 그것은 완전히 별개의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보실 때에 그것은 그의 승격된 위치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매우 낮은 자리였습니다. 또한 신분은 그가 즉시 얻을 수 있었지만. 실제에 있어서 그가 왕답고, 제사장답고, 하늘에 속한 자답게 생활하는 것은 결코 즉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의 성경 말씀들은 이상에 말한 두 가지 곧 신분과 상태가 성경에서 어떻게 구분되어 있는 지를 잘 보여 줍니다.


          신 분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하시리라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고전 1:2~9)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ㅣ17)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2, 13)


          상 태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고전 1;1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 3:1~3)

   "어떤 이들은...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고전 4:18)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고전 5:2)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고전 6:7)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고전 6:15)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16:23)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골 3:8,9)


   우리는 또한 은혜 아래에서 하나님의 가르침은, 먼저 신자가 얻은 최고의 신분을 가르쳐 주고, 그 다음에 그 신분에 합당한 생활을 권면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는 마치 빈핍한 자가 거름더미에서 들려 귀족들과 함께 앉게 된 다음에 귀족답게 되라는 권면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삼상 2:8).


          * 예로서 다음의 성경 말씀을 살펴보십시오. *


          신 분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롬 6: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6)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 3:4)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엡 5;8)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살전 5:5)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살전 5:9,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 10:14)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빌 3;15)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일 4:17)


          상 태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골 2:20)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하여 저희로 너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참고 : 여기에서 말한 구원은 영혼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장애가 되는 올무로부터 건짐을 받는 구원을 가리킨다. 이구절을 곡해하는 사람이 많이 있음을 명심하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 3:1)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골 3:5)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살전 5:6)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살전 5;11)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살전 5:23)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빌 3:12)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완전한데 나아갈지니라"(히 6:1,2)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


   성경이 신자의 신분과 상태를 분명히 구분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구절들은 이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구절들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가 과연 말할 수 없을 만큼 승격된 신분에 합당한지 자신을 살펴보고 절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무가치함을 고백하고 이 신분에 대해 전적으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의 결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신분의 견지에서 볼 때, 신자는 영원히 온전케 되었습니다(히 10:14). 그러나 마음속, 곧 자신의 상태를 들여다 볼 때 그는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빌 3;12)고 고백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신자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들, 곧 신자의 행위와 양심에 말씀을 적용시키시는 일(요17;17 ; 엡 5:26), 아버지의 손으로 채찍질하시는 일(히 12:10 ; 고전 11:32), 성령님의 역사(엡 4:11, 12), 광야 생활에서 부딪히는 여러 가지 난관과 시련(벧전 4:12~14),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요일 3:2)일어날 최후의 변화, 이 모든 것은 신자로 하여금 이미 구원 얻는 순간에 얻은 그 신분에 온전히 이르게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신자는 실로 은혜 안에서 자라는 것이지, 은혜에 들어가기 위하여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왕자라도 그가 어렸을 때는 다른 어린이들처럼 장난스럽고 무지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때로 말을 잘 듣고, 온순하고 귀엽게 행동했을 것입니다. 그럴 때 그는 칭찬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제멋대로 굴며, 말도 잘 안들었을 것입니다. 그럴 때 그는 매도 맞고 스스로도 우울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경우에나 그가 왕자인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는 점점 바르게 행동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럴 때 그는 그전보다 훨씬 더 왕자답게 보이겠지만, 그렇다고 그가 새삼스럽게 다시 왕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 '출생에 의해서' 왕자답지 않았을 때부터 이미 왕자가 되었었기 때문입니다.


   만 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님이신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은 왕다운 모습으로 자라 갈 것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결국에는 신자의 상태와 신분이 일치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신분이란 것도 온전해진 인격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격이 신분에서부터 형성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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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요 15:5). 따라서 '그리스도의 가지' 란 말은 그리스도인을 일컫는 신약성경의 많은 칭호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신약교회 진리 안에서도 그리스도인의 놀라운 신분을 가장 잘 표현한 말 중의 하나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그리스도인을 의미하는 이 '가지' 라는 칭호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묵상해볼 만한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나무에 붙어 있는 생명 있는 가지는 성장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자라야합니다. 생명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성장하지 않는 가지는 죽은 가지입니다. 또 만일 가지가 살아있긴 하지만 자라지 않는다면 이는 어딘가 잘못된 기형적인 가지에 불과한 것입니다. 따라서 생명있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에는 믿음에도, 믿음의 삶에도 또 말씀을 먹고 분별하는 깊이에도 항상 성장이 있어야합니다. 그러므로 성장이 없는 가지가 기형이듯이 성장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기형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인의 믿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만심 곧 교만입니다. 자만심을 가진 그리스도인에게서는 신앙의 건전한 성장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자만심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대개가 거의 처음 그리스도인으로 들어올 때의 영적으로 어린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어린아이의 상태로 오랜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그렇게 영적으로 어린 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생명에 자양분이되고 생명을 양육시킬 수 있는 생명의 진리의 말씀에 눈을 감고 귀를 막습니다. 나아가 다른 앞선 성도들의 경험이나 가르침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도 스스로 높은 수준의 성숙한 신앙 생활을 해나갈 수 있다고 믿고 그렇게 살아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서신서들을 읽을 때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생각이 어떻게 성장하였으며 어떻게 꽃을 피웠으며,어떻게 발전하였는가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중이라도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는 자로서의 전도의 일을 시작한 초기에 쓴 데살로니가전후서는 주로 주의 오심에 대한 성도들의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쓰여 졋습니다. 그렇지만 비교적 그의 심오한 이신칭의(以信稱義)에 대한 복음(福音)에 관한 진리(眞理)나 신약의 교회의 본질인 그리스도와의 한 몸 연합에 관한 신약교회진리(敎會眞理)등의 진리체계와 그 실행 등에 대하여는 충분히 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3차 전도여행 중에 이신칭의(以信稱義)에 관한 심오한 진리체계를 로마서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전도 생활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옥중에서 쓴 에베소서나 골로새서 같은 책에서는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감추어진 비밀인 그리스도와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敎會)에 대하여 가장 심오한 진리체계인 신약교회진리(新約敎會眞理)가운데서도 핵심 진리인 한몸 연합에 대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 진리를 잘 기록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의 지혜와 그 키가 자라났듯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지혜와 키도 자라나야합니다(눅2:52).

둘째,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는 열매를 맺어야합니다. 나무의 본분은 열매를 맺는 것인데, 그 열매는 몸 된 나무에 잘 붙어 있는 가지에서 잘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한 몸으로 연합되어 있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잘 붙어 있으면서 신앙생활을 영위할 때 그 때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잘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갈5:22-23).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연합되어 있는 그리스도인은 결코 그 주인에게 열매를 제공해주지 못하고 버림받는 미운 가지와 같은 삶을 사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연합되어 있는 자로, 한 몸 지체로, 형제의 우애가 있고, 형제 사랑이 있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열매 맺지 못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건강하고 온전한 믿음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은 포도나무인 그리스도의 몸에 잘 붙어 있음으로 인해서, 가지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나타난 우리의 잘 익은 성령의 열매로서 판단을 받기 때문입니다(마7:16).

셋째, 나무에 잘 붙어 있는 가지도 살다가 겨울이 오면 죽음과도 같은 시련을 겪습니다. 그러나 그 가지가 나무에 튼튼하게 잘 붙어 있는 한 시련의 겨울은 결국은 지나가고 맙니다. 그리고 어느덧 다시 봄이 찾아오게 되면 끝까지 나무에 잘 붙어 있는 가지는 또다시 움을 틔우는 것입니다. 끝까지 나무에 잘 붙어 있는 가지는 봄이 되면 마침내 푸른 잎을 내놓습니다. 여름엔 녹음을, 드디어 가을엔 열매를 내놓습니다. 그렇지만 겨울이라는 세파와 환란과 역경과 핍박에 부딛치면 가지는 벌거벗은 채 마치 죽음과 같은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서도 살아있는 나무에 잘 붙어 있는 살아 있는 가지는 자신의 앙상한 삶에서 또다시 열매를 맺는 풍요로운 삶으로 옮겨집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온전히 연합된 그리스도인의 생활도 포도나무에 온전히 잘 붙어 있는 포도나무의 가지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온전히 연합된 그리스도인은 포도나무 가지처럼 죽음 같은 시련을 겪을지라도 그 몸의 머리 되시는 주님께로부터 사랑으로 돌보심을 받음으로 인하여 이 세상의 어떠한 무서운 세파에서도 온전히 보존되는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 같은 시련을 겪고 있을 때, 땅에서 우리와 동일한 시련을 체휼하신 주님께서 우리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동일한 고통을 느끼시며 우리를 위해 중보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추운 겨울이 되면 잎을 모조리 떨어뜨리고 거무스름한 빛깔로 벌거벗은 채 서 있는 앙상한 가지들의 모습은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절이 지나 봄이 오면 그 몸통의 뿌리로부터 수액과 자양분을 풍성히 공급받음으로 그 앙상했던 가지들이 생명이 온전히 보전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 또한 하나님의 섭리로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된 자이므로 삶에서 죽음 같은 겨울이 오나 머리되신 주님의 보호하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자로서 영원히 안전한 자들임을 또한 믿습니다.

넷째, 나무에 잘 붙어 있지 않은 가지는 나무에서 떨어질 때 곧 죽습니다. 가지는 나무에서 생명의 원천을 찾습니다. 그래서 나무에서 떨어지면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로부터 생명의 원천을 찾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자라는 성장의 능력도 그리스도에게서 나옵니다. 모든 믿는 자들의 착한 행실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능력 또한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성령으로부터 나옵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연합된 그리스도의 몸에서 결코 떨어져 나가 살 수 없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교제권에서는 떨어 나가 살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면서도 교회의 교제권 밖에서 살 수 있다고 믿고 그렇게 살면, 이때의 그리스도인은 가지가 나무로부터 수액과 자양분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거의 죽은 자와 같은 삶을 살게 되어 믿는 자로서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생명의 원천이신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로서 나무에 잘 붙어있어 열매를 많이 맺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은 나무이신 그리스도로부터 현재의 삶을 살 수 있는 생명과 힘을 얻는 자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은 그날에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서 그리스도로부터 풍성한 상을 기대하며 이 놀라운 주님의 오심을 참 유일한 소망으로 주님을 기다리는 자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 가지입니다. 우리가 그에게 붙어 있어야지만 살수가 있으며 그리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입니다.

EMMAUS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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