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새로운 출생 (BORN TO WIN)

                                                                                   -윌리암 맥도날드

                                              제 6 과

                                       본문 : 누가복음 19장 1-10절


                                      나무위로 올라간 난쟁이

                                (The Little man Who Was Up a Tree)


   예수께서 여리고를 통과하신다는 소식이 온 성내에 퍼졌을 때, 수많은 군중들이 그를 보기 위해 길가에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그 군중들 가운데에는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는 세리장이며, 돈 많은 부자였으며, 나름대로 유대교 신자였습니다. 그 역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급히 길가로 달려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장소에 이르렀을 때, 이미 많은 군중들이 몰려들어 큰 혼잡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앞으로 나가 보려고 애를 썼지만, 도저히 그 틈을 뚫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키가 매우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아이가 길거리 구경을 나왔다가 수 많은 어른들에게 가로막혀 그 뒤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것처럼 키 작은 한 남자가 군중들 뒤에서 갈팡질팡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상상만해도 웃음이 절로 나게 만드는 장면입니다.

   이 삭개오는 자기 동족인 유대인들과 유대관계가 별로 좋지 못한 처지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면 손가락질을 하며 수근 거렸습니다.

"유대인이 어떻게 우리를 압제하는 로마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가?" 이처럼 이웃과 사회로부터 소외 당하는 그는 매우 고독하였습니다. 당시 많은 세리들은 정해진 세금보다 많이 거두어 그 일부 중 얼마를 착복하곤 했습니다. 삭개오도 이런 불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모아 부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이력을 가진 삭개오는 이제 예수님을 만나보기를 원하는 아주 강한 열망에 차 있었습니다. 근래에 어느 한 젊은 유대인 전도자가 나타나 각처에서 많은 기적들을 행하며, 당시 일반 종교 지도자들과는 다른 하나님의 진리를 전한다는 소식을 그도 들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그 사람을 몹시 시기하고 미워하며 적대하고 있다는 사실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수많은 일반 백성들이 그가 가는 곳마다 항상 그 주위로 모여들고 그를 따르며 환영한다는 사실도 들었을 것입니다.  삭개오는 단순한 호기심 이외에 내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심령의 갈급함에 목말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번 기회에 반드시 예수님을 만나야겠다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애에 있어서 절호의 기회가 왔음을 알았습니다. 이와 같은 것들이 예수님을 만날 기회를 놓칠 수 없는 삭개오의 분명한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키가 작은 것이 그에게 큰 난관이었습니다. 그는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려 나아가는 길에는 언제나 그 앞길을 막는 장애물이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그는 그냥 포기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침 그곳 길가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가 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 나무를 타고 올라가면?" 섬광등처럼 놀라운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잠시 주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적어도, 그는 세무장이라는 지방 유지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러한 자신의 체면을 생각할 만도 했습니다.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세무장이 나무위로 기어 올라가다니!"


   체면을 대던져 버려라 (Forgetting Your Image)


   그러나 일생에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기회가 아닌가? 그는 그의 생애에 가장 중요한 기회를 결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예수께서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계신다." 고 하는 군중들의 외침 소리가 들렸습니다. 지금은 그에게 있어서 결단의 순간이었습니다. 더 이상 체면을 따질 때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체면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지체할 수 없는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재빠르게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길가로 가장 가깝게 뻗어 있는 가지 위에 앉았습니다. 자신의 발밑으로 군중들의 머리가 들어왔습니다. 예수께서 군중들에게 휩싸이어 그 지점으로 점점 다가오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과의 거리가 아주 가까이 이르렀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내려다 보고 있을 때, 그 앞을 지나시던 예수님의 발걸음이 갑자기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무 위를 쳐다보셨습니다. 예수님과 삭개오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삭개오야" 예수께서 분명 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미 그의 이름을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찾는 자의 이름을 이미 아십니다.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군중들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그 밤을 유하실 집은 오직 한 곳, 삭개오의 집뿐이었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삭개오는 급히 뽕나무에서 재빠르게 내려와 자랑스럽게 주님을 안내하여 자신의 집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날은 그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영광스러운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웃 사람들, 특별히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처럼 의롭고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의 집을 지나쳐 세리와 같은 불의한 죄인의 집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을 향해 수군거리며 비웃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그의 집으로 돌아 온 삭개오는 이제까지 자신이 재산을 다 불법적으로 모으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이제까지 자신이 부당하게 취득한 것을 되돌려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주 예수님께 두 가지를 약속하였습니다. 첫째로 자신의 전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둘째로 자신이 누구에게든지 부당하게 취한 돈에 대해서 네 배를 되돌려 갚겠노라고 약속하였습니다. 실제로, 율법은 그와 같은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율법보다 더 높은 차원의 새로운 삶의 원리를 따르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삭개오가 변화되어 참으로 믿는자가 된 것을 아셨습니다. 그는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너도 너의 조상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나타내었도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죄인의 집으로 들어간 것을 비난하던 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주위의 장애물들 (Getting Around The Obstacles)


   이제 다음으로, 이 이야기 가운데서 우리는 그 이면에 숨겨진 몇 가지 귀중한 교훈들을 더 배우게 됩니다. 삭개오는 비록 세상 적으로는 부자였지만, 세상물질 보다 더 귀중한 것에 대한 궁핍과 갈급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부자는 세상에 더 많이 관심을 갖고, 가난한 자는 하나님께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물질이 부족할 때 오히려 영적으로 부유해 질 수 있습니다. 특히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상속자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가 될 자들입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기를 위해 그에게로 다가가려 할 때 거기에는 장애물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그를 막는 장애물은 군중들이었습니다. 때로는 교만이 그 장애물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에 대한 두려워하는 마음과 체면이 장애일 수도 있습니다(잠 29:25). 때로는 부(富)도 장애가 될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좋아하는 죄의 쾌락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일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떠한 장애물이 생길지라도, 참된 믿음은 예수께로 나아가는 사람을 방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열정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길이 있기 마련입니다. 의심에게는 장애물들만 보이지만, 믿음에게는 길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은 우리 구주에 의해 결코 외면당하는 법이 없습니다. 항상 어느 사람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와 구주로 영접하게 될 때 주께서 그를 아시며 그의 이름을 그의 생명책에 기록하실 것입니다. 그 사람은 반드시 큰 소리로 외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그의 손을 들거나, 집회 중에 앞으로 나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 마음속 중심으로 그 앞에 참되게 아뢴다면 주님은 그의 마음을 다 아시며, 그의 간구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죄를 진정으로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일입니다. 물론, 그렇게 한 후, 그는 주님 앞에 그가 원하는 다른 것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는 주님께 더 이상 아무것도 숨기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의지하려면

   반드시 그 앞에 고백해야만 하오.

   비록 자신이 티끌 같은 존재임을 알지라도

   만일 그를 사랑한다면,

   그렇게 말씀드리시오,

   바로 지금,


   그가 했던 가장 현명했던 일 (The Smartest Thing He Ever Did)


   나무 위에 오른 것은 삭개오에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믿음의 선택은 그가 결코 바랄 수 없었던 놀라운 축복을 그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삭개오는 그날, 그의 집에 하나님의 아들을 손님으로 맞이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가 성경의 일부로 기록되게 되었으며, 그로 말미암아 21세기 이후의 우리 후세들에게까지 그의 이름이 전해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마침내 삭개오는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되었으며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말할 수 없는 놀라운 영적 축복을 얻게 됩니다.

   또한 이 이야기를 통하여 또한 우리가 얻게 되는 중요한 교훈은 어느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잘못했던 일들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만일 그가 지난 날 연장기구들을 훔친 일이 있다면, 반드시 이를 그 주인에게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 만일에 돈을 훔친 일이 있다면 그는 이를 갚아야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에게 잘못을 저지른 일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로 가서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와 같은 일을 실행하는 것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할 수 있는 놀라운 기회를 제공해 주기도 합니다. 그는 이와 같이 말할 수도 있습니다. "약 7년 전, 내가 당신을 위해 일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당신의 도구들을 훔친 일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나는 지난달에 구원함을 받았고, 그 후로 주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이와 같은 것들을 되돌려 주어야 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당신의 물건들을 훔쳤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물론 실제적으로 우리가 과거 지난날을 바로 잡는 일은 항상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 사람의 옛 주소를 잊었을 수도 있고 혹은 이미 그가 이 세상을 떠난 후 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하간에 언제든지 가능한 일이라면 지난날의 그 잘못들을 바로 잡는 일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실행해야 할 일입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삭개오는 죄인이었으며 그는 이를 인정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죄인을 찾아 구원하려 하심입니다. 모든 인간은 실제로 본성적으로 죄인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사실을 받아드리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거절함(unwillingness)과 무관심이 구원의 문을 닫아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오직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인정하는 자들만이 구원함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여리고 방문은 삭개오에게 있어서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예수님께선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길이었고, 십자가를 향한 최후의 여행길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삭개오에게는 구주를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만일 삭개오가 그 기회를 잃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실제로, 우리 인간들은 자신의 마지막 기회를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초청을 받았을 때 그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기회를 미루고 지체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주님을 영접해야만 할 시간이며,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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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    성


                                                       제 12 과


                                               여성의 은사 활용


   성령님께서 주시는 은사 중 어떤 은사가 남성적이며, 어떤 은사가 여성적인 것일까요? 이에 대해 상고해 보노라면 어떤 은사도 남녀중 한 쪽에 국한되어 있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이에 은사에 관해 상고하면서, 당신의 은사가 무엇일까를 염두에 두십시오.


                                                    은사의 정의


   신령한 은사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믿는 자에게 주시는 뚜렷한 역량으로, 하나님의 자녀를 교훈하고 권면하며 위로하는 데에 사용하도록 주신 것입니다. 신약에 기록된 '은사'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은혜' 라는 의미의 '카리스' 라는 어원에서 나온 '카리스마' 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은사들은 인간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목적으로 주어진 것이지 개인적인 기쁨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은사의 유래


   영적 은사에 관해 기록되어 있는 주요한 세 대목을 살펴보면, 은사의 근원에 대해서 성부, 성자, 성령으로 말씀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로마서 12장 3절에서는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고  말씀하시며, 에베소서 4장 7절에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라고 말씀하시며, 고린도전서 12장 1, 11절에서는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고 했습니다.


                                                      종류


   로마서 12장 4~8절, 고린도전서 12장 7~11절, 27-31절, 에베소서 4장 7,8절, 11~13절을 주의 깊게 읽으면서 기록되어 있는 은사들을 열거해 보시기 바랍니다.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 편의상 말씀의 은사, 봉사의 은사, 표적의 은사로 구분해 봅니다.


 말씀의 은사 : 사도, 예언, 전도, 목회, 교육, 권위, 지식, 지혜

 봉사의 은사 : 협력, 구제 ,다스림, 긍휼, 믿음, 분별,

 표적의 은사 : 이적, 신유, 방언, 통역,


1. 말씀의 은사

(1) 사도

   이는 '보냄을 받은 자' 라는 뜻으로 오늘날의 선교사와 같은 의미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모든 성도는 선교사로서 말씀을 전하도록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물론 좁은 의미에서 사도의 은사는 주 예수님께서 활동하실 때부터 함께한 자들로서, 주님께서 친히 부르신 자들이며, 주님의 부활의 증인인 12사도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의 기초를 세웠으며(엡2:20), 특별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특별한 표적으로 입증했습니다. 이 특수한 은사는 초대 교회 당시에만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2) 예언

   예언의 경우에도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로 각기 쓰여지고 있습니다. 넓은 의미에서의 예언이란 미리 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전도가 곧 예언입니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의 예언의 은사는 특수한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 이를 선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은사는 신약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는 필요했으나, 하나님의 계시가 다 기록되어 성경이 완성됨으로써, 새로운 계시가 더 이상 필요치 않으므로 불필요하게 되었습니다.

(3) 전도

   이 은사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분명하게 전하는 특수한 능력으로서 결과적으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은사는 개인적일 수도 있고, 대중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이 은사를 특별히 가지고 있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전도인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딤후 4:5).

(4) 목회

   이 은사는 목자가 자기의 양을 돌보는 것처럼 성도들을 인도하며 먹이고 악으로부터 보호하며 돌보는 특수한 능력을 가리킵니다.

 (5) 교육

   이 은사는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분명하게 설명하고, 효과적으로 적용하게끔 가르치는 초자연적인 능력입니다. 이 은사는 단순히 지식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이들로 하여금 성경의 교훈을 실천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6) 권위

   권위(權威)는 신앙의 동지들에게 어떤 행동을 강권하거나, 실패와 시련을 당하는 자들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하는 남녀가 곧 영적 상담자입니다.

 (7) 지식

   이 은사는 믿는 자가 하나님의 교훈을 연구하고 요약함으로써 거룩한 진리에 대해 심오한 깨달음을 얻게 하는 것으로서,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도록 해줍니다.

 (8) 지혜

   이 은사는 성경의 진리를 필요에 따라 생활상의 문제에 적용함으로써 말씀의 지식을 매일의 체험에 활용하는 것입니다.


2. 봉사의 은사

(1) 협력

   이 은사는 배후에서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충성스럽게 봉사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 은사는 다른 성도들이 주님의 일을 하는 데 실질적으로 도와 줌으로써 다른 성도들을 영적으로 격려하고 강건하게 해 줍니다. 이 은사에는 신약 성경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는 기도와 접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 구제

   이것은 자신이나 자신의 재물을 주님의 일과 믿는 자들에게 희생적이면서도 슬기롭게, 자원함으로 바치는 것을 가리킵니다.

 (3) 다스림

  이 은사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일과 믿는 자들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우며, 이를 실행하도록 성도들의 동기를 유발시키는 일을 합니다.

 (4) 긍휼

   이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의 각 지체가 당하게 되는 고난에 실제적이고 동정적인 사랑을 보여주며, 말로만 동정하지 않고 행동으로 희생을 보여주는 성령이 주시는 능력입니다.

 (5) 믿음

   물론 이것은 구원받는 믿음 이상의 것입니다. 이 은사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깨닫는 능력이 있으며,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능히 하실 것이라고 믿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은사를 가진 사람은 큰 꿈을 꾸며, 하나님을 위해 큰 일을 해냅니다.

 (6) 분별

   모든 성도들에게 영을 분별할 책임이 있지만(요일 4:1), 어떤 성도들은 남다른 분별력을 갖고 있습니다. 진리의 영과 거짓 영을 분별하는 능력, 하나님께로서 온 영과 그런 것처럼 가장하는 영을 분별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은사는 신약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 특별히 필요했습니다.


3. 표적의 은사

 (1) 이적

   이 은사는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경이로운 일을 행하는 것이며, 설교자 자신과 그가 하는 말씀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확증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은사는 사도시대에 필요했습니다.

 (2) 신유

   이것은 모든 질병을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치유하는 은사입니다. 이것은 일시적으로 초대교회 당시에 말씀을 확증하기 위해 필요했던 은사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3) 방언, 통역

   이 은사는 자신이 배운 적이 없는 언어이지만,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언어로 말하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리킵니다. 이것도 사도시대의 특징적인 은사로서 설교자와 그의 말씀을(the messenger and his message) 확증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 표적의 은사가 다른 은사와 다른 것은 어느 곳에서도 이를 행하라고 명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적이나 신유나 방언은 성도들에게 권하는 은사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막 16:15), 목회(갈 6:2, 10), 교육(골 3:16), 구제(고전 16:2) 등은, 비록 특정한 은사가 없을지라도 행하라고 권면하십니다.


                                                은사의 발견


   내가 가지고 있는 은사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은사를 알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는 일단 시도해 보는 것입니다. 성실하게 노력하고 기도하면서 시도해 본 후에는 다음의 문항에 따라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는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은사대로 일하고 있다면 그 일을 하고 있는 당신은 만족할 것입니다.

   둘째, 다른 이들이 내가 이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는가?

   대개 자기 자신보다도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활동에 대해 잘 분별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속기가 대단히 쉽습니다.

   셋째,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위해서 쓸모가 있는가?


                                                 은사의 계발


   은사를 계발하는 데에는 인내와 근면을 요하며, 더욱이 은사를 계발하기도 어렵거니와 은사를 활용할 기회를 찾아내기도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은사가 신실하게 활용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벧전 4:10) 거나, "네 속에 있는 은사...조심없이 말며" (딤전 4:14) 라거나,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딤후 1:6) 하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를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머리로부터 받게 된 모든 은사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올바르게 세우고 그 기능을 수행하게 하는 데 필요합니다. 비록 작은 악기인 피콜로도 장엄한 오케스트라에서 자신의 몫을 연주해 내며, 이것이 제 구실을 못했을 때에는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듣는 모든 이들이 이를 쉽게 알아 차리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책임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상호간의 영적축복과 풍요를 위해서 그들의 은사가 적극 활용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사도 바울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 말씀하심으로 은사를 계발하거나 활용하기에 앞서 사랑의 필요를 역설했습니다(고전 12:31~13:13). 사랑이 없는 은사의 활용은 아무런 유익이 없지만, 하나님과 성도들을 사랑함으로 은사를 활용하는 성도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을 전하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최상의 은사가 행해지는 것보다 성도의 생활 속에서 소리없이 맺히는 성령의 열매를(갈 5:22,23)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영적 은사를 발견하고 계발함에 있어서 '더 좋은 길' 이며 더 중요한 길인 사랑의 길을 소홀히 하지 않음으로써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본 강좌의 서문에서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자랑스러운 일은 없다' 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서 많은 교훈을 받았거니와,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경륜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며, 그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입니다.(롬 8:29). 우리 속에 주님의 형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의 심령을 그리스도로 채우고, 우리 속에 늘 주님의 말씀이 거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수고와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다만 매일 매일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복종시킴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할 때 성령님께서는 이렇듯 헌신하는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셔서 우리로 우리 주님의 형상을 닮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여성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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