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성도들'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6.04.29 주님 위해 핍박 받는 사람들 - 2 더 큰 사랑이 없나니 (2)

                          주님 위해  핍박 받는 사람들

                                                                        -  리챠드 범블란트

                              2  더 큰 사랑이 없나니 (2)                 




   잠깐의 자유- 재 투옥


   1956년까지 나는 8년 반 동안이나 갇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몸은 심히 허약해졌고 보기 흉한 흔적만 남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 뭇매와 굶주림, 정신적 고통, 질문, 위협, 공갈, 비웃음 등을 얼마나 많이 당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고문들이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얻을 것이 없자 그들은 나를 석방했습니다. 한편으로 많은 사람들이 나의 석방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나는 감옥에서 나온 후 복음을 전하다가 일주일 만에 다시 붙잡혀갔습니다. 나는 일주일동안 두 차례의 설교를 했습니다. 당국은 나에게 설교는 물론 다른 어떤 활동에 참가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그 이유를 묻자 그들은 내가 "'참고,참고, 또 참아야 합니다"라고 설교했다며 이는 내가 사람들에게 미국 사람들이 올 때까지 참으라고 한 것과 같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내가 또 사람들에게 "'누구도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라고 했으니 이는 내가 사람들에게 공산당은 꼭 망한다는 반혁명적인 설교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나의 공식적인 사역은 끝나고 말았습니다.

   공산당국은 내가 이제는 겁을 먹고 목회활동을 더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가족들의 지지를 받으며 지하교회에서 주님의 일을 계속했습니다. 나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숨어있는 교회들에서 주님을 증거했습니다.

   나는 내 몸에 남은 상처를 산 증거로 사람들에게 무신론의 죄악과 부패성을 낱낱이 폭로하여 믿음이 약한 형제들이 주님을 믿고 용감하게 싸울 수 있도록 크게 격려했습니다.

   우리는 일심 단결하여 서로 도우며 주님의 도우심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보위원들의 끊임없는 미행으로 마침내 나는 석방된지 3년 만에 다시 투옥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가족들은 투옥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5년 반 이라는 기간이었습니다. 여러 면에서 정황이 더 어려웠습니다. 처음부터 건강상태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지하교회는 계속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전도하고 그들은 때리고


   감옥 내에서도  전도는 절대 금지되었으며 전도하다 잡히면 심한 고문을 당합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은 주님을 위하여 대가를 치를 결심이 확고했습니다. 우리는 전도하고 그들은 핍박합니다. 우리는 전도함으로 기쁘고 그들은 우리를 때릴 수 있어서 기뻤을 것입니다. 그러니 쌍방에 다 좋은 일이었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예를 들면 이러합니다. 한 형제가 감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있을 때 갑자기 간수들이 나타나 그를 고문실로 끌고 가 때립니다. 피투성이를 만들어 감방에 끌어와 바닥에 놓고 갑니다. 그러면 그 형제는 서서히 몸을 일으켜 옷매무새를 바로하며 "여러분, 내가 아까 어디까지 전했습니까?"라고 물으며 계속하여 복음을 전합니다.

   어떤 때는 성도들이 성령에 충만하여 전도합니다. 위험한 환경에서도 전합니다.


   겔라 감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레큐 형제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부위원들은 몇 주일 동안 그를 때려서 죽였습니다. 때리는 방법에 있어서도 매우 악독했습니다. 그들은 고무곤봉으로 그의 발바닥을 때리고 몇 분 후에 또 때리고, 몇 분 후에 또 때리다가 정신을 잃으면 의사를 불러 주사를 맞히고 그가 회복하면 음식을 먹여 힘을 얻게 하고는 또 반복적으로 그렇게 때렸습니다. 결국 그 형제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런 고문 방법으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던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이었던 렉크는 훗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너희들은 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너희들의 생사권한은 나한테 있다. 하늘에 있는 너의 하나님도 너를 구원하지 못한다. 모든 것은 내가 결정하기에 달려있다. 내가 너를 살리면 사는 것이고 죽이면 너는 죽어야만 하니까 내가 하나님이지.' 이 말을 들은 그레큐 형제는 아주 위험한 처지에서도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당신들은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그분의 형상대로 만드셨으므로 당신들도 하나님의 성품을 지녔습니다. 당신들은 결코 핍박자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당신들도 하나님을 닮은 존재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너희들은 신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당신들의 마음속에는 신성이 있습니다. 당신들처럼 예수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렉크 선생, 당신의 천직은 하나님을 닮는 것이지 핍박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바울처럼 나도 그레큐 형제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통해 주님께서 나를 부르셨음을 훗날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육체적 고통을 당할지라도 영이 사람의 육체를 주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지급되는 식량은 매주 한 조각의 빵과 매일 나오는 국물뿐이었습니다. 이런 때에도 우리는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매 열 번째 주일마다 우리는 자신의 빵을 십일조로 몸이 약한 형제들에게 주었습니다.


   사형언도를 받은 한 형제님은 마지막으로 아내와 면회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내가 나를 죽이는 저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시오. 그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소. 내가 마지막으로 부탁하고 싶은 것은 당신도 저 사람들을 사랑해주라는 것이요. 원망하지 말고, 우리 천국에서 만납시다."

   이 말은 옆에 서 있던 한 보위원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후에 그는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했으며 이로 인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가 감옥에서 나에게 들려준 것입니다.


   마체뷔치 형제는 18살부터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심한 핍박으로 그는 폐결핵을 앓고 있었습니다. 아 사실을 알게 된 그의 부모들은 마이신 백 개를 얻어 들여보냈습니다. 이 약은 정말 그의 생사를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형무소의 정치 지도원은 그 어린 형제를 불러 그에게 약들을 보이면서 "보라, 이 약은 너의 생명을 건질 수 있다. 규정상으로 너희들은 집에서 보낸 물건을 받을 수 없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너를 돕고 싶다. 너는 아직 젊은데 이렇게 죽을 필요는 없지 않는가. 그러니 만약 네가 나에게 너의 동료들을 고발하면 약을 줄 수 있다" 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죽으면 죽었지 그들을 배반하고 비겁하게 살고 싶지 않으니 그 조언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그 지도원은 "너는 진짜 사내다. 나도 너에게서 비밀을 얻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게 한 가지 좋은 수가 있다.  너희들 중에는 이미 우리의 첩자가 된 자들이 있다.  그들은 공산주의를 신봉하고 너희들을 고발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우리는 그들이 정말 그렇게 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다. 네가 볼때 그들은 배신자들이지. 네가 너의 동료들을 밀고하지 않음을 나도 안다. 그러나 그 배신자들만 감시해주면 너는 살 수 있다." 그러자 그 형제는 즉시 "나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들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비록 그 사람들이 우리를 팔았지만 나는 결코 그들에게 복수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나는 공산당과 타협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마체뷔치 형제는 감방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사랑은 한 인간의 생명에 대한 갈망과 미련까지도 다 극복할 수 있게 합니다.

   나는 감옥에서 보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 기간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들을 체험했습니다. 나는 원래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에 불과했지만 영광스럽게도 수많은 위대한 성도들, 신앙의 영웅들과 함께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죽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영적인 아름다움은 글로 표현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하여 죽음도 웃으며 맞이했습니다.


   내가 이 책에 서술한 실례들은 특별한 사실들이 아니라 많이 일어나는 일들임을 알려드립니다. 지하교회 성도들은 초자연적인 것을 자연적으로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감옥에 갇히기 전에 나는 하나님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지하교회를 그분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합니다. 나는 그들의 아름다움, 그들의 희생정신을 보았습니다.


   나의 가족이 당한 일들


   나는 감옥에 갇힌 후 가족의 소식을 전혀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몇 년 후 나는 아내도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자들이 겪는 고통은 남자들보다 더 심했습니다. 젊은 자매들은 간수들에게 모독, 희롱, 심지어 강간까지 당했습니다.

   그들은 운하를 파야 했는데 남자들과 똑같은 작업량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또 창녀들을 감독으로 내세워 성도들을 학대하게 했습니다. 굶주림과 고역에 시달린 여성들은 생존을 위해 뱀과 쥐를 잡아먹었으며 풀을 뜯어 먹어야 했습니다. 일요일이면 간수들은 여성들을 다뉴브 강에 밀어 넣고 다시 그들을 끌어내는 것을 한가지 희락으로 여겼습니다.

   나와 아내가 잡혀 들어간 후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유랑아가 되었습니다. 아들 미하이는 어려서부터 믿음이 강했지만 9살 밖에 안 되었던 그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그의 신앙에 동요가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 핍박받는 그리스도인들의 가족들을 도와주는 것은  법에 금지된 일이었습니다. 미하이를 몰래 도와주던 두 자매님들이 잡혀가 매를 맞아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또 한 자매님은 위험을 무릅쓰고 미하이를 집에 두었다가 잡혀 8년간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녀의 이빨은 모두 구둣발에 채이어 부러졌으며 뼈들이 골절되고 노동력을 상실한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미하이, 예수님을 믿어라!"


   미하이는 11살부터 밥벌이를 해야 했습니다. 고통은 그의 믿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아내가 갇힌 지 2년 만에, 미하이는 어머니와의 면회 허락을 받았습니다. 미하이는 쇠창살 사이로 여위고 지친 모습, 남루한 죄수복을 걸친 어머니를 첫 눈에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아들을 보는 순간 어머니가 외친 것은 "미하이야, 예수님을 믿어라"였으며 이에 격노한 간수들은 그녀를 끌고 들어갔습니다. 눈물 흘리며 끌려가는 어머니를 지켜 본 미하이는 그 자리에서 구원을 얻었으며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처럼 어려운 처지에서도, 모진 박해를 받으면서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신뢰하고 사랑한다면 그 예수님은 필경 믿을 만한 구세주라고 미하이는 생각했습니다. 훗날 미하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것을 말하지 않더라도 나의 어머니의 신앙만 보고도 나는 예수님을 믿겠습니다."

   미하이는 학교에서도 끊임없이 생존을 위하여 투쟁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모범학생이었으므로 당연히 소년단원임을 상징하는 붉은 넥타이를 수여받았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나의 부모님들을 옥에 가둔 당신들의 넥타이를 매고 다닐 수 없습니다."

   이 사건으로 미하이는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몇 년 후 그는 "기독교인 감금자"의 자식이라는 신분을 감추고 다시 입학했습니다. 후에 학교에서는 성경을 반대하는 작문을 쓰도록 지시했습니다. 미하이는 작문을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성경을 반대하는 이유는 불충분하며 인용된 내용들도 진실치 못합니다. 나는 선생님도 성경을 읽어보지 못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성경은 과학과 아무런 충돌도 없습니다."

   미하이는 또 다시 퇴학되어 2년 동안이나 학교에 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미하이는 신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학교는 명목상 신학교였지 실제로는 "막스주의 신학"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모든 교수 내용들이 막스주의를 지침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미하이는 수업시간에 공개적으로 항의를 했습니다. 다른 학생들도 이에 호응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또 쫓겨났습니다.

   한번은 수업시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무신론에 관한 연설을 하고 있을 때 미하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청소년들을 나쁜 길로 이끄는데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습니까?" 라고 반문했습니다. 전 학급 학생들이 그를 지지했습니다. 이런 때는 한 사람만 먼저 대담하게 나서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호응해 나섭니다.

   학교에 다니기 위해 미하이는 자주 자기가 범블란트의 아들임을 속여야만 했으나 얼마 못가서 사실이 알려져 학교에서 쫓겨나는 신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미하이는 또한 굶주림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사회주의 나라에서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의 가족들은 굶주림에 시달려 신음합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을 도와주는 일을 범죄 행위로 정해 놓았습니다.

  

Posted by 행복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