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새로운 출생 (BORN TO WIN)

                                                                                                         -윌리암 맥도날드

                                                                     제 7 과

                                                     본문 : 요한복음 8장 2-11절


                             간음 중에 잡혀 온 여인             

             (The Woman Who Was Caught in the Act)


   예수님께서 산에서 밤이 맞도록 이슬을 맞으시면서 홀로 기도하신 후, 이른 아침, 그가 종종 하시던 대로 예루살렘 성전으로 오셔서 그의 주위로 몰려든 군중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언제나 예수님께 대해서, 그리고 그의 가르침에 대해서 관심을 나타내는 군중들을 볼 때마다 시기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백성들 앞에서 예수님을 나쁘게 보일 수 있는 계교를 꾸미고 실행했습니다.

   그들은 간음 현장에서 잡아 온 한 여인을 예수님 앞에 끌고 와 세웠습니다. 그들은 이런 여자는 "돌로 쳐 죽이라" 고 한 율법을 예수님에게 상기시켰습니다 (레 20:10 ; 신 22:22). 그리고 예수님의 판결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진정한 목적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만일 그가 대답하기를 돌로 여인을 치라하면 그는 자비로우신 분이 아닙니다. 만일 그 여인을 놓아 주라 하면 그는 율법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어떻든지 간에, 모두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대답 하시기 전에, 예수께서는 몸을 구부려 그의 손가락으로 땅 위에 글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쓰신 이 글에 대해서 수많은 추측이 제기 되었지만, 그러나 그들의 모든 상상은 추측일 뿐, 그것은 영원한 신비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그가 쓰신 글을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참소자들은 이 여인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계속 그의 대답을 재촉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천천히 그의 몸을 일으키시며 아주 단호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혹은 동일한 죄를 범하지 않은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리고 그는 몸을 구푸리고, 다시 땅위에 글을 쓰셨습니다. 그리고 역시 아무도 알 수 없는 신비한 글을 남기셨습니다. 그가 쓰신 글을 추측하려는 노력은 모두 쓸데없는 일일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모두 양심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빠뜨리려는 그들의 함정에 오히려 자신들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젊은 이로부터 노인에게 이르기까지 그들은 손에 들었던 돌을 내려놓고, 소리 없이 모두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예수께서는 여인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어디로 갔느냐? 너를 정죄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여인은 대답하였습니다. "주님, 아무도 없나이다." 예수께서는 그녀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죄를 지어도 괜찮은가? (Is Sin Okay With God?)


   본 대목을 읽는 사람들 가운데 신중하지 않은 어떤 이들은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인을 실제로 용납하신 것으로 쉽게 오해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두 번째로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성적 차별 행위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그녀의 죄악을 사람들 앞에 공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간음은 남 녀 두 사람간의 합동범죄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남자는 내버려두고, 여자에게 모든 비난과 수치와 죄를 뒤 집어 씌웁니다. 이런 현상은 이 사건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닙니다. 인간의 법은 주로 남성들의 입장에서 세워지고 여인은 벌하고 남자는 자유롭게 방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간음죄에 대해 범죄자들은 돌로 쳐 죽일 것을 명령합니다. 이 이야기에 주의하여 살펴보면 예수께서는 율법을 무시하지 않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사건에 있어서 율법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실제로 그는 율법을 옹호하셨으며, 그 율법의 요구대로 시행하라고 그들에게 판결하셨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었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율법을 무시하거나 율법을 개의치 않는 것처럼 행동을 취하셨다면 그는 의롭지 못한 분입니다. 그러나 그는 율법을 인정하셨습니다.

   "죄(간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이처럼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만일 너희 중에 이 여인과 같은 죄를 범한 자가 있다면, 그 또한 반드시 돌로 침을 받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동일한 죄를 범하지 않은 자만이 그 여인을 향하여 돌을 던질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도 그 여인보다 더 의로운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양심에 가책을 받아 스스로 그 자리에서 물러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죄인은 다른 죄인을 정죄할 수도, 그 죄를 처벌할 수도 없습니다.

   11절을 주목해 보면 여인이 예수님께 주(Lord)라고 고백한 사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그녀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의 고백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녀는 주님을 향해 "저는 제 자신이 죄인임을 압니다. 저는 범죄 현장에서 잡혀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죄인은 예수께서 약속의 구주이심을 믿고, 저의 주와 구주로 영접합니다. 저는 주께서 제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또한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한 것으로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대답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께 참된 회개와 믿음을 고백할 수 있도록 우리 심령을 감화시켜 줍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 가서 다시 죄를 범치 말라."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충만한 은혜와 진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 하심은 은혜입니다. "가서 다시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심은 그의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은혜와 함께 하시고, 그 위에 소금을 치십니다. 첫째 부분은 은혜고 둘째는 진리(소금)입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 하노라" 하신 구주의 말씀은 누구든지 그를 찾는 자에게 주시는 그의 죄 용서함(forgiveness)과 사죄(pardon)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롬 8:1). 그는 누구든지 자신의 말씀을 듣고 자신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로 믿는 자들에게는 결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요 5:24). 역시 요한복음 3장 17-19절을 읽어 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가라, 그리고 다시 죄를 범치 말라'고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주님께서 참된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들의 마음과 말과 행동으로 날마다 죄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셨을까요? 물론 그는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새로 구원함을 얻고 새 생명을 얻은 그 여인을 주님이신 그 자신의 완전한 기준 앞에 세우기를 원하셨습니다. 그의 뜻은 우리들이 죄를 짓지 않기를 원하십니다(요 1서 2:1). 의로우신 하나님은 죄를 용납하실 수 없습니다. 만일 예수께서 "가라 그리고 다시 죄를 조금만 짓도록 하라." 고 말씀 하셨다면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어떠한 죄도 용납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하박국 1:13).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녀에게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삶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따르는 것임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가라 그리고 다시 죄를 범치 말라" 하신 말씀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하라" (벧전 1;16)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 또한 "너희 몸은 성령의 전" 이라고 하였습니다.

   간음 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을 용서하시고 그녀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한 삶을 살도록 변화시키는 역사가 바로 놀라운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의 구속이고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을 바르게 하지 않을 경우? (What Happens When You Don't Go Straight)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함으로 참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이 삶 가운데 죄를 범하고, 그 죄를 바르게 해결하지 않을 때 어떻게 될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이들은 "만일 그리스도인이 구원함을 받고 다시 죄를 범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러면 "구원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인가?" 라고 물을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실제적인 여러 가지 중요한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그리스도인은 죄 없는 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죄를 덜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롬 6;14).


   2.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할 때 그의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구원의 기쁨을 잃게 됩니다(시 51:12). 여전히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과의 그의 관계는 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행복한 가족으로서의 하나님과의 그의 교제는 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3. 모든 믿는 자들의 죄의 형벌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 십자가에 의해 지불되었습니다(이사야 53:6).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우리의 모든 죄는 미래였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위해 그가 죽으셨습니다. 만일 예수께서 내 죄의 빚을 갚아주셨다면 내가 갚을 빚은 없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중 지불서를 요구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거기에 이중 유죄판결이란 없습니다.


   4.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할 때 그 결과에 따른 징계에서도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범죄 한 그리스도인은 여전히 믿는 자로서 그의 구원에 대한 보장을 잃지는 않지만, 하나님은 땔감을 위한 그의 장작 헛간(woodshed)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하는 그의 자녀들에 대해서 그의 징계를 위한 대비를 하고 계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죄 값이 이미 다 치루어 졌다는 의미는 나는 결코 지옥으로 가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이지만, 그가 범한 죄는 그의 생애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믿는 자의 범죄는 하나님의 징계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질병, 슬픔, 사고나 혹은 심지어 자신의 죽음일 수도 있습니다(참고 고전 11:27-32).


   5. 믿는 자의 생활 가운데에서 고백하지 않은 죄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상급을 잃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고전 3:12-15). 또한 죄로 인해 잃게 되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공백기간은 곧 자신에게 주어진 영원한 생명 가운데 그 일부를 잃는 것입니다.


   6.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이 범죄 했을 때를 위한 대비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요한 1서 2:1 이하에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변호사)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믿는 자를 위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변호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녀들의 죄를 "내게로 계산하라." (Charge that to my account)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죄를 범한 믿는 자들을 위한 대언자로서, 죄를 자백하는 그의 자녀들을 위해 끊임없이 은혜의 보좌 앞에서 제사장의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참고 잠 28:13 ; 히 4:14-16).


   7. 믿는 자가 그의 죄를 고백하는 순간 그의 죄는 사함을 받고, 다시 영적인 하나님의 행복한 가족으로서 회복이 이뤄집니다. 성경은 이렇게 약속의 말씀을 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신실하고 의로우심으로 우리 죄를 사하시며, 또한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다"(요한1서1:9).


   8. 한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될 때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 들어와 함께 거하게 되십니다(고전 6;19). 그리고 성령은 믿는 자에게 시험을 이길 힘을 주십니다. 믿는 자들은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라던가 혹은 "사탄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라고.

   성령은 믿는 자가 시험하는 자에게 "아니다." (NO) "물러가라"라고 거절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만일 그가 불같은 시험의 순간에도 주를 부르면, 주께서는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반드시 그에게 주십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잠언 18;10).

  

   간음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의 이야기 속에는 흥미로운 역설적 교훈이 담겨있습니다. 참소를 당했던 여인은 하늘나라에 가게 되고, 반면에 여인을 참소한 자들은 지옥을 가게 된 것입니다(만일 그들이 후에 회개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예수께서는 언젠가 종교지도자들을 향하여 "세리와 창기가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녀는 아마도 자신은 멸망 받을 자로 태어났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죄에서 자신을 돌이킨 후 그녀는 구원받은 자로 다시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She probably thought she was a born loser. As it turned out, she was born to win.)

   여러분에게도 오늘이 이런 구원함을 얻고 다시 태어나는 날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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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올바른 분별


                                         제 5 과

                       율법과 은혜


   진리의 말씀 가운데는 크게 두 흐름이 있는데, 이는 율법과 은혜입니다. 사실상 상호 대조를 이루고 있는 이 원리들은 각각 가장 중요한 두 시대, 곧 유대교 시대와 기독교 시대의 특징을 이루고 있습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 1:17)


   물론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는 은혜와 진리가 없었다거나 모세 이전에는 율법이 없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고 금한 것은 율법이었습니다(창 2;17).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범죄한 그 죄인들을 찾아 가죽옷을 입히신 그 아름다운 일은 확실히 은혜였습니다(창 3:21).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로움이 되신 것을 잘 상징합니다(고전 1:30). 이렇듯 하나님의 뜻이란 의미에서의 율법과 하나님의 선이란 의미에서의 은혜는 언제나 있었으며 이는 성경이 곳곳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도처에 언급되어 있는 세세한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고, 이는 시내 산 때부터 갈보리 때까지의 온 시대를 지배하며, 또한 그 시대의 특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은혜가 갈보리에서 시작되어 그 이후 시대를 지배하며 그 특징을 이루고 있는 것과 똑같습니다. 은혜의 시대는 교회의 휴거와 더불어 끝나는 것으로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느 시대에서도 결코 이 두 원리를 애매하게 섞지 않았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율법은 언제나 은혜와 구분되며 성격에 있어서 이질적이며 또한 역사하는 형태도 이질적입니다. 즉 율법은 하나님께서 금하시고 요구하시는 것이고, 은혜는 하나님께서 권하시고 부여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은 정죄하는 일을 하고, 은혜는 용서하는 일을 합니다. 율법은 저주하며, 은혜는 저주에서 속량합니다. 율법은 죽이나, 은혜는 살립니다. 율법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입을 닫게 하고, 은혜는 모든 입을 열어 하나님을 찬미하게 합니다. 율법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큰 거리를 만들어 놓지만, 은혜는 범죄한 사람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오게 합니다. 율법은 말하기를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고 하고, 은혜는 말하기를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라고 합니다. 율법은 말하기를 "너희 원수를 미워하라"고 하지만 은혜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합니다. 율법은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은혜는 "믿어라 그러면 산다"고 말합니다. 율법은 션교사를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전파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율법은 가장 선한 사람도 정죄합니다. 그러나 은혜는 가장 악한 사람이라도 값없이 의롭다고 합니다(눅 23:43 ; 롬 5"8 ; 딤전 1:15 ; 고전 6:9-11). 율법은 시험의 제도 입니다. 그러나 은혜는 은총의 제도입니다. 율법은 간음한 여자에게 돌을 던집니다. 그러나 은혜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 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말합니다. 율법 밑에서는 양이 목자의 손에 죽습니다. 그러나 은혜 아래에서는 목자가 양을 위하여 죽습니다.


* 어느 곳에서나 성경은 율법은혜를 예리한 대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율법은혜가 혼합되면 그 양자가 다 손상됩니다. 율법은 그 엄위성을, 그리고 은혜는 그 무료성(無料性)을 박탈당하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 언급된 율법이란 대체로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그 율법을 뜻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롬 7;23만 유일한 예외입니다). - 저자는 이 문제를 충분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실은 율법이 모세의 율법을 언급하고 있지 않은 예들이 많이 있다. 롬 3;27과 갈 6;2도 그 좋은 예들이다-편집자 註.  때로는 모세 율법이 이른바 도덕 율법(롬 6:14 ; 갈 2;16 ; 3:2), 혹은 십계명(롬 3;19 ; 7:7-12). 그리고 의식의 율법 (골 2;14-17)을 총망라한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또한 의식의 율법 가운데는 성막(출 25장-30장)과, 레위기 중의 제사법(레 1장-7장)에 나타난 바와 같이 대제사장과 희생 제물이 되신 주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아름답게 예시하는, 그 신기한 예표가 간직되어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 예표들은 언제나 신령한 사람들의 경탄과 기쁨이 되어 왔습니다.


   시편의 표현들에서도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儀文)의 직(고후 3:7)으로만 국한하여 생각한다면 설명이 불가능하지만, 그리스도나 구속함을 받은 자들에 대해 언급된 것으로 볼 때는 그뜻이 선명해집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 1:2)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시 119:97).


1. 율법과 은혜에 관한 세 가지 오류


   1) 무법주의

   곧 성도들은 이제 어떤 법의 구속도 받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즉, 성도는 자신의 선행없이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헤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이후로도 더 이상 거룩한 생활을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딛 1;16).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유4)


   2) 의식주의

   이 주장의 원래 형태는 레위기 중에 나타난 모든 규례를 성도가 다 준행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 ."(행 15:1) 오늘날에 와서 이 오류는 교회의 예식이 구원을 얻는 데 필요 불가결하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3) 갈라디아주의

   이는 율법과 은혜의 혼합주의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얼마간의 은혜와 얼마간의 율법으로 말미암는다고 하는 주장입니다. 또 다르게는 은혜로 인해 완전히 무력한 죄인이 율법을 지킬 수 있게 된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오류들에 대해서 갈라디아서는 엄숙히 경고하고, 대응할 수 없는 강력한 논리로 이렇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2, 3)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6-8)


2. 율법과 은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1) 율법이란?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롬 7:14)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롬 2:22)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 줄 우리는 아노라"(딤전 1:8)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 ."(갈3;12)


   2) 율법을 법 있게 사용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 7:7)


   * 13절도 보십시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0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 ."(갈 3: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롬 3:19)


   율법은 오직 "무슨 일이 있어도"라고 말합니다. 이는 곧 정죄를 뜻합니다. 또한 율법은 "어찌되었든지"라는 한 단어로 표현합니다. 이는 오로지 순종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 2;10)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고후 3:7) "정죄의 직분"(고후 3:9)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롬 7:90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 15:56)


   결국 하나님께서 율법 없이 2500년 동안 살아 온 인간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먼저 유죄한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의 죄를 깨닫게 하고, 또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요구에 비추어 자신이 완전히 무력함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습니다(요 1;17 ; 갈 3:17). 즉 율법은 순전히 그리고 오로지 정죄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3) 율법이 할 수 없는 것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갈 3;11)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롬 8;3)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지라"(히 7;19)


   4) 성도는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로마서 6장은 침례가 상징 하는 바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선언한 후(롬 6;1-10) 계속해서 11절부터 성도의 생활규범, 곧 행동강령들을 말씀하고 잇습니다. 그것이 나머지 열두 절의 주제입니다. 특히 14절은 성도가 죄의 지배 곧 죄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을 받는 대 원칙을 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책은 그리스도의 피로 해결된 것입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라"(롬 6;14)


   그런데 이 말씀을 근거로 혹 경건한 생활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괴악한 무법주의에 빠질까 염려하여 성령님께서는 즉각 이런 말씀을 덧붙였습니다.


   "그런즉 어찌 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롬 6;15)


   진정 거듭난 사람들은 이 말씀에 다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한편 로마서 7장은 율법에서 해방을 받는 또 하나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롬 7:4-6) 이 말씀에 나타난 율법은 의식의 율법이 아닙니다. 이는 7절을 보면 더욱 분명해 집니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갈 2;19) "믿음이 오기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갈 3;23-25)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밥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줄 우리는 아노라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아니요. . "(딤전 1: 8, 9)


   5) 성도의 생활규범은 무엇인가?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12,13절도 찾아보십시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엡 4:1, 2)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 ."(엡 5:1,2)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엡 5;15,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5)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에 거하리라"(요 15;10)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 15;12)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요 14:21)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요일 3:22, 23)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히 10:16)


   이 원리를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법률은 부모에게 자녀를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규정하고, 자녀를 임의로 방임할 경우 처벌할 것을 선언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법률을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자녀들을 따뜻하게 잘 보호하는 어머니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왜냐하면 법이 이미 어머니들의마음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율법 판을 증거궤 안에 두도록 명하신 것은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됩니다. 그 증거궤 안에는 율법 판과 더불어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있었습니다.<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께서 광야 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산 떡이 되심을 상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합니다. 양자 모두 은혜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율법 판은 속죄의 피가 뿌려지던 금으로 된 속죄소에 의해 가리워져서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긴 그 율법을 하나님께서는 직접 보시지 않으시고 피를 통해서 보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피만이 하나님의 공의를 완전하게 변호하며 그의 진노를 가라앉히기 때문입니다(히 9:4, 5).


   현대 율법주의자들은 속죄소와 속죄 피 아래 있던 이 거룩하고 공정하면서도 잔인한 율법 판을 그리스도인의 생활규범으로 교회안에 세워 놓았습니다.


   6) 은혜란 무엇인가?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딛 3:4,5)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헤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엡 2:7)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7) 은혜를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 9)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 2:11~13)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3:7)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 ."(롬 5:2)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서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 20:32)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엡 1:6, 7)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은혜는 얼마나 완전하고, 얼마나 포용적입니까! 은혜는 구원합니다. 의롭게 합니다. 세워 줍니다. 열납되게 합니다. 구속(救贖)합니다. 용서합니다. 기업을 줍니다. 하나님 앞에 설 신분을 줍니다. 우리로 담대히 나아가 자비와 도움을 얻도록 은혜의 보좌를 예비하십니다. 은혜는 삶의 태도를 가르쳐 주며, 복스러운 소망을 줍니다. 마지막으로 명심할 것은 이상의 여러 가지 원리들이 혼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롬 11:6)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4, 5)


   * 갈 3:16~18 ; 4:21-31도 겸하여 읽어보십시오.


   8) 마지막으로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갈 4:31) "너희의 이른 곳은 만질 만한 불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이는 짐승이라도 산에 이르거든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을 저희가 견디지 못함이라. 그 보이는 바가 아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으나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히 12:18-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말씀하신 것이 도덕의 율법이냐 의식의 율법이냐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안됩니다. 왜냐하면 성도가 아른 곳은 시내 산이 절대 아니기 때문입니다.


* 죤-번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도는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제 그와 같이 완전하고 복된 의로 가리워 졌다. 그래서 뇌성을 발하는 이 시내 산의 율법도 그에게서는 아주 미미한 허물도 발견하지 못한다. 이것을 가리켜 율법을 넘어선 하나님의 의라고 한다."


   혹 불신자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그가 이미 범한 그 거룩하고 공정한 법이 선고하는 그 참된 선고에 마음을 기울이기 바랍니다.


   ". .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2, 23)


   그러나 그러한 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고 영원한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롬 10:9)라고 약속하고 있는 바와 같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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