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통신교재     말씀의 올바른 분별


                                                                          C.I. 스코필드 저



                         머리말


   "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딤후 2:15)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분별하는 것은 일군으로 인정받기 위한 첫째 조건입니다. 간혹 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 진리의 말씀을 그릇되게 분별함으로 말미암아 힘써 하나님의 뜻에 복종치 아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로 보건대 진리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분별이 없다면, 성경 공부가 도리어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으며, 봉사나 헌신마저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본 강좌는 신앙 생활의 기초가 되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할 수 있도록 돕는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올바른 분별을 위해 근거로 제시한 여러 성경구절들은 일일이 찾아 보시고, 단 하나의 교리라 할지라도 이 강좌의 가르침이나 인간적 권위로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베뢰아 사람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상고해 보시고 깨달아지는 대로 삶에 적용하시며 깨우치시기 바랍니다.


                                                                                                                   한국엠마오성경학교


                         제1과


             유대인, 이방인 및 하나님의 교회        


   "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고전 10:32)


   성경을 주의해서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성경 내용의 반 이상이 하나의 민족 곧, 이스라엘 민족에 관한 이야기임을 알게 됩니다 또한 이 민족이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에 있어서 아주 특별한 위치에 있음도 동시에 알게 됩니다. 이들은 실제로 다른 민족과 구별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받았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들에게 다른 어떤 민족에게도 준 적이 없는 특별한 약속들을 주셨습니다. 오직 이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만이 구약의 역사와 예언에 전하여 지고 있고, 다른 민족들은 유대인과 관련이 있을 때에만 언급되고 있을 뿐입니다. 또한 한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모든 말씀은 지상과 관계가 있음도 알게 됩니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와에 대한 그들의 신실함과 순종을 조건으로 지상의 명예와 부와 권력을 약속 받았었습니다. 또 반면에 신실치 못하고 불순종할 경우에는 이스라엘 민족은 온 땅에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만민 중에 흩어지도록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신 28:64). 심지어는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메시아의 약속도 " 지상에 있는 모든 족속" 에게 축복되게 하셨습니다. 또한 성경을 계속 상고하노라면, 성경에는 교회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분명하게 구별되어 있는 또 하나의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 집단으로서의 무리가 거듭 언급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무리도 역시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약속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나 상호 유사성은 그것뿐이고, 이 둘은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오직 아브라함의 육신의 후손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한 민족으로서 이스라엘과는 대조적으로, 교회는 아브라함이 보인 바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으로서 택함을 받은 하나의 민족에 제한되어 있지 않고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구별 없이 한 몸을 이룹니다.

   또한 교회는단순한 언약이 아닌 출생의 관계 맺고 있습니다. 순종에 대한 상급도 이스라엘처럼 지상의 위대함과 부의 축복을 받는 대신에, 교회는 지상에서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하게 여기고 천상에 속한 자로서 천상에 소망을 두고 핍박과 미움을 각오하라는 교훈을 받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현세와 지상의 것에 특별하게 관계가 있는 반면, 교회는 내세에 대한 강한 소망과 영적이고 천상적인 것과 관계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성경은 이스라엘이나 교회가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님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즉 성경은 각각이 시작 된 때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알다시피 이스라엘의 시작은 아브라함의 부름 받음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교회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이제껏 아담과 이스라엘 족장들이 교회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해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분명히 그리스도의 지상생애 동안이나 그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마 16:18)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결국 당시에는 아직 교회가 없었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세웠다" 거나 "세우고 있다" 가 아니라 "세우리니" 인 것입니다.


   또한 에베소서 3:5-10의 말씀과 같이 교회는 구약 예언서에 단 한 번도 언급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그 때에는 "하나님 속에 감추어 있던 비밀" (엡3:9)이었습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교회의 출생은 사도행전 2장에, 그리고 그 종결은 데살로니가 전서 4장에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자주 언급되어 있지는 않으나 모든 면에서 이스라엘이나 교회와 구별된 또 하나의 집단인 이방인을 발견하게 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과 하나님의 교회의 위치는 대략적으로 다음의 성경 구절들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                                      교회                                         이방인

    롬 9:4~5                                   엡 1:22~23                                엡 2:11~12

    요 4:22                                     엡 5:29~33                                엡 4:17~18

    롬 3:1~2                                   벧전 2:9                                    막 7:28~29


   이스라엘과 교회에 관해서 성경에 언급된 말씀을 비교해 보면 기원, 소명, 약속, 생활원칙, 그리고 미래의 모습에 있어서 모두가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1. 소명에 대해


이스라엘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 12: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곳은 골짜기에든지 산지에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들의 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너의 먹는 식물의 결핍함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신 8:7-9)

"그가 가로되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시되 우양과 은금과 노비와 약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 (창 24:34-35)

"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 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신 28:7)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신 28:13)


교회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히3:1)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빌 3: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마 8:20)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벧전 1:4)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고전 4:11)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럽도다 하시니" (막 10:23)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약 2:5)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요 16:2)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마 18:4)



"이는 물론 아무리 경건해도 그 사람이 유대인이라면 누구이든지 천국에 가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단지 유대인의 경우에 경건의 동기가 천상적인 축복이 아니라 지상적인 축복에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은혜 시대에 있어서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다 같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절대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은혜 시대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믿음으로 거듭나서 (요 3:3, 16) 교회 인(엡 1:22, 23) 한 몸에 연합됩니다 (고전 12:13). 따라서 교회안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없습니다 (고전 12:13 ; 갈:28 ; 엡 2:14). 사도 바울도 에베소 사람들에게 편지하는 가운데 그들을 가리켜 "너희는 그 때에 이방인이" (엡 2:11)라고 말했고 고린도 사람들에게도 역시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고전 12:2)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교회의 차이는 그들 각자에게 주어진 품행규범 한층 더 잘 나타나 있습니다.


2. 품행규범에 대해


이스라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 . . 일곱 족속을 쫓아 내실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신 7:1, 2)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 지니라" (출 21:24,25)


교회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4)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 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  .  ." (고전 4:12, 13)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마 5:39)


               

* 신명기 21:18~21과 누가복음 15:20-23도 읽어 보십시오.


   보시다시피 예배에 대한 규정에 있어서도 이스라엘과 교회는 여전히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오직 한 곳에서만 예배드릴 수 있었고, 그것도 하나님 존전에는 가까이 갈 수도 없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오직 제사장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두세 사람이 모인 곳이면 어디에서든지 예배를 드릴 수 있으며, 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이 있고, 또 구성원들 모두가 제사장들입니다.


   - 레위기 17:8,9을 마태복음 18:20과 비교해 보십시오.

   - 누가복음 1:10을 히브리서 10:19, 20과 비교해 보십시오.

   - 민수기 3:10을 베드로 전서 2:5과 비교해 보십시오.


   이스라엘과 교회의 미래에 관한 예언에 있어서는 그 대조가 한층 더 경이적입니다. 교회는 지상에서 완전히 휴거되는데 반해, 회복된 이스라엘은 앞으로 지상에서 최대의 영화와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성경이 언급하고 있는 바를 살펴봅시다.


3. 미래에 대해


   1) 교회에게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2, 3)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5~17)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빌 3:20, 21)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요일 3:2)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계 19:7~9)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 바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행 15:14~16)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롬 11:1, 11, 24~26)


   "그 날에 주께서 다시 손을 펴사 그 남은 백성을.  .  . 돌아 오게 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를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이산한 자를 모으시리니" (사 11:11, 12)

   "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자기 고토에 두시리니 나그네 된 자가 야곱 족속에게 가입되어 그들과 연합할 것이며" (사 14ㅣ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러나 보라 날이 이르리니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 열조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리라" (렘 16:14,1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렘 23:5, 6)


2) 이스라엘에게


"보라 내가 노와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 내어 이곳으로 다시 인도하여 안전히 거하게 할 것이라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렘 32:37, 38)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습3:14, 15)


   이상으로 보건대 교회를 유대교화 하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교회의 사명을 곡해하며, 그 영성을 소멸하는데 있어서 다른 모든 요인을 합한 것보다도 더 위험하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성별되어 위로부터 부르심에 합당한 그 소명대로 주님 좇기를 포기했음을 의미합니다. 즉 교회가 유대교 성경을 사용함으로서 스스로 그 목적을 낮추는 일에 정당화함을 의미합니다. 즉 교회의 목적을 세상을 문명화 하는 일에 두고, 재물을 모으는 일에 두고, 거창한 의식을 거행하는 일에 두고, 거대한 교회당을 건립하는 일에 두며, 국가간의 전쟁에 하나님의 축복을 비는 일에 두며 평등해야 할 형제들을 성직자평신도로 구분하는 일에 두는 등의 자신의 모든 오류들을 스스로 정당화함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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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


           10 바울이 붙잡힘(21-24)


요절 : 사도행전 22장 15절, 24장 25절

요점 :

1.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사람들을 얻으려고 그들을 기쁘게 해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2. 대다수의 사람들이 잘못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을 돌보시는데 신실하십니다.

4. 하나님은 자신의 종을 어느 때든 보호하실 수 있습니다.

5. 많은 사람들이 너무 오랫동안 미루기 때문에 잃어버려질 것입니다.

6. 자기가 행하지 않은 어떤 것을 고백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예루살렘에서의 바울


1. 성령님께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지말 것을 경고함(21:1-14)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에베소에서 예루살렘까지 계속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들은 잠깐 두로와 가이사랴에서 멈추었는데 그것은 물론 그 지역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방문하고자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로에서 제자들이 성령에 감동되어 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가이사랴에서 아가보라 불리우는 선지자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붙들려 이방인 통치자에게 넘겨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개인적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질을 전달하기를 열망했습니다. 그는 또한 순전한 복음을 전하고 그 성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치고자 했습니다. 그곳의 많은 사람들은 구원을 위해서 율법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구원받는 방법에 관해서는 매우 불분명했습니다. 이 구절들에서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감옥에 갇히거나 죽을 준비가 되어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주님을 증거하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일까요?


2. 형제들이 기쁨으로 그들을 영접함(21:15-26)


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형제들은 그들을 만나 이방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의 복된 소식을 듣게 되어 매우 기뻐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전도자들이 가져온 구제헌금을 받고도 기뻐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성에는 바울이 더이상 구약성경의 율법에 대해 주의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를 의심하는 수천의 믿는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장로 형제들은 그 유대인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과 더욱 가까워지기 위해 바울에게 어떤 의식을 행하도록 제안했습니다. 때때로 우리의 신앙 간증을  해칠만큼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작은 일들을 행하는 것은 현명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20절에서 밝힌 자신의 전도 원리, 선교 원리에 따라 유대인과 같이 되고,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기 위해서는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되었다는 것을 또 한 번 행동으로 보여 주었었습니다. 바울은 실제로 온전히 순전한 복음을 그들에게 전하기 원하여 이 의식을 행하였지만 이번에 행한 이 의식을 통해서는 바울이 원했던 유대인도 얻고 율법 아래 있는 자도 얻고자 했던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습니다.


3. 바울이 붙잡힘(21:27-40)


7일이 거의 되자 몇몇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는 그를 대항하여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이 때가 그를 죽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그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가 이 소동을 듣자 그는 즉시 이 폭도를 안정시키려고 일단의 병사들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붙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여 영문 안으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바울을 죽여야 한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가 헬라말을 알고 있는 것에 놀란 천부장에게 말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기가 중요한 도시인 다소의 유대인이라고 말하고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변호할 수 있도록 말할 허락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책에서 자주 무리들이나 폭도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종을 공격하거나 죽이려고 했던 것을 보았습니다. 다수가 언제나 올바른 것이 아니라는 것과 비록 모든 사람들이 그를 반대할지라도 진리를 세우는 사람에게 주님의 복이 임한다는 것에 주의하는 것은 잘하는 것입니다.


4. 바울의 변론 : 그가 빛을 받음(22:1-10)


바울은 처음으로 돌아가 그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의 저명한 교사인 가말리엘에게서 바르게 교육받았으며 자기가 유대교에 지나치게 열심이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감옥에 가두었다고 말했습니다.

   다음으로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중에 하늘로부터 밝은 빛을 보았고 왜 주님을 핍박하는지를 묻는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에게 다메섹으로 들어가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듣게 될 것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앞의 9장에서 이 이야기에 대해 읽었지만 바울은 자기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말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아주 놀랍지 않습니까! 시편 기자는 "주님의 구속받은 자들이 그렇게 말한다" 고 말했습니다. 당신 가정과 이웃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당신은 학교에서 또는 직장에서 친구들에게 주님을 시인했습니까? 어느날 우리는 우리가 예수님께 속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부끄러워해서는 안됩니다.


5.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본 환상에 대해 말함(22:11-21)


바울이 다메섹에 들어가자 경건한 사람인 아나니아가 찾아와서 그들 조상의 하나님께서 자기를 택하사 모든 사람들에게 증인이 되게 하셨다고 말해주었으며 그래서 그가 침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그가 예루살렘, 사실상 성전으로 돌아왔을 때 주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사람들이 그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 성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대신 그는 더 멀리까지 가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아직까지도 거절하고 있는 구원의 복된 소식이 이방인들에게 주어졌고 바울은 그들 중에 수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이 실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어떤 사람들이 주님께서 주시려고 하시는 복을 거절한다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좋은 것을 거절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6. 천부장이 유대인들에게서 바울을 구함(22:22-30)


여기까지 오자 유대인들이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인들이 자기들의 복을 더많이 받게 된 것을 생각하자 그들은 다시금 소리를 지르며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천부장은 그들의 증오를 이해할 수 없자 바울을 때리면 참 이유를 말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의 시민이라고 말하자 로마의 시민을 때리는 것이 법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보호하게 하고 그 밤에 파숫군을 두어 보호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그 신실한 종을 계속 주목하고 계신 것을 볼수 있으며, 그 주님은 오늘도 동일하신 분입니다.



바울이 가이사랴로 감


1. 예루살렘에 있는 공회 앞에서(23:1-11) 


그 다음날 천부장은 바울을 대제사장과 공회 앞에 세우려고 데려갔습니다. 바울이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선한 양심을 가졌다고 진술하자 대제사장은 매우 화를 내며 옆에 서있던 병사들에게 그의 입을 때리라고 명령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부당한 것이기에 바울은 화가 나서 그를 회칠한 담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가 대제사장이었음을 알게 되자 곧 사과했습니다. 성경에 기록 되어 있는 대로 백성들의 통치자들에 관해서 나쁘게 말해서는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어떤 사람이  자기의 입을 치려고 할 때에 잠잠히 서 있는 것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같은 장소에 서 계실 때 얼마나 인자하셨고 오래 참으셨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로마 병사는 주님을 때렸지만 주님은 악으로 악을 갚지 않으셨습니다(요18:23절을 보십시오). 이제 법정에서 더 큰 말싸움이 일어나게 되었고 결국 천부장은 바울을 구해내서 다시 영문에 두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주님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셨고 로마에서 주님을 증거하게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2. 사십명이 바울을 죽일 것을 맹세함(23:12-24)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는 것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들 중에 몇사람이 음모를 꾸며 바울을 죽일 때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 계획은 천부장에게 바울을 대제사장에게 보내달라고 요청하여 그 도중에 그를 죽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바울의 조카가 그 음모에 관해 듣게되어 그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천부장이 그 사실을 알게되자 470명의 사람들에게 바울을 보호하도록 명령했고 그를 가이사랴에 있는 총독에게로 데려갔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종을 공격하는 사단의 여러가지 방법을 보게 됩니다. 자신들이 매우 종교적이라고 생각하는 이 사람들이 살인을 자행하려고 실제로 준비했었다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준비하시며 주님의 충성스런 증인을 도우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성부께서 알지 못한 상태에서는 그 어떤 일도 하나님의 자녀에게 일어날 수 없으며 먼저 피할 길을 예비하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조카 이름을 알지도 못하지만, 그는 자기의 임무를 알고 그것을 충성스럽게 했습니다. 그 결과 바울은 약 9년 정도 주님을 더 섬길 수 있었습니다.



3. 천부장이 바울을 가이사랴로 보냄(23:25-35)


 

벨릭스는 유대를 통치하도록 로마의 임명을 받은 총독이었습니다. 천부장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벨릭스의 보호하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편지를 써서 바울이 로마 시민권이 있고 또한 그가 죽거나 구속될 만한 어떤 일도 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그런 다음 바울을 총독에게 보내는 이유인 바울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음모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보병들은 그들과 함께 중간까지 간 뒤 돌아갔고 마병들이 바울을 가이사랴에 있는 총독에게 데려 갔습니다. 벨릭스가 편지를 읽고는 바울에게 어느 지역 사람인지를 물은 뒤 재판때까지 지키라고 명령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법과 질서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많은 통치자들이 타락했고 불의했습니다. 우리는 로마의 총독인 빌라도가 유대인들이 주님의 죽음을 요구하자 그들에게 넘겨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로마의 법을 지켜야 할 많은 사람들이 약간의 돈을 벌수 있다면 그 법을 부정하게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4. 더둘로가 벨릭스 앞에서 바울을 고소함(24:1-9)


5일 후에 대제사장이 바울에 대해서 고소하려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부터 내려왔습니다. 더둘로라 이름한 전문 변사가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재판이 시작되자 그가 벨릭스 앞에서 바울을 대항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는 처음에 총독에게 아첨을 하고는 바울이 나사렛 이단의 괴수이며 이방인들을 거룩한 성전에 데리고 가려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와 함께 있었던 유대인들은 그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고 동의했습니다. 그것이 어떤 점에서는 사실이었지만, 그는 할 수 있는대로 나쁘게 보이도록 하여 바울이 총독을 괴롭게하는 자가 되도록 애를 썼습니다. 다소 사실을 말하긴 했지만 그것은 더욱 나쁜 인상을 주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에 진실함을 원하십니다"


5. 벨릭스 앞에서 바울의 답변(24:10-21)


바울은 답변의 첫부분에서 그가 예루살렘에서 어떤 소동을 일으켰다는 것을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루살렘에 온지 12일 밖에 안되었고 사람들을 위해 희생제물을 드렸으며 그가 성전에서나 성중에서나 군중들에게 변론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그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예수를 따르는 자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구약성경과 부활을 믿었고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지금 바울은 자신이 행한 잘못이 있다면 시인할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어떤 고소에 대해 거짓된 자백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또한 (여전히) 주 예수님에 대한 그의 믿음을 시인하는 것을 기뻐했으며 만일 그것이 그의 죽음을 의미한다 해도 그는 여전히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6. 벨릭스는 두려웠지만 바울을 감옥에 둠(24:22-27)


이제 벨릭스는 천부장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내려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결정했습니다. 그는 바울에게 상당한 자유를 허락하였고 친구들의 방문도 허락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누가가 그와 함께 있었던 것을 알고 있으며, 빌립이 가이사랴에 거하고 있었고, 또한 다른 사람들이 다녀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벨릭스의 아내가 오자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주어졌고, 벨릭스가 듣자 실제로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당장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다음으로 미루었습니다.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제안을 미루기 때문에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잃어버린바 될 것입니다. 벨릭스는 물질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기에 바울이 감옥에서 나가기 위해 그에게 뇌물을 주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는 또한 유대인들을 기쁘게 하기를 원해서 바울을 2년 동안 감옥에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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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서


                          2과    하나님의 진노

                                                      (1장 18절~3장 20절)


   복음이 사람들에게 왜 필요한가?


   간단히 말한다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18절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을 저버린 인류는 지옥의 선고를 받아 절박한 위험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1. 흔히 사람들은 자기가 버림 받은 죄인이라는 말을 들을 때, "그러면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19절~32절의 말씀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ㄱ)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19,20절).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해와 달과 별과 인체와 동물과 식물의 존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양상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자기를 창조주로 깨닫고 자기를 경외하며, 또한 그가 우리를 위해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며, 여러 가지 형태의 축복을 주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ㄴ)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을 증거 하는 만물의 증거를 거부하였습니다(21,22절)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핑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경배하는 대신에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사람은 이것들을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삼았습니다(23절).


   ㄷ) 물론 이런 죽은 우상들은 사람을 감화시켜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고자, 참 하나님을 버리고 사람의 손으로 새겨 만든 우상을 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저희를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셨습니다(24절). 이와 같이 사람들은 점점 불신앙의 흑암과 부도덕 속에 깊이 빠져서 마침내는 26절과 27절에 나타나 있는 성적 타락에 까지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생활은 29절~31절에 나타나 있는 무서운 죄로 가득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고 하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2. 이방인을 가리켜 버림받은 죄인이라고 한 사도바울은 유대인들의 경우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합니다(2:1~3). 물론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받은 선민이라고 해서 정죄함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인들도 죄로 인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ㄱ) 유대인들은 이웃 이방인들을 비방하면서 자신들도 같은 죄를 범하였습니다(1절).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즉시 벌하지 않는 까닭에, 그들은 하나님의 형벌을 피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3절). 사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으나(4절), 그들은 계속 죄를 지으므로 심판 날에 임할 그들의 죄의 대가를 가중시키고 있었습니다(5절).


   ㄴ)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분명히 올 것입니다. 2절~6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기본 원칙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인내함으로 계속 선하게 살면서 영광과 존귀와 영생을 구한다면, 그는 영생을 선물로 받습니다(7~10절). 그러나 이 말씀은 이와같은 방법으로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3장 19절과 20절의 말씀은 선한 행위로 구원을 받을 만한 육체가 하나도 없음을 결론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ㄷ) 하나님의 심판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간에 절대 공평할 것입니다(11절). 율법을 받은 자들은 율법에 의해서 심판을 받을 것이며(12절), 율법을 받지 않은 이방인들은 옳고 그름을 말해 주는 그들 자신의 양심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14,15절)


   ㄹ)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여러 특권들을 자랑하였습니다(17~20절).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전했던 것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21~23절).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였습니다(24절). 그들은 할례와 같은 종교의식은 거기에 따르는 실제 생활이 없는 한, 무가치하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했습니다(25~29절).


   ㅁ) 유대인도 버림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은 유대인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뜻(3:1)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많은 유익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민족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맡겨졌습니다(2절). 하나님은 그들을 불성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한결같이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묵과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3~8절).


   3. 그러면 결론은 무었일까요? 결국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3:9~23절)


   ㄱ) 구약 성경은 죄가 전 인류에게 감염된 사실을 분명히 밝혀주고 있습니다(10~12절).


   ㄴ) 또한 구약 성경은 죄가 사람의 몸 즉,목, 혀, 입술, 입, 발 그리고 눈, 기타 모든 부분에 다 감염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13~18절).


   ㄷ) 율법은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들을 정죄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다 정죄하고 있습니다. 19절의 말씀은 하나님 앞에 유대인이 전 인류의 좋은 본보기가 됨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본보기인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들을 시험하셔서 그들이 죄인임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므로 그 본보기를 근거하여 전 인류를 죄인이라고 선고하셨습니다. 율법은 전 인류의 유죄성을 노출 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전혀 없음은 자명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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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경  개 요


                                          제10과 바울 서신(1)


                                                    로마서


   사도행전이 교회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음에 반하여, 서신서들은 교회에 관한 위대한 진리와 교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로마서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진리를 가르치고 있음은 그 좋은 실례라 하겠습니다. 여기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은, 죄인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하나님께서 그를 하늘 나라에 가기에 합당한 자로 보신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로마서를 통하여 바울은 두가지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1.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고 있다.

   2. 주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셨으므로 오직 주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바울은 세 가지 사실을 부연했습니다.

   1.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 율법을 지킨다거나 선을 행함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다.

   2.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원을 얻는 방법에 있어서는 다를바가 없다.

   3. 신약 시대나 구약 시대나 구원을 얻는 방법은 동일하며, 예수의 이름 외에 다른 방법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없다.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축복인가를 설명하고나서, 바울은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거룩하게 살아가라고 강권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그리스도인은 모름지기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장사된 자로 여기고, 이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일편 단심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성령님께서는 성도의 심령에 거하셔서 성도가 경건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십니다.

   한편 바울은 복음이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 민족과 맺은 언약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젖힘을 당하고 있는 현재 상태는 완성적인 상태도 아니며, 최종적인 상태는 더더구나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잔존자들이 주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하게 될 때, 그때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성취하신다고 주장했습니다.

   12-16장은 특별히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해서나 국가에 대해서나, 세상에 대해서나, 성도 상호간에 있어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느모로 보나 로마서는 가장 기본적인 기독교의 진리를 가르치는 서신이라고 분별됩니다.


                                                   고린도 전서


   고린도 전서는 고린도 교회에 어려운 문제들이 있으며 ,이에 대해 성도들이 궁금해 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울이 이를 해결할 목적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아래에 열거하는 내용을 보게 되면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과 이에 대해서 바울이 어떻게 처리했던가를 알게 될것입니다.

   1. 분파를 일으키며 분쟁하고 있었습니다(1-4장). 고린도 성도들은 지도자된 인간들을 각기 높이고 있었으므로, 육신적이라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2. 범죄하고 있는 성도가 있었습니다(5장). 이에 교회가 이를 방치해서는 안될뿐더러 회개하고 죄를 버릴 때까지 그 성도를 출교시키라고 명했습니다.

   3. 성도 간에 송사하고 있었습니다(6:1-11). 이에 성도 간의 문제는 성도 간에 해결해야 하고 송사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쳤습니다.

   4. 순결을 지키지 않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6장). 이에 성도의 몸은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전으로서, 음행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처사라고 했습니다.

   5. 결혼 문제에 관해 무분별했습니다(7장). 이에 바울은, 결혼이 의무는 아닐 뿐더러 때로는 독신으로 생활하는 것이 더 좋다고 가르쳤습니다. 동시에 바울은 부도덕을 예방하기 위해서 남자든 여자든 결혼하는 것을 일반적인 원칙으로 분별했습니다.

   6. 우상의 제물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습니다(8-10장). 이에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 잘못일 것까지는 없지만, 다른 성도들에게 걸림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가르쳤습니다.

   7. 공중 예배에서 여자들의 태도가 무질서했습니다(11:1-16). 이에 여자들은 머리에 너울을 씀으로써 권세 아래 있는 것을 천사들에게 증거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8. 주의 만찬을 행함에 있어서 질서가 문란했습니다(11:17-34). 이에 먼저 자신을 살핀 연후에 이 예식에 참여하라고 책망했습니다.

   9. 신령한 은사들에 대해 그릇 생각하고 있었습니다(12-14장). 이에 대하여 바울은 특별한 은사라고 해서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이 아니며, 사랑이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10. 부활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습니다(15장).이에 대한 바울의 해명인 15장은 몸의 부활에 관한 진리를 가장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11. 가난한 자의 구제를 소홀히 하고 있었습니다(16장). 이에 대하여 바울은, 교회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연보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본서의 끝을 맺고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고린도 후서에는 두 가지 주요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과 사도로서의 사역을 변호하였습니다. 당시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이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은 주 예수님의 진정한 사도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 바울은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의 중대성을 설명한 뒤에,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얼마나 가혹한 시련을 당했던가를 기록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봉사를 거짓 교사들의 활동에 비교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들 자신이 바울 사역의 증거들임을 상기시켰습니다.그들은 바로 바울로 인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2.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당하며 가난하게 살고 있는 성도들을 재정적으로 도와주도록 호소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부유하신 분이면서도 우리를 부요케 하시려고 가난해지셨던 주님을 본받아 너그럽게 다른 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갈라디아서


   바울이 갈라디아를 방문하여 교회를 세운 후, 갈라디아 교회에는 거짓 교사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아야 하며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잘못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다음과 같이 강경하게 반박했습니다.

   1. 자신의 사도 직분은 오직 주 예수께서 주신 것이므로 자신이 증거한 말씀은 거룩하다.

   2. 구원은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지 율법을 지킴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율법은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저주하거나 정죄할 수는 있어도,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구주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시려고 율법을 주신 것이다. 따라서 일단 구원을 받게 되면 율법의 저주에서도 속량을 받게 된다. 그리고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는 이제 율법 대신 그리스도께서 곧 생활의 규범이 되시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누리면서 살아가라고 격려하는 동시에, 더이상 율법 아래에서 종노릇하지 말라고 권면했다.

   또한 십자가는 구원을 얻기 위한 인간적인 모든 노력에 종지부를 찍어 주고, 이제는 육신적인 힘이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가르친다고 거듭 거듭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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