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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4.07 저 높은 곳을 향하여 - CHAPTER 9 배우자의 선택

                          

                                하여

                                                                              존 필립스

                                         CHAPTER 9

 

                                배우자의 선택

                          Looking for Companionship


   부드러운 능선 아래로 고요하고 푸르른 호수가 펼쳐지고, 호숫가 양쪽 언덕들 사이로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는 고풍스런 마을 풍경은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과도 같습니다. 고대로부터 이곳은 가버나움, 벳세다,디베랴,고라진 등 다양한 이름들로 불리워 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고기잡이, 농사 그리고 돼지 목축 등을 하며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목가적인 마을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마을 언덕 위에 있는 무덤들 가운데 한 귀신 들린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찌나 난폭한지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무덤가에 쇠사슬로 단단히 묶어 두곤 했지만, 그는 귀신의 힘을 빌려 쇠사슬을 마치 썩은 동아줄처럼 번번이 끊어 버렸습니다. 이제 더 이상 그 누구도 그를 억제하거나 통제할 수 없게 되어, 그는 온 마을의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 사람을 그대로 놓아두는 한 아무도 안전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이 마을을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선 이 사람을 만나셔서, 그를 사로잡고 있는 귀신들을 내쫓으시고, 그의 삶과 그의 정신을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그 사람은 자유롭고, 행복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하며, 감사하는 자가 되었고, 주님과 제자들을 따르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의 청을 허락지 않으시고 집으로 돌아가 예전에 그를 두려워하며 염려하던 가족, 친구 그리고 이웃들에게 그의 변화된 모습을 보이라고 명하셨습니다(막 5:18-19).

   그리스도인의 삶은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가족과 친구들, 직장 동료, 이웃, 경쟁자, 원수, 심지어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영적이고, 아름답고, 선하고, 온전하게, 변모한 사회생활입니다.

   우리는 가정, 사랑, 이성교제, 결혼, 부부관계, 자녀교육 그리고 독신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공부할 것입니다. 이것들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성경은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 하는 것, 배우자, 부모상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먼저, 독신에 대한 성서의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 땅에서 독신자로 지내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께서는 독신자들이 당면하기 쉬운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깊은 이해와 동정심을 기질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표준은 지극히 높습니다. 우리 주님처럼 하나님의 표준에 이르는 삶을 사는 일은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도움과 그 힘을 의지함으로써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성령을 의지하여 살지 못할 때, 우리의 영적생활은 파선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육신의 힘으로서는 하나님의 법을 따를 수도 없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독신자 그리스도인으로서 순결한 삶, 인내의 삶, 실천적인 삶을 살기 위한 교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 순결한 생활 (A Pure Life)


   하나님의 표준은 절대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녀간의 성적 관계에 있어서 절대적 순결을 원하십니다. 성경은 귀중한 영적 특권(장자의 특권)을 순간적인 육체적 욕구와 바꾸어 버린 야곱의 형, 에서(Esau)처럼 순간적인 육신의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간음죄(*일반적으로 모든 성적 부정행위를 의미함)에 빠지지 말라고 우리들에게 명하고 있습니다.

   "거룩함을 쫓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히 12:14-17).

   또한 창세기 25장과 27장을 통하여도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표준은 독신자이거나 결혼한 자에게나 똑같이 적용됩니다. 십계명 중의 "간음하지 말라."(출 20:14)는 말씀은 신약에서는 그 의미가 더욱 확대되어 우리들에게 경고합니다.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히 13:4).


   요셉의 승리: 성령께서는 창세기에서 두 형제의 다른 모습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창세기 38장은 유다의 생애의 치명적인 오점을 기록하고 있는데 반해, 바로 그 다음의 39장은 요셉의 승리의 삶에 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두 사건의 내용은 똑같이 성적 시험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성경은 유다의 치욕스런 오점을 요셉의 아름다운 승리의 이야기와 잘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우리에게 요셉을 독신 그리스도인의 한 본보기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히 채워져 있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집요하고, 사악하고, 피하기 힘든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요셉의 생애를 통하여 성경은 우리에게 밝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그처럼 집요하게 자신을 유혹하는 여인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창 39:9)라고 외쳤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순결을 지키고자 했던 믿음의 결과였습니다. 이와 같이 매 순간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의 말씀을 따르는 삶만이 하나님의 거룩한 표준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창세기 38장과 39장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주의 깊게 읽어보기 바랍니다. 음란한 행위의 뿌리는 부정한 생각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시작부터 양심 안에서 바른 길을 분별하여 나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음란한 생각이 우리 마음에 일어날 때, 우리는 즉시로 생각을 주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다윗의 비극 : 성경에 나오는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로 다윗을 꼽는다면 반대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한 때 자신의 충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탐하여 간음죄를 범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은폐하기 위하여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죽이는 살인까지 합니다. 다윗의 생애는 그와 같은 범죄 이후, 결코 전과 같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부도덕한 죄의 결과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시편 51편과 32편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비통하게 참회하였고,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나 죄의 결과는 그의 남은 생애 동안  항상 그림자처럼 그를 따랐습니다. 그의 가정은 자녀들 간의 강간과 살인 등의 처참한 사건들로 얼룩졌고, 그 자신은 하나님께 더 이상 쓰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잃었습니다. 그의 비극은 말년에 아들 압살롬이 예루살렘 왕궁으로 쳐들어와 자신의 부친을 몰아내고 왕권을 빼앗으려는 반역을 꾀할 때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 때 다윗은 황급히 성을 빠져나와 피신하면서 자신의 머리를 가리우고 비통한 눈물을 흘리며 맨발로 도망해야 했습니다. 또한 그의 범죄로 인해 대적들과 사탄에게 공격의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으며, 원수의 저주까지 받아야만 했습니다. 또 사무엘하에서는 지난 날 그의 모사였던 아히도벨이 압살롬의 반역을 위한 모사가 되어 옛 주군인 다윗을 반역하는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아히도벨은 바로 밧세바의 할아버지였습니다. 이와 같은 성경의 기록들은 모두 우리에게 성적 범죄에 대하여 업중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성적 자유는 현대인들에게 보편적인 풍조가 되고 있습니다. 인간이 지닌 성적 욕망 그 자체는 성서적인 관점에서도 정상적인 것이지만, 그 욕망은 반드시 올바르게 사용되어야 하고, 강한 다스림이 필요합니다. 예수께서도 간음 중에 잡혀 온 여인을 향하여 그를 정죄하지는 않으셨지만,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요 8:11)고 엄히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성적 욕망을 우리는 남용해서도 안 되고 또한 그것을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결혼은 인간의 이러한 본성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이 정하신 제도입니다. 성경은 비정상적인 성적관계는 정죄하지만 결혼을 통한 합법적인 부부간의 성생활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성적 자학행위나 자위행위 등에 대하여 성경은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변태적인 성적 행위들에 대하여 무섭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은 바로 변태적인 성적 타락의 결과였습니다(창 19장). 하나님께서는 성적 욕망을 순리적으로 해결하는 대신 변태적으로 그 욕망을 채우려는 자들에게 대해서 무서운 형벌이 있을 것을 분명히 경고하고 있습니다(롬 1:26-27).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결한 생활을 요구하십니다. 이는 모든 인간들에 대한 하나님의 표준이지만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거룩한 삶이 요구됩니다.


   2. 인내의 생활 (A Patient Life)


  독신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하나님께서 합당한 배우자를 보내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일입니다. 사회적인 통념으로는 빠르면 십대부터 이성 교제를 시작하며, 이 일은 결혼에 합당한 짝을 만날 때까지 지속됩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이와 다를 수 있고 또 그것을 알아내기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일을 위해서는 기도와 큰 인내가 필요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사람은 마침내 우리를 위한 놀랍고 신비한 하나님의 선택의 결과로 말미암아 끊임없는 감사를 하나님 앞에 드리게 됩니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성급한 선택 이전에, 먼저 하나님께 자신의 참다운 반려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며, 당신은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 합당한 배우자를 순탄하게 만나게 될 것이며, 그(혹은 그녀)와의 결혼을 통하여 하나님이 계획하신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이상은 창세기 2장 18-25절 말씀에서 그 근원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최초에, 아담은 에덴동산이라는 완전한 환경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행복했고, 분주했고, 만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창조하신 동물들의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 아담은 모든 동물들이 각기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으로 하여금 자신의 짝에 대한 각성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담은 하나님에 의해 자연스럽게 짝에 대한 필요를 깨닫게 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합당치 않은 욕망을 갖는 것을 허락지 않으시며, 또한 성취하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으십니다.

   아담에게 배필이 필요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의 옆구리에서 갈비뼈 하나를 취하여 하와를 창조하셨습니다. 아담은 자신의 배우자를 얻을 때 다만 깊은 잠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실패한 후에야 그로 인한 절망과 불안으로 좌절하게 됩니다.  우리가 최선이라고 여겼던 선택이 결과적으로 불행의 차선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사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의 실수들을 바꿔 축복이 되게도 하시지만 그런 경우는 여기에 해당 되지 않음).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위하여 특별히 창조하신 여인을 친히 데려오셨고, 잠에서 깨어난 아담은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반려자를 보았습니다. 이처럼 아담의 배우자는 하나님이 친히 마련하여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그 밖에 창세기 24장의 이삭과 리브가 이야기도 이상적인 결혼에 대한 좋은 실례입니다.

   우리들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위하여 완전하시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롬 12:2). 우리는 인내의 유익을 알고 배워야 합니다. 결혼 문제에 있어서 인내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심각하게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의 인내가 부족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종종 인내심이 부족한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결혼 대상자로서 믿지 않는 자를 고려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떠난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오?" (고후 6:14-16).

   결혼은 두 사람의 영육간의 완전한 결합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거기에 영적 결합이 결여된다면 반드시 불행이 뒤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이상적인 결혼이라고 할지라도 결혼 생활 중 많은 경우에 불안과 긴장이 따르게 되며 서로 간의 인간적인 연약으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3. 실제적인 생활 (A Pactical Life) 


   하나님께서 자신의 반려자를 확실히 보여 주실 때까지 독신자들은 전심으로 주님을 섬기는 일이 최선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위해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또한 독신생활의 유익을 체험적으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독신자들이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독신자의 은사는 아무에게나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도 바울은 기록하였습니다.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고전 7:6-9).

   결혼의 소망은 대부분의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은 결혼한 자들보다 주를 섬기는데 있어서 시간적으로나 물질적으로 구속받지 않는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유익합니다. 그는 주님과 그의 일을 위해 모든 열정을 바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기록하였습니다. 장가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 고 하되 장가 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고 하여 마음이 나누이니라"(고전 7:32-33). 그러나 바울은 금혼을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독신자들이 주를 섬기는데 있어서 더 유리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바울은 결혼하지 않는 일이 주를 위해서 그리스도께 헌신하는 일임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일을 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개개인의 개성을 잘 알고 계시고,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변화시킬 수 있는 분이시며, 또한 우리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를 더 잘 아십니다.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라"(시 84:11). 말씀하시고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아니하다" (창 2:18),고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이는 우리에 대한 더 큰 뜻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여러 분야에서 주를 위해 전 생애를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세상에서 잃는 것보다 더 많은 상급이 하늘나라에 약속되어 있습니다. 독신자로서 어린이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진 자라면 그들은 어린이들을 위한 캠프나 병원 혹은 학교 등지에서 자신의 사랑의 은사를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독신자들은 고독한 자, 노인들, 병약자 그리고 가정이나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자들을 위해 기꺼이 그 삶을 향기로운 제물처럼 그리스도께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전 세계는 많은 남녀 그리스도인 일꾼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케도니아인들처럼 "와서 ... 우리를 도우라" (행 16:9)고 잃어버린 영혼들이 부르짖고 있습니다. 독신자들은 가족이 있는 사람들보다 그와 같은 선교의 부름에 더 쉽게 응답하고 빨리 떠날 수 있습니다(사도행전에 나오는 선교에 헌신한 많은 성도들이 독신자임을 주목할 것). 하나님께서 나에게 결혼 배우자를 허락해 주시지 않는다고 실망 중에 침체에 빠져 있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그는 해외 선교나, 아니면 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히 부르심을 받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독신자라면 주님 앞에 지금 당신의 생애를 드리십시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는 이제 이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립니다. 선하시고 온전하신 당신의 뜻대로 인도하소서."라고. 당신의 생애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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