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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1.25 성경 개요 - 제5과 시가서
  2. 2014.05.19 신약교회의 대체물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성 경  개 요


                                제5과 시가서


                                                    욥기


   욥은 아브라함 시대의 사람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욥은 부유한 사람이었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단이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셔서 욥은 재산과 가족을 다 잃게 되었고, 고통스러운 질병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이에 욥의 세 친구가 그를 위로하려고 찾아 왔지만, 욥의 참상을 보고 놀란 나머지 이레 동안이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의인이 고난을 당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욥은 아무래도 큰 죄를 지은 것이 틀림없다고 욥을 추궁하였습니다. 이에 욥은 자기의 결백함을 주장하면서 무정한 친구들을 비난하고,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이때 청년 엘리후가 나타나 하나님을 변호했습니다. 엘리후는 욥을 설득하지 못한 세 친구들을 비판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허물을 돌리고 있는 욥을 책망했습니다. 마침내 욥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의로우심과 능력과 지혜를 깨닫고 그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했을 때 모든 고난은 끝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욥을 전보다 갑절이나 축복해 주셨습니다.


                                         시편


   성경의 여러 책들 중에서도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 이 시편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경험과 느낌을 화려한 문체의 시와 찬송으로 쓴 것을 모아 놓은 책입니다. 이 시편에는 다윗이 쓴 시가 73편이 있으며, 모세나 아삽이나 솔로몬이 쓴 것도 몇 편 씩 수록되어 있고, 저자를 알 수 없는 것도 50편 정도 됩니다.

   시편의 대부분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겪어온 일들을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께서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이나 이스라엘 민족의 장래를 예언하는 시편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시편에 단순히 역사적 체험이나 예언만이 수록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외에도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려는 실제적인 교훈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구약 원전에는 시편이 다음과 같이 다섯 권으로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제 1 권 1-41 편

   제 2 권 42-72 편

   제 3 권 73-89 편

   제 4 권 90-106 편

   제 5 권 107-150 편


                                          잠언


   잠언의 대부분은 솔로몬 왕이 쓴 지혜로운 말을 편집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잠언을 가리켜 '지상 생활을 위하여 하늘에서 주신 법률' 이라고 말한 것은 적절한 표현입니다. 즉, 음행과 나태와 위선과 음란과 교만과 불공평 등등에 대하여 부모에게나 자녀에게나 부부 간에나 빈부 간에 다양하게 교훈해 주십니다. 잠언에 기록된 이러한 지혜로운 말들은 경청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비할 수 없이 보배로운 충고가 되어, 죄의 번민과 수치와 고통을 제거해 주는 동시에 순결하고 정직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안내해 줍니다.


                                          전도서


   전도서 기자는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서 행복을 추구하려던 인생의 실패를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전도서의 주인공은 인생에서 가장 보람있고 훌륭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하여 과학과 철학과 쾌락과 건축과 재물과 음악, 심지어는 종교 등 모든 것을 경험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쓰라린 좌절만을 체험한 채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헛되다' 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전도서에 번번히 나오는 이 '해 아래' 라는 낱말은 지상에 살고 있는 인간의 입장에서 관찰한 인생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태양 위에 계신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 사실을 망각한 사람들이 종종 전도서를 그릇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편 사람의 심령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진정한 만족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 전도서가 목적하는 교훈입니다. 즉 후세의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저자와 동일하게  고달픈 길을 되풀이하다가 번민과 좌절감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기 위해 이 전도서가 씌어진 것입니다.


                                             아가서


   성서 문학의 금자탑이라 할 아가서는 '노래 중의 노래' 라 불리운 것만 보아도 다른 노래들에 대한 그 우월성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아가서의 내용이나 해석에 있어서는 두 가지 뚜렷한 견해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가장 일반적인 견해로,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간의 진실한 애정을 그려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달래어, 그 여인의 고향인 슈넴에서 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궁전으로 그녀를 데려 옵니다. 이러한 솔로몬의 사랑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 신실한 잔존자들에 대한 여호와의 사랑을 상징하는 것으로 분별됩니다. 아울러 교회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두번째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가서에는 세 주인공으로 솔로몬과 여인과이 여인의 애인인 목자가 나옵니다. 일 천 여인을 아내로 맞았던 솔로몬은 이 여인의 환심을 사고자 무던히 애 쓴 결과 그 여인을 왕궁으로 데려 오지만, 이 여인은 일편단심으로 자기의 애인에게 정절을 지킵니다. 솔로몬이 아무리 감언이설(甘言利說) 로 꾀어도, 이 여인은 자기의 애인을 묘사함으로써 엉뚱한 반응을 보이곤 합니다. 여기에서 이 여인은 세상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 순결을 지키는 이스라엘의 충성스러운 잔존자(殘存者) 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이 여인의 애인이었던 목자가 나타나 그녀를 신부로 맞아 자기 집으로 데려 갑니다.

   어느 해석을 받아들이든지 여기에 등장하는 각 구절들을 인물별로 다음과 같이 성경에 표시해 두면 독자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   인 : 1:1-7, 12-14, 16,17 ; 2:1, 3-17 ; 3:1-4 ; 4:16 ;5:2-8, 10-16 ; 6:2, 3, 14 ; 7:9b-13 ; 8:1-4, 6, 7, 10-12, 14

   솔로몬 : 1:8-11,15 ; 2:2 ; 3:5 ; 4:1-15 ; 5:1 ; 6:4-12 ; 7:1-9a ;8:13

   동료들 : 3:6-11 ; 5:9 ; 6:1, 13 ; 8: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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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교회의 대체물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존 스마트(John Smart)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에 관한 하나님의 복음에 대하여는 어떠한 대체물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모든 복음주의자들은 이 사실에 동의합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들 또한 복음에 관해 이와 동일한 입장을 취하며 이 입장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습니다. 복음에 관관한 우리는 어떤 종류의 대체물도, 어떤 종류의 희석물도, 그리고 어떤 종류의 첨가물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복음에는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본질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다하기 위하여 살아나셨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은 이와 같이 근본적인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손대거나 바꾸는 것을 결코 허락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음의 진리에 관해서는 어떤 종류의 희석된 가르침도 받아들이지 않는 많은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교회에서의 생활과 지역교회가 증거하는 일에 있어 성경적으로 분명한 교리적 틀을 갖추고 있는 신약의 진리에 관한 가르침에 대하여는, 이 가르침을 대신할 수 있는 대체물을 수용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몇몇 사례를 보면, 지역교회가 복음의 전파를 통해 교회로서의 존재와 그 정체성을 드러내든지 그렇지 않든지 성도들은 거의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영혼들이 하나님께 회심하여야 한다고 하는 복음전파에 관하여는 건전한 관심들이 있지만, 새로운 지역교회들이 계속해서 심어지고 확장되어지는 일 곧, 지역교회의 탄생이라고 하는 복음전파의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과에 관하여는 대부분의 성도들이 무관심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혼 구원의 관심에 따른 결과로 이어져야 할 새로운 지역교회의 탄생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리가 만일 영혼 구원을 위한 신약의 복음을 강조하고 있다면, 또한 일관성 있게 신약의 복음을 계속해서 강조하여 구원 받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통해 그 받은 생명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잘 자라가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영혼 구원을 위한 복음에 대체물이 있을 수 없다면, 건전하고 영적인 지역교회들에 관한 신약의 진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1세기의 복음 말씀이 21세기 교회에도 절대적이고 본질적으로 필수 불가결한 것이라고 여긴다면, 왜 1세기 때의 신약교회의 진리들과 그 실행 원리들은 21세기의 신약의 교회에서는 본질적으로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의 진리를 세월과 유행에 따라 고르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 것입니까? 복음의 진리는 계속해서 강조되고 있는데, 하나님의 전이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관한 진리는 희석하여 흐리게 만들고 심지어는 무시하기까지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입니까?

 

   성령으로 말미암아 태어나고,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성령의 능력으로 힘 있게 일하는 신약의 교회,그 자체가 바로 1세기 신약교회의 영광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1세기 신약교회에 있던 영광의 결핍은 오늘날 현시대 교회의 비극입니다. 오늘날에도 복음을 열심히 전파하는 전도기관이나 선교조직이 많이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 모두는 이와 같은 복음적인 기관과 조직들의 수고와 헌신에 대하여 감사를 보냅니다. 그러나 이처럼 많은 복음적인 기관과 조직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상대적으로 오늘날의 교회 생활이 지역교회 자체가 마땅히 힘써야 할 복음전파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또한 구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주인이시라는 신앙 고백을 분명하게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지역교회 안에서 영적으로 튼튼하지 못한 성도들의 허약한 신앙 고백이 드러난 결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까. 지역교회는 하나님의 성전 건축물의 기초 단위입니다.

 

   1세기에 신약의 활동은 모두 지역교회에 집중되어 있었고 또 모든 이슈는 바로 그 지역교회들로부터 나왔었습니다. 1세기의 신약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였고, 선교의 정신이 충만해 있는 교회였으며, 사랑과 은혜를 베푸는 교회였고, 삶을 나누는 교회였습니다. 이 때문에 신약의 교회는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동시대 사람뿐 아니라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끼쳐왔습니다. 그 때의 충격과 영향으로 지금까지 기독교가 전해져 온 것입니다. 신약의 교회에서 각각의 지역교회는 영적인 생활의 중심지였고 주변의 지역사회와 지역공동체에도 강한 영향을 끼쳐왔던 것입니다.

 

   1세기 신약교회 당시의 교회의 진리에 대한 이상의 상실은 21세기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있어서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러 방면으로 그리스도인의 일을 하고 있으며,그 각각의 일에 해당하는 그리스도인의 조직이나 기관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마땅히 그 책임을 져야 할, 신약교회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지역교회들에 의해서 훨씬 더 효과적으로 각각의 일이 더 잘 행해질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심각한 질문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약의 교회들을 대신할 어떠한 종류의 적당한 대체물도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약의 교회란,전통적인 종교의 황폐함과 메마름 속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 결정체처럼 단단하게 정형화되어 있고, 성직자 제도의 틀이 잡혀 있는 그런 종류의 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교회는 주님을 예배하며 깊은 교제 가운데 있고,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하며,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앞으로 전진 할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타 지역에 지역교회를 재생산 해내고 있는 역동적인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라.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화석이 되고 말 것이다." 라는 말은 많은 지역교회들의 슬로건입니다. 어찌 되었건 지금까지는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 주님께서 일하시는 사역의 풀뿌리에 해당하는 근본은, 영적인 지역교회들의 비옥하고 생산적인 토양에서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많은 영적으로 비옥한 지역교회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정으로 신령한 지역교회를 원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주실 것입니다.  EMMAUS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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