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콩팥(신장)은 행복한가요?" 우리나라 성인 7명 중 1명이 앓고 있는 흔한 질환, 일부 암환자보다 낮은 생존율, 투병생활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 5조2000억원…. 만성콩팥병(만성신부전)을 경고하는 설명들이다. 우리 몸의 노폐물을 걸러내는 ‘생명의 필터’ 콩팥. 하지만 심장·간·폐 등 다른 장기에 비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한다. 최근 5년 새 만성콩팥병 환자가 66% 증가했다.
‘콩팥질환은 사망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이지 않다’거나 ‘병이 생기면 한쪽 콩팥을 떼어내면 된다’는 식의 오해도 만연하다. 이에 질병관리본부와 대한신장학회는 올 10월 넷째 주를 만성콩팥병 주간으로 정해 ‘해피 키드니(Happy Kidney)’ 캠페인을 진행한다. 건강한 콩팥이 곧 행복한 삶을 보장해 준다는 취지다. 만성콩팥병 주간을 맞아 현대인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만성콩팥병의 심각성과 콩팥 건강의 중요성을 짚어본다.
방치했던 고혈압·고혈당, 만성콩팥병 4기로 발전
“콩팥 기능이 30%밖에 남지 않았답니다. 한창 취업을 준비해야 할 시기에 어쩌다 이런 병에 걸렸는지….” “좀 더 악화하면 투석이나 이식을 고려해야 한다네요. 모유 수유도 할 수 없는 아픈 엄마라 아이에게 미안해요.” “매일 운동하고 칼륨·나트륨·단백질 섭취를 제한하며 당뇨병 환자보다 더 엄격한 식생활을 하고 있어요. 병에 걸리기 전 진작 이렇게 관리할걸 후회막심이죠.”
한 콩팥병환우회 모임에 올라온 만성콩팥병 환자들의 투병일지 내용이다. 직장인 김경훈(41·가명)씨도 그중 한 명이다. 콩팥 건강에 무심했던 자신을 후회하고 있다. 김씨는 6년 전 건강검진을 통해 혈당·혈압이 기준치보다 높다는 결과를 받았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방치했다. 그리고 지난해 8월, 일하던 중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간 김씨는 만성콩팥병 4기 진단을 받았다. 콩팥 기능이 이미 정상인의 20%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퇴원 후 정기적으로 약물치료를 받았지만 증상은 점점 악화됐다. 결국 올 9월 ‘말기신부전(만성콩팥병 5기)’ 진단을 받고 투석치료에 들어갔다. 신장이식을 받지 않는 한 평생 투석치료를 받아야 한다. 김씨를 진단한 분당서울대병원 나기영(대한신장학회 홍보이사) 교수는 “고혈압·당뇨(고혈당)는 만성콩팥병의 가장 큰 위험신호”라며 “초기 치료가 늦어진 상태에서는 약물치료로도 만성콩팥병의 진행을 막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만성콩팥병 환자, 심뇌혈관질환 사망률 10배
강낭콩 모양의 팥 색깔을 지닌 주먹 크기의 장기 콩팥. 혈액 내 노폐물을 깨끗이 걸러내는 기능 때문에 우리 몸의 ‘정수기’로 비유된다. 노폐물과 수분을 제거하고 혈압을 조절해 적혈구 생성을 돕는다. 만성콩팥병은 이러한 콩팥 기능이 떨어져 3개월 이상 지속한 상태를 뜻한다. 콩팥 손상 정도나 기능 감소에 따라 1~5기로 분류한다.
5기에 해당하는 말기신부전에 이르면 신장이식을 받거나, 평생 혈액·복막 투석을 통해 망가진 콩팥의 기능을 대신해야 한다. 한번 손상된 콩팥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5기 환자가 2, 3기로 호전될 수 없다. 나기영 교수는 “투석치료나 신장이식을 받는 환자가 10년 새 2배 가까이 증가했다”며 “투석치료는 평생 지속해야 하므로 사회생활에 지장이 생기고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말했다. 만성콩팥병의 조기 발견 또한 쉽지 않다. 뚜렷한 자각증세가 없는 탓이다.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오국환 교수는 “몸이 붓거나 구역질이 나서 병원을 찾았을 땐 이미 만성콩팥병 4기로 진행된 경우가 상당수”라며 “실제 만성콩팥병 환자 중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10%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방치된 만성콩팥병은 암보다 치명적일 수 있다. 2013년 통계청에 따르면 만성콩팥병으로 인한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6.6명으로 유방암 4.4명, 자궁암 2.4명보다 많다. 전남대병원 신장내과 김수완 교수는 “대한신장학회 조사를 보면 혈액투석 환자의 5년 생존율은 66%, 당뇨병을 앓고 있는 말기신부전 환자의 5년 생존율은 39.9%”라며 “암 환자의 평균 생존율 64.1%와 비슷하거나 낮다”고 설명했다. 만성콩팥병이 합병증에 취약한 탓이다. 혈관덩어리인 콩팥에 문제가 생기면 심뇌혈관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나트륨·수분 배출이 원활하지 않아 혈압이 높아지고 체내 노폐물이 쌓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만성콩팥병 환자는 심뇌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정상인보다 10~30배 높다”며 “실제 투석환자의 주된 사망 원인은 심장질환이 35%, 뇌혈관장애가 12%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말기신부전의 65%는 당뇨병·고혈압이 원인
그럼에도 콩팥에 대한 국내 인식은 턱없이 부족하다. 오국환 교수는 “성인 7명 중 1명이 만성콩팥병 환자임에도 콩팥이 곧 신장이라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흔히 ‘한쪽 콩팥을 떼어내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는 말도 병든 콩팥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오 교수는 “양쪽 콩팥이 모두 건강하다는 전제 아래, 한쪽을 떼어내도 괜찮다는 뜻”이라며 “콩팥질환이 생기면 양쪽 콩팥이 동시에 나빠진다. 어느 한쪽을 떼거나 남길 수 없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결국 콩팥 건강을 지키는 최선책은 위험요인을 미리 알고 관리하는 것이다. 만성콩팥병의 원인은 당뇨병·고혈압·사구체질환·요로감염·약물부작용 등으로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베스트 3로 꼽히는 건 고혈당(당뇨)·고혈압·고령, 일명 ‘스리 고’다. 나 교수는 “당뇨병과 고혈압은 해당 질환의 진단·치료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 만성콩팥병 예방·관리로도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말기신부전 환자의 48%는 당뇨병, 19.7%는 고혈압이 원인이다. 당 수치가 높으면 노폐물을 거르는 콩팥사구체에 지속적인 압박이 가해져 사구체 기능이 떨어진다. 고혈압 역시 콩팥 혈관을 딱딱하게 만들어 정상적인 대사활동을 방해한다. 체내 염분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아 고혈압 증세는 더욱 심해지는 악순환이 온다. 당뇨병·고혈압 진단 환자는 반드시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주기적으로 콩팥 기능을 검사해야 한다는 게 나 교수의 설명이다.
또 나이가 많을수록 만성콩팥병 발병 위험은 높아진다. 오 교수는 “콩팥 기능이 가장 좋은 30세 이후부터 1년에 1%씩 콩팥 기능이 떨어진다”며 “60세는 30세에 비해 콩팥의 기능이 30% 떨어지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50세 이후부터는 정기적인 콩팥 검진이 필요하다.
간단한 혈액(크레아티닌)·소변(단백뇨) 검사로 만성콩팥병을 진단할 수 있다. 소변검사만으로도 콩팥병의 90%를 확인할 수 있으며, 환자 7명 중 한 명을 살릴 수 있다. 검진에서 단백뇨나 혈뇨가 나오거나 사구체여과율이 저하됐다면 추가 검사를 받는다. 김 교수는 “몸이 붓거나 피로감이 심하고, 구토·어지럼증·호흡곤란이 나타나는 사람, 자주 저혈당에 빠지는 당뇨병 환자나 혈압 조절이 힘든 고혈압 환자도 콩팥병을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럴 때 만성콩팥병 의심하세요
·소변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
·소변에 거품이 생긴다
·소변에서 피가 나온다
·소변의 양이 증가했다
·소변을 자주 본다
·자다가 일어나서 소변을 본다
·몸이 붓는다
·몸이 가렵다
※ 하나라도 해당되면 전문의와 상담 필요
[자료 질병관리본부]
오경아 기자 okaf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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