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제 4 과
복음의 위대한 진리(3:1-9)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
바울은 이제 논란이 되고 있는 중요한 교리적인 질문으로 넘어갔습니다. 사람이 믿음으로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행위를 통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까? 그는 세가지를 제시함으로 구원이 율법을 준수함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밀미암는 것임을 증명했습니다. (1) 갈라디아인 자신들의 경험 (2) 구약성경의 증거 (3) 사람의 일에 있어서 약속을 지켜야 하는 신성한 의무
갈라디아인들의 경험(3:1-5)
3:1 그들은 이해와 이성이 부족함을 나타내는 행동을 했습니다. (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은혜로부터 율법으로 돌이키는 것은 꾀임에 빠진 것입니다. 그것은 방심함으로 진리 대신 거짓된 것을 받아들인 것이며, 주술에 홀린 것입니다. "누가" 라는 단어는 단수로서 근본적으로 악한 자가 배후에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을 주술로 얽어매는데 정통한 자입니다.
("너희가 진리에 순종치 않도록" - 권위역) 이 표현은 가장 정평있는 사본에는 없기 때문에 개역성경에도 빠져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내용이 갈라디아서 5:7과 일치합니다.
바울 자신은 갈라디아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을 전하였고, 십자가가 그들을 율법의 저주와 속박으로부터 영원히 분리시켰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율법으로 돌아가서 십자가를 무시할 수 있습니까? 실제로 그 진리가 그들을 붙잡지 않았습니까?
3:2 이 한가지 질문이 모든 문제를 진정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2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그들이 회심했던 때로 되돌아가 보면-바로 그 때 성령님께서 그들 육체 속에 거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성령을 받았습니까? 행함으로입니까? 아니면 믿음으로 입니까? 분명히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율법을 준수함으로 성령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만일 그들이 행함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면 율법으로 말미암아 거룩에 이르거나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성령의 능력이 그들을 구원하는 필수조건이라면 그들의 육신적인 노력이 그들을 완전하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3:3 이는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한 것과 같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공로로 시작한 것을 당신의 노력으로 마칠 수는 없다. 당신은 은혜로 말미암아 받은 복을 당신의 공로로 유지시킬 수는 없다."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오늘날 믿음으로 단번에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이 율법아래 거하거나 자신의 의지에 열중하는 것을 보게됩니다. 이것은 매우 큰 잘못입니다. 율법이 거룩하게 하는 것은 율법이 사람을 용서하는 것보다 더 불가능합니다.
3:4 갈라디아인들이 처음에 그리스도를 신뢰했을 때는 자신들을 혹독한 핍박에 드러내 놓았으며 아마도 부분적으로는 은혜의 복음을 싫어하는 유대인 열심당원들의 손에 의해 핍박을 당했을 것입니다.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그 모든 고난이 헛된 것입니까? 그들이 율법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그들을 핍박했던 자들이 모두 옳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과연 헛되냐" 바울은 그들이 전에 고난받았던 그 복음으로 돌아오기를 계속해서 소망하는 표현을 했습니다.
3:5 한가지 의문점은 5절의 내용이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인지, 바울인지, 또는 이 서신을 기록하고 있는 때에 그들 중에서 사역하고 있는 다른 사람인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한글 개역 성경에는 하나님을 전제로 번역을 하였으나 영어 성경에서는 분명하지 않음-역자주).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물론 근본적으로 성령님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적용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도구인 그리스도인 사역자들에게도 적용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사역을 매우 높이 보는 견해입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성령님을 전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사역은 사실상 성령님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만일 사도 바울이 자신을 말한 것이라면, 그가 갈라디아인들에게 전도하여 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동반되었던 기적들을 생각하였을 것입니다.(히 2:4). 그러나 동사의 시제는 과거에 일어난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기록 당시에 일어나고 있는 어떤 것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울은 아마도 고린도전서 12:8-11에 기록되어 있는 신자들의 회심 후에 성령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기적적인 은사들을 제시하는 것같습니다.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그 대답은 "듣고 믿음으로"입니다. 성령님의 내주하심과 그 후에 신자안에서 역사하시는 그분의 사역은 공로로나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은혜로 주어지며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복을 받은 것을 그들의 경험에서 깨달아야 했습니다.
구약성경의 증거(3:6-14)
바울은 두번째 증명으로 거짓 선생들이 할례의 필요성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바로 그 성경으로 돌아갔습니다. 구약성경이 참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3:6 바울은 하나님께서는 갈라디아인들을 전적으로 믿음의 기초위에서 다루신다는 것을 나타내 주었습니다.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이제 그는 구약시대 일지라도 사람은 동일한 방법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5절에서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라고 질문하였습니다. 그 대답은 "듣고 믿음으로"입니다. 그 대답을 염두에 두고 6절을 열어보시면 "아브라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도 듣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동일한 방법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유대인 선생들은 그들의 중요시하는 인물인, 할례의 필요성에 대한 자신들의 주장을 근거로써 아브라함과 그의 경험을 사용했을 것입니다(행 17:24, 26). 그렇다면 바울은 그들의 근거를 가지고 그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거기에는 덧붙여진 아무런 공로도 없으며, 사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사람에게 어떠한 자랑의 근거도 남겨두지 않는 구원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일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노력과 연루되어 있는 "선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육신에게 어떠한 여지도 주지 않습니다. 핀들레이는 "자녀가 아버지에게 함같이, 피조물이 창조주를 의뢰하는 것보다 더 옳은 일이 무엇인가?" 라고 말했습니다.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칭의)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죄인들을 위한 대속물로 죽으셨고, 죄의 값을 갚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방법으로 죄인들을 정당하게 다루실 수 있습니다. 칭의란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의롭고 죄없게 만드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주의 사역의 기초 위에서 그들을 의롭다고 여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천국에 알맞는 의로운 신분을 주신 다음에, 주님께서 그를 위해 하신 일에 대해 감사하면서 의롭게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것은 칭의는 율법준수와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믿음의 원리에 의한 것입니다.
3:7 유대인 선생들이 갈라디아인들에게 아브라함의 참된 자녀가 되기 위해 할례를 받으라고 주장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바울은 이것을 반박했습니다. 참된 아브라함의 자녀들은 유대인으로 태어난다거나 유대인 회심자처럼 되는 자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4:10, 11에서 바울은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에 의로 여기신바 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아브라함이 아직 이방인으로 있는 동안 의롭게 된 것입니다.
3:8 구약성경은 수세기 동안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믿음의 원리에 입각하여 구원하실 것을 예언으로 묘사하였습니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인 이방인의복은 구약성경에 의해 예견되었을 뿐아니라 창세기 12:3에서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실제적으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창세기의 이 인용구절을 처음 읽을 때 사도바울이 그 구절에서 어떻게 그러한 의미를 발견하였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그 구절을 기록하신 성령님께서는 그 구절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는 복음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그 동일한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기록하였으며, 그 숨은 의미인 "너로 말미암아"라는 것이 아브라함과 함께, 아브라함과 같은 방법으로 라는 의미인 것을 우리에게 설명해 줄 수 있었습니다.
3:9 아브라함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믿음으로입니다.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이방인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아브라함과 같은 방법인 믿음으로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유대인이 됨으로써가 아니라 이방인으로서 구원을 받게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믿음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은 유대인의 성경의 증거에 의해, 아브라함의 믿음과 함께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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