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영 칼럼] 목회자 과세, 교회 공공성 관점에서 바라보자
정재영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종교사회학) l 등록일:2015-12-08 14:27:37 l 수정일:2015-12-10 17:58:37
▲정재영 교수 |
종교인 과세법안이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1968년 처음으로 논의된 후 47년 만에 입법화가 이뤄진 것이다. 이에 따라 오는 2018년 1월 1일부터는 목사, 신부, 승려 등 모든 종교 종사자들은 소득에 대한 세금을 내야 한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는데다, 개신교계 내에서 과세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어 법안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천주교는 이미 주교회를 통해 세금을 납부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화살은 개신교를 향하고 있다. 과세 문제는 목회자 개인뿐만 아니라 종교단체인 교회도 관련되는 문제이다. 이러한 과세 문제는 조세법에 따라 판단할 수도 있고, 더 깊이 들어가면 자본주의의 철학 토대에 대해서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법의 취지이다.
국민이 수입에 대해 국가에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개인의 노동은 사회 기반시설 및 국가의 보호 아래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이라면 마땅히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의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목회자의 경우, 목회 활동을 노동으로 볼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관련되어 있다. 간혹 노동을 매우 좁은 의미의 ‘육체’노동으로만 이해하여 노동자라고 하면 사무직 종사자는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과거에는 교사의 활동이 노동이냐 아니냐가 큰 논쟁이 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사전에서 노동의 의미는 “몸을 움직여 일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의 교직 활동 역시 넓은 의미에서 노동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목회자의 경우 더 특별하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신성한 직무를 담당하는 것인데, 이것이 보수를 위해 일하는 일반적인 노동과는 다르지 않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세금을 내면 목회가 세속화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과 속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에 따라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 목회자의 사역을 세속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목회자의 활동 역시 전기, 전화 등의 사회의 기반시설을 활용하고 교회 생활이나 교회의 모든 활동들이 사회와 분리되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에도 ‘세속’의 것을 무조건 ‘신성’에 반(反)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올바른 이해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로부터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으며, 나아가 생명과 재산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목회자 역시 세금을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목회자가 받는 사례비는 교인들이 이미 자신의 수입에서 세금을 납부한 돈이라는 이유로 이중과세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경우, 보기를 들어 교사의 월급 역시 이미 세금을 납부한 학부모의 돈이다. 뿐만 아니라 3차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들은 이미 세금을 납부한 돈에서 월급을 받는다. 따라서 월급이 이미 세금을 납부한 돈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그 월급을 받는 사람의 세금 납부 문제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교회 재정의 공공성
과세 제도와 관련해서 또 한 가지 중요한 법의 취지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종교단체에 대해 자선단체와 같은 수준의 조세 감면이나 비과세 혜택을 주고 있다. 그것은 종교단체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선단체와 같이 사회의 공익에 기여하고 있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 목회자와 교회에 대해 비과세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교회가 사회의 공익을 위해서 일하기보다는 자기 자신들만을 위해서 일하기 때문에 영리 단체나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금을 내고 안 내는 것은 표피의 문제이다. 세금을 내더라도, 그것으로 사회에 대한 교회의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교회의 활동이 공공성을 띄고 있으며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노치준 교수가 80~90년대에 조사 연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교회들은 예산의 대부분을 교회 내부 활동과 교회 관리 및 유지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 교회 본연의 사역이라고 할 수 있는 선교에 대한 예산마저도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특히 사회를 위한 봉사활동비는 5%를 훨씬 밑돌아 교회의 활동이 공공성을 구현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는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정확한 최근 통계가 없으나 몇몇 기관에서 조사한 내용에서는 현재도 크게 개선된 점을 발견할 수 없다. 이것은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어 교회가 본연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함으로써, 교회 안팎으로부터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또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도 못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세금과 관련하여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어느 쪽이 기독교인의 미덕을 나타내는 태도인가 하는 것이다. 성직자에 대하여 우리 사회가 특별하게 인정하고 세금 감면의 혜택을 준다면 좋겠지만, 성직자들도 세금을 내야한다는 사회적인 요구가 높은 마당에 세금 납부를 거부하는 것은 교회가 매우 이기적인 집단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당당하게 세금을 냄으로써 목회자와 교회 역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기본적인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이에 대해 일반 시민과 의식을 공유하는 것이 교회의 공공성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태도이다. 현실적으로는 상당수의 작은 교회 목회자의 경우 생활보호대상자에 해당할 만큼 사례가 적기 때문에 세금 액수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 교회의 공공성 회복을 위하여
여러 조사 결과에서 보듯이, 한국 교회는 우리 사회에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개신교의 신뢰 상실은 교회의 활동이 공공성을 상실한 데에 기인한다. 전래 초기 한국 개신교는 사회 부조리를 혁파하고 새로운 가치 질서를 제시하는 선구자의 역할을 감당했지만, 오늘날의 개신교에서 공공의 선이나 선한 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노력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자신들만의 이익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대하여 공공 종교로서의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수천 명씩 모아 힘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행위는 패권주의식 사고에 다름 아니다.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신념을 강요하는 것은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서로 다른 ‘설득력의 구조’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논리를 보편적인 언어로 표현하여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치에 맞는 것’이 되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기독교 문화권이 아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의 주장이 우리 사회에서 보편성을 갖기 위해서는 단순히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주장하기보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비기독교인들과 자유롭게 대화하며 자신들의 논리를 펼치고 토론을 통하여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진리를 전하는 바람직한 방법이다. 새해에는 한국 교회가 공공성을 확보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게 되고 사회로부터의 공신력도 회복하게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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