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시험하고 확증하라
자기 노력으로 죄 씻으려는 신자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라디아서 2:16).
"우리가 죄인인데 어떻게 천국에 갑니까?"
그야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여전히 죄를 짓고 있잖아요?"
'그렇지요 그러니까 죄를 안 지어야지요."
"죄가 안 지어집니까?"
"노력해야지요."
이와 같은 대화는 필자가 수없이 많이 경험한 대화이다. 이 얼마나 막연하고 대책 없는 대화인가.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이 당연하거니와 이 노력으로는 절대로 천국에 이를 수 없다.
"죄를 안 지어야지요." 이 말은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이 말은 사단이 한국 기독교인을 가장 많이 속이는 말이다. 여기서는 죄 문제에 대해서 이와 같이 미지근한 사람들의 문제점을 점검하며 기독교 안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
첫째로 이들은 사단에게 속고 있다. 사람이 죄를 이겨보려는 노력은 인간이 땅에 살면서부터 진행되어왔다. 이것은 양심적인 문제요 본능적인 문제이다. 그러기에 양심과 본능을 기초로하여 만들어진 교과서 및 교육 자료들도 죄를 짓지 아니하려는 노력에 맞추어져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기 떼문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따라 살아야만 한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타락한 인류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죄악의 길로 줄달음쳐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양심 속에 하나님의 모습이 있는 고로 죄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모습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지속해왔다. 이것은 아름다운 모습이요 인류가 버리지 말아야할 좋은 습관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상황을 보고 있는 사단이 이 습관을 이용하여 영혼을 노략질하는 것이다.
사단은 인간에게 행할 수도 없는 막연한 목표를 주어서 마치 죄를 안 짓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면 결국은 천국에 가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 심리로 속이고 있다. 또한 그것은 양심과 본능에도 맞는 것이며 겉보기에도 훌륭한 모습으로 보인다. 그러나 거기에 함정이 있다. 그것은 사단이 은밀한 곳에 파놓은 교묘한 함정이다. 역사적으로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영혼들이 죄를 짓지 않으려는 노력을 기울이다가 실패하고 지옥에 떨어지고 있다.
다름 아니라 서두의 대화에서 나타난 것처럼 죄를 짓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천국 가는 것처럼 속인다. 죄를 짓지 않아야 천국 간다는 사상은 모든 이방종교에 팽배해있으며 실상 모든 종교를 받치고 있는 기둥이다. 슬픈 것은 이와 같은 이방종교의 사상이 기독교 안에도 침투해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죄 문제를 물어보면 죄를 짓지 않아야만 천국에 가는 것처럼 대답하고 있다. 오! 사단은 얼마나 지혜로운가. 속아서 지옥에 가는 자로 하여금 지옥 문 앞에 갈 때까지 전혀 깨닫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속이는 것이다.
둘째로 그것은 교만한 말이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죄를 안 지어야지요. 노력해야지요." 이 말은 아주 고상하고 품위 있는 말같이 들리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이요 구원을 거부하는 말이며 오만한 자의 교만한 행동이다. 생각하여 보라. 물에 빠진 사람이 죽게 되어서 밧줄을 던지니 밧줄을 거부하고 내가 노력해서 탈출해보겠노라고 한다면 그는 구원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나오겠다고 고집하다가 죽지 않겠는가? 이것은 구원자를 무시하는 행위요 자기의 처지를 파악하지 못한 불쌍하고 어리석은 자의 모습인 것이다.
성경에서 죄인이라는 뜻은 "자기 힘으로 죄 문제를 풀 수 없으므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 아닌가! 그렇다면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부르짖은 세리와 같이 겸손하게 나아와 구원을 얻어야 할 것이다. 성경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거니와 교만한 자에게는 엄격히 다룬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베드로전서 5:5). 물론 이 사람들이 인격적으로는 겸손하고 온유하며 따뜻한 사람들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교만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도 교만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단의 속이는 지혜이다.
셋째로 그들은 경험되지 않은 교리를 말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예수님의 속죄를 입으로 말한다. 교리적으로도 깨닫고 있다. 질문에 멋지게 대답하는 교인들도 많다. 심지어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모든 죄가 용서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양심적인 문제를 들어 죄를 짓지 않느냐고 다그치면 당황한다. 그들은 경험하지 못한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죄 문제 앞에 당황하여 급히 쏟아놓는 말이 "죄를 안 지어야죠" 하는 말이다. 그리고 어떻게 안 지을 수 있는가 말하면 당황하여 "노력해야죠" 한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정돈되지 않은 지식을 교리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제적인 문제를 말하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자기에게 경험이 없으므로 자신감 없는 답을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죄를 안 지어야지. 노력해야지." 이 얼마나 불안정한 대답인가? 그들은 하나님에대한 열정이 대단할지라도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 그들은 정녕 지옥에 갈 것이다.
넷째로 그들은 자신에게 속고 있다. 서두에 약간 언급했던 것처럼 죄를 안 짓는다거나 노력한다는 말이 얼마나 무모하고 무책임한 말인가? 도대체 인간이 죄를 안 지을 수 있는가? 노력으로 말미암아 얼마만큼 죄를 덜 지을 수는 있겠으나 죄를 안 지을 수는 없다. 전도서 7장 20절에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잘못될 수 있는가? 인간은 죄를 안 짓고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런데도 죄와 천국에 관한 문제를 언급하면 죄를 짓지 않아야 된다는 말을 쏟아놓고 있다. 그들은 죄를 짓지 않으려는 노력을 평생 하면서 고생할 것이다. 그리고 지은 죄로 인하여 평생 고통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지옥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을 살펴보자.
야고보서 2장 10절에 보면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라고 하였다. 생각하여 보라. 온 율법을 지켰다고 하는 말은 얼마나 놀라운 말인가? 한 가지만 빼고 모든 율법을 다 지켰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가지로 인하여 모두 지킨 율법의 행위가 허사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살인하지 아니하였을 지라도 간음하면 지옥 갈 죄인이라는 뜻이다. 도둑질을 하지 않았을지라도 거짓말을 하면 도둑질한 것과 같은 죄인이라는 뜻이다.
사도 바울은 이 일에 대해서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에 관해 간증할 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팔 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빌립보서 3:5,6). 얼마나 놀라운 간증인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말하지 않은가! 이 말은 자신이 자신을 돌아볼 때 흠 잡힐 만한 잘못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와 같이 완벽한 간증을 하고도 그는 자기 의로, 자기 행위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는 자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라디아서 3:10).
죄를 안 지어야 된다는 사상이나. 노력해야 한다는 사상은 다 율법 행위에 속한 사상이다. 그리고 그들은 저주 아래 있음이 분명하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 있는 수많은 소경들은 죄를 짓지 않으려는 노력이나, 열심을 대단한 신앙의 표본으로 자랑하는데 이것은 얼마나 슬픈 모습인가. 얼마나 어리석은 바보인가. 죄를 안 지으려는 노력으로 천국에 간다면 도대체 얼마큼 노력해야 할 것인가? 그 한계는 어디인가? 어디까지가 천국이고 어디부터가 지옥인가? 답답하지 아니한가? 그러니 해도 해도 끝없는 노력 속에서 지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은 자포자기하고 기독교를 떠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끝까지 노력하고 있다.
목사님들은 첫 번째 사람에게 믿음 없는 탕자라 하고, 두 번째 사람에게는 믿음 좋은 신자라고 말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 그가 탕자가 아니고 육신의 선한 것이 없음을 깨닫고 정직한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끝까지 노력하겠다는 두 번째 사람은 믿음 좋은 신자처럼 보이지만 자기 착각에 빠진 소경일 뿐이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는 자기가 할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자랑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는 율법 아래 있는 자이며 저주의 자식이며 지옥의 심판을 면치 못한다. 그들 중에는 목사나 장로나 집사들도 허다하다. 그들은 자기 의에 잡혀서 자기는 천국에 갈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오히려 다른 사람의 인도자요, 소경의 눈이요, 길 잃은 양을 하나님께 인도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러니 정작 자기가 소경이며 길 잃은 양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어느 날 어느 목사님을 만나서 거듭난 사실이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화를 버럭 내면서 목사에게 그렇게 묻는 것은 예절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냐고 따졌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허나 성경은 지도자들일지라도 생명의 문제를 검토해보라고 권면하고 있다(마태복음 7:21~23).
이제 정확한 복음은 무엇인가? 말해 주고자 한다.
"당신은 죄인인데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모든 죄를 십자가로 말미암아 다 용서하셨다는 대답으로 족하다. 그러면 "또 죄를 짓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세상 죄를 지고 가신 예수님은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셨음으로 인하여 구원 이후에 짓는 죄가 나를 지옥으로 이끌지 못한다. 다시 설명하자면 구원받기 전에는 종의 신분으로 죄를 짓는 것이며, 구원받은 이후에는 아들의 신분으로 죄를 짓는 것이다. 종은 죄로 인하여 쫓겨나거나 주인과 관계가 끊어질 수 있지만 아들은 죄로 말미암아 관계가 끊어질 수 없는 피로 맺어진 관계다.
구원은 이와 같아서 예수님의 피로 죄를 씻어서 하나님과 우리가 부자(父子)의 인연을 맺었다. 얼마나 든든한가! 얼마나 확실한가! 죄와 상관없이 천국에 가는 것이며, 죄와 상관없이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다. 다시 오실 주님은 그와 같은 자들을 찾으신다.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브리서 9";28).
사랑하는 여러분! 죄 문제를 해결했는가? 답을 찾았는가?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는가? 예수님이 내 죄를 용서하셨지만 우리가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된다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성경은 뭐라고 답변하고 있는가?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히브리서 10:17).
"이것을 사하였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히브리서 10:18).
죄를 안 지으려는 노력이 아니라 모든 죄를 이미 용서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속죄를 의지함으로서만 천국에 이르는 것이다. 구원받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십자가에서 그대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시면서 " 다 이루었다", 즉 "다 갚았다" 하신 예수님을 단순히 믿는 것이다.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요한복음 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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