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부자' 심정 알고 싶거든 세비야로 가라
[다섯 부부의 인상파식 여행] 아! 이베리아 반도 ⑪오마이뉴스 손인식 입력 2016.12.13 10:39
[오마이뉴스손인식 기자]
작년이다. 서울 인사동에서 서예 개인전을 열 때다. 작품을 관람하던 분이 "왜 해서(楷書=정자) 작품은 없어요?" 한다. "안 보이던가요? 있습니다. 잘 찾아보세요." 했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없는 데 있다고 했을까? 있는데 못 찾았을까? 둘 다 맞다.
학습과 창작이라는 관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가 생각하는 해서란 처음 한 획부터 마지막 마치는 한 점까지 일관되고 엄격한 필법을 갖춘 정자였다. 그런데 내가 개인전에 출품한 작품 대다수는 느낌을 강조한 창작으로서 서체의 구분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은 작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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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하고 정밀함의 극치를 자랑하는 세비야 대성당 내부 |
ⓒ 길동무 |
대게 분류는 창작자의 몫이 아니다. 평론가나 후세 사학자들의 몫이다. 그러므로 우선 "세비야 대성당을 고딕 양식 중 대표"라고 못 박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보는 눈과 마음이 좀 더 자유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대다수 성당이 지닌 유사한 특징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 오직 세비야 대성당이 지닌 가치와 의미를 잘 새겨야 한다.
탐방객에게 어울린 감상 리스트를 미리 작성하는 것도 좋으리라. 세비야 대성당 전후 상황과 그에 스민 히스토리를 함께 살피는 것이 가장 그다운 감상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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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비야 대성당 벽을 장식한 성화 |
ⓒ 길동무 |
"무조건 톨레도 대성당보다 크게 지어야 한다"는 욕심도 흥미롭다. '욕심(慾心)'은 대게 추한 결말이 따른다. 권력이나 부를 향한 것 등 대부분 그렇다. 그러나 세비야 대성당을 짓기 위한 참사회의가 바라던 것은 욕심(欲心), 즉 순수하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나 '바라는 마음' 즉 소망이었던가 보다. 하여 세비야 대성당을 위한 욕심은 아름답고 숭고하다.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기에 오늘날 세비야 관광의 핵심이 되고 또 미담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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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교하고 화려하게 장식된 세비야 대성당의 천장 |
ⓒ 길동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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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려하고 높고 깊은 순도를 자랑하는 세비야 대성당 천장의 장식 |
ⓒ 길동무 |
그러잖아도 궁금하던 차에 가이드 이 선생이 숙제를 낸다. 거울이 있다. 목 디스크 염려하면서 올려다보지 않고도 천장을 가까이 살필 수 있는 장치다. 한참을 들여다본다. 천장의 문양과 그림이 참으로 조밀하다. 감탄이 절로 난다. 그런데 왜 천장에 몰두했을까에 대한 답은 찾아지지 않는다. 이럴 때 상책은 무엇인가? 피하는 거다. 어려운 문제에 시간을 끌다 보면 다른 문제마저 풀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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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의 일대기가 금장된 세비야 대성당의 중앙 재단(황금 재단) |
ⓒ 길동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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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의 일대기가 금장된 세비야 대성당의 중앙 재단의 부분 |
ⓒ 길동무 |
놀라게 해놓고는 놀라지 말라고 한다. 80년 세월? 그때 사람들은 꽤 장수를 누렸는가 보다. 아니면 최소한 200여 년 사는 사람의 마음의 여유를 지녔든지. 어쨌든 넓고 높은 수행을 참 길게도 했다 싶다. 80년간 수많은 사람이 고되게 몸을 움직이고 바쁘게 손을 움직여 빚어낸 걸작, 여정은 고되고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몸과 마음을 바친 자들에게는 그 작품으로서 자기 목적에 순정하게 다가갈 수 있었으리라. 마침내 자기 구원을 얻었으리라.
놀랍다. 이 많은 금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니. 중앙 재단은 모든 여행객에게 참 후하게 금빛을 선사한다. 금이 뭔가? 무게로 가치를 가늠하지만, 그 본질은 빛이다. 그 아름답고 빛나는 빛이다. 그 빛이 시대를 초월해 무한 빛을 발산하고 있다. 과연 금이 과연 금답게 쓰였다. 옹골지게 금부자 한 번 된 느낌이다.
걸음을 옮기자 크고 섬세하고 화려하면서도 육중함으로 압도하는 성가대석이 펼쳐진다. 탐방한 성당마다 성가대석은 늘 놀라움의 대상이었다. 그중에서도 세비야 대성당은 특별하다. 들여다볼수록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당시에는 문맹자가 많았다 합니다. 가톨릭은 글을 모르던 성도들에게 음악으로 신앙을 고취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성가대석을 크고 화려하게 꾸몄다고 해요."
성당 안에 세비야가 켜켜이 쌓여있다. 예술의 도시 세비야, 고대 로마 시대부터 안달루시아 지방 중심지였던 세비야, 무역 기지로서 흥성했던 세비야가 성당 안에 다 있다. 어떻게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 '벨라스케스', '무리요'를 세비야가 배출할 수 있었는가? 왜 세비야가 <카르멘>과 <세비야의 이발사>의 모차르트 <돈조반니>의 배경이 될 수 있었는가? 세비야의 대성당은 아주 구체적으로 증명한다. 아 그러고 보니 성당은 무슨 건축양식이나 따지는 건축물이 아니다. 역사요 사람이며 바로 그 땅임을 세비야 대성당이 해설하고 있다.
"푸우..."
대성당 내부를 돌아보면서 긴 숨이 멎을 새가 없다. 분명 맘 놓고 촬영해도 된다고 했는데 마구 사진을 찍기가 송구하다. 그 위대함을 작은 핸드폰 안에 담는 것이 죄스럽다. 그 두터움을 얇은 평면에 옮기는 것이 미안하다. 느낌이 많다. 그러나 말도 글도 줄이자. 모든 보는 이들의 감성에 맡기자. 어설픈 설명으로는 침묵을 능가할 수 없다고 침묵하는 곳이 세비야 대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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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비야 대성당 안에 있는 네 명의 뫙이 둘러메고 있는 콜롬버스의 묘 |
ⓒ 길동무 |
교과서 한 페이지로는 영웅이요, 달걀 사건에 이르면 지혜의 표상이다. 그러나 더 알면 비판의 대상으로 번지다가 거기서 다시 더 나아가면 연민의 대상으로 바뀌는 콜럼버스, 그가 공중에 들린 모습으로 객을 맞이한다. 그의 들린 무덤 앞에 서자 제어할 수 없는 질문, 소리 없는 질문들이 마구 솟구친다.
"그대의 항해 목적이 크게 그른 것이었음을 인정하는가? 그대의 항해 성공이 다른 말로는 '잔혹한 정복의 역사'였다는 것을 인정하는가? 그대는 그대의 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으리라'라는 악의에 찬 말을 남기고 유명을 달리 했다. 그대는 사후에도 몇 곳을 떠돌더니 지금도 공중에 떠 있다. 그것도 스페인에서. 수많은 여행객이 알고 묻는 물음에 대한 그대의 답은 무엇인가?"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산 자도 답을 기다릴 수 없다. 드러난 역사적 사실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판단도 걸으면서 해야 한다. 히랄다 탑(La Giralda)이 기다리고 있다. 히랄다 탑은 세비야 대성당의 상징 중 상징이다. 멀리 볼수록 더 우뚝한 탑, 참 많은 문헌에서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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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에서 바라본 히랄다 탑 |
ⓒ 길동무 |
서른네 구비, 종루로 오르는 길에 들어섰다. 계단이 없는 경사로를 따라 돌고 돌았다. 오르는 도중 시선을 잡아당기는 것이 사다리꼴보다 더 급하게 좁혀진 창이다. 창으로 인해 벽 두께가 드러난다. 족히 2m를 헤아릴 듯하다. 참 놀랍도록 두텁다.
두터움은 스페인, 아니 이베리아 반도 나아가서 유럽의 상징일까? 창살, 거리의 시설물, 가정집 벽까지도 두꺼움의 퍼레이드다. 두터운 것에 한 번 관심이 가니 유난히 늘 눈에 띄는 게 두터움이었다. 히랄다 탑 벽의 두께는 가히 두꺼움의 정점이다.
밖에서 우러러볼 때와 내부에서 걸어 오르는 히랄다 탑의 느낌은 영 다르다. 무려 천 년을 바라보는 세월을 견뎠기 때문일까. 바라볼수록 그리고 뜯어볼수록 범접하지 못할 기운이 느껴진다. 떨어져 나간 귀퉁이가 있다. 손을 얹어본다. 감촉이 찌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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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랄다 탑 종루를 오르다 바라본 세비야 시가지 |
ⓒ 길동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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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랄다 탑 종루에서 바라본 대성당과 시가지. 고딕양식의 특징 하중을 분산하기 위한 들보와 기둥이 사람 갈비뼈 모양으로 밖으로 돌출되어 있다. |
ⓒ 길동무 |
이 아름답고 거대한 유산, 점령자가 누구였든 간에 마음을 사로잡혔을 것이다. 보존이나 활용 여부에 관해 수판질 할 틈도 없이 그냥 히랄다 탑의 노예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 엄청난 불로소득을 바라보는 점령자의 소회가 어땠을까? 오늘 히랄다 탑의 점령자는 길동무다.
파괴력이 큰 포탄이 없었던 시절이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창조의 역사와 정복의 역사가 저울대에 오른다. 그 직선의 양 끝은 늘 대척을 이룬다. 대척점은 늘 멀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 양 끝을 이으면 그냥 하나의 점이 되고 원이 된다. 끝과 끝을 잇는 것은 순환과 조화를 의미한다. 적을 힘으로만 제압하지 않는 포용과 타협이 얼마나 큰 지혜인가를 증거로 제시하는 히랄다 탑은 그래서 더 우뚝하다.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정복자의 창조적 안목 또한 얼마나 축복인가.
오르는 것은 늘 기대를 수반한다. 힘들여 오를수록 보상심리로 인해 기대감은 더 커진다. 오르는 것의 목적은 정복만이 아니다. 거기엔 창조가 깃들어야 한다. 숨 가쁘게 종루에 올랐다. 한눈에 펼쳐지는 세비야 시내, 이 탑 또한 바로 저곳들로부터 한눈에 들겠지. 사방에서 우러르겠지. 높은 것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뒤따른다. 세계 유일한 탑으로서 히랄다 그래서 더 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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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비야 대성당 지붕과 세비야 시가지. 사진 상단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코르도바를 거쳐 흘러온 과달키비르 강이 희미하게 보인다. |
ⓒ 길동무 |
"이 종들의 숫자가 모두 28개입니다. 축제 기간에는 엄청난 소리를 내는데 종이 360도 회전을 합니다. 귀를 막지 않으면 이 자리에 서 있을 수도 없어요. 탑 꼭대기의 여인상은 한 손에는 깃발을 들고, 또 한 손엔 종려나무 가지를 들었어요. '엘 히랄디요'라고 합니다. '바람개비'를 뜻하는데, 바람을 타고 바람개비처럼 회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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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랄다 탑 종루를 떠나기 전 길동무는 한 장의 사진을 새겼다. |
ⓒ 길동무 |
애써 오른 길, 그 구비만큼 돌고 돌아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이 오르는 길보다 늘 조심스럽다. 오를 때 많던 생각을 잘 정리하는 것도 내려가는 길의 몫이다. 세비야 대성당, 길동무가 본 것은 무엇이고 보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보이지 않는 데 느낀 것은 또 무엇일까?
멋과 정렬, 풍요 그리고 역사와 사람의 도시 세비야. 모든 것이 세비야다운 세비야여 이제 그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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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여행을 위해 ‘길동무’란 이름으로 뭉친 다섯 부부가 있습니다. 모두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국인입니다.
이 글은 길동무가 2016년 10월에 여행한 이베리아 반도, 스페인 포르투갈 이야기입니다.
이 글은 인도네시아 한인 경제신문 사이트 PAGI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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