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즐기는 알프스
- 입력 : 2017.02.24 10:13
힐링 스토리

동서(東西)의 알프스산맥과 남서(南西)의 쥐라산맥 사이 ‘성스러운 땅’이라 불리던 스위스는 시간이 멈춘 듯 일년 내내, 사시사철 그림 같은 풍광으로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스위스를 상징하는 단어 중 단연 으뜸은 알프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고 푸른 하늘, 그와 대비되는 시리도록 하얀 설산, 지평선 너머 푸르게 펼쳐진 초원과 빙하가 만든 깊은 호수까지…. 이 맑고 아름다운 장관을 두 눈에 담고 있자면 대자연의 경이로움과 감동이 가슴 깊숙한 곳까지 밀려온다. 여행 중 어떤 이동수단을 이용해도 좋지만 천혜의 자연경관을 오롯이 감상하며 가까이서 느끼기에는 두 발로 직접 걸으며 체험하는 도보여행이 제격 아닐까. 지난 여름, 푸르른 낭만이 살아 숨쉬던 그곳에서의 기억을 하나씩 꺼내본다.

내가 꿈꾸는 도보여행
함께 여행을 떠난 일행 한 분이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난 여행지를 결정하기 전, 어떤 것을 보고 싶은지 생각하곤 해요. 사람이 만든 작품과 신이 빚은 작품 중 어느 것을 보러 갈지 말이죠.” 처음엔 그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지만, 설명을 듣곤 이내 고개가 끄덕여졌다.
전자는 이집트의 스핑크스, 스페인의 가우디 대성당,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등과 같은 건축물 또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여행이다. 후자는 자연의 모습 그 자체를 보기 위한 여행을 뜻하는 것이다. 각자의 이유로 떠나는 여행이라지만, 이처럼 낯선 사람들과의 인연은 내가 미처 보고 느끼지 못한 새로운 관점을 깨우쳐주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여행 중 나는 후자에 가까운 여행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그 여행을 온전히 즐기기 위한 방법으로는 도보여행을 선호한다. 물론 ‘왜 비싼 돈 주고 사서 고생하느냐’는 이유로 도보여행 자체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도 많다. 하지만 무조건 정상을 향해 가파른 오르막을 숨차게 걷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펼쳐진 오솔길과 산책로, 오밀조밀한 마을의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 따스한
햇살과 향긋한 바람, 그리고 사람 사는 모습을 두 눈과 마음에 담아올 수 있는 여행…. 그게 바로 내가 그리는 도보여행의 참모습이다.
2016년 여름에 다녀온 스위스 여행이 그랬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웅장한 알프스의 영봉들과 아름다운 곡선의 구릉지대, 그 아래 자리 잡은 푸른 초목과 샬레(Châlet, 스위스식 목조건물)까지.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 나올 법한 소박하고 서정적인 전원 풍경이 한데 어우러진 그곳은, 아이들을 위한 쉬운 코스부터 전문가 수준의 산악 코스까지 갖춰져 누구나 자연을 벗 삼아 걸을 수 있다. 알프스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발걸음을 재촉하다 보면, 어느새 하늘을 담아낸 에메랄드빛 호수와 알록달록 고운 야생화가 만발한 초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어디를 걸어도 한 폭의 그림이 되는 자연의 품 속에서, 나는 동화 속 주인공이 된 듯 푸름의 절정을 만끽했다.
‘신이 빚은 작품’을 만나다
스위스 여행의 출발일이 정해지고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날씨였다. 사실 여행의 성패는 날씨가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신이 빚은 작품’을 즐기는 도보여행은 신의 도움 없이 제대로 즐기기가 어렵다.
스위스로 떠나기 전날, 짐을 꾸리며 날씨를 검색해보았다. 아뿔싸, 하필이면 스위스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마테호른과 알레치 빙하를 보는날, 슈탄저호른에 오르는 날 모두 비 소식이 있었다. 일기예보가 틀리길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스위스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여름이 스위스 여행의 적기라 그런 것인지 취리히공항은 전 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복잡한 공항을 빠져나와 가이드를 만났다. “스위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밝은 미소로 인사를 건네는 가이드에게 가장 염려했던 현지 날씨부터 먼저 물었다. 가이드는 걱정스런 내 표정을 읽은 건지 이런 질문을 예상한 듯 나를 안심시켰다. “산악지대가 많은 스위스의 날씨는 케이블카를 타고 높은 곳에 올라가서 하늘을 봐야 알 수 있기 때문에 일기예보는 사실상 의미가 없습니다. 매일 1시간 단위로 업데이트되는 날씨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해 일정을 조율 할테니 혹시 멋진 장관을 못보고 돌아가는 건 아닐까 우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의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아서였을까, 경험 많은 가이드 덕분이었을까? 결과적으로 9일 동안 비를 만난 날은 단 하루뿐. 나머지 일정은 쾌청한 하늘 아래서 알프스의 미봉들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공기마저 다른 산악마을 ‘뮈렌(Murrren)’
해발 1650m에 위치한 산악마을 뮈렌은 ‘알프스의 숨은 진주’로 불리며, 스위스 마을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건너편에는 만년설이 내려앉은 알프스 봉우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마을 뒤편으로는 쉴트호른(Schilthorn)이 든든하게 자리하고 있다.
가솔린 자동차는 단 한 대도 없다. 자연보호를 이유로 오직 전기 자동차만 운행하며, 머리와 가슴속을 정화해주는 천혜의 자연경관으로 전 세계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른 아침, 케이블카를 타고 영화 007시리즈 <여왕 폐하 대작전>의 촬영지로 유명한 쉴트호른 전망대에 올라 ‘신이 빚어낸 알프스의 보석’ 융프라우와 함께 아이거, 묀히 등 알프스 3대 봉우리를 조망하고 다시 뮈렌으로 내려왔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자연경관 중 하나를 보고 왔다는 만족감과 더불어, 파란 하늘 위 만년설을 머금고 넘실대는 흰 구름의 자태를 보고 나니 마치 시원한 파도가 밀려오듯 짜릿한 청량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어진 뮈렌~김멜발트 구간 하이킹. 나는 이 길에서 평소 꿈꿔온 도보여행의 로망을 실현했다. 한 시간 반가량 완만한 내리막길을 천천히 걷는 아주쉬운 코스지만, 걷는 내내 눈앞에 펼쳐진 풍광은 나를 현혹시키기에 충분했다. 형형색색의 야생화들이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살랑대니 코끝이 달달해졌고, 아기자기한 샬레들이 어서 오라고 반갑게 맞이했다. 투명한 이슬이 내려앉은 푸르른 초원과 풀을 뜯는 소떼들. 합창하듯 평온하게 울려 퍼지는 워낭 소리에 걷는 내내 오감이 열리고 행복한 감정이 가득 차올랐다.

깊고 찬란한 ‘블라우제’ 호수 물빛
내륙에 위치한 스위스는 바다가 없다. 대신 신에게서 호수를 선물받았다. 스위스에는 바다처럼 넓은 레만 호수부터 이름 모를 작은 호수까지 지역 곳곳에 크고 작은 호수 1500여 개가 있다. 여행 중 수많은 호수를 보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블라우제(Blausee)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파란 호수’라는 뜻으로, 송어 양식장을 겸하고 있어 ‘송어의 호수’라고 불린다.
개인 소유이기 때문에 입장료 5프랑을 지불해야 하지만 영롱한 에메랄드와 코발트를 섞어놓은듯한 물빛만으로도 그 이상의 값어치는 한다. 작지만 맑고 아름다운 호수 주변으로 이끼 가득한 오솔길이 이어지고, 가족과 함께 피크닉 온 아이들부터 관광객들까지 많은 사람이 호숫가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 한 장면만으로도 스위스 사람들에게 호수는 단순한 의미가 아닌 삶의 일부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그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조용히 호수를 바라보았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좋았으니까. 그날, 두 눈 가득 담아온 블라우제의 물빛은 평생 잊을 수 없을 만큼 깊고 찬란했다.
신이 빚은 창조물 중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이름난 알프스산맥은 스위스 외에도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 걸쳐 있어 ‘유럽의 지붕’이라 불린다. 그럼에도 알프스 하면 스위스가 자연스레 먼저 떠오르는 건 알프스와 동화되어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삶과 누구든 자연의 품으로 가는 길이 어렵지 않도록, 직접 두 발로 느껴볼 수 있게끔 보존하고 가꿔낸 배려 때문 아닐까. 지금도 스위스를 떠올릴 때면 눈부시게 빛나던 그곳이 두 손에 잡힐 듯 아른거린다.

TIP 헬스조선 ‘스위스 힐링 산책’ 떠나볼까?
헬스조선 비타투어는 6월 22~30일(7박 9일) ‘스위스 힐링 산책’을 진행한다.
이번 여행은 유럽의 최고봉 알프스 산맥을 중심으로 단체여행으로 가기 힘든 지역까지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하루 2시간의 트레킹으로 알프스의 대자연을 둘러보고 감상할 수 있으며, 청정도시 체르마트엔 '빙하특급 열차’를 타고 들어간다. 열차가 달리는 길은 만년설이 덮힌 산과 푸른 초원 등 알프스 최고의 자연을 마음껏 감상하고 즐기기에 충분하다. ‘알프스의 여왕’ 마터호른과 시원한 파노라마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고르너그라트 등 스위스 대표 자연 경관을 직접 걸으며 체험하는 기회를 갖는다. 빈사의 사자상과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다리인 카펠교를 만나볼 수 있는 루체른 관광도 포함됐다.
참가비 1인 580만원(유류할증료·가이드 경비 포함)
문의 헬스조선 비타투어
출처 : 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24/201702240089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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