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20년 전 1억 주고 ‘일본 지도’ 사온 학자
- 기자
- 이지영 기자
- 문세광 테러에 대한 일본 책임 묻고
‘을사조약은 국제법상 무효’ 밝혀내
외규장각 ‘조건 없는 반환’ 근거 제시
국제법 연구 통해 국가 자존심 지켜
![](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15/b39fd55d-ac6b-4edc-9294-92f8c55409ce.jpg)
그 사람 백충현
이충렬 지음, 김영사
300쪽, 1만4000원
한 사람을 아는 것은 한 세계를 알게 되는 것이다. 고(故) 백충현(1938∼2007) 서울대 교수의 전기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 국익과 직결된 학문인 국제법의 세계를 만나게 해준다. 백 교수는 1961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68∼2004년 서울대 법대 교수를 지낸 학자다. “국가 간의 분쟁은 외교의 힘으로 해결된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외교의 힘은 항상 법적 이론이 뒷받침할 때 비로소 정당한 방법으로 행사될 수 있다”는 소신으로 일평생을 국제법 연구에 바쳤다. 그는 화려한 영웅은 아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자신의 직업적 소명에 충실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모델이 된다.
백 교수는 70∼71년 미국 하버드대 동아시아연구소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우리나라의 국제법 연구가 개발도상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절실히 느꼈다. 그는 귀국 후 72년 외무부에 근무하는 후배들과 국제법 연구모임을 만들었다. 매주 한 차례 그의 서교동 집은 젊은 외교관들과 대학원생들이 모여 밤늦도록 토론을 이어가는 공부 장소가 됐다. 연구모임의 전문성이 깊어지면서 외교부에서도 국제법이 연관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그의 집으로 찾아와 이론적 대응책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다. 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 때도 그랬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조총련에 포섭된 문세광이 일본 정부가 발행한 여권을 위조해 한국에 들어와 일본 경찰이 분실한 총으로 저지른 범행이었지만, 일본 정부는 국제법상으로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외교부의 요청을 받은 백 교수는 밤을 새며 자료를 뒤졌다. 마침내 국제법상 모든 국가는 자국의 영토 안에서 외국을 향한 정치적 테러를 방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들어 일본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논리를 찾았다. 또 타국의 권리에 반하는 행위를 위해 자국 영역의 사용을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국제사법재판소의 판례도 발견했다. 이는 일본으로부터 “조총련의 반한국적 활동을 규제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2년 규장각에서 관장 이태진 교수(맨 오른쪽)와 백충현 교수(맨 왼쪽)는 고종의 서명과 어새 등을 확인하며 일본과 체결한 을사조약과 정미7조약 체결 문서가 국제법상 무효임을 밝혔다. [사진 김영사]](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15/ba369855-e00c-4a72-bd1d-839b8ac69529.jpg)
1992년 규장각에서 관장 이태진 교수(맨 오른쪽)와 백충현 교수(맨 왼쪽)는 고종의 서명과 어새 등을 확인하며 일본과 체결한 을사조약과 정미7조약 체결 문서가 국제법상 무효임을 밝혔다. [사진 김영사]
그는 또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은 65년 한일회담에 의해 소멸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그 근거를 국제법 차원에서 명쾌히 밝혔고, 을사조약과 정미7조약은 국왕의 비준서가 없어 국제법상 무효임을 알렸다. 그는 학문으로 국가의 자존심을 지킨 학자였다.
그가 맘껏 연구 활동을 펼칠 수 있었던 데에는 치과의사인 아내 이명숙(73) 전 연세대 교수의 지원이 큰 힘이 됐다. 아내가 건네준 목돈으로 그는 연구모임을 서울국제법연구원으로 체계화시켜 운영했고, 또 이를 외교부 산하 재단법인으로 등록할 수 있었다.
올해는 백 교수가 뇌출혈로 쓰러져 별세한지 꼭 10년이 되는 해다. 활자로 되살아난 그의 삶이 잔잔하지만 먹먹한 울림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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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BOX] 백충현 교수 어린시절 등 사생활은 다루지 않은 까닭
저자 이충렬(63)은 우리 출판계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전기 작가다. 『간송 전형필』(2010)을 시작으로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2012),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2013), 『아, 김수환 추기경』(2016) 등을 펴냈다. 그는 치밀한 취재로 다양한 증언과 자료를 모아 한 인물의 삶을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복원해낸다.
1994년 ‘실천문학’에 단편소설 ‘가깝고도 먼 길’로 등단했던 그가 전기를 쓰게 된 것은 간송의 삶에 매료돼서였다. 혼자 10년 넘게 자료 조사에 매달렸고, 그 결과로 내놓은 『간송 전형필』은 8만부 가까이 팔렸다. 백충현 교수는 그가 외규장각 의궤 환수 과정을 지켜보며 알게 된 인물이다. 그는 “1년 여의 취재를 거친 뒤 ‘사회와 역사에 의미있는 성취를 남긴 학자’란 부분에 초점을 맞춰 책을 썼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등 “평이했던” 사생활 부분은 다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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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실천문학’에 단편소설 ‘가깝고도 먼 길’로 등단했던 그가 전기를 쓰게 된 것은 간송의 삶에 매료돼서였다. 혼자 10년 넘게 자료 조사에 매달렸고, 그 결과로 내놓은 『간송 전형필』은 8만부 가까이 팔렸다. 백충현 교수는 그가 외규장각 의궤 환수 과정을 지켜보며 알게 된 인물이다. 그는 “1년 여의 취재를 거친 뒤 ‘사회와 역사에 의미있는 성취를 남긴 학자’란 부분에 초점을 맞춰 책을 썼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등 “평이했던” 사생활 부분은 다루지 않았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책 속으로] 20년 전 1억 주고 ‘일본 지도’ 사온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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