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염
2월 2일 아침 속이 안 좋다. 속이 더부룩하며 이상한 기운이 감지됐다. 뭔가 잘못돼 가고 있는 느낌이 점점 확실해질 때쯤 나는 친구와 택시를 타고 나야폴로 이동했다. 하루나 이틀 몸이 좋아지고 나서 출발했어야 했는데 미련하게 간 것이 화근이었다.
택시에선 좀처럼 식은땀이 줄어들지 않았고 나야폴엔 지친 상태로 도착했다. 나야폴에선 지프를 타고 힐레까지 가야 하는데 두려워진다. 속은 이제 메스꺼워지고 이전보다 식은 땀은 더 강해졌다.
'다시 내려갈까, 며칠 있다가 다시 올까.'
혼자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힐레까지 지프로 이동했다. 친구에게 나는 뒤따라 갈테니 먼저 올라가라고 했다.
힐레부터 울레리로 가는 구간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돌계단이다. 넉넉히 시간을 잡아도 4시간이면 닿을 이곳을 나는 6시간을 넘게 걸었다. 정말 기어 올라간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경사가 심한 곳이면 두 손 두발을 사용했으니까.
울레리에 도착했을 땐 온몸은 비를 맞은 듯 젖어 있었고 롯지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몇 번의 속을 비워냈다. 몸은 탈진해 있었고 움직일 힘조차 나지 않았다. 한국에서 챙겨온 장염 약을 먹고 침대에 쓰러졌다.
몇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대답할 힘도 없는데 롯지 주인이 문밖에서 말한다. 저녁 먹어야 한다고.
'수프.'
이 말 한 마디만 남겼다. 식당으로 내려갔을 땐 테이블엔 수프가 있었다. 한 입 먹었지만 그 이상 먹을 수가 없었고 주인에게 음식을 남겨 미안하다고 전했다. 새벽까지 수시로 화장실을 들낙거리며 잠도 잘 수 없었던 ABC 첫째날은 악몽의 날이었다.
잊을 수 없는 날이 된 셈이다. 이튿날이 됐을땐 내려갈까 또 다시 망설였다. 내려가기도 올라가기도 힘든 지금 상황이 힘겨웠다. 사실 하루 더 쉬고 결정했으면 될 것을 나는 오기를 부렸고 집착했다.
'고레파니까지만. 상황이 더 악화되면 하산 하기로.'
몸은 가벼웠지만 발이 무겁다. 정오가 될 무렵 고레파니에 도착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상태는 나아졌다. 그럼에도 화장실은 수시로 이용했다. 롯지가 아닌 가정집에도 들어갈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첫날 함께 움직였던 친구는 울레리 윗 마을에서 잠시 만났는데 엄청 걱정했다고. 사고가 났는지 아니면 내려갔는지 연락도 되지 않아 늦은 밤까지 나를 기다렸다고 했다.
만나는 트레커들마다 한국인 남자를 보지 못했냐며 물어보며 걱정했던 지난밤을 얘기했고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친구를 먼저 보낸 그 이후로 다시 볼 수 없었다.
# 푼힐 전망대 3193M
고레파니에서도 식사는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몸은 좋아졌지만 먹지를 못했다. 하루 종일 침대에서 쉬고 또 쉬고 휴식을 반복했다. 약 효과가 있었는지 다음날 새벽엔 푼힐 전망대에 오를 수도 있었다.
네팔에선 고산이 많다 보니 5000m가 넘지 않은 산들은 이름이 없다. 'Hill' 이 전부다. 그래도 여기서 바라보는 안나푸르나 사우스, 다울라기리는 아름다웠다. 해가 떠오르자 여기저기 환호성이 들리기 시작했으며 사람들은 들떠보였다. 달뜬 감정을 품은 사람들.
고레파니를 떠나기 전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몸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고레파니를 지나 타다파니에선 치킨 달밧도 먹었다. 산과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산행이 즐겁다.
살아난 것이다.
2월 2일 아침 속이 안 좋다. 속이 더부룩하며 이상한 기운이 감지됐다. 뭔가 잘못돼 가고 있는 느낌이 점점 확실해질 때쯤 나는 친구와 택시를 타고 나야폴로 이동했다. 하루나 이틀 몸이 좋아지고 나서 출발했어야 했는데 미련하게 간 것이 화근이었다.
택시에선 좀처럼 식은땀이 줄어들지 않았고 나야폴엔 지친 상태로 도착했다. 나야폴에선 지프를 타고 힐레까지 가야 하는데 두려워진다. 속은 이제 메스꺼워지고 이전보다 식은 땀은 더 강해졌다.
혼자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힐레까지 지프로 이동했다. 친구에게 나는 뒤따라 갈테니 먼저 올라가라고 했다.
힐레부터 울레리로 가는 구간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돌계단이다. 넉넉히 시간을 잡아도 4시간이면 닿을 이곳을 나는 6시간을 넘게 걸었다. 정말 기어 올라간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경사가 심한 곳이면 두 손 두발을 사용했으니까.
울레리에 도착했을 땐 온몸은 비를 맞은 듯 젖어 있었고 롯지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몇 번의 속을 비워냈다. 몸은 탈진해 있었고 움직일 힘조차 나지 않았다. 한국에서 챙겨온 장염 약을 먹고 침대에 쓰러졌다.
몇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대답할 힘도 없는데 롯지 주인이 문밖에서 말한다. 저녁 먹어야 한다고.
'수프.'
이 말 한 마디만 남겼다. 식당으로 내려갔을 땐 테이블엔 수프가 있었다. 한 입 먹었지만 그 이상 먹을 수가 없었고 주인에게 음식을 남겨 미안하다고 전했다. 새벽까지 수시로 화장실을 들낙거리며 잠도 잘 수 없었던 ABC 첫째날은 악몽의 날이었다.
잊을 수 없는 날이 된 셈이다. 이튿날이 됐을땐 내려갈까 또 다시 망설였다. 내려가기도 올라가기도 힘든 지금 상황이 힘겨웠다. 사실 하루 더 쉬고 결정했으면 될 것을 나는 오기를 부렸고 집착했다.
'고레파니까지만. 상황이 더 악화되면 하산 하기로.'
몸은 가벼웠지만 발이 무겁다. 정오가 될 무렵 고레파니에 도착했다.
▲ 고레파니 마을 입구 | |
ⓒ 정웅원 |
불행인지 다행인지 상태는 나아졌다. 그럼에도 화장실은 수시로 이용했다. 롯지가 아닌 가정집에도 들어갈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첫날 함께 움직였던 친구는 울레리 윗 마을에서 잠시 만났는데 엄청 걱정했다고. 사고가 났는지 아니면 내려갔는지 연락도 되지 않아 늦은 밤까지 나를 기다렸다고 했다.
만나는 트레커들마다 한국인 남자를 보지 못했냐며 물어보며 걱정했던 지난밤을 얘기했고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친구를 먼저 보낸 그 이후로 다시 볼 수 없었다.
# 푼힐 전망대 3193M
고레파니에서도 식사는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몸은 좋아졌지만 먹지를 못했다. 하루 종일 침대에서 쉬고 또 쉬고 휴식을 반복했다. 약 효과가 있었는지 다음날 새벽엔 푼힐 전망대에 오를 수도 있었다.
▲ 푼힐전망대 푼힐전망대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 사우스 | |
ⓒ 정웅원 |
▲ 푼힐전망대 푼힐전망대 새벽 | |
ⓒ 정웅원 |
네팔에선 고산이 많다 보니 5000m가 넘지 않은 산들은 이름이 없다. 'Hill' 이 전부다. 그래도 여기서 바라보는 안나푸르나 사우스, 다울라기리는 아름다웠다. 해가 떠오르자 여기저기 환호성이 들리기 시작했으며 사람들은 들떠보였다. 달뜬 감정을 품은 사람들.
▲ 가운데 우뚝 솟은 봉우리는 다울라기리 | |
ⓒ 정웅원 |
고레파니를 떠나기 전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몸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고레파니를 지나 타다파니에선 치킨 달밧도 먹었다. 산과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산행이 즐겁다.
살아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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