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분단현장을 가다 제1부 - 전쟁 60년, 전후세대의 155마일 기행 ④ 임진강 [중앙일보]

2010.04.13 01:17 입력 / 2010.04.13 09:43 수정

[베를리너판 1년 기획] 하룻밤 새 19회 결전, 강 물줄기도 바꾼 ‘피의 능선’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내리고/ 물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 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 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냐.’분단의 슬픔과 통일을 염원한 북의 노래 ‘임진강’의 일부다. 북에서는 물론이고 재일조선인들과 일본인들에게 널리 애창되었던 노래다. 일본의 포크가수 가쓰히코에 의해 번안된 가사로 불리던 임진강이 남쪽에 정식으로 알려진 것은 이즈쓰 가쓰유키 감독의 ‘박치기’라는 영화를 통해서다.

빛과 바람, 강과 새 등 자연은 철책선을 넘어 자유롭게 남북을 오간다. 남쪽 사람이든 북쪽 사람이든 사람들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철책선을 넘나들지 못한다. 함경남도 원산의 두류산에서 발원한 임진강은 군사분계선을 지나 남방한계선으로 사용되고 있는 경기도 연천군 필승교에 도착해야 비로소 남녘땅을 적신다.
노래 임진강이 이 땅에 흘러들기까지 꽤나 먼 길을 달려온 셈이다. 임진강의 물줄기는 북에서 남으로 유유히 흐르는데, 같은 정서와 소원을 담은 노래 임진강은 이국의 언어로 재번역돼서야 남쪽 땅에 겨우 닿았다.

빛과 바람, 강과 새 등 자연은 철책선을 넘어 자유롭게 남북을 오간다. 남쪽 사람이든 북쪽 사람이든 사람들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철책선을 넘나들지 못한다. 함경남도 원산의 두류산에서 발원한 임진강은 군사분계선을 지나 남방한계선으로 사용되고 있는 경기도 연천군 필승교에 도착해야 비로소 남녘땅을 적신다.임진강은 지나간 전쟁의 역사와 여전히 진행 중인 전쟁을 그대로 보여주는 강이다. 백제와 고구려, 신라와 당나라, 조선과 일본, 한국과 중국, 중국과 영국, 그리고 현재의 남과 북까지. 구비구비마다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다. 강에 성벽을 쌓고 철조망을 두르고 피를 흩뿌린 것은 인간들이다. 강은 그저 바다를 향해 묵묵히 흐를 뿐이다. 임진강 맑은 물을 따라 흘러보기로 한다.

태풍전망대에 오른다. 남쪽에서 볼 수 있는 임진강의 최상류 지점이다. 군사분계선은 임진강 허리를 툭 자른 다음 강의 중심을 따라 길게 이어지다 연천평야 쪽으로 향한다. 물론 말뚝 하나 없는 허상의 선이지만 긴장의 선이기도 하다. 태풍전망대와 군사분계선의 거리는 불과 800m. 북의 초소에서 사정거리 안쪽에 있어 방탄유리로 둘러쳐진 최긴장의 전망대다.

강 건너 연천평야를 감싼 나지막한 두 개의 산이 보인다. 피의 능선이라 불리는 베티고지와 노리고지다. 전쟁의 막바지, 이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는 산의 높이를 낮추고 강의 물줄기를 바꾸고 못의 모양을 바꾸었다. 13시간 동안 19차례의 결전, 국군 30명과 중공군 3000명의 전투. ㎡당 4700발의 탄약, 중공군 2700명과 국군 700명의 목숨. 베티고지와 노리고지를 설명하는 이 숫자들이 사뭇 의미심장하다.

임진강을 따라 내려오다 처음으로 만나는 다리는 필승교다. 민간인 통제구역의 군사적 목적을 위한 다리다. 전쟁 전에 사용되었던 목조다리에는 철조망이 휘감겨 있다. 다리를 밟아 강을 건널 수 있는 것은 무성한 잡초들뿐이다. 태풍전망대 앞 임진강 줄기가 군사분계선이라면 필승교는 남방한계선을 긋는다. 강은 다시 거친 물살로 구비를 돌아 돌아 도감포로 향한다. 합수머리에 이르러 한탄강과 만난다.

필승교 옆에 서 있는 목조현수교의 모습. 목조 현수교는 군 작전용 교량으로 이용됐으나 1986년 필승교를 건설한 뒤 사용을 중단했다.
개여울나루를 힘차게 돌아나온 임진강은 두지나루에 와서 잠시 숨을 고른다. 두지나루에는 복원된 황포돛배가 있다. 지금이야 시간마다 운항하는 관광배이지만 예전에는 소금·새우젓·인삼 등을 싣고 서울의 마포나루와 두지나루를 오가던 배였다. 옛사람들은 무명천에 황토 물을 들여 돛을 달고 나무로 짜 맞춰 뒤틀림 없이 튼튼한 황포돛배를 만들어 띄웠다고 한다. 두지나루에서부터 고랑포까지는 강줄기가 시원하게 곧장 뻗어 있다. 남방한계선도 군사분계선도 없다. 수직으로 층이 난 적벽이 고샅길 정겨운 담장처럼 이어진다.

고랑포구에서 잠시 배를 댄다. 고랑포구는 임진강 하류에서 배를 타지 않고도 건널 수 있는 여울목이다. 강변을 따라 이어진 붉은 암벽이 천혜의 방패 역할을 하니, 강을 건너려는 자는 반드시 이곳을 통하게 마련이다. 북한군 전차부대가 개성에서 문산으로 직진하지 않고 이곳으로 건너왔다. 고랑포구 옆에 있는 호로고루성은 백제가 쌓고 고구려가 개축한 성으로 후에 신라와 당나라군의 격전장이 되기도 했다. 호로고루성에 오르니 시야가 탁 트인다. 고랑포구를 차지한 것은 무성한 잡초와 백사장이다. 전쟁 전 이곳에 화신백화점 분점이 있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는다. 번성하던 한 도시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위엔 적막한 긴장만이 감돌고 있다.

고랑포를 떠나 임진나루에 도착한다. 임진나루는 굴욕의 역사를 숨기고 있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선조는 수도와 백성을 버리고 피란길을 떠난다. 선조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폭우가 쏟아지는 칠흑 같은 밤이었다고 한다. 야반도주하는 왕의 길을 밝히기 위해 임진강 남쪽 언덕에 있는 승정을 헐어 불을 피웠다. 그것이 화석정이다. 왜구의 침공에 대비해 10만 양병설을 주장했던 이이가 관직을 물러나 제자들과 여생을 보낸 장소라고 알려진 곳이다. 선조가 이이의 상소를 받아들였다면 수모와 굴욕의 피란길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화석정을 불태워 피란의 불을 밝힌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임진각 철교를 지나 하구 쪽으로 성큼 내달린다. 강의 왼편으로는 문산의 아파트 단지이고 강의 오른편으론 장단습지다. 철조망 사이로 고라니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민통선 안의 너르게 펼쳐진 갈대 숲에선 독수리들이 월동을 한다. 검은 도포를 둘러쓴 독수리들이 전봇대마다 앉은 모습은 괴기스럽지만 신비롭기도 하다.

지난달 25일 낙하나루 주변의 임진강은 바람이 세차게 불어 물결이 높았다. 낙하나루는 임진강에서 어로 활동을 할 수 있는 최하류다. 동력선을 사용할 수 없어 노 젓는 배를 이용해 고기를 잡아야 한다. 취재진의 요청을 받은 어부는 배를 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로통제선이 저 앞이라며 뱃머리를 돌렸다.
낙하나루에서 고깃배를 빌려 탄다. 임진강에서는 황복과 참게잡이가 유명하다. 장어 실치를 잡아 양식장에 넘기는 것도 쏠쏠하다. 이곳의 고깃배는 모터를 달지 않고 직접 노를 젓는 배다. 얼마간 노를 젓던 어부가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한다. 손가락을 들어 저 앞이 어로통제선이라고 가르쳐 준다. 그저 강물일 뿐인데, 또다시 앞을 가로막는다. 이제 배를 돌려 다시 낙하나루로 돌아가야 한다. 사람은 여기서 멈춰서야 하지만 강은 군사분계선을 품은 채 하류로 흘러간다. 임진강은 한강과 만나 더 큰 물줄기로 돌다가 바다로 흘러들 것이다.

천운영·소설가

특별취재팀 취재 신준봉 기자, 사진 김태성 기자, 동영상 이병구 기자
취재 협조 국방부·육군본부, 국군 1·9·25·28사단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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