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봅시다]

                                  몸의 부활

                                                                                                                                    - 더그 카젠


   위대한 사도인 바울은 몸의 부활이라는 주제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서 그 주제에 대해 많은 내용을 기록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5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그런 다음 사도는 이 중대한 질문에 대해 답변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탁월한 논의에 착수합니다. 물론 우리는 질문을 던진 자들에게 사도가 대답한 내용에 뭔가를 추가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부활은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할 사건입니다.


   죽은 신자들은 어떻게 부활할까요?

구세주께서 친히 들려주시는 부활케하는 음성이 모든 시대의 모든 잠자는 성도들을 잠에서 깨울 것입니다. 주님께 있어서 이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주님은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만물을 존재케 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없던 상태에서 모든 것을 생성시킨 그 행위, 즉 창조는 기능적인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최초의 나무를 만든 일을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오랜 기간 동안 발명의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최초의 서있는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주님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씀과 능력에 의해서 그 최초의 나무는 즉각적으로 탄생했습니다. 다른 모든 것들도 다 이와 같이 지어졌습니다. 이 동일한 말씀이 그리스도 안에서 잠들어 있는 이들을 깨우며 그들로 새로운 몸을 입고서 부활하게 할 것입니다.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과 더불어 주님의 영광스러운 호령이 들려올때 이 위대한 역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부패된 오래 된 몸들이 어떻게 이와 같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그 누구도 설명을 내놓을 수 없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신자들의 분자들이 돌연 완전한 몸으로 재구성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몸은 정말로 그들이 육체의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면서 거닐었던 바로 그들임을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몸일 것입니다. 그러한 일이 성취될 것입니다. 하늘의 하나님께 이것은 애써야만 이루어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또한 이것은 인간의 논리로 설명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써 성경의 이 명확한 가르침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을 알게 됩니다.


   죽은 몸은 이 땅에 심긴 씨앗과도 같습니다. 그 씨앗 안에는 곡물의 생명이 들어 있고 그것은 새 생명을 나타나게 할 기대 속에서 심겨집니다. 씨앗을 심을 때 그 목적은 제거하거나, 영원히 잊어버리거나, 언제까지나 열매 없는 상태로 머물게 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흙 속으로 들어가는 모든 살아 있는 씨앗은 미래에 대한 계획과 함께 심겨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을 경험한 모든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흙 속에 깊이 묻혀있습니다. 혹은 바다 속 깊은 곳에 잠겨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부활 생명의 목적 및 확실한 전망과 함께 심기어 있는 것입니다. 각각의 씨앗은 자신의 종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귀리를 심었는데 밀을 거두는 일은 없습니다. 귀리는 귀리를 거두게 하는 법입니다. 밀은 밀을 거두게 하는 법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저마다의 정체성을 가지고서 자신의 무덤에서 나올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기록되어 있는 나사로의 살아남에 관한 이야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무덤 속에 들어간 나사로의 몸은 썩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름 아닌 나사로가 주님의 부르심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로 나왔습니다. 그는 정말로 나사로였습니다. 무덤 속에서 나온 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사로였습니다. 바로 그가 밖으로 나오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의 수의(죽은 그를 묶어놓은)가 벗겨졌고 그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모든 이들이 경험하게 될 경이로운 일에 대한 선명한 예입니다.

   부활 시에 그리스도인들의 몸이 재 구성되는 것은 순식간에 이루어집니다. 그린도전서 15장 51절은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생리학자들은 우리의 눈이 깜박이는 속도가 대략 1/200초라고 말합니다. 이 찰나의 순간에, 안구의 표면을 촉촉하게 하기 위하여 눈꺼풀이 닫혔다가 다시 열립니다. 이 전체과정에 걸리는 시간은 워낙 짧아서 심지어는 바라봄이 중단되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어떤 물체를 보면서 눈을 깜박인다면(우리 모두가 늘 그러하듯이) 그 물체를 보는 것이 중단되었다는 사실을 의식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속도로 우리의 몸이 부활하고 재구성될 것입니다. 이때 개인의 정체성을 되찾을 것입니다. 더욱이, 그 때에 주님은 우리가 원래 지녔던 지상에 거주하기에 적합한 그런 몸이 아니라 새로운 상태의 몸으로 부활시키실 것입니다. 그 몸은 개인의 정체성에 변화가 없으면서도 하늘에서 거주하기에 적합한 상태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할 것입니다.

   교회가 본향으로 부르심을 받을 때에(데살로니가전서 4장에 기록된 대로) 지상에 살아 있을 신자들은 어떻게 될까요? 그들의 육체도 지상의 몸에서 천상의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급작스럽고 너무나 신속해서 지상적인 몸이 천상적인 몸으로 변화될 때 우리의 의식은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변화될 때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점진적으로 변화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즉시 변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변화되자마자 순식간에 옮겨질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지상에서의 일상적인 활동을 하다가 하늘의 영광 속으로 옮겨지는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공중에서 그리고 구름 속에서 주님을 뵈올 것입니다. 이때 그의 의식은 전혀 상실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원래 행하고 있던 활동이 도중에 변경되었음을 감지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순간적인 동시에 완벽할 것입니다. 한순간, 우리는 이 땅에 속했고 이 땅의 형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우리는 하늘에 속해 있고 하늘의 특성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의 끝부분에서 우리는 우리의 낮은 몸이 즉각적으로 변화될 거라는 말씀을 대합니다. 즉 부패할 수 밖에 없고 또한 이 땅의 죄악된 환경으로 인해 불결해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몸이 우리 구주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본래 우리가 가진 몸은 기능이 약화되고, 쇠약해지고, 나이가 들어가고, 병드는 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몸이 찰나에 완전히 바뀐다는 것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변화에 있어서 우리는 어디에서도 우리가 " 다른 몸" 을 갖게 된다는 말을 듣지 못합니다. 우리가 거듭 듣는 말은 오직 우리가 현재에 가지고 있는 이 몸이 변화를 받으리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늘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갈 때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인 남편과 아내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천국에서 살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영광 가운데 거할 때 우리가 성적인 정체성을 조금이라도 갖는다는 암시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천국에서의 성별과 관련하여 성경은 오직 주님의 신랑(남성을 의미하는) 되심과 그분의 신부(여성을 의미하는)만을 언급할 뿐입니다. 하늘의 영광 중에 거할 때 우리가 특정한 성별을 갖는다고 말하는 성경 구절들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남편과 아내는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할 터이기에 영광 중에 거할 그 때에도 틀림없이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볼 것입니다. 부활한 성도로서 우리는 우리 구주의 몸과 같이 영광스러운 몸을 입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가 천국에서 지금보다 지적인 능력이 약화된다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지력이 커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자가 지닌 정체성은  천국에서 피차를 알고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아주 소중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하늘은 복제 인간들이 거대한 무리를 이루는 그러한 곳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주께서 지닌 특성들을 똑같이 지니는 한편, 지상에서 가졌던 개인적인 소중한 특성을 계속 간직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우리는 몇 살의 나이로 천국에서 살까요?" 대답은 천국에서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영구적인 곳입니다. 근본적으로 그곳은 불변하고 영원합니다. 천국에서 시계나 달력이나 해시계를 찾아볼 생각은 버리십시오. 나이 역시 그렇습니다. 나이는 시간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그곳에서 나이가 몇 살일지에 대한 생각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아기가 천국에 가면 계속 아기일 거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로 터무니없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결론을 도출할 수 없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아주 연로한 상태에서 죽은 신자는 천국에서도 나이 많은 노인으로 나타날 거라고 말하는 것 역시 똑같이 터무니없습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영광 가운데서 거할 때 그리스도의 신부의 나이가 어떠할지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나이에 대한 생각 자체가 천국에서는 불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자신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출 3:14). 이에 더하여 그분은 자신이 변하지 않는 분임을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이런 구절들은 주님 자신이 불변하시고 영원하신 분임을 확증해줍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천국에 거할 성도들은 거기서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는 경험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천국에서 주님은 절대로 나이가 들어가고 기력이 떨어져가는 신부를 그분 곁에 두시지 않는 것입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부활한 자들로서 우리는 언제나 새롭고 놀라운 상태에 있을 것입니다. 주님이 지니신 영원한 영광에 부합되게 말입니다.

   사람들은 천국에서 우리의 몸이 연령별 특성들을 나타낼 거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땅에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을 때 33세 정도의 연령적인 특성들을 나타내셨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추측은 주님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입니다. 하늘에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분에게는 시작점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영광을 가리고서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그런 다음 유아기, 청년기, 장년기로 이루어진 일생을 지상에서 보내셨습니다. 그 이유는 단지 그분이 이 땅에서  인간으로 사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지상에 머무시는 동안 주님은 그분이 구원하기 위해 오신 그 피조물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그 기간 동안에, 하늘의 특성을 지닌 그분의 영광들은 이 땅에서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주님은 하늘로 되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시작되기 전부터 그분이 아버지와 함께 가지셨던 그 영광을 다시 얻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구주는 지금 천국에서 나이가 없으십니다. 이는 그분이 이 땅에 내려오시기 전과 같습니다. 우리는 영광스러우신 이 주님과 똑같아질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천국에 거할 때의 나이는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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