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도어

[여행의 향기] 안개가 걷히고 미스터리 제국이 펼쳐졌다

꽃청춘도 꽃중년도 가고 싶은 페루 마추픽추
레고블록처럼 쌓은 돌벽·신기에 가까운 '12각돌'..혹시 외계인의 장난?
젊은 봉우리 '와이나픽추'·나이 든
봉우리 '마추픽추', 마주보며 세월을 견디고..
'세계의 배꼽' 쿠스코 거리엔 머리를 길게 땋은
'잉카의 후예' 들이 골목길 거닐고..
잉카제국 미스터리 'ing'
가이드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였을 것이다"
마추픽추 발굴 30%뿐..70%는 여전히 땅속에

한국경제 | 입력 2017.02.19 17:09 | 수정 2017.02.19 17:10




잉카의 불가사의한 공중도시 마추픽추.
잉카의 불가사의한 공중도시 마추픽추.


남미 여행의 하이라이트를 대라고 하면 마추픽추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곳이자 맨 몸으로 오르기도 힘든 산꼭대기에 세워진 공중도시. 여행자들은 이 불가사의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지구 반 바퀴를 돌아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꽃보다 청춘’ 같은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졌으나 아직도 생경한 페루는 그런 수고가 아깝지 않게 매력적인 곳이다.

리마(페루)=글·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ssoochoi@naver.com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마추픽추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 서 있는 잉카 전사의 동상.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 서 있는 잉카 전사의 동상.

인천공항에서 미국 댈러스를 거쳐 페루 리마에 도착한 뒤 다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쿠스코로 날아갔다. 쿠스코에서 미니밴과 기차를 이용해 마침내 마추픽추에 닿았다. 마추픽추로 올라가는 입구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여행객으로 가득하다. 입구에서 표를 제시하고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르기를 10분. 드디어 마추픽추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몸에 전율이 일고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무수한 화강암 석축과 건축물, 3000개의 계단으로 이뤄졌다는 공중도시 앞에서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온 피로는 눈 녹듯 사라진다.

마추픽추는 페루 남부 안데스 산맥에 있는 유적으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목록에도 등재돼 있다. 안데스 산맥의 해발 2430m에 세워진 잉카의 고대 도시로, 15~16세기에 걸쳐 남아메리카 대륙을 지배한 잉카족이 살았다. 잉카제국 멸망 후 400년 동안 숨어 있다가 1911년 미국 고고학자이자 예일대 교수인 하이럼 빙엄이 발견하면서 그 존재를 드러냈다.

당시 산꼭대기에 숨겨진 도시가 있다는 말을 주민에게 들은 빙엄은 열한 살짜리 꼬마 가이드를 따라 올라갔다가 이 신비로운 고대도시를 발견했다. 빙엄이 발견했을 때 도시는 숲으로 뒤덮여 있었다. 우리가 마주하는 지금의 마추픽추는 오랜 세월 복원한 것이다. 물론 당시의 모습 그대로다. 더 놀라운 사실은 현재 발굴된 것이 전체의 30%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나머지 70%는 여전히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11년 발견 당시 두세 가족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레고 블록을 쌓은 듯한 정교한 벽

쿠스코의 방어요새인 삭사이와만.
쿠스코의 방어요새인 삭사이와만.


마추픽추에 서면 정면에 뾰족한 봉우리가 보인다. 잉카어로 ‘젊은 봉우리’를 뜻하는 와이나픽추(2800m)다. 뒤쪽에 서 있는 봉우리가 마추픽추(3000m)로 ‘나이든 봉우리’라는 뜻이다. 도시는 와이나픽추와 마추픽추 사이에 계단식으로 펼쳐져 있다. 도시는 태양의 신전과 콘도르의 신전을 중심으로 주변에 주거지가 배치된 구조다. 총 면적이 5㎢에 달하며 유적 주위는 높이 5m, 너비 1.8m의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옥수수 등을 재배하던 밭은 산의 몸통을 깎아 계단식으로 만들었는데, 산 아래까지 까마득하게 펼쳐져 있다.

건축물들의 벽은 제각각 다른 모양의 돌을 정교하게 맞췄다. 레고 블록을 쌓은 것처럼 보인다. ‘ㄱ’자 모양의 돌도 있고 ‘ㄷ’자 형태로 깎은 것도 있다. 들여다볼수록 그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마추픽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물은 태양의 신전이다. 반원형 건물인데 신전 돌벽에는 두 개의 창문이 나 있다. 정확하게 남쪽과 북쪽을 향하고 있는데, 동지와 하지 때면 햇빛이 창을 통해 들어와 신전의 제단을 비춘다고 한다. 태양의 신전 위에는 거대한 돌을 길쭉하게 깎아 만든 석조물이 보이는데, ‘태양을 잇는 기둥’이란 뜻의 인티파타나다. 전문가들은 해시계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추픽추를 안내하는 가이드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은 ‘~였을 것이다’다. 기록으로 남은 역사가 없는 까닭에 마추픽추에 대한 모든 설명은 ‘추정’일 뿐이다. 가아드마다 마추픽추에 대한 설명이 조금씩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잉카 초대 황제 파차쿠티의 여름 별장(?)

태양의 신전 코리칸차.
태양의 신전 코리칸차.


그렇다면 누가 왜 이런 험한 곳에 거대한 도시를 만들었을까. 여러 의견이 분분하지만 가장 인정받고 있는 설은 잉카제국의 초대 황제인 파차쿠티가 세운 여름 별장이라는 것. 그는 우리나라 ‘광개토대왕’에 해당하는 왕으로 전쟁을 통해 잉카왕국의 영토를 확장한 인물이다. 13세기 초에 시작한 잉카문명은 스페인의 침공으로 멸망한 1533년까지 안데스를 중심으로 융성한 문명을 펼쳤는데, 그 전성기를 이끈 황제가 바로 파차쿠티다. 북쪽 해안의 치무와 서쪽의 창카, 정글의 강자 안티 등을 거푸 정복한 파차쿠티는 마침내 1438년 잉카제국을 건설하는데, 수많은 노예를 전리품으로 거둔 그는 이들을 데려다 마추픽추를 짓기 시작했다. 노예들은 1450~1540년까지, 90년 동안 도시를 세웠다.

마추픽추는 잉카인의 신기에 가까운 돌 다루는 솜씨와 잉카에 정복돼 노예가 된 부족들의 피와 땀이 더해진 결과다. 잉카는 뛰어난 문명을 자랑했지만 철과 화약, 문자, 바퀴가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바퀴도 없이 이 엄청난 크기의 돌덩이, 그것도 20t이 넘는 돌들을 해발 2400m의 산비탈까지 어떻게 수십㎞ 밖에서 옮겨왔을까. 산에 있던 바위를 깼다고도 하고, 통나무를 밑에 깔고 밀어 아래서부터 가져왔다는 설명도 있지만 이 역시 모두 추측일 뿐이다. 잉카인과 노예들은 파차쿠티가 죽은 뒤에도 파차쿠티가 환생할 것이라고 믿고 마추픽추 조성 노역에 시달렸다. 그들은 침략한 스페인 군대가 쿠스코에 있던 파차쿠티의 미라를 불태우자 마침내 마추픽추를 떠났다고 한다.

페루를 대표하는 동물인 라마.
페루를 대표하는 동물인 라마.


잉카와 스페인이 어우러진 도시

마추픽추에 닿기까지 여러 도시를 거치는데, 출발점이 되는 도시가 쿠스코다.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1535년 리마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잉카제국의 수도로 군림했던 곳이다. 원주민이 쓰는 케추아어로 ‘세계의 배꼽(중심)’이란 뜻이다.

당시 잉카제국은 페루를 비롯해 에콰도르와 볼리비아, 칠레 북부까지 차지한 대제국이었다. 쿠스코 인구만 100만명이었다. 현재 인구가 150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그 규모와 영화를 짐작할 수 있다. 쿠스코에서 태평양 연안까지 4000㎞에 달하는 도로까지 나 있었다. 이 길 중 일부가 지금의 ‘잉카 트레일’로 조성돼 전 세계 도보 여행자를 불러들인다. 쿠스코가 스페인 침략자들에게 정복당한 후 도시는 잉카 문명에 스페인풍이 더해져 새롭게 재탄생한다. 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도시는 그만의 독특한 풍경으로 채색돼 여행자들을 매료시킨다. 넓게 베란다를 내고 스페인 특유의 주황색 지붕을 얹은 원색의 이층집 사이를 전통복장을 입은 원주민들이 걸어다니는 풍경은 쿠스코 아니면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풍경이다.

전통시장인 산 페드로의 상인들.
전통시장인 산 페드로의 상인들.


쿠스코에서 살아가는 잉카의 후예들은 아직 전통방식 삶을 고수하고 있다. 여자들은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리고 그 위에 몬테로 또는 멕시코풍 솜브레로를 쓴다. 어깨엔 숄의 일종인 이크야를 두르고 통이 넓은 치마인 포예라를 입는다. 신발은 둥글넓적한 우수타를 신는다.

도시 곳곳에 자리 잡은 성당과 교회, 수도원 등도 이색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잉카 시대에 만들어진 건물들을 파괴하고 그 위에 그들의 건물을 지었다. 대표적인 건축물이 산토도밍고 성당이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코리칸차(태양의 신전)를 약탈한 뒤 그 위에 성당을 지었다. 이 때문에 성당 안에 신전 건물 일부가 남아 있다. 1650년과 1950년 쿠스코에 대지진이 일어나면서 산토도밍고 성당이 무너졌는데, 그때 코리칸차가 그 존재를 드러냈다. 무너진 스페인식 건물 아래 잉카의 거대한 돌들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잉카레일의 승무원.
잉카레일의 승무원.


고대 석조 기술의 절정, 12각돌

마추픽추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잉카인의 돌 다루는 기술은 신기에 가깝다. 돌들을 면도날로 잘라내듯 정교하게 다듬어 각을 맞추고 하나의 거대한 건축물을 조각조각 이어 붙인다. 잉카인의 돌 다루는 기술을 가장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는 곳이 ‘12각돌(La Piedra de Los Doce Anquios)’이다. 쿠스코 광장 뒤편 골목에 있는 ‘12각돌’은 고대 석조기술의 절정을 보여준다. 크기도 모양도 일정하지 않은 돌들이 주변의 돌과 빈틈없이 맞아떨어지며 하나의 벽을 이룬 광경은 그저 감탄스럽기만 하다. 1950년 발생한 쿠스코 대지진에도 이 벽은 약간의 뒤틀림조차 없었다고 한다. 반면 스페인 침략 후 지어진 건물 대부분은 무너져 내렸다.

쿠스코 뒤편 산자락에 자리 잡은 요새 겸 신전인 삭사이와만(3700m)의 거석들도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1536년 잉카의 부흥세력과 스페인군이 최후의 전투를 벌인 곳으로 유명하다. 잉카인들은 이곳에 최대 120t에 달하는 돌을 옮긴 뒤 높이 7m, 길이 500m에 달하는 성벽을 세웠다. 게다가 지진에 견디게 하기 위해 성벽을 지그재그로 쌓았다니 그 기술에 찬탄만 나온다. 이곳에서는 쿠스코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안데스의 거친 산들이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 있고 그 산비탈을 따라 들어선 쿠스코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페루 여행정보

퀴노아로 만든 페루의 전통음식.
퀴노아로 만든 페루의 전통음식.

한국에서 페루까지 직항편은 없다. 미국 댈러스나 로스앤젤레스를 거쳐야 하는데, 아르헨티나항공 란칠레항공 바리그브라질항공 등을 이용해 리마까지 갈 수 있다.

리마에서 쿠스코까지 국내선 비행기로 간 다음 마추픽추까지 기차나 버스를 이용해 간다. 스페인어로 ‘따뜻한 물(온천)’이란 뜻의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는 마추픽추 아래에 자리 잡은 마을. 숙박시설과 레스토랑이 몰려 있다.

이 마을에서 마추픽추 유적 입구까지 버스가 운행한다. 버스를 타고 깎아지른 산비탈을 굽이굽이 올라 30분 정도 가면 유적이다. 마추픽추는 유적 보존을 위해 매일 한정된 인원만 입장시킨다.

온라인(ticket-machupicchu.com)으로 미리 예매하는 것이 낫다. 매일 오후 1시까지만 입장할 수 있으니 참고하자.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 있는 식당 ‘출피(Chullpi)’에서 페루 전통 키노아 볶음밥인 ‘차우파 데 키노아(Chaufa de Quinua)’, 소고기 볶음요리인 ‘로모 살타도(Lomo Saltado)’, 남미인들이 즐겨 먹는 각종 허브로 만든 치미추리 소스(Chimichurri sauce)를 뿌린 닭고기 요리 등을 맛볼 수 있다.

쿠스코 등 고산지대에서는 고산증도 주의해야 한다.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좋다. 코카차를 수시로 마시는 것이 도움이 된다. 페루관광청 한국대표홍보사무소 (070)4323-2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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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개 호수로 이어진 비경, 모차르트 음악의 자궁

[박태상의 섬 문화탐방 10] 장크트 길겐

오마이뉴스 | 박태상 | 입력 2017.02.17 15:12




[오마이뉴스박태상 기자]

▲ 할슈타트 호수와 볼프강 호수 알프스의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일흔여섯 개의 호수가 있는 곳으로 잘츠(Salz)는 ‘소금’을, 감머(Kammer)는 ‘창고’를, 그리고 굿(Gut)는 ‘좋다’는 듯이니, 풀이하면 ‘좋은 소금 창고’라는 의미를 지니는 지역이 바로 ‘잘츠캄머굿’이다.
ⓒ 박태상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주의 잘츠캄머굿(Salzkammergut, '소금창고'라는 의미) 지역은 고산지대 빙하가 녹아서 생긴 76개 호수로 이뤄진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 중에서도 옛 소금광산 마을인 할슈타트(Hallstatt)는 세계 곳곳에서 온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볼프강(Wolfgang) 호수의 유람선을 타고 가야 만날 수 있는 슈트로블(Strobl)에서 모차르트의 어머니가 살았던 장크트 길겐(St. Gilgen)까지의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잘크트 길겐은 작곡가 모차르트의 어머니의 고향으로 '모차르트 음악의 자궁'과도 같은 곳이다.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아름다운 선율 속에서 보내게 되었다. 모차르트 교향곡부터 <사운드 오브 뮤직>까지 잔잔하고 아늑한 멜로디들이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 슈트로블(Strobl) 선착장 볼프강(Wolfgang)호수의 유람선을 타고 만나게 되는, 슈트로블(Strobl)에서 모차르트의 어머니가 살았던 장크트 길겐(St. Gilgen)까지의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 박태상
장크트 길겐은 볼프강 호수를 끼고 있는 해발 542m 지역으로 인구가 3850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호수마을이다.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의 외가라는 점 때문이다. 장크트 길겐은 모차르트 외할아버지가 시장을 지냈으며, 모차르트 어머니의 생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둘째는 유명한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무대라는 점 때문이다. 셋째, 슈트로블에서 유람선을 타고 장크트 길겐까지 오는 할슈타트 지역의 풍광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유럽 신혼부부들의 신혼여행지로도 각광을 받는 곳이다.

장크트 길겐에는 모차르트 어머니의 생가가 보존되어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사실 모차르트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아우구스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소질이 있어서 잘츠부르크 대학 법과에 입학하기 위해 잘츠부르크에 왔다가 전공을 바꿔 음악공부를 했다. 1743년 대사교 궁정악단의 바이올린주자가 되어 44년간 근무를 했다.

어머니 안나 마리아는 4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잘츠부르크로 와서 살다가 1747년 레오폴트와 결혼해 7명의 자녀를 낳았으나 모두 죽고 모차르트와 누나만이 살아남았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꼼꼼하고 적극적인 성격이었으나 어머니는 정숙한 여자로서 환상을 가진 낙천적인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모차르트는 1756년 1월 잘츠부르크에서 출생했는데 어머니 안나 마리아의 성격을 많이 이어받았다고 전해진다.

▲ 모차르트 외가 모차르트 엄마인 안나 마리아가 태어나서 자라난 집이다.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나서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어릴 때부터 유럽각국으로 연주여행을 다녔기 때문에 막상 외가를 방문한 적이 없다고 한다. 모차르트가 장크트 길겐을 방문해서 어머니와 누나를 만난 적이 있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 박태상
장크트 길겐에는 모차르트의 누나 '난네를'의 흔적도 남아 있다. 모차르트의 누나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는 피아노 연주자이자 하프시코트 연주자이기도 했다. 그녀는 어릴 때 '난네를(Nannerl)'이란 애칭으로 불렸다. 난네를은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 레오폴드 모차르트는 난네를의 재능을 보여주기 위해 아들 모차르트와 함께 그녀를 연주 여행에 데리고 다녔다.

누나 난네를은 결혼 후 외가인 장크트 길겐에 정착을 했다. 재혼인 남편이 데리고 온 5명의 아이와 새로 출산한 아이 3명, 모두 8명의 아이를 그곳에서 키우게 된다. 장크트 길겐에는 '카페 난네를(Cafe Nannerl)'이 있어 모차르트 누나에 대한 회상에 젖게 한다. 장크트길겐 마을에는 해발 1522m 쯔뵐페호른(Zwolferhorn)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서 볼프강 호수를 내려다보는 멋진 풍광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이용한다.

모차르트는 누나와 태어난 집에서 살다가 모차르트 부자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뒤 1772년에 이사를 한다. 이곳에서 잘츠부르크 시대의 작품들 대다수가 작곡되었으며 콘스탄체를 데리고 아버지를 만나러 온 곳도 이 집이었다. 지금은 모차르트기념관이 되었다.

▲ 마리 앙투아네트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공주다.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의 손자 루이 오귀스트, 이후 루이 16세가 될 왕세자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정략결혼을 했다. 식료품 가격 폭등, 거듭된 자연 재해, 국가 재정 파탄으로 사회 불안과 불만이 고조되었고, 마리 앙투아네트를 둘러 싼 악의적인 소문이 날로 증폭되어갔다. 파리 시민들은 10월에 베르사이유를 습격했고 왕실 가족은 튈르리 궁에 유폐되었다. 루이 16세가 1793년 1월 21일에 처형되었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10월 15일 사형 판결을 받았다.
ⓒ 박태상
모차르트는 1762년 1월에 뮌헨으로 첫 여행을 한데 이어서, 9월에는 가족 4명이 빈을 방문했다. 10월 13일에 교외 쇤브른 이궁의 마리 테레제 여황제의 부름을 받아 어전 연주를 했다.

마리아 테레지아에게는 모차르트보다 1살 위인 공주가 있었다. 모차르트가 마룻바닥에 넘어졌을 때 함께 놀고 있던 왕녀가 부축해서 일으켜 주었다. 이 때 기뻐한 모차르트는 '나와 결혼해 달라'고 말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인구에 회자된다. 그녀는 후에 프랑스의 루이 16세의 왕비가 된 마리 앙투아네트 공주였다.

▲ 모차르트 초콜릿 잘츠부르크는 온통 모차르트 마켓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모차르트 초콜릿이 유명하고, 그것을 파는 상점들도 도처에 있다. 모차르트 초콜릿은 미라벨에서 만든 빨강색 초콜릿과 쿠겔에서 만든 파랑색 초콜릿이 있다고 한다.
ⓒ 박태상
아들의 천재성을 알아본 아버지와 함께 런던, 파리, 이탈리아 등지의 유럽을 돌면서 연주생활을 했으나 금전적인 수익은 크게 없었고 다만 음악적 명성은 얻게 된다. 아버지에 의한 과도한 연주여행은 몸이 약했던 모차르트를 힘들게 했다. 이 시절에 얻은 병은 결국 모차르트가 젊은 나이인 36세에 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되는 주요 원인이 된다.

아버지의 집착과도 같은 욕심은 병적인 것이었다. 심지어 아버지는 아들이 성장한 후에는 육체적으로 이성을 그리워하는 것마저도 두려워했다. 그가 결혼하는 것조차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모차르트는 '사랑'에 목말라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사랑을 찾아다녔고 음악으로 갈증을 메워나갔다.

▲ 모차르트 생가 츠부르크 중앙역에서 남쪽으로 약 2km 지점, 구시가지의 유명한 쇼핑상점들이 모여 있는 게트라이데 가세 9번지에 있는 적황색의 6층 건물이 모차르트의 생가이다. 1747년 모차르트의 일가가 집 4층에 세 들어왔고, 1756년 막내아들 볼프강이 태어났다.
ⓒ 박태상
어찌되었든지 모차르트는 이 당시 유럽여행을 통해 결국 음악사상 최고의 작곡가로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여러 나라의 음악 중심지를 여행하고 그곳에서 머물면서 각 나라의 음악양식을 고스란히 섭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감수성이 빼어난 그는 프랑스 양식, 이탈리아 양식, 독일 양식을 혼합하여 모차르트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언어로 새롭게 태어나게 만들었다.

모차르트는 빈 시대의 음악을 열었고 개척했다. 이전의 유럽 음악의 중심지가 파리에서 디종(부르고뉴 대공국의 수도)으로, 그리고 로마 또는 베니스로 옮겨왔다면, 모차르트가 활동하던 18세기 후반기에는 음악 중심지로서 빈이 급부상하여, 약 1830년까지 그 명성을 유지하게 된다. 당시 이곳에는 역사상 최고 음악가라고 일컬어지는 네 명의 작곡가가 동시에 살고 있었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그리고 슈베르트가 그들이다.

▲ 모차르트기념관 잘츠부르크 중앙역에서 남쪽으로 미라벨 정원을 지나 약 1.5km를 가면 마카르트 광장이 있고, 광장 한쪽에 삼위일체 교회가 있으며, 그 좌측에 모차르트가 1773년부터 1780년까지 거주했던 집이 있는데, 현재는 기념관으로 공개되고 있다.
ⓒ 박태상
모차르트는 교향곡 41번 <주피터>를 비롯하여 67곡의 교향곡을 작곡했고, 피아노 소나타도 18곡을 작곡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중에서 특히 중요한 곡은, 앞서 언급했듯이 파리 시절에 작곡한 가단조 피아노 소나타와 다단조 작품(KV.457)이다. 피아노 소나타 외에 모차르트는 많은 수의 변주곡, 춤곡, 론도 등의 작품을 남겼다. 그중에서 론도(라단조, KV.511)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작품 중에서 가장 심원한 내용을 지닌 작품의 하나로 평가된다.
▲ 모차르트의 아들 프란츠와 칼 모차르트와 콘스탄체는 9년 동안 여섯 명의 아이를 출산하지만, 5명만이 성장한다. 모차르트는 가족과 음악을 위해 열심히 작곡하고 연주를 한다. 모차르트와 아내 콘스탄체는 경제적 관념이 없어서 삶이 점점 더 궁핍해진다. 모차르트가 오페라 작곡을 하면 성악가였던 콘스탄체는 옆에서 오페라의 소프라노 파트를 시범 삼아 불렀다고 한다.
ⓒ 박태상
모차르트의 현악용 세레나데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물론 <소야곡(Eine kleine Nachtmusik)>(KV.525)이다. 이 곡은 매우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으며, 그 예술적 가치도 매우 높게 평가되고 있다. 모차르트 교향곡의 진수로는 빈 시절에 작곡한 마지막 세 편의 교향곡(KV.543, KV.550, KV.551)을 들 수 있으며, 이 작품들은 교향곡 <프라하><하프너>와 더불어 오늘날에도 자주 연주된다. 5세부터 작곡을 하여 36세의 젊은 나이에 무려 627곡을 작곡한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는 '불멸의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 모차르트 생가의 그랜드 피아노 생가 4층 전시실에는 가족 등의 초상화, 부자간의 편지 원본, 모차르트가 어릴 때 사용하던 바이올린과 비올라, 만년에 10년 동안 애용하던 콘서트용 그랜드 피아노 등의 개인적인 유품들이 유리 진열장에 보관되어 있다.
ⓒ 박태상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체험한 이탈리아식 오페라를 녹여 자신만의 창의성으로 만들어낸 <후궁으로부터의 도주 K.384>,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K.527>, <마적> 등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1791년 여름, 모차르트를 찾은 한 방문객이 모차르트에게 레퀴엠 작곡을 의뢰한다. 익명의 후원자가 신분을 감춘 채 비밀스럽게 제안한 것이다. 그런데 그해 겨울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고 만다. 죽어가는 뮤즈에게 장송곡인 '레퀴엠'을 의뢰했다는 매우 시적이고 드라마틱한 사건이 모차르트의 삶을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당대 최고의 부와 명예를 누리고 살았던 궁정 음악가 살리에르가 그의 재능을 질투하여 벌인 일이라는 음모설이 그것이고, 이러한 음모설을 근거로 만들어진 유명한 영화가 바로 <아마데우스>이다.

▲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 모차르트는 베버 가문의 큰딸 알로이지아와 사랑에 빠졌는데, 파리로부터의 귀로에 베버 가정을 방문하였으나 알로이지아의 마음은 변해 있었고, 실연한 모차르트의 눈에 비친 것은 알로이지아의 여동생 콘스탄체였다. 모차르트는 언니 대신 여동생과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실연의 아픔은 죽는 날까지 모차르트에게 정신적 외상을 남겼던 것으로 보인다.(특히 아버지와 누나의 결혼 반대가 심했다.)
ⓒ 박태상
모차르트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근원적 고독과 그것을 메우기 위한 사랑에 대한 갈증이다. 그것은 첫째, 파리 연주여행 중에 날아온 어머니의 죽음에 연결되고, 둘째, 1777년 10월에 어머니와 함께 파리로 향하는 도중에 아우구스부르크를 거쳐 만하임에 5개월간 체류하다가 만난 소프라노 알로이지아 베버와의 미완성 사랑이 계기가 된다.

모차르트는 베버 가문의 큰딸 알로이지아와 사랑에 빠졌는데, 파리로 돌아가다 베버 가정을 방문하였으나 알로이지아의 마음은 변해 있었다. 실연한 모차르트의 눈에 비친 것은 알로이지아의 여동생 콘스탄체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모차르트는 언니 대신 여동생과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실연의 아픔은 평생 모차르트의 가슴 속에 애잔하게 남아 있었으며, 그것은 창작의 원동력이 되었다.

장크트 길겐 마을 선착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모차르트 엄마 안나 마리아의 생가는 생각보다 덩그렇게 컸지만, 도처에 모차르트의 모성애와 사랑의 갈증이 배어있는 듯 보여 마음이 아팠다. 
▲ 할슈타트 마을 할슈타트 호수의 남서쪽 다흐슈타인 산자락에 자리한 할슈타트는 인구 800명의 작은 마을이다. 1997년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을 정도로 오랜 역사와 빼어난 경관을 지니고 있다.
ⓒ 박태상
▲ 장크트 길겐 마을 볼프강 호수는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11킬로미터, 깊이는 114미터이다. 호수 서북쪽에는 인구 3850명의 아름다운 마을 장크트 길겐이 있다. 여름철이면 피서객들이 몰려오는 곳으로, 독일 통일 당시의 총리 헬무트 콜이 라인란트 팔츠 주지사 때부터 해마다 여름 휴가를 보내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장크트 길겐에서 북쪽 고속도로를 향해 가면 몬트 호수가 있고, 호수 북단 마을이 몬트제이다. 이곳에는 〈사운드 오브 뮤직〉 결혼식 장면에 나오는 유명한 미하엘 교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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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과 잘츠부르크 사이에 위치한 잘츠캄머굿은 알프스의 산자락과 70여 개의 호수를 품은 오스트리아의 대표 휴양지인데,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배경으로도 명성을 얻었다. 영화의 무대가 됐던 대저택, 성당 역시 화제를 몰고 다닌다. 장크트 길겐, 장크트 볼프강, 볼프강 호수 등이 대표적인 명소인데, 그중에서도 '잘츠캄머굿의 진주'로 꼽히는 곳이 할슈타트 호수다.

할슈타트 호수의 남서쪽 다흐슈타인 산자락에 자리한 할슈타트는 인구 800명의 작은 마을이다. 1997년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을 정도로 오랜 역사와 빼어난 경관을 지니고 있다. 볼프강 호수 서북쪽에는 인구 3850명의 아름다운 마을 장크트 길겐이 있다. 여름철이면 피서객들이 몰려오는 곳으로, 독일 통일 당시의 총리 헬무트 콜이 라인란트 팔츠 주지사 때부터 해마다 여름 휴가를 보내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 장크트 길겐 마을의 동화 속에 나올법한 ‘중세풍의 집들’  예전에는 소금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요즈음은 소금보다도 볼프강 호수와 할슈타트 호수를 끼고 형성된 앙증맞고 예쁜 작은 마을의 낭만적인 풍경 때문이다. 푸르고 투명한 호수의 물빛, 호밀밭은 초록빛 그리고 고성과 성당의 파스텔톤의 정감어린 색채는 부조화속의 조화로움을 연출하고 있다.
ⓒ 박태상
잘츠부르크 주변은 한때 바다였다가 융기한 땅이라 산에서도 소금이 난다. 이른바 '암염(岩鹽)'이다. 유렵에서도 예로부터 소금은 보석처럼 귀한 것이었으므로 잘츠감머굿 지역은 중요한 곳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요즈음은 소금보다도 볼프강 호수와 할슈타트 호수를 끼고 형성된 앙증맞고 예쁜 작은 마을의 낭만적인 풍경이 눈길을 끈다.

푸르고 투명한 호수의 물빛, 초록빛의 호밀밭 그리고 고성과 파스텔톤 성당의 정감어린 색채는 부조화 속 조화로움을 연출하고 있다. 할슈타트 마을과 장크트 볼프강 마을, 그리고 장크트 길겐 마을은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배경으로도 유명하다. 장크트 길겐 마을에서 '미라벨 정원' 다음으로 많은 촬영을 했다.

▲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 ‘미라벨 정원’ 잘츠부르크 중앙역에서 남쪽으로 1km 남짓 되는 거리에 있는 미라벨 정원은 마리아가 대령의 아이들과 함께 분수대 주위를 돌며 ‘도레미 송’을 불렀던 작품무대로서, 분수, 장미원을 비롯한 화단, 석상 등이 아름답게 배치된 바로크식의 유럽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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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오브 뮤직>은 1938년이 시간배경이다. 오스트리아 알프스 지방에서 말괄량이 견습 수녀인 마리아 수녀가 어머니를 잃은 해군 트랩 대령의 일곱 아이들의 가정교사가 되어 모성을 초월하는 애정과 열정, 그리고 음악을 활용하여 가정의 단란함과 활기를 되찾아 주는 이야기이다.

그녀는 처음에는 마음의 문을 열지 않던 아이들과 음악공부를 통해 교감을 나눈다. 결국 마리아수녀는 트랩 대령과 사랑의 결실을 맺어 결혼에 이르고 트랩싱어즈라는 가족 합창단을 꾸려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기 직전 미국으로 망명에 성공한다. 로맨틱 코메디형 드라마로서 영화 OST <에델바이스>가 전 세계에서 공전의 히트를 했다.

사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원작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브로드웨이 황금기를 이끈 콤비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가 마지막으로 만든 뮤지컬 명작이 <사운드 오브 뮤직>이다.

황금콤비는 <왕과 나>, <남태평양>, <오클라호마> 등 전성기 브로드웨이를 대표하는 많은 명작들을 내놓았지만, 역시 가장 크게 성공한 작품은 <사운드 오브 뮤직>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브로드웨이에서 첫 공연을 한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1960년 8월 23일, 해머스타인 2세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서 슬픔의 공연이 이어졌다.

로저스와 해머스타인 2세의 전성기가 끝나자, 브로드웨이 황금기도 막을 내렸다. 영화는 원래 <로마의 휴일>과 <벤허>의 윌리엄 와일러가 거론되었지만 최종적으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로 뮤지컬을 무대에서 스크린으로 옮기는 일에 탁월한 능력을 검증해준 '로버트 와이즈'가 최종 낙점되었다.

▲ <사운드 오브 뮤직>의 한 장면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가 개봉된 지가 벌써 반세기가 지났다. 20세기 폭스 영화사는 이 영화 사운드트랙의 50주년 기념판을 2015년 3월 5일 발매했다.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던 “Sixteen Going on Seventeen,” “My Favorite Things,” “Do-Re-Mi” 그리고 “So Long, Farewell” 등의 곡들이 포함됐다.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는 1965년 3월에 개봉되었고, 최고의 작품상을 포함해 5개의 오스카상들을 받았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1965년 11월 빌보드 200 차트에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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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오브 뮤직>은 1965년에 제작된 할리우드 영화이므로 주인공 줄리 앤드루스는 90대 노인이 되어있을 것이고 대령의 막내 딸 그래들마저 58세 나이의 중년부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할슈타트 마을과 장크트 볼프강 마을, 그리고 미라벨 공원을 산책하다보면 이들이 꼬마와 20대 후반 가정교사의 모습으로 어디선가 뛰어나올 것만 같다.

할슈타트 호수의 투명한 물빛을 응시하다 보면 '도레미송'을 부르며 대령과 가정교사 그리고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있는 듯한 착각에 젖는다. 여러 영화 신(scene)들을 추억의 한 페이지로 여백을 놓아둔 채 선착장 근처의 벤치에 앉았다. 알프스의 빙하가 녹은 호수의 투명하고 맑은 물빛은 인간의 번뇌로 가득한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준다.

최근 하버드 대학 출신의 젊은 신예 영화감독 다미엔 차젤레(Damien Chazelle, 33세)가 화제를 몰고 다닌다. <위플래쉬(Whiplash)>, <라라랜드(Lalaland)>로 뮤지컬영화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라라랜드>가 2017년 2월 27일에 개막하는 제 89회 아카데미 영화상의 14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있다. 하지만 <사운드 오브 뮤직>의 전통과 토대가 없었다면, 과연 <라라랜드>가 나올 수 있었을까 회의감이 든다. 

▲ 장크트 길겐(St. Gilgen)과 슈트로블(Strobl) 운행 유람선 유람선은 들어오고 장크트 길겐 마을의 아름다운 풍광은 발을 붙들고 마음이 산란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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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 어느 방향에서나 바라보아도 탁 트인 풍광이 정말로 아름답다. 남성적인 아드리아 해의 바다빛깔도 아름답지만, 맑은 호수의 물빛이 주는 여성의 섬세한 손길 같은 아기자기함도 흥겨운 묘미가 있었다.

호반의 벤치에 앉아서 유럽관광객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다가,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와서 유람선에 올랐다. 모차르트의 감미로운 교향곡과 <사운드 오브 뮤직>의 아름다운 선율이 귓가에 맴돌았다. 음악의 멜로디와  호수 물빛의 환상적인 조화는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 칼리오페, 그리고 아폴론의 조화이런가?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유람선을 타고 오스트리아 맥주를 한잔 마시면서 ‘잘츠캄머굿’ 주변의 할슈타트 호수와 볼프강 호수의 경관을 살펴보았다. 미국의 미시건 호수처럼 바다 같은 호수를 둘러보는 것은 아름다운 풍광때문에도 유쾌했지만, 모차르트와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요람이었으므로 더욱 기분이 상쾌했다. 역시 유럽 여행은 예술적인 마법이 있어 좋았다. 유람선에서 듣는 모차르트의 〈소야곡(Eine kleine Nachtmusik)〉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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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때 묻지 않은 자연 태안반도

투어코리아 | 김현정 기자 | 입력 2017.02.17 11:54

 
▲ 천리포수목원 봄풍경/태안군 제공

[투어코리아] 태안은 3면(서남북)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보니 해안선이 유달리 길다. 무려 530.8㎞나 된다. 그 해안선을 따라 절경이 펼쳐진다. 그 때문인지 국내 유일의 해안국립공원이 바로 태안반도에 위치해 있다. 태안반도 바다에는 약 120개에 가까운 섬들이 흩뿌려져 있고, 천연송림과 아름다운 해안 등을 잇는 해수욕장도 30여 개나 된다. 어느덧 2월, 봄기운을 느낄 수 있는 여행지를 찾아보자.

천리포수목원

국내 최초 수목원이면서 아시아 최초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 받았다.
이곳에는 자생식물은 물론이고, 해외 60여 개국에서 들여온 다양한 식물 1만5,000여 종 이상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천리포수목원은 설립이후 40년 간 연구목적 이외에는 개방하지 않다가 2009년 3월 첫번째 정원인 밀러 가든을 개방해 연간 30만 명 이상이 찾는 명소가 됐다. 길목마다 피어있는 꽃과 멋진 나무들을 보면서 걸으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된 듯 잠시 현실을 잊게된다.

▲ 천리포수목원 /태안군 제공

수목원 곳곳에는 천리포 해수욕장을 바라보며 쉴 수 있는 데크가 마련돼 있다. 수
생식물원에서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천리포 수목원의 설립자인 민병갈 선생의 기념관이 나오는데, 선생의 한국에 대한 사랑과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작품과 사진을 관람할 수 있다.


수목원 내에 숙박시설인 힐링하우스와 에코힐링센터가 있어 숲 속에서 근사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입장료: (12월~3월) 성인 6천 원, 청소년 4천 원, 어린이 3천 원
(4월~11월) 성인 9천 원, 청소년 5천 원, 어린이 4천 원
찾아가기: 태안군 소원면 천리포1길 187 (천리포수목원)

▲ 신두리 해안사구/태안군 제공

신두리 해안사구

해류와 파도로 운반된 모래들이 바닷가에 쌓이고 쌓여서 언덕을 이뤘다. 우리나라 최고의 사구지대로 사막처럼 모래벌판이 펼쳐져 있다. 길이 약 3.4㎞, 폭 1.3㎞, 면적 약 260만㎡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로 태안 8경 중 하나이자 천연기념물431호다. 신두리 해안가는 서해안의 다른 지역보다 사구가 발달돼 있으며 한반도 해안사구의 거의 모든 지형을 관찰할 수 있는 중요한 지역이다.
찾아가기: 태안군 원북면 신두1길 51-86

▲ 신두리 해안사구/태안군 제공

두웅습지

사구습지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습지보호지역이 됐고, 2007년에는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두웅습지는 원래는 바닷가였다가 약 7000여 년 전 해안에 사구가 만들어지면서 사구 지대와 배후 산지 골짜기의 경계 부분에 담수가 고여 형성됐다.


또한 이곳엔 천연기념물 323호인 붉은배새매, 황조롱이 등의 조류와 멸종 위기종 양서류 등 희귀한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 두웅습지/태안군 제공

입구에서부터 반겨주는 커다란 금개구리는 멸종 위기종 2급으로 두웅습지의 캐릭터이다. 안쪽의 두웅습지 근처에는 금개구리 두 마리의 형상을 한 화장실이 있는데 아이디어도 기발하고 독특해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한다.


두웅습지는 길이 약 200m, 너비 약 100m, 면적이 약 20,000㎡로 생각보다 작은 편이지만 생태학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자연유산이다.
찾아가기: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 260-1

▲ 두웅습지/태안군 제공
▲ 두웅습지/태안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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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

[카드뉴스] 온몸으로 통영을 즐긴다-자전거길 바다 풍경

매일경제 | 이진욱 | 입력 2017.02.17 07:04




통영 미륵도에는 ’삼칭이 해안길’이라 불리는 훌륭한 자전거코스가 있다. 역사와 문화를 연계한 코스를 여럿 조성해놓았는데, 당일코스 자전거 여행을 소개한다. 통영 자전거 여행은 통영여행의 요충지인 강구안에서 시작된다. 강구안에서 해저터널까지는 일반도로를 따라 달려야 한다. 약 500m의 해저터널을 지나면 미륵도에 도착하게 되는데, 미륵도에 들어서면 바로 김춘수 유품전시관을 만날 수 있다.

자전거 코스는 유람선터미널, 통영 전통 공예관, 국제음악당을 지나 수륙마을 이후부터가 본격적으로 달릴수 있는 삼칭이 해안길이다. 이곳은 사람과 자전거만 통행이 가능해서 여유롭게 페달을 밟으며 드넓은 바다를 양껏 눈에 담을 수 있고, 코스 중간에는 통영 등대 낚시공원도 있어 강태공이 되어볼 수도 있다. 비슷하게 이어지는 바다 풍경이 심심해질 때쯤 새로운 풍경이 나타난다. 뜬바위 섬과 기암절벽 2개가 나란히 보이는 ‘삼칭이 바위’와 미륵도의 유일한 항구인 ‘일운항’이다.

계속 길을 이어 가면 대하소설 <토지>와 <김약국의 딸들> 등을 지은 박경리 작가의 기념관을 들를 수 있다. 기념관을 빠져나오면 작은 산량읍을 지나 통영대교 방면으로 향하는데 다리 아래를 오가는 크고 작은 선박들을 보며 통영사람들의 생활상을 느껴볼 수 있다. 통영은 어디에서나 쉽게 바다를 볼 수 있는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그 중에서도 미륵도 해안에 조성된 ‘’삼칭이 해안길’’ 은 바다 풍경의 진수로 꼽힌다. 자전거를 타고 통영의 바다 풍광을 즐겨보자.

[MK 스타일 이진욱 기자/도움말 사진 제공:월간여행스케치/디자인: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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