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윌리암 맥도날드

                                            19장

                           비전은 이뤄진다


   기다린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

   우리는 기꺼이 우리 자신의 계획과 야망을 포기하고 주님 뜻에 온전히 자신을 내어드립니다. 그런데 그분의 뜻을 알기 위하는 우리의 기도는 여러 주, 여러 달, 때로는 여러 해 동안 아무 응답 없이 허공을 맴돕니다. 그렇습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처음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는 우리의 기도가 신속히 응답되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성장해가면서 우리는 인내의 학교에서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네.

   때로 마음이 약해졌을 때

   그분은 자녀가 원하는 그것을 주시네.

   그러나 종 믿음은 보다 깊은 신뢰를 배워야 하네.

   하나님이 아무 말씀하시지 않을 때

   그분의 침묵을 신뢰해야 하네.

   그 이름이 사랑이신 그분은

   가장 좋은 것을 주길 원하시네.

   별들은 타버리고 높은 산들은 닳아 없어질 수 있어도

   그러나 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진실하시고

   그분의 약속은 확실하네." (저자 미상)


   그렉은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믿을만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어깨를 두드리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원칙은 분명했지만 세칙은 분명치 않았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또 언제 가야 할까요?


   그가 기도를 시작한지 여덟 달이 되었지만 여전히 하늘은 침묵을 지켰습니다. 기도목록에서 그 문제를 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여덟 달이 열여섯 달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확실히 기도를 중단해야 할 때였습니다.


   그렉은 경건의 시간에 소선지서를 읽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 하박국 2장을 읽다가 시선을 멈추었습니다.


   "이 묵시(vision)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3절).


   그렉은 하박국이 말하는 묵시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으며,(후에 그는 그 이상이 그리스도의 지상 통치를 위한 재림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히브리서 10장 37절에서 그 구절을 인용할 때, '그것', 즉 이상이 '그' 즉 교회를 취해가기 위해 오시는 주 예수님이 된다.) 그장의 문맥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아는 것은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도 가운데 기다렸습니다. 얼마 후에 응답이 왔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이 주님과 동행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발을 내디딜 수 있었습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잠 25:11).

Posted by 행복자
,

      지금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윌리암 맥도날드

                          12장

                  주님의 일곱 마디


   선교사들은 부단히 수고했는데도 거의, 혹은 아무런 결과를 보지 못하는 길고도 지루한 시기를 종종 통과합니다. 폴과 캐롤 브람슨 부부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큰 기대와 꿈을 안고 세네갈에 갔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의 격려의말이 아직도 귓전에 쟁쟁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선교 소명의 가치를 노래하는 파송의 찬송의 감동을 잊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 때의 그 감동을 오랫동안 마음에 간직했습니다.


   일단 세네갈에 도착하자 그들은 불어와 월로프어를 배우는데 몰두했습니다. 또 그곳 문화에 동화되려고 애썼습니다. 이웃 사람들과 사귀고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물론 쉽지 않았으며, 또 쉬울 거라고 예상하고 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폴은 세네갈 북부 사막 지역에서 개인적인 접촉과 성경배부를 통해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2년이 지나서 그는 사람들이 조용한 분위기 속에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실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지역 사람들의 98%는 모슬렘인이었습니다. 폴이 열심히 씨를 뿌렸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도 주님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2년간 이렇다할 아무 열매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있었던 것일까요?


   그런 상태는 3년이나 더 지속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 돌아온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돌밭에 씨가 떨어진 것입니다. 복음에 대한 저항이 엄청났습니다. 브람슨 부부가 발에 먼지를 떨고 그들을 반가이 맞는 사람들에게로 가야 할 때였을까요?


   8월 어느 날,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날은 폴이 선교지에서 겪은 최악의 날이었습니다. 이사야 49장 4절이 그의 낙심한 상태를 묘사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히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

   그는 그 지역에서 계속해서 일해야 할지 분명한 답을 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가 보기엔 다른 데로 옮겨야 할 때 였습니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지금은 밤 11시, 난 오늘밤 분명한 말씀 일곱 마디를 기대하면서 주님과 더불어 몇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폴은 경건의 시간을 위한 묵상집이 여러 권 꽂혀있는 책장 옆에 앉아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의 격려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이제 임의로 일곱 권을 택해서 읽겠습니다. 저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다 받아 적겠습니다."

   폴은 하나님께서 그런 식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그분 음성 듣기를 간절히 원할 때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의 연약한 모습에 맞게 스스로를 낮추신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받아 적기 위해 믿음으로 일기장을 꺼내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시간 동안 폴은 한 대목을 읽고 기도와 경배를 드린 다음 또 다른 대목을 읽고 또 기도와 경배를 드렸습니다. 그 때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폴이 선택한 첫 번째 책은 '사랑하는 자여, 나오라'(Come Away, My Beloved)였습니다. 그는 "마지막 분출"(噴出)이라는 제목의 장을 임의로 폈습니다. 그 장의 요점은, 승리는 확실하므로 계속 전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메시지를 적어두었습니다.


   두 번째 책은 '주께서 주시고, 그들은 거둔다'(Thou Givest, They Gather)였습니다. 거기서 눈에 띤 글귀는 "나도 승리한 것처럼..."이었습니다. 그것은 폴에게 "시험에 놀라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할 것을 믿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메시지를 일기장에 적었습니다.


   다음 책은 C. H. 메킨토쉬의 '짧은 묵상'(Short Papers)이었습니다. 거기서 말하는 메시지는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이 우리로 계속 전진하도록 격려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십니다. 모든 무릎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꿇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는 실패할지라도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폴에게 상기시켜주었습니다.


   다음에는 에미 카미클의 '찔레에서 피어난 장미'(Rose from the Briar)였습니다. 그는 거기서 "내 영혼아, 찔레를 받아들이라. 그 날카롭고 거칠고 무성하고 험난한 것을 다 받아들이라. 하나도 거절하지 말라"는 대목을 읽었습니다. 임의로 아무데나 폈는데 그런 격려의 말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다음에는 앤드류 머레이의 '하나님을 기다림'(Waiting on God)을 꺼냈습니다. 그의 눈은 저자가 시편 37편 7,9절을 인용한 대목을 응시했습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머레이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사람들과 상황에 대해 참을 수 없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가 참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서이다. 그분이 즉시, 혹은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눈이 열려 그분의 지혜롭고 주권적인 뜻을 믿고, 또 그 뜻에 절대적으로 굴복할수록 그분의 축복이 확실히 임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을 기다릴 때이다. 그분을 의지하고 온전히 신뢰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라. 이러한 오래 참음은 그분을 심히 존귀케 한다. 그것은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이 친히 자신의 일을 하도록 맡겨드리는 것이며 우리 자신을 그분 손에 온전히 내어드리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한다. 만일 여러분이 어떤 특별한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면,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라."


   그 글을 일고 폴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주님은 참으로 은혜로우십니다. 주님은 제게 꼳 필요한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여섯번째 책은 역시 앤드류 머레이의 '그리스도의 영'(The Spirit of Christ)이었습니다. 폴은 164쪽에서 다음 글을 읽으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먼 나라에서 선교에 힘쓰고 있는 모든 형제들에게 권하고 싶다. 형제들이여, 기뻐하라. 하나님의 강력이며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님과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 있으며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 선교는 그분의 일이다. 그분께 굴복하라. 그분을 기다리라. 선교는 그분의 일이다. 그분이 그 일을 하신다."


   이미 폴은 할렐루야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먼 나라에서 선교에 힘쓰고 있는... 형제"인 그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었습니다.


   끝으로 폴은 그의 성경을 꺼내어 이사야 32장을 폈습니다. 20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는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

   그의 마음에 평강이 넘쳐흘렀습니다. "맞아,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는 것, 그게 바로 주님께서 나를 불러 시키신 일이야. 환영하는 물가든 그렇지 않은 물가든 말이야"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모슬렘 사람들이 대부분인 이 북부 세네갈에서 일을 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가 옳았을까요, 아니면 잘못된 믿음이었을까요?


   디음 몇달은 브람슨 부부의 생애 가운데 가장 힘든 기간중 일부였습니다. 그러나 1987년, 그러니까 그들이 세네갈에 도착한지 6년이 되던 해에 추수 때가 이르렀습니다.


   3월에 브루노라는 이름의 프랑스인 청년이 손에 조그만 성경을 들고 도서실에 터벅터벅 걸어 들어왔습니다. 그는 인생은 술마시고 흥청거리는 것 이상 뭔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힌두교와 이슬람교와 그밖에 여러 종교에서 진리를 찾기 위해 인도에 갔습니다. 여러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브루노는 "이들은 나보다 더 불행한데"라고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하루는 캘커타에서 배회하다가 성서공회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불어로 된 성경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한 권 있다기에 그것을 샀습니다. 인도에서 9개월을 보낸 후에 그는 이곳저곳 옮겨 다니다가 결국 아프리카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성경을 읽고 "주여, 나를 진리로 인도하시고 거짓으로부터 지켜 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브루노는 여행  끝에 이 세네갈의 도서실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는 폴과 여러 날 대화를 나누고 그곳을 떠나기 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것이 있지만 한 가지는 압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좇고 싶습니다. 7개월쯤 후에 프랑스로 돌아가면 당신에게 편지를 쓰겠습니다."


   그러나 6주 후에 폴은 편지를 받았습니다. 브루노는 거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곳은 당신이 있는 곳에서 한 시간 반쯤 떨어진 조그만 마을입니다. 당신 말대로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을 함께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정말 모든 선지자의 글의 주제임을 알게되었습니다. 나는 그분을 믿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거듭났습니다.!"


브루노는 구원받은 지 한 달 후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가 침례를 받을 때 폴이 만난 적이 있는 안토이네라는 이름의 카톨릭을 믿는 세네갈인 청년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안토이네는 브루노의 침례식에 참석한 다음 주에 그리스도께 돌아와 놀랍게 구원을 받았습니다.


   거의 같은 때에 주님께서는 말릭이라는 모슬렘 청년을 브람슨 부부에게로 인도하셨습니다. 진리를 갈구하던 그는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면서 그는 모든 선지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것과, 아무도 모하멧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확실한 회심을 경험했으며 후에는 폴의 도움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을 맡아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날 이 프로그램은 모슬렘인이 소유하고 관리하는 세네갈의 일곱 개 방송사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브루노가 구원받은 후 2년 동안 브람슨 부부는 여덟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그분의 이름을 위할 백성을 불러낼 시간이 된 것입니다. 그 후로 세네갈에서 주님의 일이 서서히, 그리고 확실히 전개되었습니다. 1986년 8월 27일 저녁 주님께서 다음 일곱 마디를 통해 폴에게 약속하신 대로 말입니다.


   * 게속 전진하라. 승리는 확실하다.

   * 시련에 놀라지 말라.

   * 우리는 실패하지만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신다. 모든 무릎이 꿇을 것이다.

   *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 것을 받아들이라.

   *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 그분을 인내로 기다리라.

   * 그 일은 그분의 일이다. 믿고, 맡기고, 기도하고, 그리고 기다리라.

   * 계속해서 씨를 뿌리라. 추수의 축복이 곧 임한다.


  

Posted by 행복자
,

                                       지금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윌리암 맥도날드

                                     6장

                        땅에 거하라


   1965년 스티브와 다이앤 리차드는 선교사역을 시작하기 위해 터키 이스탄불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정착해서 첫 아이의 출산을 기다리는 동안 주님을 기뻐하며 마음이 충만했습니다. 그들의 삶은 희생과, 열정적인 전도와, 열심 있는 기도와,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삶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필요를 주님 외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곳의 삶은 항상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터키 전체에서 구원받은 사람 열 명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헌법상으로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었지만 당국자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공개적인 전도는 극심한 반대를 받았습니다. 위협으로 안 될 때는 경찰이 개입해서 기독교 신자들을 체포했습니다. 그들을 법정에 넘기는 것도 흔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수단은 추방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의 상황은 사도행전의 재현이었습니다.


   6년이 흐르는 동안 리차드 부부는 네 아이를 얻었습니다. 그들은 터키를 고국처럼 여기며 그곳 언어와 풍습을 익혔습니다. 그들은 터키인을 사랑했으며 터키인이 구원받아 신약교회로 모이는 것을 보기 위해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이스탄불에서 7년을 보낸 뒤에 스티브는 독일로 사역지를 옮기는 것이 전략상 좋지 않을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에는 터키인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정부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전도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티브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인도하심이었을까요, 아니면 그 자신의 지혜였을까요? 그는 "특별한 지시가 없는 한 머물러 있는 것이 주님의 뜻이다"라는 말을 기억했습니다. 또한 "밝은데서 배운 것을 어두운데서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기억했습니다.


   그는 다이앤과 함께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분명한 인도하심 없이는 움직이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경건의 시간에 스티브는 시편 37편을 읽고 있었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3절). 그 중에 눈에 띠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땅에 거하라."


   스티브와 다이앤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아주 분명하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셨다고 느끼고는 시편 37편을 근거로 터키에 4년을 더 머물렀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독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은 독일에서 일하다가 스티브가 병에 걸리는 바람에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간 삶은, 주님께서는 그분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자신의 뜻을 분명히 알리실 수 있으며 또 알리신다는 사실을 증거해줍니다.

Posted by 행복자
,

   지금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윌리암 맥도날드

                                           4장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한 버트


   버트는 처음 클라우디아를 만났을 때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 마음과 양심에 역사하셔서 하나님 나라에 아주 가까운 마음 상태가 되었습니다. 클라우디아는 전혀 믿을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버트를 처음 만났을 때 마음이 끌렸으며 버트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녀를 평생의 반려자로 삼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버트는 생각했습니다. 그는 둘이 함께 구원받고 함께 주님을 섬길날을 고대했습니다. 그녀는 쉽게 그를 따라 교회에 갔고 그리스도인들과 쉽게 어울렸습니다. 버트는 그녀와의 관계가 원만하게 진전되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모든 일이 아주 순조로웠습니다.


   여러 주가 지나면서 버트의 마음에는 죄에 대한 각성이 생겼습니다. 그는 더 이상 그런 상태로 머물 수 없었습니다. 어느 주일 복음을 듣다가 버트는 마음에 결정을 내려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는 집회 후에 전도자를 찾아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클라우디아가 그 일을 보고 자기도 구원받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여러 자매님들이 그녀에게 몰려와  이제 두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함께 주님을 섬기게 되었다고 기뻐했습니다.


   버트는 원래 열정적인 기질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말씀을 파고들고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클라우디아는 한 동안 열심을 내다가 이내 시들어버렸습니다. 버트는 그녀가 성경을 읽는데 아무 관심이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일시적인 상태로 넘겨버렸습니다. 버트가 장로들에게 침례상담을 청하자 클라우디아도 함께 침례 받겠다고 자청했습니다. 장로들은 그녀와 상담하기 위해 여러 번 시간을 마련했지만 번번이 그녀의 시간에 맞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로들은 그녀의 경우를 예외로 인정하고 그녀를 버트와 함께 침례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침례식 자리에서 버트는 그녀의 간증이 허술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회개를 했다든지 그리스도께서 유일한 천국 소망이 되었다든지 하는 말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얘기뿐 주 예수님에 대한 얘기는 거의 없었습니다.


   버트는 의심을 애써 무시하고 약혼과 결혼을 위한 준비를 해 나갔습니다. 사랑이 문으로 들어오자 이성(理性)이 창문으로 나가버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동하고 있다는 확신은 없었으나, 만일 클라우디아가 참 신자라면 주님께서 결국 구원해주실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경건의 시간에 이사야 30장 1,2절을 읽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패역한 자식들이여,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신으로 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으니 죄에 죄를 더하도다."

   주님께서 버트에게 직접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는 주님께 여쭙지 않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는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결혼을 막아달라고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버트는 결혼하고픈 소망이 남달리 강했습니다. 그는 혼자 될까봐 두려웠습니다.


   3개월 후 어떤 형제가 버트에게 고린도후서 6장 14절을 보여주었습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버트는 결단을 못 내리고 우물쭈물거렸습니다. 그 말씀은 그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행동을 멈추도록 계속 경고했습니다. 적신호가 깜박거렸습니다.

   클라우디아가 버트를 위해 생일파티를 준비했습니다.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술도 준비한 아주 떠들썩한 파티였습니다. 그녀의 친구들도 왔고 교회 사람들도 왔습니다. 분위기가 이상했고 모두들 어색해했습니다.


   파티가 끝나자마자 또 다른 형제가 버트와 차를 마시면서 고린도후서 6장 14~18절을 간략히 설명해주었습니다. 버트는 이번에는 주님께서 확성기로 그의 주의를 깨우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침내 버트는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 갈 수 없다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클라우디아의 삶에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삶에 이루시는 변화의 증거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생활 모습은 그리스도인의 간증을 전혀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그런 얘기를 편지로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이제 끝나야 했습니다. 버트는 가능한 부드럽고 다정하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왜 자신이 그런 갈등을 불러오는 행동을 그만두어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그녀의 마음에 상처를 주게 된데 대해 미안함을 표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라는 호소의 글로 편지를 끝맺었습니다.


   불행히도 클라우디아는 그 일을 회개의 기회로 삼지 못하고 완전히 불신앙의 길로 나갔습니다. 버트는 그녀가 얼마 후에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녀도 그녀의 배우자도 주님을 시인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버트는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는 자들이 누리는 큰 평화를 경험하고 믿음이 급속히 성장했습니다. 그는 모든 감정적인 혼돈을 극복하고 주님을 삶의 첫째자리에 놓고 그분 안에서 만족을 발견하는 법을 배운 것입니다.

 
Posted by 행복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