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종교로부터의 자유
기복신앙으로 소경된 기독교인들이여!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 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8).
"나는 집에 너무 우환이 많고 살림이 어려워 예수를 믿었으나 별로 나아진 것이 없어 그만 두었습니다."
"나는 예수 믿고 건강 축복, 물질 축복, 가정 축복 받았습니다. 예수님 참 감사하지요."
이와 같은 이야기는 필자 뿐 아니라 독자들도 주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금일의 기독교를 병들게 하는 기복신앙, 즉 육신적 축복에 매달려 있는 기독교인들의 문제를 생각해 보기를 원한다.
"기복신앙". 보이지 아니하는 영생의 소망과 구원의 확신을 추구하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 소망에 빠져서 여기에만 매달려 하나님의 근본 뜻을 저버린 길 잃은 양떼들이 여기서 헤매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잃어버린 수많은 방황하는 양떼들이 겉으로는 열렬하게 하나님을 부르지만 실제는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이 지옥으로 향하여 가고 있는 기복신앙에 잡혀 있는 불쌍한 거짓 기독교인들인 것이다.
이 기복신앙의 실제문제를 성경에서는 수없이 많이 다루고 있다. 그중 요한복음 6장에 보면 기복신앙에 잡혀 있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슬프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울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15절).
에수님을 임금 삼으려는 자들의 중심 뜻은 무엇인가? 그들은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인 놀라운 기적을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들이었다. 이 기적을 본 사람들은 이 놀라운 능력 있는 분을 왕으로 모시면 이스라엘을 로마에서 해방시키는 문제 뿐 아니라 백성들의 민생문제를 능히 해결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육신적으로 아무 걱정 없이 배불리 먹고 평안히 살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예수님을 왕 삼으려 한 것이다.
이들의 마음을 읽은 예수님은 이들의 청을 당연히 거절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4절에 보면 그들이 끈질기게 예수님을 찾아 따라온 것을 보게 된다. 이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정곡을 찌르는 말씀을 주셨다.
"너희가 나를 찾은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한복음 6:26).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을 통하여 표적을 베푸신 경우가 신구약에 많이 나온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 자신의 존재와 위엄을 드러내고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소망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만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 분명하다. 표적이 표적 그 자체에만 목적이 있거나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만 있을 때 이것이 기복신앙이 아닌가?
예수님이 26절의 이 말씀을 하신 것은 표적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그분을 믿고 그분을 통하여 영생의 소망을 갖기를 원하셨으나 그들이 떡을 먹는 그 자체에만 목적이 있음을 지적하신 것이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육신적인 떡보다 생명의 떡이 되신 자기 자신을 깨닫게 하고자 노력하셨으나 그들이 기복신앙에만 머물러 있어서 알아듣지 못함을 볼 수 있다. 결국 예수님은 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곧 영이요 생명이니라"고 선포하시기에 이른 것이다. 육신적인 축복에만 매달려 있는 무리들에게 이 말씀이 얼마나 충격이 되었으면 대부분 물러갈 수밖에 없었겠는가(요한복음 6:66).
이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 하고 질문하심에 대해서 베드로가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하고 놀라운 답변을 하므로 오늘까지 성도들의 갈 길을 예시하신 훌륭한 가르침이 되었다.
여기까지의 상황은 영생을 가르치고자 원하시는 주님과, 보이는 육신적 축복에만 매달려 있는 우매한 유대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잘 묘사해 준다.
독자여, 이와 같은 말씀을 읽으면서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있는 큰 문제점 중의 하나가 드러났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오늘날 주님을 위해서 열심을 내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들이 육신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과 받을 복을 위하여 열심을 내고 있지 않는가?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고 몇 년씩 하기 때문에 주님을 믿는 믿음(정성)이 가상하여 하나님이 복을 내리시니 부디 새벽기도 열심히 하여 하나님 앞에 복 받기를 소망하라는 가르침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참여하고 있는가?
참고할 것은 필자가 새벽기도를 부정하거나 무조건 질타하는 뜻이 아님을 알기 바란다. 새벽에 일어나 성경보고 기도하고 혹은 예배당에서 새벽집회를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 정성을 들여 기도하면 하루가 기쁘고 그렇지 아니하면 심령이 평안을 잃는 샤머니즘적 신앙은 지적 받아 마땅하다.
우리네 부모님들은 옛날부터 새벽마다 물 한 그릇 떠놓고 각종 신에게 빌었다. 그런데 이것이 새벽기도로 변하여 기독교에 침투하여 기독교를 병들게 하고 있다. 필자가 선교사들을 통해서 혹은 여행 경험을 통해서 아는 바로는 새벽마다 예배당에 모여 건물이 떠나갈 듯 통곡을 하면서 울어대는 교회는 대한민국뿐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기독교 문화는 확실히 잘못 발전되었다.
헌금을 드리는 문제도 그렇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경우 복받기 위해 헌금을 드리는가? 헌금을 드리는 것도 하나님께서 영육간에 베푸신 은혜를 깨닫고 감사와 찬양의 표시로 드려야 마땅하거늘 하나님께서 크게 보상해 주심을 생각하고 헌금을 드린다면 이것이 기복신앙이 아닌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악한 죄인이었으나 양심의 악을 깨닫고 구원을 받아 주님께 찬양이 넘치므로 진정한 헌신이 있게 되는 것이다.
기복신앙의 예를 더 들어보자.
어떤 신앙잡지에서 "나는 이렇게 구원받았다"는 간증을 읽어본 적이 있어 여기 줄거리를 소개한다.
"다리 관절염으로 오랫동안 고생하여 양약과 한약으로 수없이 치료하였으나 소용이 없고 다리는 계속 더 악화되기만 하였다.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을 만큼 병세가 악화되고 있었다. 고민으로 나날을 보내며 슬퍼하고 있는데 어느 날 친구의 안내로 기도원에 갔다. 평생 처음으로 교회에 가보는 것이라서 처음에는 어색하였으나 며칠 있으면서 찬송을 배우고 말씀도 배우니 조금씩 적응하는 것 같았다. 이제 제법 울면서 기도하기도 하였다. 다리를 고쳐달라고 울부짖어 보기도 하였다. 며칠을 보낸 후 철야기도를 하는데 새벽 2시쯤 되었을 때 귀에 들리는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으면서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나 갑자기 불덩어리가 머리로부터 온몸을 통과하는 것 같았는데 그후 다리가 씻은 듯이 깨끗이 나아버렸다. 얼마나 주님께 감사드렸는지 모른다. '나를 구원하시고 은혜를 주신 주님께 눈물로 감사찬송 드립니다. 아멘'."
이것이 간증의 전부이다. 여기에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이 믿어졌고 이렇게 구원받았다는 흔적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십자가가 빠진 구원, 보혈이 빠진 속죄, 이것은 양식 있는 기독교인이라면 단번에 분별이 가는 잘못된 간증이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어려움이나 물질의 어려움, 직장의 어려움을 기도하는 자체가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면 무엇인가? 신앙의 순서가 근본적으로 틀렸다는 것이다. 일찍이 예수님께서 지적하셨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요한복음 6:63)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도, 십자가에 죽으심도, 부활하심도, 다시 오심도 모두 영적인 문제, 즉 영혼의 문제를 위한 것이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므로" 사람으로 하여금 영원한 멸망의 심판을 면하게 하고 영생의 기쁨에 참여하게 하심이 주님의 뜻이다.
진실이 이러함에도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영생의 문제, 영혼의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교회에 나가는 이유를 질문하면 대부분 많은 사람이 육신의 복을 위하여 나간다고 고백하고 있지 않은가? 영혼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하여도 그것은 이차적인 문제요 거기에는 아주 적은 관심을 갖고 있을 뿐이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람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슬퍼하며 탄식하신 말씀이 있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치 아니하는도다"(요한복음 5:40).
영생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 앞에 오는 사람은 영생을 얻을 뿐만 아니라 영생의 기쁨을 이 땅에서부터 누리게 된다. 요한삼서 2절에도 이 문제를 분명하게 다루고 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는 모든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복을 구하며 하나님을 따를 것인가에 대한 순서를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우리의 신앙의 최고 목적은 "영혼의 잘됨" 에 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얻었다 할지라도 그 영혼을 잃어버린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누가복음 12:6~21).
"범죄하는 영혼은 죽으리라"(에스겔 18:4) 하신 말씀처럼 죄를 범한 영혼은 영원한 멸망의 지옥에 던져질 수밖에 없다. 천국과 지옥의 길을 알지 못하고 영원한 멸망으로 던져질 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모든 죄를 용서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로마서 5:1)는 것은 너무나 놀라운 일이다.
인간으로서 죄를 짓지 아니한 사람은 하나도 없으며(로마서 3:10), 거룩한 자도 하나도 없다(시편 14:3).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분이 없다고 말씀하셨다(마가복음 10:18). 그런데 더럽고 형편없는 죄인이 십자가의 보혈로 모든 죄를 용서받아 의인이라는 신분을 얻었다(로마서 3:24)는 것은 천지를 진동시킬 놀라운 사건이다. 이제는 (신분상)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된 것이다. 베드로는 이것을 "신의 성품에 참여"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베드로후서 1:4). 바울은 이 구원을 가리켜 "큰 구원" 이라고 놀랍게 표현하고 있다(히브리서 2:3). 영혼구원의 문제는 너무나 엄청나기 때문에 천하를 주고도 그 값을 계산할 수가 없다(마태복음 16:26).
생각해 보라. 한번 가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하고 무서운 멸망의 지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 영원히 눈물과 고통과 이별이 없는 영생의 복된 소망 가운데 거하게 되는 일이 얼마나 놀랍고 놀라운 일인가?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요한복음 3:16). 예수님의 오심으로 구원 역사가 시작되었고, 그분의 죽으심으로 모든 죄가 용서되어 의인이 되었으며, 부활하심으로 이 사실이 확증되었고, 다시 오심으로 완성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구원의 약속을 확실히 받은 자로서 우리를 데리러 오실 때까지 이 세상에서 육신과 함께 잠시 기다리고 있는 나그네 인생이다(베드로전서 1:7)
잠시 기다리는 동안 육신에 필요한 것이 있기에 영생을 얻은 자녀에게 육신적 필요를 따라 하나님이 육신적인 복을 공급하신다.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먼저는 영적인 복이고 나중은 부수적으로 육신의 복이 필요하다. 그래서 요한 삼서에서도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하고 순서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오, 독자여! 부디 권고하노니 그대의 영혼의 문제는 확실히 해결을 보았는가를 생각해 보라! 필자가 만나본 독자들 중에는 자신은 구원받았다고 하나 실제 말씀 앞에서 볼 때 주님과 전혀 관계없는 거듭나지 못한 쭉정이가 너무나 많았다. 이글을 읽는 그대는 부디 쭉정이가 아니길 바란다.
그대는 하나님을 믿되 기복신앙으로 하나님을 믿은 것은 아닌가? 분명히 거듭난 경험도 없이 기도응답 몇 번 받았거나, 병 고침을 경험했거나, 기적을 체험하였다고 "그것으로 천국에 가겠거니" 하고 착각하지 말라. 그대의 영혼이 십자가 속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명히 "연결된 사실" 이 없다면 그대의 신앙은 기초 없는 집이요, 물 없는 구름이며, 열매없는 가을나무이다.
주님은 분명히 열매로 판단하신다고 말씀하셨으니 그대의 영혼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새 생명으로 변화된 성령의 열매가 있기를 바란다. 그대의 육체적 욕구를 위하여 교회에 나간다면 그대는 기복신앙에 잡혀 있음이 분명하거니와 성령과 진리의 인도하심으로 거듭난 성도라면 그대에게는 영생의 소망이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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