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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 위해 핍박 받는 사람들

                                                                                                              -리차드 범블란트


   수년간의 외로운 감옥생활, 수개월동안 계속된 육체적인 고문, 계속되는 굶주림과 추위의 고통, 세뇌공작과 정신적인 고문으로 인한 괴로움, 이것이 어느 루마니아의 한 그리스도인이 공산치하의 감옥에서 14년간 겪은 경험이요 목격담이다.

   그의 죄는 무엇이었는가? 그의 죄와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죄는 예수 그리스도를 열렬히 믿고 그 믿음을 사람들 앞에서 증거했다는 것이다. 가정집과 지하실, 그리고 숲속에서, 때로는 거리의 모퉁이에서 공공연히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면서 이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행동의 궁극적인 대가를 아는 가운데 충성스럽게 그리스도인의 증거를 고수하고 있다.

   본서는 그들이 한결같이 보여주는 용기와 불굴의 신앙과 믿을 수 없으리만치 강인한 인내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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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쓰는 이유


   나는 철의 장막 뒤에 있는 지하교회의 소식을 자유세계 그리스도인 여러분들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내가 몇년 동안 인도하여 왔던 지하교회는 이 절박한 소식을 여러분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나를 자유세계에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이제 이 책을 통해 알게 되겠지만 나는 기적적으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자유세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통하여 나는 공산치하에서 고난을 받고 있는 지하교회에 관한 소식을 믿음으로 전하려 합니다.

   그럼 먼저 나의 간증으로 시작하여 지하교회의 일들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겠습니다.


                                       1 무신론자가 그리스도를 찾다


   나는 기독교 교육을 받지 못한 가운데 성장했습니다. 나는 1살때 고아가 되었으며, 1차 세계대전 기간에 빈곤이 무엇인지를 절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14살 때는 오늘날의 공산주의자들처럼 완고한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나는 무신론에 관한 책들을 읽었으며, 종교를 증오했으며, 종교는 사람들의 의식에 해롭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종교에 대한 좋지 않은 생각 속에 자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지한 나를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은 나의 성품이 좋아서가 아니었습니다. 비록 내가 무신론자였으나 말할 수 없는 힘이 나를 예배당으로 이끌었습니다. 예배당 앞을 지날 때마다 들어가 보고 싶었습니다. 나는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했습니다. 나는 무조건 복종해야만 하는 주인 같은 하나님은 싫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내가 사랑의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다면 벌써 믿었을지도 모릅니다.

   나의 어린 시절과 청년시절은 기쁨이 거의 없었습니다. 나는 이 세상 어딘가에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를 갈망했습니다.

   언젠가 나는 영적 갈등으로 성당에 들어가 본 적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무언가 중얼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들이 기도하는 것을 듣고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보려고 앞으로 다가가 앉았습니다. 그들은 마리아에게 이렇게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은헤가 풍성하신 성모 마리아여!"

   나는 몇 번이고 그들을 따라 기도한 후 마리아 조각상을 바라보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크게 실망했습니다.


   내가 무신론자였을 때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는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존재한다면, 나에게는 당신을 믿어야할 책임이 없지만 그러나 당신은 나에게 당신의 존재를 나타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번뇌하고 있을 때 루마니아의 한 산간 마을의 늙은 목수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하나님, 이 종은 주님을 여러 해 동안 섬겨왔습니다. 주님, 이 종이 죽기 전에 유대인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게 은혜를 베푸소서. 예수님은 유대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 종은 가난하고 늙었고 병들어 있으므로 나가서 유대인을 찾을 수 없습니다. 또 우리 마을에 유대인이 살고 있지 않습니다. 주님, 유대인을 저희 마을에 보내주소서. 그러면 이 종이 힘을 다해 그를 주님께로 인도하겠습니다."


   나는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그 마을로 갔지만, 내가 거기서 특별히 할 일은 없었습니다. 루마니아에는 12,000여 개의 마을이 있는데 내가 바로 그 마을로 간 것입니다.

   그 목수는 내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는 기도의 응답으로 내가 왔다고 생각하며 나에게 성경을 주며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나는 문학적 흥미로 성경을 몇 번 읽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인이 준 성경은 달랐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들 내외는 나와 나의 아내의 구원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해 왔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성경은 글로 써진 것이 아니라 사랑과 기도로 써진 것이었습니다.

   나는 성경을 읽다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의 속된 일생을 예수님의 생애와, 나의 부도덕과 미움을 예수님의 사랑과 비교해 볼 때 나는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어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받아주셨습니다. 나의 뒤를 이어 아내도 구원 받았습니다. 아내는 다른 영혼들도 예수님께로 인도했습니다. 이들이 또 다른 영혼들을 인도하여 루마니아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 후 나치 시대가 시작되어 우리는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나치들은 루마니아에서 독재 정책을 실시하여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을 핍박했습니다.

   나는 안수 받은 목사는 아니었지만 교회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나와 아내는 여러 번 나치들에게 체포되어 구타를 당했습니다. 나치의 테러 행위는 극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공산당에는 비할 바가 안 되었습니다. 나는 아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미하이라는 비유대인의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나치 시대의 여려움은 우리에게 커다란 유익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고통은 견딜 수 있다는 것,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지하교회를 인도하기 위한 준비를 시킨 것이었습니다.


   소련 사람들에게의 전도


   나는 주님을 믿은 후부터 소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무신론 세계에서 자란 사람들입니다. 나의 이런 소망은 나치 시대에 많은 소련 포로들이 루마니아에 끌려오므로 실현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소련 포로와의 첫 만남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기사였습니다. 나는 그에게 하나님을 믿느냐고 질문하고 싶었습니다. 만약 그가 안 믿는다고 하면 그것으로 마치려고 했습니다. 믿고 안 믿는 것은 개인의 자유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깨닫지 못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나는 그런 명령을 받은 적이 없으며, 만약 그런 명령을 받으면 믿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눈물이 내 두볼을 적시며 흘러 내렸습니다. 나는 마음이 찢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은 마음이 죽은 사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을 알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공산주의에 의해 완전히 세뇌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자신의 것을 더 이상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몇 년간의 공산주의 통치가 빚어낸 전형적인 소련 사람이었습니다. 공산주의가 인간에게 행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나는 일생을 이들의 인격을 찾아주고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주기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소련에 가지 않고도 소련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1944년 8월 23일부터 100만 소련 군인들이 루마니아로 들어왔고 얼마 후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리하여 무서운 고통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루마니아에는 1,900만의 인구가 있었고 공산당원은 1만 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소련 외무상 비쉰스끼는 미하일 왕의 사무실에 뛰어 들어가 책상을 두드리며 공산당원들을 정부 기관에 임명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루마니아의 군인들과 경찰들은 무장해제를 당하고 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진정한 사랑과 거짓 사랑의 말은 다 같다.


   공산당은 정권을 장악한 후 교묘하게 교회를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겉으로만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이 쓰는 말은 다 같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짜 양과 양의 가죽을 쓴 이리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산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많은 목사들과 신부들은 진가를 구분할 줄 몰랐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국회 청사에서 기독교 단체들의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회의에는 4,000명의 목사들과 신부들이 참가하여 스탈린을 회의의 명예주석으로 선출했습니다. 그러나 스탈린은 세계 무신운동협회의 주석이며 기독교인들을 수없이 학살한 흉수(兇手)였습니다. 회의에서 신부들과 목사들은 공산주의와 기독교는 원칙상 같으므로 공존할 수 있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공산주의를 칭송하며 새 정부에 충성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나와 아내도 이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아내는 나에게 "리챠드, 일어나 주님 얼굴에 끼친 이 수치를 씻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만약 내가 입을 열면 당신은 남편을 잃을 것이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나는 겁쟁이 남편을 원치 않아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일어나 담대히 외쳤습니다.

   "우리는 기독교인들을 살해한 자들을 칭송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을 찬송해야 하며 마땅히 주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회의는 방송을 통하여 생중계 되고 있어 온 나라가 공산당 회의의 연단에서 발표되는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나는 이로 인해 비록 값을 치렀지만 보람이 있었습니다.


   동방정교와 기독교의 지도자들은 서로 공산당에게 아첨하기에 바빴습니다. 한 동방정교의 주교는 자기의 예복에 공산당 마크를 그려 넣고 동료들에게 자기를 "주교동지"라 불러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나는 레시타 시에서 진행된 침례교회 회의에 참가한 적이 있었습니다. 회의장에는 붉은 기를 걸었고, 회의는 참가자들이 일어나 소련 국가(國歌)를 합창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침례교 대표는 말하기를 "스탈린은 오직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스탈린을 위대한 성경학자라고 높이기도 했습니다. 페뜨라스뀨 목사와 로씨아뉴 목사는 더 노골적이었습니다.

   루마니아 루터교의 부주교 라프는 신학교에서 하나님의 세 가지 계시에 관해 강의했습니다. 그중 첫 번째는 모세를 통하여, 두 번째는 예수님을 통하여, 세 번째는 스탈린을 통하여 주셨는데 이 세 번째 계시는 앞의 두 계시를 대신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진정한 교회는 이 거짓된 것을 승인하지 않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리하여 핍박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공산당은 "선발된" 자신들의 지도자들을 자리에 앉혔습니다. 침례교는 선택할 여지도 없이 그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러시아 10월 혁명이 일어난 후 러시아 그리스도인들이 지하교회를 세웠던 것처럼 우리도 지하교회를 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하교회란 믿음으로 복음을 가르치고 전하며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하는 교회입니다. 공산당은 이런 지하교회는 금지하고 공식적인 교회, 즉 국영교회만을 인정했습니다.

   다른 성도들과 같이 나도 지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당시 아주 존경받는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지하교회를 하기에 좋은 방패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사역을 전개했습니다. 하나는 100만 소련 군인들에게 전도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노예가 된 루마니아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을 갈망하는 소련 사람들


   소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나에게는 마치 하늘나라에서 사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많은 나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왔지만 소련 사람들처럼 복음을 갈망하는 사람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심령은 메말라 있었습니다.

   내가 아는 한 동방정교 사제가 전화로 알려주기를, 한 소련 군관이 그를 찾아왔으나 자기는 러시아어를 모르니 러시아어를 잘 아는 나의 주소를 적어주었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그 군관은 나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갈망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을 본 적이 없었고 예배에 참석해 본 일도 없었습니다(소련에는 교회가 거의 없습니다).  그는 신앙 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지만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산상수훈이며 예수님의 비유들을 읽어주었습니다. 이것을 듣고 그는 기쁨에 넘쳐 춤까지 추며 말했습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예수님을 모르고 어떻게 살까요?"

   나는 예수님을 알고 이처럼 좋아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읽어주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매를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을 듣고는 의자에 주저앉아 비통해하며 울기시작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자기를 구원할 구세주로 믿었는데 그분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내가 그리스도인이며 인도자라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나는 이제껏 주님의 고통을 이 군관처럼 느끼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막달라 마리아가 십자가 아래서, 무덤 앞에서 울고 있는 것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그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무덤 속에서 일어나셨음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듣고 그는 무릎을 치며 일어나 "주님은 부활하셨다" 고 외치며 또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기도하자고 권했습니다. 그는 기도가 뭔지, 또 무슨 말로 기도해야 하는지를 몰랐습니다. 그는 나와 함께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 당신은 좋은 분이십니다. 만약 내가 당신이라면 나는 당신의 죄를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너무 선하십니다. 마음을 다해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하늘나라의 천사들이 일손을 멈추고 이 소련 군관이 드리는 기도를 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는 이제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한 상점에서 물건을 가득 사고 판매원과 언어가 통하지 않아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소련군 대위와 여군관을 만났습니다. 나는 자진하여 통역을 해주었습니다. 그 후로 우리는 친분있게 지냈습니다. 나는 그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점심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식사를 하기 전에 나는 그들에게 "당신들은 그리스도인의 집에 와 있으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식사 전에 기도를 드립니다."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러시아어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칼과 포크를 내려 놓고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경에 관하여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들은 신앙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사람이 백 마리의 양을 가지고 있는데 한 마리를 잃은 비유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어떻게 그 사람이 양 백 마리를 소유할 수 있습니까? 협동조합에서 빼앗아갈 텐데요?"

   나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왕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왕들은 다 인민들을 학대하는 나쁜 놈들이니 예수도 반드시 폭군이겠군요" 라고 하였고, 포도원 농부에 대한 비유를 말하면 "농부들이 포도원 주인을 대항하여 나선 것은 잘한 일이오. 포도원은 협동조합에 속해야지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태어나심에 대해 알려주자 "마리아는 하나님의 아내인가요?" 라고도 물었습니다.

   이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나는 소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완전히 새로운 용어를 써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중앙아프리카에 복음 전하러 갔던 선교사는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사 1:18) 라는 말씀을 번역할 때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중앙아프리카에서는 눈을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눈이라는 단어를 몰랐습니다. 그리하여 그 선교사는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야자수와 같이 희어질 것이요."

   우리도 성경말씀을 소련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 대위와 여군관은 그날 회개하고 주님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훗날 우리가 소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성경과 신앙서적들을 인쇄하여 소련 사람들에게 배포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을 믿은 소련 군인들의 도움으로 많은 성경과 책자들을 소련에 보냈습니다.


   우리는 또 다른 방법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소련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들은 수년간 전쟁터에 나와 있기 때문에 자녀들을 보지 못하고 지냈습니다.(소련 사람들은 특별히 아이들을 좋아했습니다) 나의 아들 미하이와 열 살 미만의 어린이들이 호주머니에 많은 성경과 복음 책자들을 가지고 거리나 공원에 있는 소련 군인들을 찾아가면 그들은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야기도 하면서 집에 두고 온 자식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초콜렛이나 사탕을 주곤 했습니다. 반면에 아이들은 성경이나 복음 책자들을 주었습니다.

   어른들이 하면 위험한 일을 아이들은 안전하게 잘해냈습니다. 이들 "꼬마 전사" 들의 업적은 대단했습니다. 많은 소련 군인들이 꼬마들을 통하여 성경이나 복음책자들을 받고 복음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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