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위해 핍박 받는 사람들

                                                                                                    -리챠드 범블란트


                          4 예수님의 사랑으로 (2)


   역사의 교훈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몇 세기동안 북아프리카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성 어거스틴을 비롯한 많은 믿음의 성도들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북아프리카의 그리스도인들은 회교도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로 오늘날까지도 이 지역은 회교도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은 "회교도들은 변화시킬 수 없는 자"들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교훈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종교개혁 시기에 후스와 마틴 루터와 칼빈 등 개혁자들이 당시 구라파 사람들의 관심사였던 교황권 철폐 문제에 맞서 개혁을 추진하였던 것처럼 오늘날 공산주의자들과 그 희생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지하교회의 관심도 자유를 누리려 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일치합니다.


소련 작가 일리야 에덴부르그는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만약 스탈린이 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가 죽인 사람들의 이름만 일생동안 쓴다 해도 다 쓰지 못할 것이다."

    브레즈네프는 소련 공산당 제20차 전원회의에서 "스탈린은 제7차 전원회의에서 당선된 139명의 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 위원 수의 70%인 98명을 체포 총살하였으며 그 외에도 수많은 당원들을 숙청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니 스탈린이 그리스도인에게 행한 폭행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브레즈네프도 스탈린과 다를 바 없습니다. 1959년 이후부터 지금까지(책을 쓴 당시) 소련의 교회는 절반 이상이 문을 닫았습니다. 중국은 "문화대혁명"의 선풍으로 반기독교 투쟁을 야만적으로 진행하여 공식적인 교회활동은 일절 단속되고 있습니다. 최근 소련과 루마니아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잡혀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 전 들은 소식에 의하면 소련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잡혀가고 있다고 합니다.

   10억이나 되는 사회주의 나라 사람들은 폭력과 기만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는 이런 환경에서 자라나 자본주의 나라, 특히 기독교에 대한 적대심만 가지고 있습니다. 소련 당국은 어린이들이 교회에 들어가지 못하게 보위원들을 교회 문 앞에 파견하여 단속하며, 들어간 아이들은 구타당하고 쫓겨납니다. 이렇게 그들은 기독교를 적대하는 미래의 주인공들을 계획성 있게 키우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를 이길 수 있는 힘은 사회주의 나라에 숨어 있는 지하교회들이 믿고 있는 복음의 힘밖에 없습니다. 이 지하교회를 지지하고 돕는 것은 단지 고난 받는 성도들을 위한 것만 아니라 자유세계의 운명과 교회의 운명을 위한 일입니다. 이는 또한 자유국가들의 그리스도인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자유국가들의 정책이어야 합니다.

   지하교회는 이미 공산당 간부들을 주님께로 인도 했습니다. 루마니아의 게오르규 총리는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여 새 생명을 얻고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회주의 나라들의 정부 요원들 중에는 공개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수는 더 늘어나야 합니다. 그러면 일부 공산당 정권은 기독교적이고 자유적인 정부로 바뀔 수 있을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처럼 자신들이 믿는 것에 대해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갈등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회주의 나라 사이에는  형제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의 현실은 그들이 개처럼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또 공산주의가 지구상에 지상낙원을 건설할 수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어 할 수 없이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쌀을 수입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수령을 철석같이 믿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자기들의 신문에서 스탈린은 대학살자이며 브레즈네프는 바보라는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수령을 절대적인 존재로 보지 않습니다.

   공산주의들의 마음은 비어 있습니다. 그 공허함을 예수님만이 채워줄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찾는 본성을 가지고 있어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영적인 공허감을 없애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조롱과 핍박을 받았으나 예수님의 사랑으로 그 모든 것을 용서하고 그들이 진리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편애가 없는 전 세계적인 것입니다.

   서방의 교회 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원수들도 사랑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으로 공산주의자들과 친선을 정당화하려 합니다만 예수님의 이 말씀은 형제 자매들을 버리고 원수들과 화해하라고 하신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이들 교회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대신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살해한 자들과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고난 받은 성도들은 그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서독의 개신교와 천주교는 지난 7년간 1억2천5백만 달러의 구제금을 냈으며 미국의 교회들은 더 많은 돈을 냈습니다. 세상에는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나는 고난 받는 성도들보다 더 심한 굶주림을 당하는 사람들이 없으며 당연히 자유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과 독일, 영국과 북 구라파의 그리스도인들의 구제가 먼저는 고난 받는 성도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미쳐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그렇게 되고 있습니까?

   나의 경우를 볼 때, 고난 받는 성도들이 몸값을 치르고 풀려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러나 루마니아에서 나온 사람은 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구주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의 구주이기도 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서방의 그리스도인들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공산권 그리스도인들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으며 이 기쁜 소식은 모든 사람들이 다 들어야 하고 또 믿어야만 합니다.


   석방된 후 알게 된 것들


    나는 출옥하여 가족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나에게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나는 조용히 신앙생활을 하며 살고 싶다"고 말하자 그녀도 같은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젊어서는 쾌활한 사람이었으나 몇 년간의 감옥생활을 지낸 후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으로 변했습니다. 그 어떤 풍파도 견딜 수 있게 되었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자로, 나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전심으로 그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는 희망이 그리 많지 않았으므로 큰 기대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도 혹시 풀려나면 조용한 곳을 찾아 하늘나라 신랑이신 주님과의 연합을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굶주림, 고문, 그리고 약물투약으로 우리는 성경에 관한 많은 것을 잊었으나 여전히 "진리" 안에서 살았습니다.

   성경에는 "인자(예수님)는 너희가 생각지 않은 때에, 너희가 알지 못하는 날에 올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날에 예수님께서 우리가 고문당하던 어두운 감방에 나타나셔서 감방 안을 밝게 비추시고 우리를 핍박하던 자들은 멀리 우리 아래에 있고 우리의 영혼은 주님과 함께 하늘나라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나는 아무 사람과도, 어떤 일이라도 분쟁을 일으킬 생각이 없었습니다. 오직 주님과의 교제를 더 잘해 나가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내가 출옥하면서 그렸던 나의 장래였습니다. 그러나 출옥하던 그날부터 나를 맞이한 것은 감옥에서보다도 더 큰 도전이었습니다. 정부는 아주 추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대하고 있었습니다.

   석방된 후 만난 다수의 목사들과 신부들, 그리고 전도사들이 하는 말은 자신들은 보위부의 정보 제공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그들에게 "다시 잡혀 들어가더라도 밀고를 안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대답은 이구동성으로 "아니다"였으며 자신들이 잡혀가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니며 지금은 이전과 달리 그들이 비밀 제공을 거부하면 교회의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매 읍마다 보위원을 두고 전문적으로 종교 사업을 관리하게 했습니다. 보위원은 아무 때나, 아무 사람이든지 불러들여 교회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 예를 들어 몇 번 성찬식을 하는가, 누가 가장 열심인가, 누가 영혼 구원함에 앞장서는가 등을 묻고 심문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가 알려주지 않으면 파면당하고 대신 말 잘 듣는 "목사"가 교회를 인도하며 그런 사람을 찾지 못할 경우에는(거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음) 교회 문을 닫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다수의 목사들은 보위부에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나는 순교자들의 자녀들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돌봐주는 그리스도인들의 일거일동을 보위부에 보고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학교에서 쫓겨난다는 협박을 받습니다.

   나는 붉은 깃발 아래서 개최된 침례교 회의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회의에서 공산당이 교회 지도자들을 선출했습니다. 나는 국영교회의 지도층은 공산당이 지명하여 내세운 사람들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예수님께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언제든지 선한 목자와 삯군 목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극단적으로 무신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교회를 인도해온 역사는 없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당연히 교회를 말살하려는 것입니다.

   레닌은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모든 종교적 사상과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극히 위험하고 나쁜 감화력을 가지고 있다. 종교적 사상은 모든 범죄, 추악한 행위와 잔혹한 행동보다 더 위험한 것이다."

   사회주의 나라는 레닌의 방침을 따릅니다. 그들은 종교를 암이나 결핵과 같은 질병보다 더 나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공산당 정부는 자기들의 요구에 맞는 사람들을 교회지도자로 뽑습니다. 선발된 극영교회 지도자들은 교회의 모든 일을 정부와 협조하고 있습니다.

   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무신론에 빠져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국영교회는 이 일에 속수무책입니다. 부끄레슈띠에는 청년회나 주일학교를 운영하는 교회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자녀들마저 미움과 증오만 교육받고 자라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보면서 나는 공산주의를 달리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고문을 당하면서도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었습니다. 내가 그들을 미워하는 것은 나를 핍박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주님의 이름을 가리우고 그들의 통치 하에 있는 10억의 영혼들을 해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전국 각지의 농민들이 나를 찾아와 협동화가 어찌된 것인지를 물어봅니다. 그들은 자기 땅에서 배를 곯으면서 노예처럼 농사를 지어도 식량이 부족하고  아이들에게 우유와 과일을 먹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루마니아는 가나안 땅처럼 비옥한 곡창지대였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공산당이 그들을 도적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들은 굶주림을 못 이겨 자신들의 소유지였던 땅에서 곡식을 "훔쳐 먹고"는 농장에 거짓말을 해야만 했습니다.

   생산 공장의 경우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착취를 당하지만 노동자들은 파업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식인들은 양심을 속이면서 하나님이 없다고 가르쳐야만 합니다. 세계 3분의 1이나 되는 사람들의 생활과 사상이 파괴되고 속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사랑도 간섭을 받고 있습니다. 사로청원은 예수 믿는 사람과 사귀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모든 것이 허위적이고 추악한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인 예수님과 바울과 다른 믿음의 성도들의 길을 따라 영적인 싸움을 끝까지 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 싸워야 할까요? 그리스도인들은 감옥에서 우리 원수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구원받기를 기도하고 그들 중 한 사람이라도 변화되면 기뻐 어쩔 줄을 모릅니다.

   나는 공산주의 체제를 미워하고 유일한 복음의 능력으로 지하교회를 성장시켜 공산당 폭정을 타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루마니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공산권 나라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서방에서는 이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소련의 작가 시니이브스끼와 다니엘이 판결을 받아 투옥되었을 때 전 세계의 작가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잡혀갈 때에는 교회들마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쿠저크 형제가 '해를 끼치는" 신앙서적을 배포하였다 하여 구속되었을 때 그 누가 관심을 보였습니까? 프로코피애프 형제가 설교집들을 배포하였다는 이유로 잡히고, 소련의 유대인 그리스도인 형제 그룬발트도 같은 혐의로 잡혀서 가족들과 영원히 이별한 사실을 누가 알고 있습니까? 그룬발트 형제가 어린 아들과 이별할 때의 그 심정을 나도 겪어보았으므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반넨코, 쉐부츠크, 타첸코, 베까지나, 베까진, 라뜨비아의 필라트 부부 등 수많은 20세기의 믿음의 영웅들을 생각하며 저의 마음도 이들과 함께 고난 받는 심정입니다(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동료들이 사자굴에 던져질 때 하였던 것처럼). 나두 머리 숙여 그들의 족쇄에 입맞춥니다.

   서방의 일부 교회 지도자들은 이들 순교자들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순교자들을 위하여 기도도 하지 않으며 고문과 형벌을 받을 때 소련의 침례교와 동방정교의 지도자들과 함께 뉴델리에서, 제네바와 다른 지역에서 회의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 지도자들이란 바로 믿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배신한 자들이며, 소련에서 종교의 자유를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다고 거짓말하는 자들입니다.

   소련의 니코데므 대주교는 이 종교자유를 약속하여 세계교회 협의회의 한 지도자의 칭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 후 그들은 세계교회 협의회(WCC)의 간판 아래 연회를 벌이고 있습니다. 나는 공산주의는 싫어하지만 공산주의자들은 사랑합니다.

   나는 공산주의를 그대로 놔두고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일부 사람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순수한 복음만 전하시오."

   이 말은 나로 하여금 보위원들이 예수만 전하고 공산주의는 건드리지 말라고 한 말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순수한 복음"을 전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보위원들과 같은 영감을 받은 것은 아닌지요? 나는 무엇을 가리켜 "순수한 복음"이라고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세례 요한이  전한 복음이 순수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만 외친 것이 아니라 "헤롯이여, 당신은 잘못했소"라고도 말했습니다. 그는 이론적인 설교만을 하지 않았으므로 목이 잘렸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산상수훈만 하신 것이 아니라 "화 있으리라. 너희 율법사들, 바리새인들과 위선자들아"라고 책망하기도 하셨습니다. 이 순수하지 않은 말씀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죄는 명확하게 처리되어야 합니다. 공산주의는 오늘날에 있어서 제일 위험한 죄입니다. 공산주의와 공존하려는 것은 순수한 복음이 아닙니다. 지하교회는 생명과 자유를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공산주의와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유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더 이상 침묵을 지키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공산주의와 싸운다는 것은 반공분자가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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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위해 핍박 받는 사람들

                                                                                                 -리챠드 범블란트


                                     4  예수님의 사랑으로 (1)


   유대인들에게는 이런 전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조상들을 애굽의 억압으로부터 구원하시고 쫓아오는 애굽 군사들을 홍해 바다 속에 멸하실 때 천사들도 그들과 함께 승리의 노래를 불렀다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천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인간들이다. 그들은 노예생활에서 벗어났으니 당연히 기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애굽 사람들도 내가 만든 인간들이다. 그러니 내가 어찌 그들도 사랑하지 않겠느냐? 너희들은 어떻게 그들의 비극을 보고 슬퍼하지도 않느냐?"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에 가까이 갔을 때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손에 칼을 빼들고 자기 앞에 나타난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그에게 다가가서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을 위하느냐"고 물었습니다(수 5:13). 만일 여호수아가 만난 그분이 그저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의 대답은 세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1) 나는 당신들을 위할 것입니다.

   (2) 나는 당신들의 적을 위할 것입니다.

   (3) 나는 중립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만난 그분은 살과 뼈로 된 인간이 아니므로 아주 깨닫기 어려운 "글쎄요"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분은 편견이 없고, 객관적이며, 완전히 이해할 수 있고, 동정과 사랑으로 충만한 영적 세계에서 오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사회에는 인간적인 표준이 있습니다. 이 인간적인 표준으로 볼 때 공산주의는 타도의 대상이며 또 이런 잔인하고 야만적인 사상을 가진 공산주의자들도 투쟁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공산국가 감옥에서 온갖 고통을 다 당했지만 그들을 증오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인데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싫어하는 그들과 친구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산주의자들의 많은 악행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하시며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든지 회개하고 돌아서면 구원 얻을 수 있습니다. 나의 목표는 공산주의자들까지도 사랑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공산주의자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며 99명의 의인보다 1명의 죄인이 회개하여 돌아오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믿음의 선진들은 다 이 무한한 사랑을 전했습니다. 성 마카리도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모든 사람들을 열열히 사랑하는데 오직 한 사람만은 사랑하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될 자격이 없다. 그의 사랑에는 아직 제한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만일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 죄인이라 할 지라도 예수님은 그 한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것이다. 그분은 우리 각자 각자를 사랑하신다."라고 가르쳤습니다.

   기독교는 아주 명확하게 공산주의자들도 죄인이며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싫어하지만 죄인은 사랑합니다.


   나는 감옥에서 핍박자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25kg되는 족쇄를 채우고 붉게 달아오른 쇠갈고리로 지지고, 소금을 가득먹이고는 물을 주지 않으며, 굶기고 채찍질하는 등 수없이 많은 고문들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고문자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마음 속 깊이 뿌리박은 예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를 핍박하던 공산주의자들이 후에 감옥에 끌려들어 오기도 합니다. 공산당은 그리스도인들만 붙잡아 넣을 뿐만 아니라 당원들도 붙잡아 넣습니다. 심지어 고위급 간부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면서 일반 죄수들은 그들을 때리고 고롭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구타당할 위험과 공산당과 한편이라는 오해를 받으면서도 그들을 저지시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일주일에 한 조각의 빵과 자신의 생명을 건질 수 있는 약을 이전의 핍박자였던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었던 율리우 마니무 루마니아 총리는 감옥에서 죽으면서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공산당 정권이 이 땅에서 밀려날 때면 많은 사람들이 억눌렸던 원한을 풀려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공산주의자들을 분노에 찬 군중들의 손에서 건져내어 보호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초기에는 거리에서 내 곁을 스쳐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과연 저 영혼은 구원을 얻었을까'를 생각하면 내 마음은 칼로 도려내는 듯 아팠습니다. 나의 마음은 항상 모든 영혼들이 다 구원을 얻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해야겠다는 소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물론 공산주의자들도 포함해서입니다.


   우리는 가끔 독방에 갇힐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굶주림을 이겨내야 했으며, 바보가 되도록 흥분제 주사를 맞았습니다. 우리의 몸은 정말 뼈만 남을 정도가 됩니다. 주기도문마저 우리에게는 너무 긴 기도였습니다. 나는 그저 반복적으로 "주여,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만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주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지금 보여주마." 그러자 나는 마음속에서 태양과 같이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것을 느꼈습니다. 전에 엠마오로 가던 예수님의 두 제자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받았을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웠다고 하였는데 나도 그 뜨거운 것을 느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 인류의 죄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상에서 바치셨음을 나는 알았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지금까지도 계속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절대적인 사랑 앞에는 당할 자가 없습니다. 마치 죽음 앞에는 부한 자나 가난한 자나, 젊은이나 늙은이나 할 것 없이 그 누구든지 다 굴복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 인도자는 죽도록 매를 맞고 감방으로 끌려 들어왔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그를 씻어주며 어떤 사람들은 격분하여 간수들을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 인도자는 신음하며 "그들을 저주하지 마시고 조용해주시오. 나는 그들을 위하여 기도를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감옥에서도 기뻐할 수 있을까?


   14년간의 감옥생활을 돌이켜보면 즐거운 날들도 있었습니다. 다른 일반 죄수들과 간수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 무서운 상황에서도 어떻게 기뻐할 수 있는지를 궁금해 합니다.

   나는 옥중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사람은 정말 행복하다"고 하신 말씀을 놓고 묵상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전도하고 돌아왔을 때 하신 말씀입니다. 당시 유대는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여행길에서 본 것은 질병과 굶주림, 슬픔에 잠긴 사람들과 나라를 사랑해 잡혀간 애국자 가족의 통곡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사람은 정말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그들이 고통만을 본 것이 아니라 만민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비가 처음에는 보기 흉한 번데기로 기어 다니다가 나중에는 아름다운 나비가 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비가 되기까지는 흉하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거치듯이 우리도 고난을 이긴 후에는 복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욥과 같이 많은 시련을 겪은 사람들, 아니 욥보다 더 많은 시련을 당한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결국에는 욥이 이전보다 배나 축복을 받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사로와 같이 굶주리고 돌봐주는 사람이 없는 사람들을 알고 있으며, 후에 나사로가 천사들에게 이끌리어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것처럼 이들의 미래 또한 멋있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를 핍박하는 사람들 속에서 변화된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들을 앞으로 발견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미 변해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의 전도를 듣고 감옥에 갇힐 각오를 하며 예수님을 영접하는 보위원들도 있습니다.

   우리를 채찍질하는 간수들을 보며 우리는 이전 날의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처음에는 사도 바울을 채찍질하다가 후에는 믿는 자가 된 것을 보는 듯했습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그들이 어느 날 우리에게 이렇게 묻기를 기다립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겠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인분을 발라놓고 십자가에 매달아서 모독하는 간수들의 모습을 볼 때 마치 골고다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후 가슴을 치며 자신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부르짖는 장면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감옥에서 우리는 공산주의자들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으며 그들을 사랑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나의 일가친척을 살해한 그 공산주의자가 바로 나의 집에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는 바로 감옥에서 공산주의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감옥은 주님의 일을 하기에 좋은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깊으십니다. 인간적 차원에서 볼 때 인분 투성이가 되어 십자가에 매달린다는 것은 수치스럽고 감당하기 어려운 큰 고통이지만 성경은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은 "가벼운 고난"이라고 부릅니다. 감옥에서의 14년이란 시간은 긴 시간이지만 성경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은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크고 영원한 영광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볼 때 공산당이 50여 년간 저지른 만행과 죄악은 아주 많고 크지만 천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 앞에는 순간 밖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선다면 언제든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천국문은 오늘도 공산주의자들을 향하여 활짝 열려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그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전도를 해야 합니다.

   사랑만이 공산주의자들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사랑은 많은 국영교회 지도자들이 공산당과 타협하고 심지어 그들과 손을 잡는 그런 사랑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의 몸은 감옥에 갇혀 있으나 우리는 사랑으로 공산주의자들에게 전도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우리는 우선적으로 공산당 간부들을 전도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럼 먼저 교회 역사를 한번 살펴보려합니다.

   노르웨이는 어떻게 기독교 국가가 되었는지 아십니까? 올라프 국왕이 예수님을 믿은 후부터입니다.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국왕이 변화된 후부터, 헝가리는 성 스테반에 의하여, 폴란드도 그렇고 아프리카 지역들도 추장이 믿음으로 인해 그 부락 전체가 변화되어 예수님을 영접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집권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경제, 과학, 예술 분야의 사람들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들이 변화되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고도의 중앙집권체제인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면 권력층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을 가능성이 있습니까? 분명히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삶의 기쁨을 맛보지 못하고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련 지도자들의 종말을 보면 거의가 감옥에 갇혀 있지 않으면 암살되었습니다. 중국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고위급의 간부들도 자칫하면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히기도 합니다.


   어떻게 우리는 공산주의를 영적으로 이길 수 있을까?


   공산주의 제도는 사람들에게, 심지어 간부들에게도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그들은 어느 밤에 보위부 차가 들이닥쳐 그들을 잡아갈지 몰라 걱정 속에 마음을 조이며 살아야 합니다. 나는 많은 간부들과 친분을 맺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민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만이 그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습니다.

   공산당 간부들에게 전도하여 예수님을 믿게 한다는 것은 세계를 핵전쟁의 위험에서 구해내며, 아무 유익 없는 군비경쟁을 줄여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고, 국제적인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가능성도 큰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도하기 어려운 지역들도 전도하기가 쉬워질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큰 승리를 의미합니다.

   나는 젊어서 강력한 무신론자였기 때문에 알지만 무신론자나 공산주의자들은 일단 예수님을 믿으면 열성이 대단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선교에 있어서 우리는 전략적인 안목이 필요합니다. 구원의 견지에서 모든 영혼은 다 동등합니다. 그러나 선교전략의 견지에서는 다릅니다. 영향력 있는 영혼, 앞으로 수천수만 명의 영혼을 인도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숲속에서 구원받은 한 영혼보다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서의 마지막 사역을 작은 마을에서 마치신 것이 아니라 세계의 영적 수도인 예루살렘에서 마치셨으며 사도 바울도 로마에 가려고 많이 노력하였던 것입니다.

   성경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변두리에서 사단을 노릴 것이 아니라 사단의 머리인 모스크바와 북경 일대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들과 선교 일꾼들, 그리고 주님을 진정으로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주의 나라들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세월을 허송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도 "나 여호와의 일을 태만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영적인 정면공격을 가해야 합니다.

   전쟁의 승리는 공격자의 것이지 방어자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교회도 이제는 더 이상 바라만 보지 말고 사회주의 나라들에 대한 영적 공격을 개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쇠빗장을 꺾으셨다고 시편은 노래합니다. 철의 장막도 그분에게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는 지하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승리했습니다. 우리도 선진들의 사역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진정한 믿음이란 결코 교리만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각오가 되어야 합니다. 지하교회의 성도들은 자신들의 행동으로 이 각오를 증명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한 지하교회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비록 다시 납치 되어 투옥될 위험이 많으나 나는 결코 이 일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내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공산당과 손을 잡은 미국교회의 지도자들에게 그들의 믿은 바에 대해 죽을 각오를 하고 있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함과 영적 세계의 오묘함을 말로써 표현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잔인성 또한 말로써 형용하기 어렵습니다. 당신은 몇 마디 말로써, 사람이 독일군에 의해 화구 속에 던져지는 장면을 목격한 심정을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더 이상 말로써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주의 나라에서 받은 고난과 지금도 받고 있는 고난에 대하여 얘기할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나는 루마니아 공산당을 인솔하여 정권을 잡은 파트라스카누와 함께 감옥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함께 싸웠던 혁명동지들에게 잡혀 투옥되었으며 멀쩡한 그를 정신병원에 가두어 정신병자로 만들었습니다. 전 국무대신이었던 안나 파우커도 같은 형식의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종종 이런 참상을 당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중국의 홍위병들 또한 무법천지인 테러분자들입니다. 이들은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가두고 상상하기 어려운 폭행들을 행합니다. 전해온 소식에 의하면, 중국의 유명한 복음 서적 작가와 몇 명의 성도들이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키자 간수들은 그들의 귀와, 혀, 그리고 두 다리를 잘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더욱 무서운 것은 사람의 육체를 불구로 만들고 심지어 죽이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사상과 인식, 특히는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의 심령을 오도하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교회의 지도권을 장악하고 청년들로 하여금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미워하고 싫어하게 하여 교회를 완전히 없애버리려고 책동합니다.

   수년간의 고난을 겪은 그리스도인들이 집으로 돌아오면 그 사이에 그들의 자녀들은 철저한 무신론자가 되어 그들을 경멸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말할 수 없는 비극입니까?

   이 책은 먹물로 썼다기보다는 수많은 고난을 겪은 성도들의 마음에서 흘러내리는 붉은피로 쓴 것이라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 속에 던져졌어도 불에 그을리지도 않고 나온 것처럼 감옥에서 풀려나온 성도들도 간수들을 원망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름답게 핀 꽃을 짓밟으면 꽃은 원망대신 향기를 안겨줍니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인들도 많은 폭행을 당했지만 여전히 사랑으로 공산주의자들을 감화시켜 많은 간수들이 주님께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가 가진 최상의 선물인 하나님의 구원을 우리를 핍박하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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