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미래를 생각하라

                                                                        -윌리암 맥도날드 (William MacDonald)

 

   영원(Eternity)

 

   만약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 너무나도 짧다는 사실이 엄연한 현실이라면, 그 이후에 우리가 살아야할 시간이 영원하다는 사실은 얼마나 더 놀랄만한 일입니까. 영원이란 단어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는 실상 거의 없습니다. 우리에게 좌절감을 안겨줄 만큼 그 의미를 포착하기 어려운 이 단어를 확실하게 감지하기위해 창세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 보십시오. 천사들이 창조되기 이전까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던 때 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십시오. 계속해서 시작이 없는 최초의 때까지, 그 이상까지 생각해보아도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존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영존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결코 존재하심의 시작을 경험해보지 않으셨습니다.

 

이번에는 당신의 마음이 미래를 향하게 하여 보십시오. 지구가 멸망된 후, 죄가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 시간이 끝 난 후... 미래를 향하여 계속해서 앞으로, 앞으로, 더 앞으로 더 나아가 영원히, 영원히, 끝없이, 끝없이 당신의 마음에 그려 보십시오. 

 

영원에 이르는 매우 협소한 생사의 경계에서 이 세상을 떠나기 싫어하는 당신의 머리가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지력을 동원하여 영원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몹시 애쓰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 그럼에도 당신은 죽음 이후 영원히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이 '영원히 사는 삶! 영원히 끝없이 사는 삶! 영원한 내세의 세상에서 사는 삶!' 을 사는 존재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영원의 참 의미를 포착하기 위해서 우리 인생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까?  예를 들어, 헨드릭 반 룬( Hendrick Van Loon)은 다소 적절치 않은 설명이긴 합니다만 영원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스비트조드'라고 불리는 땅의 북쪽 아주 높은 곳에 바위 하나가 솟아 있습니다. 그 바위는 높이와 넓이가 무려 160km에 달합니다. 천 년마다 한 번씩 작은 새 한 마리가 이 바위로 날아와 부리를 날카롭게 만들고 갑니다. 수 없이 많은 천년이 지나고 바위가 완전히 닳아서 없어질 때, 그때가 비로소 영원에서의 하루가 지난 것입니다.

 

   롤란드 딕슨 에드워즈(Rowland Dixon Edwards)는 영원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습니다.

 

   대양을 가르는 여객선을 타고 실을 맨 골무를 배의 옆으로 내려 바닷물이 다 없어질 때까지 조금씩 물을 퍼 올리십시오. 이렇게 해서 모든 바닷물이 다 없어질 때까지의 시간이 바로 영원이라는 시간의 크기를 말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영원이란 끝없는 바다와 같습니다. 영원은 끝없는 시간입니다. 영원은 영원히 현재하는 순간입니다. 한마디로 영원이란 하나님께서 존재하시는 영존하는 시간입니다. 영원이라는 단어 자체도 이와 같이 그 자신이 가진 의미에 압도 되어서 그 의미를 제대로 묘사하지 못한 채 끙끙 앓는 것처럼 보입니다. 인생은 끝없이 긴 모래사장을 덮고 있는 한 알의 모래에 불과합니다. 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의 생애는 이처럼 밝은 깨달음 가운데서 설명되어져야 합니다. 사람은 영원의 분명한 의미와 그에 대한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밀라노에 있는 대성당에는 세 개의 문이 이웃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문 위에는 아름다운 장미 장식과 함께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모든 즐거움은 잠깐이다." 두 번째 문 위에는 십자가와 함께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모든 괴로움은 잠깐이다." 그리고 가운데 문 위에는 다음과 같은 충고의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영원한 것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원이라는 분명한 실재를 단단히 붙들어야만 합니다. 즉, 우리의 영혼은 이 간담이 서늘해질 만큼 엄청난 현실과 진실하게 대면함으로써 영원이라는 이 분명한 실재에 완전히 사로잡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때, 두 눈에는 빛나는 광채가 있고, 마음에는 우리의 인생 계획이 이 땅에서의 시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어야 한다고 하는 단호한 결의로 가득차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장래에 있을 영원한 때를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EMM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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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미래를 생각하라

                                                                          - 윌리암 맥도날드 (William MacDonald)

 

   위대한 진리는 우리의 인생을 역전시킵니다.

 

   위대한 진리만이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수년 동안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도 귀한 성경 말씀을 한 구절을 읽고 영감을 받아 바로 그날부터 그 전에 살았던 무료한 세월들을 완벽히 청산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이 사람의 생애는 완전히 바뀌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사건이 중국 내지 선교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에게 일어났습니다. 테일러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아무 목적도 없이 책을 뒤적이고 있다가 정말 우연히도 "다 이루신 그리스도의 사역"이라는 표현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진리의 말씀이 테일러를 굳게 붙들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사역을 다 이루셨다면 테일러에게 남은 일은 구주를 믿는 것뿐이었습니다. 그의 영혼은 빛과 평강으로 가득 찼습니다. 몇 년 후, 테일러는 복음의 문을 열기 위해 중국 내지로 들어갔습니다.

 

   18세기 독일의 귀족 출신인 진젠도르프 백작(Count Nicolas Von Zinzendorf)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독일에 있는 한 젊은 귀족 청년이었던 그는 뒤셀도르프에 있는 한 미술관을 방문하여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십자가 위에 매달려 있는 그리스도의 그림 앞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림 밑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보라! 나는 너를 위하여 목숨을 버렸건만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

 

   이 글을 보는 순간 진젠도르프 백작의 마음은 산산이 부서져버렸습니다. 이를 계기로 자신의 남은 생애를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18세기의 유명한 모라비안 선교운동의 창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D.L. 무디(D.L. Moody)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무디가 영국에서 복음 전도 대회를 막 마쳤을 때였습니다. 유명한 영국인 설교자인 헨리 발리(Henry Varley)와 작별인사를 하던 도중 무디는 발리가 던진 가벼운 인사말에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무디 형제님, 자신의 전 생애를 하나님께 드리기로 결심하고 실제로 전 생애를 바쳐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수행하는 단 한 사람이 얼마나 큰일을 할 수 있는지를 모든 세상이 보아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세상은 아직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때 이후로 무디는 이 말이 가진 압도적인 의미를 마음속에서 지울 수 없었습니다. 배를 타고 미국으로 돌아갈 때도 이 말이 대서양 파도 위에 떠다녔고, 뉴욕의 포장도로 위를 걸을 때도 아 말이 도로위에 넘실댔으며, 기차를 타고 시카고로 향할 때도 창밖의 풍경에 이 말이 아른거렸습니다. 이 가벼운 인사말이 무디의 남은 생애를 바꿔버렸습니다. 무디는 인사말처럼 전 생애를 바쳐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수행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현재까지 D.L. 무디의 사역이 만들어 낸 엄청난 결과를 보면 그가 얼마나 큰일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와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은 무디 외에도 수백 명이나 있습니다. 이들은 진리를 발견하기 전 방탕하게 인생을 살아오다 어느 날 사람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의존해야할 가장 위대하고 기초가 되는 진리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그 진리가 소유한 뛰어난 합당성과 정서에 그대로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이 진리는 그들 안에 불같은 열정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살지 않고 위대한 진리로부터 영감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살아갔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대화하며 함께 살아갔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런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진리에 변화를 받은 사람들과 같이 되기를 기꺼이 원한다면 진리가 평범한 삶으로부터 우리를 부를 것입니다. 불러내어 지금 세상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 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하고 이 세상을 지나 영원한 미래까지도 보장해줄 것입니다.

 

   시간을 들여 조용히 귀 기울이고 진리의 말씀 듣기를 우리가 기꺼이 원한다면! 진리를 정직하고 용감하게 대면하기를 기꺼이 원한다면! 진리가 소유한 합당한 결론을 인정하기 위해 철저히 생각해보기를 기꺼이 원한다면! 합당한 결론에 합당한 반응을 보이고 진리를 따라 행하며 마음을 다해 추구하기를 기꺼이 원한다면!

 

   모든 일은 우리가 기꺼이 하기를 원하느냐의 여부에 달려있습니다. 진리가 비춰주는 이 영광스러운 비전에 준비된 마음으로 따르기를 원하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존전에서 처럼 진실한 마음으로 다음 질문에 대답하여야 합니다.

 

   나는 주님께서 내게 말씀해주시기를 기꺼이 원하는가? 주님이 말씀하시면 주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겠는가? 주님의 위해서 내가 기꺼이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가?  EMM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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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경건한 친구는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Godly Friends Bring Happiness)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좇지말라. 그들이 네게 말하기를 우리와 함께 가자. 죄 없는 자의 피를 흘리기 위해 우리가 가만히 숨어 엎드려 기다리자. 음부 같이 그들을 산채로 삼키며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같이 통으로 삼키자. 우리가 온갖 귀중한 보화를 얻고 탈취물로 집을 가득히 채우며 너는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으며 우리와 함께 한 포대를 가지자 할지라도 나의 아들아 그들과 같이 길을 함께 걷지 말며 네 발을 그들의 길에서 금하라. 그들의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그들은 피를 흘리는 데 성급함이라...재물을 탐하는 자들의 길은 다 이와 같으니 곧 그 자신들의 생명을 잃게 되리라."(잠언 1:10-16).

위의 구절에서 솔로몬은 청소년들에게 범죄 집단에 함께 참여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유혹하다(entice)란 말은 어리석은 자들이 청소년들을 범죄의 길로 부추기며 유인하는 수법을 적절하게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악한 자들은 청소년들을 유혹하여 그들이 범행할 때 망을 보도록 하거나 혹은 마약을 운반하는일과 같은 비교적 죄의식을 덜 느끼는 일에 먼저 이용합니다. 이와같이 그들은 청소년들에게 악하고 불법적인 일을 시키며 이르기를 "만일 들키더라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라고 안심을 시킵니다.

리차드(Richard)는 형무소에서 복역 중에 있습니다. 그는 10대 시절에 청소년들로 이루어진 범죄 집단에 가입되었습니다. 리차드는 그때까지만해도 어떠한 범죄에 연루된 전과 기록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그 집단의 두목이 리차드에게 지시하기를 어느 사람을 찾아가서 돈을 수금을 해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리차드에게 호신용 권총 한 자루를 건네주었습니다. 리차드는 그 채무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지만 이번 일로 말미암아 다른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심정으로 그 일을 수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리차드가 돈을 받기 위해 채무자를 찾아갔을 때 그는 오히려 그로부터 위협을 당하였습니다. 두려움과 위협을 느낀 리차드는 당황하여 자신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기고 말았습니다. 그 후 리차드와 같은 그룹의 다른 친구들은 여전히 길거리를 활보하고 있었지만, 리차드는 불행히도 이 일로 체포된 후 종신형을 언도받고 수감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죄수들중에는 대부분 이와 비슷한 일들을 저지르고 그곳에 들어 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친구를 현명하게 선택하라

"너는 악한 자들의 죄짓는 길을 따라가지 말며 행악하는 자와 동행하지 말라. 그와 같은 길에서 너 자신을 피하며 함께하지도 말며 돌아서서 그와 같은 길에서 떠나라"(잠언4:14-15).

"불량한 자들은 그 이웃을 꾀어 내 그릇된 길로 그를 이끈다. 그들은 눈짓으로 악을 은밀히 도모하며 입술로 악을 토해낸다"(잠언16:29-30).

"너그럽지 못한 자는 항상 분쟁을 일으키고 남의 말을 좋아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시킨다"(잠언 16:28).

"쉽게 화내기를 잘하는 자와 친구의 우정을 쌓으려 하지 말며 포악한 자들과 서로 어울리지 말라. 너는 그와 같은 행동을 배우려 하지도 말며 네 영혼이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라"(잠언 22:24-25).

"어려움이 닥칠 때 신실하지 못한 자를 의뢰함은 탈골된 발목과 썩은 이처럼 도움이 되지 못한다"(잠언 25:19).

"도둑의 동업자가 되려는 자는 그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자이다. 그는 진실을 맹세한다 말하지만 그러나 진실을 증언하지 않는다"(잠언 29:24).

"악한 자들을 부러워 하지 말며, 그들과 함께 할 생각을 말라. 그들의 마음은 언제나 악한 짓을 꾀하며 그들의 입술은 분란을 일으킨다(잠언 24:1-2).

인생에 있어서 현명하고 진실한 친구를 찾아 얻는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반면에 악한 친구를 사귀며 그들을 따르는 자들은 그 자신의 인생을 파멸의 길로 빠져들게 하는 것입니다. 잠언서가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는 이상과 같은 구절들을 깊이 음미하고 내 자신의 생활 지침으로 삼는 것이 지혜로운 자의 삶입니다.

우정에 관한 잠언서의 충고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 사람은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해준다"(잠언 27:17).

* 잠언서의 이 명구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재해석할 수 있습니다. 철이 철을 단련하여 보다 유용한 도구를 만들어 내듯이 친구 역시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통하여 서로를 깨우치며 발전시켜 주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이지만 그러나 문제를 반복해서 말하는 자는 친구 사이를 갈라놓는 자이다"(잠언 17:9).

* 이는 자신들의 죄를 덮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진실한 우정관계를 원한다면 사랑 안에서 무슨 험담이나 타인의 일에 대해서 뒷얘기 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하는 교훈입니다.

" 친구가 많은 사람은 해를 입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더 친밀하다"(잠언 19:24).

* 많은 친구보다 진실한 친구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 나 자신을 사랑하듯이 남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참된 친구는 육신의 형제들보다 더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때때로 이 구절은 우리의 친구가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교만한 자와 도둑질한 물건을 함께 나누는 것보다 마음을 낮추고 겸손한 자들과 함께하는 것이 낫다"(잠언 18:19).

* 명성이나 힘이 있고 부요하여 그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과 친구가 되려고 하는 것은 후에 실망을 가져다 줄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친구는 겸손하고 세상적으로 낮은 부류의 사람들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사람의 행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그의 원수들이라도 그와 더불어 화평케 하신다"(잠언 16:7).

진실 되게 사는 자들은 친구만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원수들마저 그들을 해하려 들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실례로, 형무소 재소자들 가운데 그리스도인이 된 후로 예전의 갱단으로부터 탈퇴한 사람은 이 말씀이 진실임을 때때로 발견하게 됩니다. 실제적으로 한동안 그들은 위협을 가해오기도 하지만 그러나 곧 그들은 그대로 내버려 둡니다.

"친구의 사랑은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역경을 위하여 태어났도다"(잠언 17:17).

* 우리 모두는 어려운 때를 만났을 때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가까운 친구들이 항상 주위에 필요합니다.

"스스로 분리하는 자는 자신의 소욕을 쫓는 자라. 그는 모든 현영한 판단에 대해서 반항을 한다"(잠언 18:1).

* 외톨이인 사람은 보통 성격상으로 아주 이기주의적일 수 있으며 또한 때로는 쉽게 분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어렵습니다. 믿는 자들은 외톨이라 불리는 대신에 다른 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입니다.

"네 이웃집을 자주 드나들지 말라. 그들이 너를 귀찮게 여기며 싫어할지도 모른다"(잠언 25:17).

* 지속적인 우정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항상 다른 사람의 시간을 너무 방해함으로 친구에게 부담이 되지 않게 하라는 말입니다. 우정을 쌓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다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즉 나 자신만을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라는 의미입니다.

"네 원수가 망하는 것을 보게 될 때 즐거워 하지말며 그가 넘어질 때 마음속으로 기뻐하지 말라"(잠언 24:17).

* 원수가 시련을 당하며 넘어지게 될 때 마음으로 고소해 하는 사람은 좋은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인격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 끼어들어 언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마치 개의 귀를 잡는자와 같다. 미친 자처럼 횄불을 던지고 화살을 쏘아 사람을 죽이고도 그의 이웃에게 "내가 단지 장난으로 그랬다" 라고 속이는 자가 있다"(잠언 26:17-!9).

* 성숙하지 못한 행동이나 어린애들 같은 농담을 하는 자는 좋은 친구를 만들 수 없습니다. 좋은 친구는 다른 사람의 일에 필요없이 끼어들지도 않는 법입니다.

"솔직한 책망의 충고는 숨은 사랑보다 낫다. 신실함은 친구의 상처를 아물게 하나 거짓은 원수의 입맞춤과 같다"(잠언 27:5-6).

* 참된 우정은 서로간에 솔직한 진실을 나누는 것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이러한 솔직함은 다른 사람이 그를 진정으로 염려하고 있음을 알게 해주어서 각 사람으로 하여금 그 진정성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합니다.

교도소 내의 친구들

교도소 내에 있는 크리스쳔들은 종종 심한 고독을 느낍니다. 이 사람들의 가족과 친구들은 점점 그들에게서 멀어져 갑니다. 또한 가족과 친지들로부터의 소식도 날이 갈수록 멀어져 가며 찾아오는 횟수도 점점 줄어듭니다. 예전에 길거리 갱단에서 함께 활동했던 친구들 중에는 더러 사형을 당하거나 중형 감방에 유폐된 자들도 있습니다. 많은 종신형 수감자들이 경험하는 가장 큰 두려움은 형무소 내에서 홀로 쓸쓸하게 죽어가는 것입니다. 형무소 안에 있는 자신들이 죽든지 살든지 자신들에게 관심을 갖는 이들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고 그들 스스로 생각합니다.

같은 형무소 내에서 진정한 친구를 찾기는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단(Dan)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괴로움은 내 자신이 이 감옥 안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이 아닙니다. 그보다도 험악한 다른 죄수들과 날마다 함께 살고 있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여기 형무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대개 언제나 큰 고함 소리와 저주와 악담과 불평과 화냄과 탄식 소리를 토해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행위가 주를 기쁘시게 하면 그의 원수와도 화평케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잠언 16:7).

에드워드(Edward)의 경험담입니다. 그는 자신의 가정환경에 대해서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그가 12살이 되었을 때 그는 사랑과 친구와 우정의 궁핍함을 느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단순히 사람들에게 용납 받고 사람들과 어울릴 목적으로 바보처럼 어리석은 일들을 하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무척 외로웠었습니다. 16세 때에 그는 어느 파티 모임에서 술에 취해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체포되었습니다. 그에게 10년 형이 내려졌습니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생애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꼈으며 체포 된지 얼마 안 되어 그는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에 의지하였습니다. 특별히 청소년 보호소로부터 성인 감옥으로 이송될 때 그랬습니다. 그는 전적으로 자신을 그리스도께 복종하였고 다른 동료 죄수들의 압박속에서도 그랬습니다. 그는 완전히 주님만을 의지하기로 했습니다.

에드워드가 20살이 되었을 때, 찰스(Charles)를 만나 그와 우정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 에드워드는 백인이었으며 그는 주로 백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교외에서 자랐습니다. 반면, 그의 새로운 친구 찰스는 30세로 가난한 시내 주택밀집지역에서 성장한 흑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공통적으로 같은 믿음 안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동료죄수였습니다. 그들은 함께 기도했고 작업도 같이 하였고 성경을 함께 공부하며 함께 다른 사람들에게 주님을 증거 하였습니다.

그들은 다른 죄수들로부터 심한 핍박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당시 형무소 안에서는 한 가지 불문율이 있었는데 이는 다른 인종들 간에는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에드워드는 가장 나이가 어렸고 살해 위협도 여러 번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여하간 에드워드는 이에 굴하지 않았으며 누가 협박과 위협을 가해도 자신이 믿고 아는 바른 진리의 길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을 쉬지 않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에드워드는 찰스와 더불어 그리스도 안에 형제요 친구로서 더욱 더 우정이 깊어갔습니다. 오래지 않아 형무소 안에 있는 그들의 기도 모임에 다른 죄수들도 참여하기 시작하게 되었고 여러 다른 인종과 예전의 갱 단원들 중에도 그들과 함께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 위협은 중단되었고 날마다 그들 모임은 더 많은 인종들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으로 성장해갔습니다.

에드워드는 심지어 교도관들과 동료 죄수들과 형무소 내 상담 목회자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래지않아 에드워드는 그가 있는 건물 내에서 보조 상담 목회자로 천거를 받게 되었습니다. 에드워드에게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의 수는 나날이 늘어갔고, 그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과 친구관계를 맺으며 그들과 함께 교제하였습니다. 최근 자신의모친을 잃은 늙은 한 흑인 크리스쳔과 오랜 시간동안 형무소 뜰을 함께 걸으며 그를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에드워드는 짧은 시간 안에 만난 친구라도 그는 아주 신속하게 유능한 상담가로서 그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 하였으며 이와 같이 그는 다양한 사람들을 계속 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교도소 직원들은 그를 10대 청소년 예비 죄수들에게 감옥생활 적응을 위한 교육과 상담자로 그를 뽑아 임명하였습니다.

에드워드는 다른 사람을 그의 친구로 만드는 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역시 자신의 가족들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장차 자신과 함께할 합당한 그리스도인 여인을 만나야 하는 일 등과 같은 염려들이 있었지만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주를 의지하며 수많은 다른 동료 죄수들을 돌보며 그들과 우정을 쌓아가는 현재의 일에 만족하며 충실하였습니다.

이처럼 에드워드가 자신의 믿음과 변화된 삶과 교도소 내에서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상담할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된 것은 그가 잠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중요한 교훈들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할 수 있는 한 자신의 처한 형편과 생활에 대해서 축복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잠언은 이처럼 의로운 자에게 주어지는 복과 또한 그와 반대로 악한 자의 불행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패역한 자는 주께서 싫어하시나 의로운 자는 가까이 하신다"(잠언 3:32).

"주께서 의로운 자는 주리게 하지 않으시나 악한 자의 소욕은 물리치신다"(잠언 10:3).

"의로운 자의 입은 생명의 샘이나 악인의 입은 독을 품는다"(잠언 10:11).

"의인의 삯은 생명이나 악인의 소득은 형벌이다"(잠언 10:16).

또한 성경 중에서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을 가장 분명하게 비교하여 말씀해주는 곳은 시편 제1편입니다.

악한 자들을 멀리하라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구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시편 1편 ).

에드워드는 남을 모욕하고 조롱하기 좋아하는 악한 자들을 멀리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을 얻는 길임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배웠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기쁨이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물가에 심기 운 나무처럼 그의 삶에 열매를 주셨습니다. 그는 비록 어려울 때에라도 마르지 않는 잎처럼 용기와 희망과 기쁨 속에 살아갔으며그가 하는 일들을 주님께서 형통케 해주셨습니다. 그는 진실로 시편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행복이요 축복임을 배워 알게 되었습니다.

결론

경건한 친구들은 우리의 싦에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에드워드의 삶이 실제적인 그 산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움의 나무로 변하게 될 때(시1:3) 영혼이 목마르고 굶주린 자들이 가까이 하고 싶어 하는 인물이 될 것입니다. 당신은 물가에 심긴 나무처럼 계속 자랄 것이며 풍성한 열매들을 맺게 돨 것입니다. 지치고 굶주리고 갈증을 느끼는 자들은 당신을 필요로 하며 당신에게로 찾아 나아 올 것입니다. 이는 성령님께서 당신을 의로운 나무로 변화시켜 주심을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렘 17:7-8 참조). 사람들은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요한 15:15)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들 또한 당신처럼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친구로 삼기를 원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전에 많은 그의 백성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기를 원했습니다. 언젠가 그의 고향 나사렛에 있는 한 회당에서 말씀하실 때 사람들은 모두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은혜로운 말씀을 기이히 여겼다"(누가 4:22)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비록 세상적인 학문은 낮으나 믿음을 가진 후 성경을 깊이 상고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큰 감화를 끼치는 사람으로 변하는 경우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D.L. 무디는 초등학교 교육조차 제대로 마치지 못한 사람이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19세기 최고의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시편 저자는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함으로 나의 통찰력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뛰어나며 주의 법도를 지킴으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뛰어나나이다"(시 119:99-100).

끝으로 분을 내고 남을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친구는 멀리함이 좋습니다. 그들은 결국 당신을 멸망으로 이끌 것입니다. 그런 친구들은 진정으로 당신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려 하지 않습니다. 당신을 지극히 사랑하심으로 당신의 모든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신 당신의 진정한 친구,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 오십시오. 예수님은 당신을 친구로 맞이하시기를 진정으로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의로운 열매를 맺는 나무로 만들어 주시고 당신과 교제하기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을 당신에게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EMMAUS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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